< 404화. 첩첩산중의 위기 >
키메라들을 모두 정리하고 후샹 가문의 저택으로 돌아왔다. 거리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모두가 무쉬드와 버박을 연호하고 있었다.
“후샹 가문이여, 영원하라!”
“무쉬드 후샹 만세! 버박 후샹 만세!”
저택 안쪽에서도 들려올 정도로 바깥은 광란의 현장이었다.
“죄송합니다. 아드리아스 님의 공을 제가 다 가로 챈 것만 같아서······.”
“신경 안 씁니다.”
내가 이런 사막에서 공을 챙겨 뭐하겠나.
애초에 뭔가를 바라고 키메라들을 정리한 게 아니었다.
“저, 혹시 뭔가 바라시는 거라도······.”
무쉬드는 그런 내 태도에도 불안했는지 한껏 저자세로 나왔는데 보상보다는 뭔가 알고 있는 게 있나 물어보았다.
“그 키메라들에 대해서 뭔가 아는 게 있습니까?”
“괴물들 말씀이십니까? 딱히 아는 거라고는······.”
키메라의 정체에 대해 물어본 거라고 질문을 오해한 모양이었다. 말끝을 애매하게 흐리는 그를 보며 조금 더 구체적인 질문이 필요함을 느꼈다.
“언제 나타났는지, 아니면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릅니까?”
“아! 그거라면 저희 부족민으로부터 들은 바가 있습니다!”
때마침 버박이 나서며 말했다.
“도시 동쪽으로 6시간 쯤 거리에 거대한 모래 바위가 있습니다. 목격한 인원들의 말로는 그 바위 근처의 바닥에서 기어 올라왔다고 합니다.”
“혹시 그 근처에 사람은 없었습니까?”
“저희 부족민 이외에는 없었다고 합니다.”
황제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같이 있던 건 아니었나. 그러면 황제는 에반이 있는 곳에 있을 확률이 높을 것 같았다.
‘자카타에 남은 폭식의 흔적을 확인하러 갔을 수도 있겠군.’
다시 돌아가야 하나.
일단은 에반이 오기를 기다려야 하지만 마음이 살짝 급해졌다.
어서 황제라는 걸림돌을 해치우고 오만을 찾아야하는데······.
쿵쿵!
응접실의 문이 두드려지며 밖에서 목소리가 전해져왔다.
“뭐냐?”
“부족장님, 사람이 왔습니다!”
“사람?”
“아드리아스 님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어서 모셔라!”
무쉬드가 거의 척수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그나저나 내 사람이라. 누가 왔다는 거지?
“오오? 노아!”
이내 문이 열리고 두 사람이 입장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루나가 사악한 뱀을 손에 쥔 채 총총 뛰어갔다.
“아이비, 노아.”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이군.
“허허! 어서 오십시오. 아드리아스 님, 저희는 잠시 자리를 비키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알아서 자리를 비키는 후샹 부자를 보며 살짝 고개를 숙여준 뒤 이내 다가오는 클레어 자매를 보았다.
“두 분 다 오랜만입니다.”
“뭔 소리야, 얼마 전에 봤으면서.”
노아가 투덜대며 이내 털썩하고 근처 자리에 앉았다. 네브로의 과거를 보고 온 탓에 크롬웰에서 마지막으로 보고 헤어진 걸 까먹었다.
“후우.”
아이비는 들어오자마자 담배부터 피기 시작했다. 진짜로 오랜만인 건 아이비 쪽이네. 근데 노아랑 같이 나를 보러 올 줄은 몰랐는데.
“오랜만입니다, 아이비. 설마 노아랑 같이 오실 줄은 몰랐네요.”
“어, 오랜만.”
여전히 쿨한 인상의 그녀는 몇 번 빨던 담배를 그대로 바닥에 던지며 발로 비벼 껐다.
“너 설마 내가 크롬웰 밑에서 일하고 있던 거 모르는 거냐?”
“아이비가 제 밑에서요?”
“네 밑이 아니라 크롬웰.”
그게 그 말이잖아. 난 들은 적도 없는데 언제?
“실직해서 동생 도움으로 취업했다.”
“잘 오셨습니다.”
아이비라면 언제든 환영이지. 흑마법사를 증오하는 게 조금 걸리지만······.
‘알고 왔겠지?’
루나를 보고도 아무 내색이 없는 걸 보면 이미 알건 다 안 모양이었다.
“일단 정보부터 전달할게.”
나와 아이비의 대화가 끝나자 노아가 입을 열었다. 왜 왔나했더니 정보를 전달해주러 여기까지 직접 온 듯했다.
“여기도 한 번 난리가 났던 모양인데, 지금 대륙 각지에서 키메라들이 난동을 부리고 있어. 그 규모가 상상 이상이야.”
“대륙 각지?”
샤이야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고?
예상 밖의 스케일에 살짝 눈살이 찌푸려지는 찰나 노아가 말을 이었다.
“크롬웰 근처에도 나타났어.”
“무사합니까?”
“무사하니까 내가 왔겠지?”
노아는 그리 말하며 이내 얼굴을 굳혔다.
“중요한 건 이 뒷내용이야.”
“더 중요한 게 있습니까?”
“어. 우리 조직을 최대한 가동시켜서 정보들을 수집하고 있는데, 키메라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군 방향이 전부 우리 영지 쪽이야.”
이건······확실히 뭔가가 있었다.
하필이면 크롬웰을 노리고 사방에서 몰려든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의도됐다고 볼 수밖에 없지.
“그 수가 대략 20만 정도.”
“20만······!”
옆에 있던 루나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을 꼽았다. 루나, 그 작은 손으로 20만을 다 꼽으려면 100년도 부족할 거다.
“미쳤군요.”
“그래서 골치가 아파졌어. 알게 되자마자 바로 널 찾아온 이유기도 하고.”
20만의 키메라 부대라······.
한계까지 싸우면 결국 이길 자신은 있었지만 내가 볼 때 진짜 위협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 같았다.
“누구의 소행인지는 지금 알아내고 있는데 아무래도 짐작이 가는 건 제국뿐이야. 정확히는 로들렌 황가.”
“생각이 같군요.”
“뭐야, 알고 있었어?”
내가 걱정하는 건 20만의 키메라 대군보다 제국 그 자체였다. 단순한 물량 정도는 네크로맨서인 내가 쥐어짜면 결국 이겨낼 수 있었지만 초인들은 별개였다.
만약 키메라가 황제의 것이 맞다면 황제의 명령을 받은 초인들이 크롬웰을 노리고 들이닥치는 것도 가능한 일이었다.
“제국의 동태를 예의주시해주세요. 특히 초인들을 중점적으로 부탁합니다.”
“제국의 황가에서 왜 이렇게까지 크롬웰을 노리는 거야?”
마치 심문하듯 물어보는 노아를 보며 나는 자연스레 원죄를 떠올렸다.
“황제가 원하는 물건이 나한테······아.”
말을 하다가 문득 떠오른 사실이 있었다.
원죄는 나한테 있지만 황제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래서 내가 아닌 크롬웰을 노리고 있는 거겠지.
“돌아가야겠군요.”
황제를 잡는 것도 중요했지만 크롬웰을 지키는 게 더 중요했다.
“중요한 물건? 그게 뭔데?”
“예전부터 황제가 노리던 물건이 가문에 있었습니다. 지금은 제가 가지고 있고요.”
“그거 때문에 이런 일까지 벌인다고?”
과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난 충분히 이해했다. 황제는 원죄를 일종의 열쇠로 알고 터부니 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원죄의 중요성을 아는 만큼 강하게 행동하는 거겠지.’
그곳에는 어떠한 낭만도 없이 그저 짓밟고 빼앗겠다는 맹목적인 욕구만 존재할 뿐이었다.
“저와 루나는 크롬웰로 먼저 돌아가 보겠습니다. 둘은 에반과 함께 와주십시오. 아마 금방 이곳으로 올 겁니다.”
“알았어.”
“아, 오시는 길에 대부님과 막시민도 같이 데려와주세요. 두 분 모두 근처에 있거나, 곧 볼일을 다보고 이곳에 오실 겁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키메라를 이용해 대놓고 크롬웰을 노릴 정도면 초인들을 이용하지 말란 법도 없었기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확인했어.”
“조심해라, 아드리아스.”
노아가 그런 내게 고개를 끄덕였고 아이비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내 루나도 내 뒤를 따라 일어나며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아, 이야기는 끝나셨습니까? 부족장님께 언질을 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저희는 지금 바로 돌아가야 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저 둘만 좀 챙겨주세요.”
“네? 네. 그, 부족장님에게 말해놓겠습니다.”
갑작스레 떠난다고 말하자 문 앞을 지키고 있던 부족장의 수하가 당황스러운 기색을 띄었지만 이내 사막 부족 특유의 경례 동작을 해보이며 나를 배웅했다.
“급하다, 급해!”
루나가 짧은 다리를 휘저으며 앞서 걸어 나갔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응원이 되는 것 같아 조금 더 지켜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녀의 말대로 마음이 급했다.
“루나, 크리브마허를 타고 가겠습니다.”
“오! 좋아!”
네브로였으면 뚝딱하고 공간 이동 마법을 사용했겠지만 내게는 무리였다. 마법 실력이 늘었어도 잘 하던 걸 더 잘하게 된 것이라 못하던 걸 할 수 있게 된 건 아니었다.
-크롸롸롸롸!
“시끄러.”
순식간에 소환된 크리브마허의 등 위에 루나부터 올려 보내고 뒤따라 올라갔다.
“크롬웰로 가자.”
-······.
조금은 삐진 듯한 크리브마허가 거대한 날개를 펼치며 날아올랐다.
“용이다!”
“검은 전갈을 지킨 용이다!”
갑작스레 나타난 크리브마허로 인해 안 그래도 시끄럽던 거리가 소란스러워지는 걸 느꼈다.
“아드리아스 님!”
무쉬드가 소식을 들었는지 뒤늦게 밖으로 나와 외치는 소리도 들렸다.
“감사했습니다! 언제든 다시 방문해주십시오! 아드리아스 님은 저희 후샹 가문, 아니 검은 전갈의 영원한 은인이십니다!”
마지막 마디는 거의 아련하게 들릴 정도로 거리가 순식간에 멀어졌다.
**
“흑마법이에요.”
디에네 알븐은 심각한 표정으로 공터에 너부러진 키메라의 시신을 살폈다. 이자벨이 본보기로 데려온 샘플이었다.
“키메라가 반드시 흑마법으로 만들어지는 건 아니지만 이건 확실합니다.”
“흑마법뿐만 아니라······이거 꽤 복잡한데요? 이런 걸 어떻게 대량 생산했지?”
디에네의 말을 받으며 루시아가 중얼거렸다. 이미 그들의 귀로도 대륙 각지에서 일어난 혼란이 전해졌기에 생길 수 있는 의문이었다.
“한 마라, 한 마리가 꽤 수준이 높은데 이런 게 무려 만 단위가 넘게 있다는 게 믿기지 않네요.”
“으음······.”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에이미가 고민하는 얼굴로 입술을 매만졌다. 그리고는 이내 홀로 키메라들을 전멸시키고 돌아와 차를 마시고 있는 이자벨에게 말했다.
“믿기 힘들지만 각지에서 튀어나온 키메라들이 우리 영지 방향으로 진군하고 있다는 소식이에요. 추정되는 숫자가 무려 20만······.”
“너무 걱정마세요.”
이자벨은 전혀 전투를 치르고 온 것 같지 않은 모습으로 에이미에게 웃어보였다.
“제 앞에서 숫자는 무의미하답니다. 저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수준을 넘어선 강자들 앞에서는 상대가 설령 100만 대군이어도 의미가 없어요.”
오만하게 마저 들리는 이자벨의 말에 모두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러나 실제로 몇 천에 가까운 키메라 대군을 홀로 유유자적 토벌하고 온 이자벨이 하는 말이라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저희가 걱정해야 하는 건 이 일을 벌인 자의 의도에요.”
“아!”
이자벨의 핵심을 찌르는 말에 모두가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씀이세요. 키메라는 마법사가 만들어낸 결과물. 그런 녀석들이 단체로 이곳을 노리고 오는 건 분명 누군가의 의도가 있는 거겠죠.”
“정보 조직에서는 로들렌 황가가 유력하다고 보는 입장인데······.”
에이미는 말을 하다가 아드리아스를 떠올렸다. 이미 그에게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지만 제국의 황제와 크롬웰 가문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사이였다.
“일단 아버지께 연락을 드려볼게요. 제가 여기 있는 한 아버지께서도 이곳을 무시하지는 못할 거예요.”
디에네의 말에 에이미가 감사의 뜻으로 허리를 숙여보였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아드리아스에게 받은 도움에 비하면 오히려 제가 직접 뭔가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한 걸요.”
“그래도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지금 바로 연락하러 가볼게요.”
그렇게 디에네가 곧장 연락을 취하러 가려다 이내 누군가가 급하게 다가오는 걸 보며 멈춰 섰다.
“영주 대리.”
“무슨 일이에요?”
에이미의 비서인 마리아가 호흡을 가다듬으며 최대한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국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네?”
“후퇴했던 제국의 병력들이 크롬웰을 노리고 있다는 정보입니다. 모하임에서 패퇴했던 이들까지 모이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
예상치 못한 소식에 모두가 얼어붙었다. 그러나 마리아가 전달한 정보는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오러 마스터가 열둘, 워록이 대략 스물. 초인의 수만 무려 서른이 넘습니다.”
“······초인들도 참전하는 겁니까?”
“확실치는 않지만 파악된 움직임으로 봐서는 아마 그런 듯합니다.”
악재가 쌓이는 소리에 자리에 모여 있던 이들의 안색이 창백해져갔다.
“키메라가 20만, 거기다 제국의 병력과 서른 명이 넘는 초인.”
“이걸로 키메라가 황가의 것이라는 건 확실해졌네요.”
루시아가 헛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도저히 믿기 힘든 전력 차이에 기가 막히다는 표정이었다.
“영주 대리.”
“말씀하세요.”
“모하임으로 피신하시는 걸 고려해보심이 어떤가 합니다.”
마리아가 냉정하게 충고했다. 에이미도 그녀의 말이 나름 일리가 있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저희를 믿고 지금껏 영지에 남아있던 영지민들은 어떡합니까.”
“······.”
마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사방에서 다가오는 키메라들로 인해 영지민들이 피난을 떠날 방법은 없었다.
“어차피 이곳에 남아있어도 같이 죽을 뿐입니다.”
“도망친다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적어도 가능성은 생기겠죠.”
마리아의 말에 이어서 그때까지 조용히 지켜만 보고 있던 루이스가 말을 꺼냈다.
“살 수 있습니다. 선배님과 약속한 만큼 제가 꼭 지켜드리죠.”
어느새 에이미의 호위기사가 된 루이스가 자신 있게 말하자 모두의 시선이 에이미에게 향했다.
“전······.”
한참을 고민하던 에이미는 이윽고 천천히 입을 떼기 시작했다.
< 404화. 첩첩산중의 위기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