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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386화 (385/415)

< 386화. 일리아스의 비밀 >

트롤들은 대체로 한 개체씩 돌아다녔다.

덕분에 다른 이들이 나서기 전에 네브로 혼자서도 충분히 처리가 가능했다.

‘어째서 마나가 닳지 않지.’

한 가지 의문은 네브로의 마나량이었다.

그 천재성이야 충분히 이해했지만 마나량의 경우 나 같이 특이한 케이스가 아닌 이상 시간이 필요한 요소였다.

‘분명 네브로의 마나는 보잘 것 없었다.’

그의 몸에 처음 기생하게 됐을 무렵에는 정말 쥐꼬리만 한 마나량이었다. 그러나 어느새 최상급 마법을 남발해도 멀쩡한 수준의 마나량이라니······.

신의 아들이라 그런 건가. 하여튼 사기 캐릭터였다.

“30개.”

사냥은 긴 시간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숲은 생각보다 광활했으며 트롤을 발견하는 것 자체가 일이라 거의 두 달 가까이 걸린 듯했다.

“드디어 다 모았네. 이거 모으는 시간에 샤이야로 갔으면 벌써 도착했겠다.”

프레위르가 투덜대며 긴장감 없이 검을 휘둘렀다. 내 가르침은 이 숲에 들어오고 나서도 계속 됐는데 그녀는 겉보기와 달리 진지한 태도로 수련에 임했다.

“빨리 가야 돼.”

일리아스가 슬쩍 재촉했다. 그러자 프레위르의 표정이 좋지 않게 변했다.

“애초에 이 부탁을 들어주자 했던 건 너잖아. 근데 이제 와서 급해진 거야?”

“그게 아니야.”

일리아스는 정색하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그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지난 여행 동안 일리아스를 보며 느낀 건 묘하게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마치 뭔가를 감추는 듯한······.

‘나 같다.’

그래, 굳이 비유를 하자면 나와 비슷했다.

나도 감출 게 많았던 사람인지라 주변 사람들을 대할 때 저런 태도를 종종 보이고는 했지.

“저, 저! 이, 일이 끝났으니까 어서 돌아가죠! 이제 이걸 건네주고 지금부터라도 빠르게 샤이야로 가면 괜찮을 겁니다.”

네브로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으로 둘을 말렸다. 그러자 일리아스가 말없이 등을 돌리며 먼저 걸어갔다.

“진짜 의뢰만 아니었으면 한 대 쥐어박는 건데.”

“프레위르, 진정하세요.”

허둥대는 네브로가 불쌍하네.

그보다 한 번 일리아스에게 의문이 생기기 시작하자 점점 이상한 점이 많이 보였다.

‘몸에서 검을 익힌 흔적이 거의 없다. 그런데 검을 쥔 자세나 평소의 움직임은 꽤 그럴 듯해.’

그게 가능한가? 마치 머리로만 기술을 익힌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또 어정쩡한 모습도 아니라 더욱 특이했다.

또 그녀의 평소 행실을 보면 마치 미리 알고 있다는 듯이 행동했다. 거인이 온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부터 페어리 퀸, 그리고 트롤을 상대로도 전혀 겁을 내지 않았던 점이나······.

‘그냥 내가 너무 의식하는 걸 수도 있지.’

루나와 닮은 외모 때문인지 신경이 쓰였다.

거기다 네브로와 감정의 동화가 일어나는 상태라 더욱 그러했다.

타인을 만나본 경험이 적은 네브로는 왜인지 알 수 없으나 일리아스가 썩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네가 계속 그렇게 무르게 대하니까 저런 태도를 보이는 거 아니야.”

“죄. 죄송합니다.”

[“언제까지 혼나고 있을 거냐. 빨리 페어리 퀸한테 돌아가.”]

일리아스는 일리아스고, 결국 이 숲을 벗어나는 게 우선이었다.

숲에서 난 덩굴로 얼기설기 만든 그물에 트롤의 심장이 30개가 모였다. 이윽고 2달간 함께한 길잡이 요정의 안내에 따라 다시 요정들이 사는 곳에 도착한 우리는 엄청난 환대를 받았다.

-정말 별사탕 30개잖아! 대단해!

사방으로 빛이 번져나갔다. 기쁨의 환호성을 내지르는 요정들이 우리의 주변을 정신없이 맴돌았고 이내 페어리 퀸이 다가와서 만세를 했다.

“페어리 퀸.”

그때 일리아스가 나서더니 짐짓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별사탕들을 넘겨주는 대가로 너도 샤이야까지 따라와.”

-엥?

사전에 얘기도 없었던 갑작스런 그녀의 말에 당황한 것은 일행들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일리아스?”

프레위르와 네브로가 말을 건넸지만 일리아스는 고집을 굽히지 않겠다는 듯 고개조차 돌리지 않으며 페어리 퀸을 응시했다.

“일리아스를 따라와.”

-하지만! 우리 약속했잖아. 별사탕 30개를 구해다주면 밖에 내보내주는 걸로!

“트롤의 심장을 어디에 사용하려는 건지 다 알고 있어.”

일리아스가 답지 않게 싸늘한 눈초리로 요정들을 훑으며 품에 안고 있던 검신을 드러냈다.

스응-!

“트롤들을 죽인 우리를 과연 흐림이 가만 놔둘까? 넌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해.”

-······닉스의 무녀, 너 좀 이상해. 왜 그런 걸 알고 있는 거야?

페어리 퀸이 입 꼬리만 치켜 올리며 섬뜩하게 웃었다. 그와 동시에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뭐야. 먼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한 번 해보자 이거야?”

요정들에게서 살기를 느낀 프레위르가 쌍심지를 켜며 검을 뽑았다. 그리고 네브로는 어찌 대처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몸짓을 해보이며 보호막을 펼쳤다.

“가, 갑자기 왜 이렇게······.”

“페어리 퀸, 그린나래. 너희들이 하지 못한 일을 대신해주었으니 그만한 대가를 치러라.”

일리아스가 그간 보였던 멍한 모습과 대조되는 강렬한 모습을 보였다.

[“도대체 일이 어떻게 돼 가는지 모르겠네.”]

“처, 천사님. 어떻게 하죠?”

[“일단 지켜보자. 일리아스도 생각이 있겠지.”]

일리아스.

역시 뭔가 이상했다. 페어리 퀸이 본인의 이름을 알려주었던 적이 있었나?

그리고 중간에 말했던 흐림이 따라붙는다는 말. 흐림이 대체 뭐지? 도대체 뭘 알고 있기에 영문 모를 소리만 해대는 걸까.

-그 사실들을 알고 있었으면서 굳이 우리를 도와준 건 나를 데려가려고 그런 거야?

“응.”

일리아스는 너무나 쿨하게 인정했다. 그 모습을 본 요정들이 모기떼처럼 윙윙거리며 흥분했다.

-우리를 속였어!

-감히 여왕님을 이용하려고!

-나쁜 아이! 나쁜 아이야!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분위기에 나는 네브로에게 충고했다.

[“수면 마법 퍼트려.”]

“예? 지, 지금이요? 갑자기?”

[“그래.”]

시끄러워 죽겠는데 다 재워버리면 되지.

뭐 어쩔 건데?

우웅!

곧바로 네브로의 마법이 발동하며 흥분한 요정들을 전부 재워버렸다. 그러나 페어리 퀸만은 멀쩡한 모습이었는데 갑자기 두 눈을 빛내며 네브로에게 다가왔다.

-신기한 힘. 그걸로 트롤들을 죽였구나. 그건 네 안에 있는 분이 알려줬지?

“헉!”

네브로가 놀라서 당황하는 게 여기까지 느껴졌다. 하여간 가진 힘에 비해 간이 쥐콩만 한 놈이었다.

[“내가 보이는 거냐고 물어봐.”]

-보이기도 하고 들리기도 해. 처음 봤을 때는 어렴풋이 존재하는 것만 느껴졌는데 어느새 존재감이 강해졌어.

오오? 내 의지가 들려?

신기한 건 제쳐두고 일단 거래를 마저 끝내야지.

[“흥정할 생각 없다. 일리아스가 널 왜 필요로 하는지는 몰라도 일단 따라와.”]

-아아, 나 이제 좀 알 것 같아.

페어리 퀸이 나와 대화를 하다 말고 일리아스를 바라봤다.

-닉스의 무녀, 넌 이미 진즉에 이 분이 보이고 들렸을 거야. 누가 뭐래도 넌 닉스의 무녀니까.

“······.”

일리아스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꺼림칙하다는 표정을 지은 채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 모습이 무언의 긍정으로 보여 네브로가 다시 한 번 놀랐다.

잠시만. 내 의지가 들렸다면 그간 네브로한테 했던 쓸데없는 말들도 전부 들렸다는 소리인데?

‘네브로한테 일리아스를 좋아하는 거냐고 놀렸었는데 그런 것도 전부 들렸겠네.’

그런데 그동안 모르는 척했다는 거야? 저 녀석도 어지간하네.

“그런 건 지금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네가 일리아스를 따라오는 거야.”

-흐림이 쫓아온다는 건 내 책임이 아니야. 어디서 날 속여먹으려고! 히히!

“그러면 이 심장들은 못 넘겨줘.”

-그러면 여기서 나가지 못할 텐데? 곧 흐림이 쫓아올 거야. 그래도 괜찮아?

갑자기 일이 틀어지는 것 같았다.

도대체 일리아스가 원하는 게 뭘까?

[“페어리 퀸이 꼭 필요한가? 왜 그렇게 데려가려는 거지?”]

“저, 저한테 말씀하신 거예요?”

[“아니. 일리아스한테 말한 거야. 쟤도 들린다며.”]

“대답하지 않으신 걸로 아는데······.”

“아우, 복잡해! 그냥 넘겨주고 빨리 여기 나가면 안 돼?”

일리아스는 혼란 속에서도 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네브로, 아니 정확히는 내게 꽂혀있었다.

생각해보니 저 혈통은 영혼을 볼 수 있지. 그 때문에 날 보고 들을 수 있는 걸 수도 있겠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 숨겨왔을까?

“더 이상의 실패는 안 돼.”

뜬금없는 말을 한 일리아스가 고집스런 얼굴로 트롤의 심장이 든 바구니를 움켜쥐었다.

“그린나래가 일리아스를 따라오지 않는다면, 차라리 여기서 나가지 않는 게 나아.”

“그게 무슨 소리야!”

프레위르의 외침에도 일리아스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 굳건한 눈빛에서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가 전해져왔다.

“일리아스.”

네브로가 그런 일리아스를 향해 조심히 다가갔다.

“일리아스한테 오지 마.”

그녀는 꺼내든 검신으로 위협하며 네브로를 저지했다.

[“일단 무슨 일인지 설명 좀 해봐라. 설득이 돼야 우리도 네 의견을 따라줄 것 아니냐.”]

“······.”

그녀는 정말로 내 의지가 들리는지 묘한 눈초리로 우리를 바라봤다.

“······페어리 퀸의 도움이 필요해. 일리아스뿐만 아니라 모두가.”

간신히 입을 연 그녀의 말은 여전히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간절함만은 전해졌다.

[“그린나래라고 했나.”]

-난 이 숲에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우리를 도와주면 북구로주에 있는 싯다르타가 그만한 보상을 해줄 거다.”]

-흐음? 별로 안 땡겨!

“너희들끼리만 대화할 거야? 난 안 들린다고!”

프레위르의 말에 페어리 퀸이 실실 웃었다.

그러더니 문득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차라리 그쪽이 직접 보상을 주면 생각해볼 수도 있는데?

[“내가?”]

내가 이 상태로 무슨 보상을 해줄 수 있다는 거야.

-만약 약속한다면 따라가 줄 지도?

[“보다시피 난 이 모양이다. 내가 어떻게 너한테 보상을 해줄 수 있다는 거지?”]

-그건 나중에 일이 끝나면 내가 말할게. 어때?

페어리 퀸이 은근한 말투로 제안을 건넸다. 순수해 보이는 외견과 달리 표독한 모습도 있음을 확인했던 나는 그녀의 제안에 조심스러워졌다.

“받아줘.”

그때 일리아스가 간절한 눈으로 내게 말했다.

“부탁이야, 천사님.”

[“어차피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그거로도 괜찮다면 약속하지.”]

-좋아!

페어리 퀸이 거래를 수락했다. 동시에 일리아스를 보며 마치 맡겨놓은 보따리를 돌려달라는 듯 손짓했다.

-그러니까 이제 별사탕 줘.

“여기.”

극적인 교섭 타결이었다.

그나저나 일리아스가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은데 앞으로의 여정을 위해서라도 좀 더 대화를 나눌 필요성이 느껴졌다.

두웅--------------!

“크흡!”

“아아?”

-찾았다. 찾았다. 찾았다. 찾았다.

대기를 진동시키는 강렬한 파동이 전해지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늦었네. 그니까 빨리 나가야된다고 했는데.

페어리 퀸이 태평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흐림이 왔어. 이제 다 죽었다! 히히!

아까 말했던 흐림이라는 존재가 이곳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얘기로만 들어보면 트롤들과 연관이 있는 것 같았는데······.

‘이 목소리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데.’

이내 끈적한 소음과 함께 트롤들의 울음소리가 주변에서 울려 퍼졌다.

-꾸르륵!

스스스스스--

“빨리 나가야 돼, 그린나래.”

-난 별사탕으로 해야 할 일이 남아있는데? 그때까지 못나가.

페어리 퀸이 거절하자 일리아스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 일이라는 게 오래 걸리나요?”

-응? 아니. 금방 끝나.

“그럼 제가 저들을 막겠습니다.”

“운반자! 흐림은 초월자야. 막을 수 없······.”

“괜찮습니다.”

네브로의 떨림이 내게 전해졌다.

하지만 그는 전혀 그러한 기색을 외부로 보이지 않고 자신 있게 말했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저는 강해진 거예요. 그리고 여러분은 제게 있어서 소중한 분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 별 것 아닐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지난 몇 년간 네브로와 함께 해온 나는 알 수 있었다.

프레위르와 일리아스. 그들은 지금 네브로에게 있어서 굉장히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들이 되었다는 걸.

“그래봤자 고작 몇 달 같이 지냈다고······.”

그런 네브로를 보며 프레위르가 투덜대면서도 곁에 섰다.

“어이, 요정! 빨리 끝내라. 그때까지 어떻게 한 번 버텨 볼 테니까.”

“프레위르······.”

“징그럽게 쳐다보지 마. 난 그냥 여기를 탈출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니까.”

네브로가 감동 받은 표정으로 프레위르를 보다가 이내 주먹을 움켜쥐었다.

“반드시 막아보겠습니다. 설령 상대가 초월의 격에 이른 상대라 할지라도.”

주르륵-

드디어 저 멀리서 말을 걸었던 상대가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저건······.”]

어쩐지 목소리가 익숙하다 싶었더니 저 녀석이 왜 여기에······.

-불이 날아 벽을 기대고 배워.

혓바닥이 온몸을 감싸고 있는 괴물.

그는 내가 탑에서 보았던 ‘쫓는 자’였다.

< 386화. 일리아스의 비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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