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1화. 샤이야 사막 >
대륙 남부에 위치한 샤이야 사막은 마경이라 불리는 땅 중 하나였다. 그러나 다른 마경과는 차이점을 보였는데 그 중 하나가 사람이 산다는 것이었다.
“두 명! 두 명 더 모집한다!”
사막 외곽에 위치한 오아시스, 넬피르.
그곳의 주점에서는 용병 모집을 위한 흥정이 한참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남부 연합 쪽 용병은 좀 그렇지.”
“제국에서는 모집 안하나? 하긴 제국쯤이면 자기들만으로도 충분하겠지.”
“어이! 몇 명 구한다고 했지? 두 명?”
사막의 원주민뿐만 아니라 마경의 탐색을 위해 방문한 용병들과 빠르게 남북을 횡단하기 위한 상인들까지 다양한 인간 군상이 모여 있었다.
쾅!
“음?”
굉음과 함께 주점의 문이 활짝 열렸다.
소란스럽던 내부가 순식간에 조용해지며 이내 입장하는 인물들을 살폈다.
“부족장의 아들이잖아.”
“여기까지는 또 무슨 일로 온 거지?”
이 일대의 사막 부족 중 하나인 검은 전갈 부족의 후계자인 버박이 수행원들을 대동한 채 나타났다.
그는 부족장의 아들보다는 상인이라는 호칭이 더 어울릴 듯한 모습을 한 채 반지가 가득한 손을 휘저었다.
“흠, 샅샅이 살펴봐라.”“예!”
갑작스런 명령에 주점에 있던 사람들은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뭐, 뭐하는 짓이오!”
“이 새끼가, 이거 안 놔?”
이내 소란이 벌어지며 주점은 난장판이 되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버박은 파이프 담배를 피우며 소리를 질렀다.
“이 같잖은 놈들이 감히 소란을 떨어? 당장 무릎을 꿇고 협조하지 않으면 그냥 베어버리겠다.”
안하무인으로 나오는 버박을 보며 사람들이 당황했다. 개중에는 기분이 상했다는 듯 들고 일어서는 용병들도 있었지만 단순히 식사를 하기 위해 온 일반인들은 불안에 떨며 무릎을 꿇었다.
“이유나 좀 들읍시다! 도대체 뭘 원하시는 겁니까?”
누군가의 외침에 버박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물음을 던진 자가 자신이 찾던 인물이 아님을 확인하자 대답 없이 주변을 둘러보기만 했다.
“이게 무슨 무례요! 우리도 더 이상 참고만 있지 않겠소!”
결국 참다못한 용병단 하나가 무기를 꺼내들자 버박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감히 내 앞에서 검을 뽑아?”
“그럼 이대로 아무 이유 없이 핍박을 당하고만 있으라는 거요!”
“핍박? 내가 뭘 했다고? 난 그저 사람을 찾고 있는 것뿐이야.”
버박이 수행인들을 향해 눈짓을 한 뒤 무기를 꺼낸 용병단을 가리켰다.
“감히 나를 헤치려하는 간악한 무리들이다. 모두 쳐죽여라.”
버박의 명령에 주점 안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사람들이 하얗게 질렸다. 한 눈에 봐도 버박의 수행인들이 훨씬 많았기에 고작 5명 남짓의 용병단은 금세 바스라질 것만 같았다.
끼익-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정적을 깨는 소리가 들려왔다.
“음?”
버박이 뒤를 돌아보자 주점으로 들어오는 새로운 사람들이 있었다.
“분명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두라고 했을 텐데?”
그런 버박의 말에도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후드로 모습을 가린 채 조용히 빈자리를 향해 걸어갔다.
“어이, 내 말이 안 들려?”
“나한테 말한 거냐?”
버박이 다시 한 번 말하자 조용히 가던 일행 중 하나가 제자리에 멈춰서더니 고개를 돌려 버박을 응시했다.
“흐업!”
순간 악마와도 같은 형상을 본 버박이 기겁을 하며 넘어져버렸다. 그걸 본 수행인들이 급하게 달려와 버박을 호위했다.
“뭐지? 왜 저러는 거야?”
“뭔가를 했나? 아무것도 안 보였는데?”
사람들이 웅성대자 정신을 차린 버박이 벌게진 얼굴로 버럭버럭 소리 질렀다.
“다, 당장 저놈을 죽여라!”
“예!”
노예와 같은 수행인들이 사막 문화 특유의 만곡도를 꺼내며 멈춰 서있는 사내를 향해 달려들었다.
“흐.”
후드에 감춰진 사내의 얼굴이 슬며시 드러났다.
그는 즐겁다는 듯 웃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다리 한 쪽을 들더니······.
턱.
퍼어엉--------!
“어?”
“다 어디 갔지?”
발을 한 번 굴렀을 뿐인데 달려들던 수행인들이 전부 터져 나갔다. 그 비현실적인 광경에 주점 안에 있던 사람들의 사고가 따라가지를 못했다.
“다 없어졌네? 그럼 이제 네가 나서서 날 죽일 거냐?”
후드가 걷히며 사내의 모습이 드러났다.
깔끔하게 백발을 넘긴 사내는 웃으면서 버박에게 다가갔다.
“아, 아아······.”
“이 발랄한 새끼를 어떻게 죽여야 잘 죽였다고 소문이 날까.”
그때 소란을 신경 쓰지 않고 자리를 잡았던 사내의 일행이 물었다.
“살렘, 식사는 뭐로 하실 겁니까?”
“살렘?”
이름을 들은 버박은 창백한 안색으로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사, 살렘 예디디아?”
“어디서 함부로 내 이름을 지껄이냐.”
“흐억! 죄, 죄송합니다!”
믿고 말고 할 게 없었다.
조금 전에 보여주었던 단 한 번의 실력행사는 그가 진짜 살렘인지 아닌지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으니까.
“이름이 뭐냐, 너?”
“버, 버박 후샹입니다.”
“그래, 버박. 우리 이렇게 된 것도 인연인데 식사나 같이 하자고.”
갑자기 친근하게 말하는 살렘으로 인해 버박이 안도를 했지만 이내 상대의 표정을 보고 안도하기에는 일렀음을 깨달았다.
살렘은 마치 잡은 벌레를 어떻게 죽여야 할까 고민하는 표정으로 버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살렘.”
“알았다, 알았어. 대충 아무거나 시키면 되지 뭘 그렇게 불러 싸는 거냐.”
다시 한 번 호명이 된 살렘은 버박을 한 손으로 잡고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탁자를 향해 걸어갔다.
“살려주십시오!”
“함부로 죽이네 마네 하던 놈이 지 목숨은 소중한가 보지? 하하하.”
터엉!
버박을 자신의 옆자리에 내려놓은 살렘이 이내 주방 쪽을 향해 외쳤다.
“맥주 가져와라!”
“네, 넵!”
용케 도망치지 않고 자리해있었던 주점의 주인이 부리나케 맥주를 가지러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 지랄을 했던 걸 보면 여기서 꽤 힘을 쓰는 모양인데 뭐하는 놈이냐, 너?”
“저, 전 이 지역의 족장인 무쉬드 후샹의 아들입니다.”
“족장의 아들이었구나. 하여간 싸가지가 없는 것들은 꼭 이런 귀족 나부랭이들이지.”
“살렘 예디디아, 말조심해라.”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 얼굴을 감고 있던 천을 내린 에반이 경고를 했다. 살렘의 시선이 아드리아스를 향한 걸 보고 그 말의 의도가 불순하다는 것을 눈치 챈 에반이었다.
“왜. 한 판 뜰까?”
“살렘.”
아드리아스가 다시 나직하게 이름을 부르자 살렘은 네까짓 게 말리면 어쩔 건데 싶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나 더 이상 말썽을 부리지 않고, 그 관심은 버박에게로 향했다.
“근데 여기서 뭐하고 있던 거냐?”
“사, 사람을 찾고 있었습니다.”
“사람? 누구?”
“눈이 오팔 빛깔로 빛나고 은백색의 머리칼을 지닌 소녀가 사막에 들어왔다는 정보를 들어서 찾고 있었습니다.”
버박의 말에 살렘을 비롯한 일행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살렘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왜 찾고 있었는데?”
“······다른 부족과의 교류회가 준비되어 있는데 자랑할 만한 노예가 필요했습니다.”
“뭐? 노예? 푸하하하!”
살렘이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버박은 그가 왜 웃는지 알지 못한 채 당황한 표정으로 불안에 떨었다.
“죄, 죄송합니다. 다시는 건방 떨지 않겠습니다. 부디 살려만 주십시오.”
“야, 넌 내 이름은 알면서 오팔눈에 은백색 머리칼을 한 사람은 모르는 거냐?”
“네?”
“야, 안 그래도 잘됐네. 네가 찾던 사람이 여기 있다.”
살렘이 웃으며 말하자 버박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자신을 놀리는 거라 생각했던 그는 이내 후드를 젖히는 한 소녀의 모습을 보고 입을 벌렸다.
“아, 아니······.”
“나 찾았어?”
루나가 웃으며 버박에게 말했다.
설마 찾고 있던 인물이 살렘 예디디아의 일행인 줄은 몰랐던 버박은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탁자에 머리를 박았다.
쿵!
“죄송합니다! 부디 제 어리석음을 용서해주십시오!”
“아하핳! 날 노예로 만들려고 했대! 이런 적 처음이야!”
버박은 이제 다 글렀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같은 상황이었어도 용서치 않았을 텐데 하물며 상대는 그 악명 높은 살렘 예디디아의 일행이었다.
“너, 내가 누군지 몰라?”
“조, 존함을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와! 날 정말 모르나봐!”
그때 루나의 외모를 확인한 주점 내의 다른 사람들이 속닥거렸다.
“루, 루나 펜드래곤.”
“살렘 예디디아에 루나 펜드래곤이라니 도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대부분 용병들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였는데 버박의 귀에도 들릴 정도로 웅성임이 심했다.
‘루나······펜드래곤?’
어렴풋하게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확실한 건 그 이름의 주인이 워록급 흑마법사라는 사실.
‘난 죽었다.’
어째서 좀 더 알아보지 않았을까.
그저 풍문으로 들려온 외모에 홀라당 빠져 평소와 같이 행동했던 게 화근이라면 화근이었다.
“내가 좀 예쁘지!”
루나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허리춤에 손을 얹었다. 그 특유의 제스쳐에 모른이 허허 웃으며 손녀를 보듯 귀여워했고 아드리아스가 슬쩍 미소 지었다.
······막시민은 여전히 메뉴를 고르고 있었다.
“저,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세상에! 전 지금껏 이렇게 아름다우신 분은 처음 보는 것, 컥!”
말을 하던 버박을 살렘이 가볍게 툭 건드렸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힘은 버박을 고통스럽게 만들기 충분했다.
“헛소리 말고. 너, 족장 아들이라고 했지?”
“헛소리?!”
루나가 충격을 받은 얼굴로 살렘을 노려봤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갔다.
“잘 됐네. 안 그래도 이곳의 정보가 필요했는데 족장이라면 이것저것 알고 있겠지?”
“저, 저희 아버지는 이 사막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고 계십니다! 궁금한 게 있으시면 제가 바로 구해다 드리지요!”
버박은 필사적으로 자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쓸모를 입증한다면 살 수도 있을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이 그에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걸 네가 왜 구해. 족장이 알고 있다면서.”
“저와 함께 하시면 더 편히 모실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아무래도 올바른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제가 쓸모 있지 않겠습니까!”
“뭐야. 너 지금 널 죽이면 제대로 된 정보는 얻지 못할 거라고 협박하는 거냐?”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살렘이 장난스럽지만 살기가 섞인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 사막에 너희 부족 말고도 다른 부족도 꽤 많다는 걸 알고 있다. 너 같은 건 그냥 죽여도 그만이야.”
“살려주십시오!”
그때 버박의 뇌리로 무언가가 번뜩였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생존 본능이 발휘된 것일까. 그는 살렘이 아닌 여전히 후드를 가린 채 살렘의 이름을 호명했던 사내를 바라봤다.
“부디 원하는 대로 다 해드리겠습니다. 정보를 원하신다면 저희 부족의 인원들을 모두 동원하여 뭐든 구해다 드리겠습니다!”
“어쭈? 너 누구한테 얘기하는 거냐?”
살렘이 재밌다는 표정을 지으며 버박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았다. 그 모습을 보며 이대로 그냥 짓눌러 죽일까 고민하던 살렘이었지만 그런 그를 막은 것은 다름 아닌 맥주였다.
“매, 맥주 나왔습니다.”
“왜 이렇게 늦어. 그리고 아예 통째로 가져와. 이걸 누구 코에 붙이라고······.”
살렘의 신경이 잠시 다른 곳으로 새자 버박이 기회를 포착했다는 듯 아드리아스에게 빌었다.
“부디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버박 후샹이라고 했죠?”
마침내 아드리아스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살렘은 아무 말도 없이 맥주를 마시기만 하자 버박은 자신의 예측이 맞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습니다!”
“좋아요. 기회를 드리죠.”
쾅!
그때 주점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아드리아스의 말을 끊었다.
곧이어 문을 통해 수많은 인원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오며 주변을 포위했다.
“버박! 어디 있느냐! 감히 어떤 놈들이 내 아들을 건드렸어!”
그중에서도 한눈에 비싸 보이는 옷과 장신구를 입은 중년 남자가 소리쳤다.
“아주 지랄 났네, 지랄 났어. 누가 부모 자식 아니라고 할까봐. 아까 달려들던 놈들 빼고 나머지는 일부러 놓아줬는데 굳이 사지로 기어들어오는군.”
살렘의 말이 이어지는 가운데 버박의 얼굴이 다시 창백하게 질려갔다.
< 371화. 샤이야 사막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