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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374화 (374/415)

< 374화. 씬의 본거지, 자카타 >

“으음······.”

깨질 듯한 두통을 억누르며 눈을 뜬 크랙은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오, 역시 수인이라 회복이 빠르군. 굳이 깨울 필요도 없었어.”

“멍멍이 귀여워!”

기척도 없이 들려온 말에 크랙의 털이 곤두섰다. 그리고 이내 손톱을 드러내며 살기를 드러내려 할 때,

“왜 당신을 구속하지 않았는지 아십니까.”

존대였지만 차갑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그의 귀를 두드렸다.

“잘 생각하고 행동하세요. 일부러 살려둔 걸 굳이 죽이기는 싫습니다.”

“크윽.”

크랙은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뒤늦게 주변을 살피자 여섯 명의 인원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음을 확인했다.

“살렘 예디디아, 루나 펜드래곤······.”

말을 하던 크랙은 이내 두 눈이 크게 뜨였다.

“모른 드왈스키, 에반 폰 오를레옹, 막시민 크로넬?!”

“우린 널 모르는데 넌 아는 게 좀 있다?”

살렘이 씨익 웃으며 말하자 크랙이 움찔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자신을 살려둔 이유가 있음을 짐작한 크랙은 냉정을 되찾았다.

“내게 원하는 게 뭐지?”

“역시 씬의 간부답군요. 금방 냉정해지네요.”

아드리아스의 입에서 알려져서는 안 될 정보가 새어 나오자 크랙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그 전에 왜 날 공격하고 붙잡았는지 그 이유나 물어도 될까? 그냥 수인이라 핍박하고 있는 건가?”

“이미 저희들을 알아본 시점에서 씬의 간부인 걸 감출 수는 없습니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넘어가죠.”

스윽-

아드리아스가 허리를 숙여 주저앉아 있는 크랙에게 시선을 맞췄다.

“질문에 답하자면 궁금한 게 있어서 잡았습니다. 사실 붉은 여우 부족이 당신들과 긴밀한 연락을 주고받는 걸 알고 있어서 방문한 건데 운 좋게 그쪽이 걸려든 거죠.”

처음에는 살렘이나 막시민과 같이 쟁쟁한 인물들만 눈여겨보던 크랙은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이 자가 무리의 대장이다!’

수인족 특유의 동물적인 감각이 경종을 울렸다. 그리고 자신의 대답에 따라 씬에게 큰 영향을 끼칠 걸 예감했다.

“······답 할 수 없다.”

“아직 물어보지도 않았습니다.”

“차라리 죽여라.”

크랙은 눈을 감아버렸다.

비록 떳떳한 일만 해온 것은 아니지만 수인족들을 위한 희생정신만큼은 진심이었다.

‘고문을 받기 전에 당장 숨을 끊는 것도······.’

모른과 살렘, 그리고 루나는 이미 유명한 흑마법사들이었다. 게다가 에반의 경우 성국의 이단 심문관으로 활동하며 고문에 있어서는 그 어떤 전문가보다 뛰어날 게 뻔했다.

“죽일 생각도 없고 일단 하나만 물어봅시다. 그리고 미리 말하는데 어차피 당신이 없어도 씬은 알아서 찾아갈 수 있습니다. 죽어봤자 당신만 손해에요.”

마치 크랙의 심리를 꿰뚫어봤다는 듯 말하는 아드리아스가 검게 일렁이는 눈동자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그 안에서 짙은 심연을 느낀 크랙은 다시 한 번 털이 곤두서며 미지의 공포를 느꼈다.

“데슈른을 알고 있습니까?”

“······.”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아드리아스는 상대의 호흡과 맥박을 통해 금세 추측했다.

“알고 계시군요. 그럼 데슈른은 지금 본거지에 계십니까?”

“모른다.”

“계시군요. 알고 싶은 정보는 대충 다 확인했습니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드리아스의 일방적인 대답에 결국 크랙의 평정심이 무너졌다.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 왜 물어본 거지? 나를 조롱하는 건가?”

“몰랐습니다. 당신의 반응을 보고 대답을 유추한 것뿐이에요. 수인족은 인간에 비해 신체적 특성이 더 도드라져서 파악하기 쉬웠습니다.”

그제야 아드리아스가 본인의 호흡이나 털의 움직임 등을 확인하고 알아냈다는 걸 눈치 챈 크랙은 할 말을 잃었다.

“잠깐! 데슈른 님은 왜 찾는 거지? 씬을 어떻게 할 셈이냐!”

“질문은 끝났습니다. 이제 가던 길 가시죠.”

이제 급해진 쪽은 크랙이었다.

이 여섯의 전력이라면 아무리 다수의 조직인 씬이라도 단숨에 정리될 게 뻔했기에 그는 필사적으로 물었다.

“우리를, 우리를 공격할 셈인가?”

“하는 거 봐서요.”

“하는 걸 보다니?”

“세계수를 누가 살렸는지는 이미 아시죠?”

크랙은 순간 입을 다물었다.

씬의 간부인 이상 알 수밖에 없었다.

“······당신이 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편하게 계속 반말하세요. 어색하게 갑자기 그러시지 말고.”

“세계수의 건은 우리로서도 뼈아픈 실패지만 그 일은 묻어둔 지 오래입니다. 세계수를 다시 공격할 계획은 없습니다.”

“내가 그거 때문에 세계수 이야기를 꺼냈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그 일로 인해 아드리아스 님에게 보복할 일도 없을 겁니다.”

크랙이 두 무릎을 꿇었다.

마치 용서를 바라는 강아지처럼 꼬리가 축 늘어졌다.

“잘못 짚으셨습니다. 전 보복을 하든 말든 신경 안 써요.”

“그럼 왜 세계수 이야기를······?”

“세계수의 뿌리를 갉아먹던 것들이 죄악의 흔적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아드리아스의 말이 이어지자 크랙이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반응이 터져 나온 건 다른 인물이었다.

“뭐? 죄악?”

“허허, 혼자만 알고 있었다니 섭섭하구나. 이 늙은이한테도 미리 언질을 해주었으면 좋았으련만.”

살렘과 모른이 각자 말을 꺼냈다.

아드리아스가 하는 말을 그대로 믿는 모습을 보며 크랙이 고개를 흔들었다.

“죄, 죄악이라니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저희를 안내하는 건 어떻습니까.”

다른 이들을 비롯한 크랙의 말까지 무시하고 자신의 할 말만 한 아드리아스가 슬쩍 손을 내밀었다.

“저도 굳이 씬을 적대할 생각이 없습니다. 아, 참고로 전 데슈른 님의 제자입니다. 제 스승님과 인연이 있는 이들을 제가 어찌 헤치겠습니까.”

“믿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안내는 또 별개의 문제입니다.”

크랙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드리아스가 대놓고 적대했으면 크랙도 오히려 편했을 거다. 그러나 저 존대와 더불어 친절한 듯 미묘한 태도가 크랙에게 실낱같은 희망과 긍정을 주고 있었다.

“말이 많아. 야, 지금 니네 집에 울루그 있냐? 아니지, 너희 쪽 대장이 아마 스렌달이었지?”

“······.”

“안 잡어 먹어, 인마. 애초에 너희 노리고 여기까지 온 게 아니니까. 오히려 자의식 과잉이다. 네들 따위가 뭐라고 우리가 직접 오겠냐.”

살렘이 크랙의 머리를 붙잡고 이리저리 돌리며 말했다.

“너희는 그냥 겸사겸사야. 난 또 데슈른 때문에 아드리아스가 너흴 보자고 한 줄 알았는데 죄악이 연관돼있으면 말이 틀리지.”

“저희는 제국의 황제 때문에 왔습니다. 어쩌면 씬과도 대화가 잘 통할 수 있는 주제죠.”

살렘에 이어서 아드리아스가 진짜 목적을 말하자 크랙이 벙찐 얼굴로 중얼거렸다.

“제국? 황제?”

“네들 영역인데 알고 있는 것도 없냐? 이놈들 죄악 빼고는 볼 게 없겠는데?”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안갑니다.”

“황제가 지금 이 근처에 있다고. 우린 그 놈의 모가지를 따러왔지, 흐흐.”

살렘의 충격적인 발언이 이어지자 크랙의 입이 벌어졌다.

“화, 황제를?!”

“어이, 우리가 왜 같이 있겠어. 다 같은 목표가 있으니까 이렇게 손을 잡고 행동하는 거 아니겠냐.”

“그, 그러고 보니······.”

살렘의 거짓말을 크랙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흑마법사들은 당연히 제국의 황제를 적대하고 막시민은 유명한 제국 공적이었다. 아드리아스 크롬웰도 반란 주동자로 낙인찍힌 상황이니 너무나 그럴 듯했다.

“그러니까 네들도 좀 협조해라. 황제라면 너네도 이를 갈지 않냐?”

“그 정보가 사실입니까?”

“이 새끼가 말을 해줘도. 야, 다시 말하지만 우리 같은 고급 인재들이 고작 너희 때문에 왔겠냐?”

“이건······저 혼자 결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소식을 알리면 분명 긍정적인 반응이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크랙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썼다.

갑작스레 나타난 대륙 최강자들과 황제의 행방. 또 죄악에 대한 내용을 알고 있는 아드리아스까지······.

‘손을 잡아야한다.’

황제 때문만이 아니었다.

현재 대륙 전역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이들과 손을 잡게 되면 수인들의 피해도 줄어들 수도 있는 일이었다.

“제가 설득해보겠습니다.”

“그럼 안내를 해주시는 겁니까?”

“그건······.”

크랙은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지금까지는 아드리아스가 자신을 배려해주었지만 더 이상 내뺀다면 호의적인 상황이 깨질 수도 있었다.

“알겠습니다. 씬으로 안내하죠.”

“그럼 바로 갑시다. 쉴 시간이 없어요. 당장 씬의 모든 조직원들을 동원해서 황제를 찾아야하거든요.”

너무나 당연하게 씬을 이용해먹겠다는 말이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크랙은 안도했다.

적어도 쓸모를 입증할 기회가 있으니 버려지지는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바로 모시겠습니다.”

조금 이른 판단일 수도 있지만 모두 이해해주겠지.

자리에서 일어난 크랙은 애써 자신을 합리화했다.

**

‘씬의 본거지를 찾아온 건 오랜만이군.’

사실 폭식의 죄악을 처리하는 건 사건이 벌어진 후가 더 편했다. 굳이 에피소드가 발생하기 전에 해결하려고 하면 씬까지 함께 상대해야했기에 그냥 놔두는 편이었지.

“아주 쥐새끼처럼 숨어있었군. 아, 하긴. 진짜 쥐새끼들도 있었지? 흐흐흐.”

씬의 본거지는 유사로 이루어진 사막 아래에 있었다. 샤이야 사막에는 수많은 유사와 함께 지화가 존재하는 장소가 종종 존재했는데 씬의 본거지도 그러한 장소 중 하나였다.

“살렘도 와본 적이 없습니까?”

“내가 짐승 소굴에 굳이 왜 와.”

“그래도 나름 방랑자라는 칭호가 있으니 당연히 와봤을 줄 알았습니다. 씬의 인물들도 알고 있는 눈치였고.”

“마법도 익히지 못하는 놈들한테 일 없다.”

유사에 몸을 맡겨 도착한 거대한 지하 공간을 한참 걷자 드디어 뭔가가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와아아!”

생각보다 제대로 갖추어진 지하 도시의 모습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 모습이 세상을 처음 여행해보는 루나에게 신기했던 모양인지 신난 표정으로 앞서가는 크랙에게 달려갔다.

“멍멍아! 저게 네 집이야?”

“그렇습니다. 저게 바로 우리 씬의 본거지, 자카타입니다.”

그때 저 멀리서부터 기척이 느껴지더니 순식간에 수인들이 우리를 포위했다.

“크랙, 이 자들은 누구냐?”

“······스렌달 님을 불러라. 손님들이시다.”

“손님? 인간이 손님이라니 그게 무슨······.”

포위를 한 수인들 중 대표로 말하던 멧돼지 수인이 우리 얼굴을 살피더니 이내 점차 굳어갔다.

“저, 저, 저······.”

“안녕? 우리 돼지가 많이 컸네?”

살렘이 아는 얼굴을 보았다는 듯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곧이어 인사를 받은 수인은 크랙을 향해 소리쳤다.

“도, 도대체 누구를 데리고 온 거냐! 배신이냐, 크랙!”

“그게 아니다. 일단 스렌달 님을 데려오면 내가 다 설명을······.”

갑작스런 혼란이 주변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내 우리의 얼굴을 아는 이들이 점차 늘어가고 긴장감이 높아져갔다.

“이, 일단 아무나 돌아가서 이 사실을 알려라!”

“넵!”

명령을 받은 수인 하나가 급하게 자카타로 돌아가고 나는 조용히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조금 기다려주죠.”

“예전 같았으면 그냥 싹 다 밀어버리고 들어가는 건데 말이야.”

다행히 살렘이 내 말을 들어주었다.

여기 있는 인물 중 가장 다루기 힘든 게 막시민과 살렘이었는데 의외로 막시민은 얌전했고, 살렘도 내 말을 잘 따라주고 있었다.

“사, 살렘 예디디아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줄이야.”

“저 자는 누구지?”

숙덕거리는 소리 다 들린다, 이놈들아.

아직까지 내 용모파기가 수인들한테까지는 알려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엉? 금방 오네?”

루나가 자카르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돌아갔던 수인이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다시 오고 있었다.

“오, 저 영감이 진짜 여기 있었군.”

“호오.”

그리고 수인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곁에는 이제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강렬한 인상의 노인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달려오고 있었다.

“스승님.”

“제자야, 오랜만이구나!”

데슈른 폴론.

검술계의 거인 중 하나이자 내 스승이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 374화. 씬의 본거지, 자카타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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