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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398화 (396/415)

< 398화. 토르 >

콰아앙!

파지지직!

토르가 망치를 든 손을 휘저을 때마다 달려드는 적이 하나씩 분쇄되어 갔다. 수많은 적들이 있음에도 굽혀지지 않는 그의 파괴적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적들만 있는 것도 아니군.’

상황을 조금만 더 지켜보자 수라장이 된 주변이 잘 보였다. 초월자와 그 하수인들이 서로 세력을 나누어 싸우고 있었는데······.

[“적이 더럽게 많네.”]

“천사님께서 알려주신 마법이 아니었으면 진즉에 당했을 거예요.”

이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네브로의 활약이 도드라졌는데 그의 마법은 이제 초월자에게마저 타격을 줄 정도로 성장해있었다. 이제는 엄연히 초월의 경계에 들어선 무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일리아스,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저 제단에 갈락슈르를 옮기면 되는 건가?”]

“일리아스도······모르겠어. 원래 샤이야의 무녀가 이걸 받아야하는데······.”

일리아스는 살짝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하긴 이런 아수라장에서 책임자도 보이지 않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리아스는 운반에 대한 책임을 졌을 뿐, 갈락슈르에 대한 전권을 지닌 것은 아닌 듯했다.

“다 죽여 버려라!”

“한 놈도 살려두지 마!”

샤이야가 사막이 된 이유가 이건가.

피아식별이 되지 않았다. 전쟁터도 이런 전쟁터가 없었고 그냥 서로 걸리적거리는 건 모두 공격하고 보는 듯했다.

[“이 상황에서 용케 살아있었네.”]

“이 혼란이 전부 지나가기 전까지 임무를 달성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네브로의 말이 맞았다. 이 상황에서 갈락슈르를 누구에게 건넬 것이며 그렇게 건네고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중요한 건 결국 사람이었다.

일리아스와 그린나래, 그리고 이제는 토르까지.

나와 네브로의 목표는 이들을 모두 살리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도대체 무슨 마법을 이렇게······.’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 열 개가 조금 넘는 마법을 동시에 캐스팅했는데 지금은 숫자도 잘 세어지지 않았다. 그저 연산이 가능한 여유가 되면 곧바로 마법을 사용하는 네브로는 거의 백에 가까운 마법들을 동시에 다루고 있었다.

그걸 직접적으로 느끼고 있는 나는 있지도 않은 육체에 멀미가 나는 것만 같았다.

“내 거야!”

갑자기 달려드는 거대한 형체가 네브로의 그림자를 덮었다. 그러나 반사적으로 사용된 수많은 마법들이 상대를 옭아매며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죽이진 못해도······.”

두 눈이 충혈된 네브로가 핏줄 솟은 얼굴로 마나를 계산했다.

“지킬 힘은 있습니다.”

“네브로.”

일리아스의 눈동자가 표류하는 배와 같이 흔들렸다. 그런 그녀의 심정이 나도 공감이 됐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지?’

실제로 육체가 존재했어도, 난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을 거다. 마법을 무려 백 개나 동시에 사용하는 네브로조차 이곳에서는 밑바닥 신세. 내 무력은 새 발의 피도 되지 않겠지.

‘내가 할 수 있는 것······.’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생각하고 고민했다.

살고 싶어서? 아니다.

난, 그냥 이런 사람이었다.

언제나 최선의 수를 강구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 인간. 그냥 가만히 있는 걸 도저히 못 견뎌하는 그런 인간이었다.

삐이이-----

그 순간 괴이한 이명이 들렸다.

곧이어······.

콰아아아아앙--------------!

이전과는 다른 엄청난 폭발음이 중앙에서 터져 나왔다.

“토르?!”

네브로의 놀란 비명조차 소음에 묻혔다.

그의 말대로 저곳은 토르가 있었던 장소.

이내 후폭풍이 몰아치자 네브로가 급히 마법을 사용해 일리아스를 지켰다. 그린나래는 어디 있나 했더니 아직도 네브로의 품속에 숨어있었다.

술렁술렁-

이윽고 네브로의 마법이 풀리자 주변은 온통 황무지가 되어있었다. 이만한 파괴력을 막아낸 네브로의 마법에도 경의를 표하게 되는군.

조금 전의 그 충격으로 도시 중앙이 날아간 것은 물론이고 전투마저 소강상태가 되었다.

“강하군.”

“으하하하! 재밌구나!”

그리고 충격을 만들어낸 원인이 묵빛의 검을 든 채 토르의 망치와 맞대고 있었다.

[“천마.”]

이미 토르의 팔을 잘랐을 때부터 강한 건 알았지만 이 정도로 강할 줄은 몰랐다. 솔직히 신화 속에 웬만큼 이름 있는 신들보다 강한 것 같았다.

“토르, 본좌가 그대에게 한 가지 물어도 되나?”

“말하라, 대적자여!”

“왜 그렇게까지 갈락슈르를 지키는 거지?”

천마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의 물음은 나 또한 의문인 부분이었다. 단순히 싸움을 좋아해서 그러나 싶었는데 그럴 거였으면 굳이 갈락슈르를 명분으로 삼지 않았어도 싸울 수 있는 것 아닌가?

“갈락슈르를 지켜? 내가? 으하하하하!”

“질문이 잘못됐나?”

“그래! 잘못됐다! 난 애초에 갈락슈르를 지키려고 한 적이 없다!”

토르가 특유의 호방한 미소를 지으며 천마를 향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난 그저 모험을 즐기고 있는 거야. 저기 있는 내 광대들과 말이지.”

“그게 그대의 목숨을 빼앗는다고 해도?”

“이런 멍청한 질문을 하다니! 실망이다, 방각.”

토르의 비웃음에 방각도 빙그레 웃었다. 마치 토르의 의중을 이해했다는 표정이었다.

“본좌가 실례를 했군. 사과하지.”

“으흐흐. 알았으면 되었다.”

천마가 검을 천천히 떼어냈다. 그리고는 갑자기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소달기!”

“네, 넷?”

“술을 가져와라.”

갑작스런 천마의 행동에 지켜보고 있던 모든 이들이 의문에 가득 찬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흐음?”

“토르, 우리 술이나 한 잔 하지.”

천마가 입 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하자 토르가 주저앉은 천마를 보며 폭소를 터트렸다.

“으하하하하하! 방각! 너도 나처럼 미친놈이구나!”

“싫은가?”

“아니! 오히려 좋다!”

마치 전쟁터 한가운데에서 술을 마시자고 권하는 듯한 풍경이었다. 그때 어느 초월자 하나가 수많은 가시를 온몸에 두른 채 토르를 향해 달려갔다.

“그이익! 죽어라, 천둥!”

“술맛 떨어진다.”

퍼석!

순간 천마의 몸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자 가시 달린 초월자는 그대로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육신에 존재하는 모든 액체조차 먼지로 만드는 고절한 검술이었다.

“처, 천마! 너도 우리와 한 패 아니었나!”

“한 패? 본좌가 너희와 같은 하등한 놈들과 같은 편이라고?”

천마가 차갑게 말하더니 이내 주위를 향해 경고했다.

“지금부터 본좌와 지우의 술자리를 방해하는 녀석은 모두 죽여 버리겠다.”

싸늘한 일갈에 모두가 어이없어 하는 기색으로 천마를 바라봤다. 그러나 그 누구도 말 한마디 뻥끗 못했다.

“여기 술이에요, 오라버니.”

“고맙다.”

천마가 술병을 받아들고 그대로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는 토르에게 건넸다.

“이건······.”

“디오니소스라는 녀석에게서 잠시 빌려왔다.”

“으하하하! 이게 바로 올림포스 제일의 술이구나! 끝없이 나오는 천상의 술!”

토르가 이내 병나발을 불며 꿀꺽꿀꺽 삼켰다. 끝을 모르고 술을 마시던 토르는 이내 거나하게 트림을 하며 천마에게 다시 술병을 건넸다.

“정말 끝내주는 최후군.”

“그렇지.”

끝내주는 최후라니?

토르의 말에 의문이 생긴 순간, 네브로가 덜덜 떨기 시작했다.

“아아······.”

[“네브로?”]

“토르!”

네브로가 토르의 이름을 힘껏 외쳤다. 그러자 토르가 우리를 돌아보며 빙긋 웃었다.

“으하하하! 광대들아! 너희도 한 잔 할 테냐?”

“어, 어째서······아니, 어떻게······.”

네브로의 영문 모를 반응이 이어지는 가운데 드디어 나도 깨닫고 말았다.

토르는 지금······죽어가고 있었다.

“그렇지! 광대야, 내 잘린 팔을 네가 들고 있었지?”

“예······.”

“안주 삼기 딱 좋구나! 어서 가져와라.”

네브로의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내 정신을 오염시키는 듯했다. 그는 떨리는 두 다리로 뚜벅뚜벅 토르에게 다가가 이내 아공간 마법으로 토르의 잘린 팔을 꺼냈다.

“왜 그러느냐, 광대야. 으흐흐.”

“토, 토르······.”

팔을 건네는 네브로의 눈에서 이내 닭똥 같은 눈물이 굴러 떨어졌다. 멈출 수 없는 슬픔이 밀물처럼 쏟아져왔다.

파지직!

토르는 그런 네브로를 보며 씨익 미소 짓더니 진짜로 자신의 팔을 번개에 구워냈다.

“슬퍼하지 마라. 너와 난 가치관이 달라.”

“흐흐흑.”

“내 죽음을 슬퍼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난 지금 너무나도 기쁘다! 그 누가 이러한 신화적인 전투를 만들어내고 죽을 수 있다는 말인가! 요 며칠, 내가 죽인 신들만 해도 세 자리수를 넘어간다! 으하하하하!”

토르는 자신의 팔을 뜯어 먹었다. 그러더니 대뜸 천마에게 건넸다.

“먹을 테냐?”

“사양하지. 술맛 떨어진다.”

“으하하하! 이 몸을 맛볼 기회를 제 손으로 걷어차는군!”

이게 토르인가.

내가 이런 인간이듯, 토르도 이런 신인 것이다.

그는 자신의 최후를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걱정이 되는군.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되었어.”

“토르······! 저 때문에······두 팔만 멀쩡했으면······!”

토르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일리아스를 향해 손짓했다. 이내 일리아스까지 다가오자 토르는 특유의 호방한 웃음을 터트리며 한 쪽 밖에 남지 않은 팔로 둘을 끌어안았다.

“절대로 포기하지 말아라, 광대들아! 네 녀석들은 아직 충분히 더 살아남을 수 있다! 으하하하!”

“왜, 어째서?”

토르의 품속에서 일리아스가 이해할 수 없다는 눈초리를 지었다. 이미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했음에도 납득이 가지 않는 얼굴이었다.

“왜 죽어가면서까지 우리를······. 만난 지 고작 얼마 되지도 않은······.”

“무슨 소리냐, 광대야.”

일리아스의 말을 끊은 토르가 자상하게 웃어주었다.

“너흰 내 광대다.”

마치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이.

그는 천천히 눈을 감기 시작했다.

“내 죽음조차 이용해서 살아남아라.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후의 책임.”

“아, 안 돼. 안 됩니다, 토르!”

“날 먹어라, 네브로.”

토르가 연이어 충격적인 말을 덧붙였다.

“날 먹고 강해져라. 넌 충분히 신이 될 수 있다. 그것도 강력한 신이.”

“커흡!”

강제로 입에 팔이 물려진 네브로가 당황했지만 죽어가는 토르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그의 버둥거림을 막았다.

“빛나는 자여.”

날 부르는 건가.

[“말해.”]

“내 광대들을 잘 부탁한다.”

······끝이었다.

내게 하는 말을 마지막으로 토르는 마치 잠이 든 것처럼 고요히 눈을 감았다.

그는 아이처럼 미소 짓고 있었다. 마치 나를 믿는다는 듯이.

“우웨엑!”

“토르······?”

일리아스의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토르의 팔을 삼킨 네브로가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주변으로 스멀스멀 살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죽었······나?”

“천둥이 죽었어? 말도 안 돼.”

“헛수작이야. 토르가 죽었을 리 없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모두가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갈!”

“크윽!”

조금씩 다가오던 몇몇 이들이 천마의 노호성에 뒤로 물러났다.

“아직 본좌와 지우의 술자리는 끝나지 않았다.”

천마는 끝까지 자리를 지키겠다는 듯 허리춤의 검집을 통째로 꺼낸 채 자신의 앉은 다리 위로 올렸다. 마치 다가오는 자가 있으면 구 누구든 베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아, 아아······.”

“토르! 토르으!”

슬픔을 감당하기에는 경험이 너무 없었나.

일리아스가 덤덤하게 슬픔을 표하는 것과 달리 네브로는 반쯤 망가져가고 있었다.

[“네브로.”]

“토르!”

[“네브로.”]

“허윽.”

내 부름에 네브로가 가슴을 움켜쥐었다.

[“토르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마라.”]

“아?”

[“이대로 슬퍼만하다가 죽을 거냐? 너희를 위해 토르가 죽기까지 했는데?”]

내 말에 네브로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눈물을 흘리는 건 모든 일이 끝난 이후다. 너한테는 아직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있어.”]

“책임······.”

네브로의 시선이 품속의 기절한 듯 쓰러져있는 그린나래와 옆에 있던 일리아스에게 향했다.

“내, 내가 어떻게 하면······.”

[“먹어라.”]

내 입에서 가장 확실한, 그러나 한없이 잔인한 말이 튀어나왔다.

[“토르를 먹어치우고 강해져라.”]

< 398화. 토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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