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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362화 (362/415)

< 362화. 직계 뱀파이어 >

성의 내부는 건물 안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했다. 마치 도시 하나를 통째로 건물 안으로 들인 듯한 모습에 게임에서 겪어봤던 나조차 감탄이 나왔다.

“어때?”

“대단하네요.”

“그렇지? 그럴 줄 알았어. 히히.”

안젤라는 뭐가 그리 좋은지 걷는 내내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눈웃음을 지으며 내게 말을 거는 그녀를 보자 도대체 뭐가 그렇게 좋은 걸까 싶었다.

“초대한 이유는?”

그때 주변을 둘러보던 비비안이 나지막하게 질문을 던졌다.

“뭐?”

“아드리아스를 초대했잖아. 이유가 뭐냐고.”

“아까 말했을 텐데? 보고 싶어서 초대했다고.”

왠지 알 수는 없었지만 둘 사이에서 묘한 기류가 흐르는 것만 같았다.

“전 아무 생각 없이 온 건 아닙니다.”

“음? 그럼?”

“제가 알기로 루시펠에는 죄악이 존재하는 걸로 압니다.”

그냥 솔직하게 말했다.

애초에 숨긴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죄악? 아! 그거?”

안젤라가 곰곰이 생각을 하는 듯하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고 있지. 설마 죄악을 찾으러 온 거였어?”

“겸사겸사죠.”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안젤라가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날 보러 온 거 아니었어?”

“애초에 초대를 받아서 온 겁니다. 죄악만 생각했으면 초대가 아니라 그냥 왔겠죠.”

“그것도 그렇네. 근데 죄악은 왜 원하는 거야?”

“전 흑마법사입니다. 그리고 죄악은 가장 강력한 흑마법 도구죠. 관심을 안 가지는 게 오히려 이상할 것 같습니다.”

“오호.”

안젤라가 납득을 하고 있는 가운데 주변에서 슬슬 기척들이 드러났다.

“일단 우리 구역으로 가자. 여기 계속 있으면 시선이 너무 끌리겠다.”

안젤라가 휘파람을 부르며 다시 힘차게 걸어갔다. 그 모습이 뭔가 철없는 아이와 같아서 신기했는데 원래 이런 성격이구나 싶었다.

그때 우리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비비안이 슬쩍 끼어들었다.

“둘은 어떻게 알게 된 거야?”

“예? 아! 아카데미에서 처음 봤습니다.”

“아카데미?”

비비안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카론 디플렌이라는 교수를 예전에 말했던 적 있죠?”

“응. 사실은 흑마법사였고, 아드리아스를 흑마법사로 물들인 사람.”

“물들인······건 조금 애매하지만. 어쨌든 그가 데리고 있던 뱀파이어입니다.”

“정말?”

비비안이 믿기지가 않는단 표정으로 앞서가는 안젤라를 보았다.

“세던데.”

“그때는 약했어요.”

얼마나 약했으면 카론 따위한테 붙잡혔겠나.

솔직히 아직까지도 이해가 가지 않는 일 중 하나다. 지금 생각해보면 안젤라는 그냥 뱀파이어도 아니고 무려 직계였으니까.

‘이자벨이나 다른 직계를 생각하면······.’

이자벨도 평범한 직계 뱀파이어가 아니었고, 실제로 모든 실력을 두 눈으로 목격한 건 아니었지만 게임 속에서 겪어본 직계의 힘들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유추는 가능했다.

진화를 하게 된 지금의 안젤라는 직계다운 위엄이 느껴지긴 하지만.

“그럼 지금은 강해진 거네?”

“어. 덕분에 강해져서 탈출할 수 있었어.”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안젤라가 뒤를 돌아보며 미소 지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은혜를 갚으려고 하는 거 아니야. 하하!”

“덕분에?”

비비안의 의문 섞인 음성이 들려왔지만 애써 무시했다. 아직 진화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 아직이 아니라 아마 평생 안하지 않을까?

이야기를 하며 걷던 도중 점차 풍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마치 지하도시 같았던 경관이 바뀌며 처음 니플헤임에 왔을 때와 같이 수풀과 나무가 우거진 환경으로 변해갔다.

“여기서부터 내 구역이야. 아직 좀 모자라지만, 나름 그 맛이 있지.”

내가 알기로 루시펠 성의 면적은 거의 작은 도시국가 수준이었다. 내부 면적으로만 따지면 포트리온조차 한 수 접어주는 수준.

‘그런 것 치고는 입구에서 멀지 않았다.’

아마 아직 세력이 약한 게 아닐까 싶었다.

긴 세월을 사는 뱀파이어인 만큼 고작 몇 년 가지고는 힘들었겠지.

“아, 참. 언니는 어때? 잘 지내고 있어?”

“제 영지에서 작은 과수원을 하고 있습니다. 종종 도움도 받고 있고요.”

“언니가 과수원을? 뭐, 잘 어울리긴 하네.”

걷다보니 저 앞에 작은 오두막이 보였다.

나는 설마하는 느낌으로 안젤라에게 물었다.

“저 집은······?”

“내 집이야.”

뭔가 화려한 성격과 외형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집이라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저 집이요?”

“응. 왜? 별로야?”

“아닙니다. 그냥 예상하지 못해서······.”

“하하! 좀 그렇지? 근데 내가 너무 힘들게 지내 와서 그런지 약간 이런 분위기가 좋더라고.”

하긴 인간, 그것도 흑마법사한테 잡혀 와서 실험체로 살아왔으니 힘들었을 법도 했다.

“이 집은 아마 복수가 끝나면 바꿀 것 같아.”

“복수?”

“어. 내가 네 스승한테 잡힌 이유 말이야. 그거 사실 우리 혈족이 뒤통수를 때려서 그렇게 된 거거든.”

“배신당한 겁니까?”

“글쎄. 그것보다 내가 너무 순진했던 탓이지. 그래도 원수를 잊지는 않아.”

이제야 의문이 풀렸다.

아무리 안젤라가 약한 뱀파이어라고 해도 고작 카론한테 잡혀있던 게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동족에게 당했던 거였군.

끼익-

오두막은 작았다.

그래도 손님 정도는 충분히 받을 정도의 크기였기에 오히려 안락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 솔직히 여기까지 불렀는데 아무것도 안 챙겨줄 수는 없지.”

안젤라가 의자에 앉아 테이블에 발을 올리며 말했다.

“죄악을 원한다고 했지? 줄게.”

“죄악을 가지고 계십니까?”

“바로 그게 문제야! 히히!”

아주 당돌하군.

자기한테 없는 물건을 그냥 주겠다는 걸 보면.

“근데 만약 내가 가지고 있었어도 그냥 줬을 거야. 넌 내 은인이니까.”

“죄악이 어디 있는지는 아십니까?”

“알지. 근데 그거 알아? 그 물건은 우리 루시펠 가문의 상징과도 같은 물건이라 함부로 건드릴 수 없어.”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에서도 루시펠과 관련된 색욕 에피소드가 복잡했던 거고.

“만약 제가······.”

이왕 여기까지 온 거.

확실히 해야겠다.

“당신을 도와 뱀파이어 퀸으로 만들면, 그때는 가능합니까?”

“······아드리아스 크롬웰.”

안젤라의 표정이 굳었다.

그러나 마치 장난이었다는 듯이 굳었던 표정을 풀며 만면에 미소를 띠웠다.

“역시 내가 인정한 남자! 아주 그냥 뒤가 없구만!”

“주시는 걸로 알고 있겠습니다.”

“그 전에 잠깐. 날 퀸으로 만들어줄 수는 있는 거야?”

퀸?

게임에서는 극악의 난이도였다.

그래서 색욕의 죄악은 항상 집회에게 빼앗겼었지.

‘하지만 지금은?’

집회는 없어졌다. 아니, 흡수했다.

설령 집회가 있었어도 자신이 있었다.

지금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강했으니까.

“당신이 원한다면.”

“내가 원한다면?”

나는 자신 있게 웃으며 말했다.

“언제든지 만들어드리겠습니다.”

**

루시펠 성 최심부.

루시펠 성 내부에서도 가장 높고 큰 성을 차지하고 있는 직계 뱀파이어인 블라디미르가 오랜만에 손님을 마주하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웬일인지 모르겠군.”

남자였지만 그 어떤 여자보다 고혹적인 미소를 지닌 블라디미르가 상대를 향해 말했다. 그런 그의 맞은편에는 와인 잔을 들고 있는 누군가가 홀짝거리며 대답했다.

“하아, 들었어? 블라디미르.”

“뭘 말인가?”

“손님이 왔잖아.”

와인 잔을 손에 들고 있는 여자는 여인과 소녀, 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듯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알고 있지.”

“안젤라의 손님이라는 것도?”

“그래.”

블라디미르는 그게 뭐 대수냐는 듯 말했다.

그러나 맞은편의 여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런 블라디미르를 쳐다봤다.

“인간이었어.”

“그것도 알고 있다.”

“확인해봐야 되지 않을까?”

블라디미르는 묘한 눈으로 여인을 바라봤다.

그동안 무수히 긴 세월을 살아오며 그들은 저주에 빠져버렸다.

그것은 나태라는 이름의 저주였다.

“굳이······확인을 한다고?”

그런 블라디미르로서는 상대의 지금과 같은 반응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루 이틀 겪어본 일도 아니고 고작 인간 두 명의 방문은 그 긴 세월동안 경험한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나도 평소였으면 신경을 껐겠지만 안젤라라는 게 마음에 걸려.”

“최근 안젤라가 두각을 드러내긴 하지만 그녀의 세력은 이곳에서 가장 약하다. 그리고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지.”

“안젤라가 어디서 왔는지 잊었어?”

여인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그 녀석은 대륙에서 왔다고. 그곳에서 알게 된 인맥들이 있을지 어떻게 알아?”

“그래봤자 고작해야 인간이다.”

“고작 인간? 막시민 크로넬을 잊은 거야, 블라디미르?”

뜻밖의 이름이 등장하자 블라디미르도 미간을 찌푸렸다.

“그건 그 자가 유독 특이했던 경우다. 모든 인간들이 그렇지는 않아.”

“어쨌든 난 알아야겠어. 그 잡종이 또 무슨 일을 꾸미는지 알아야 한다고.”

순혈도 아닌 잡종 따위가······.

여인의 나지막한 혼잣말이 와인 잔을 한 바퀴 감고 지나갔다.

“바토리.”

블라디미르가 초조한 안색의 여인, 바토리 루시펠을 불렀다.

“어차피 안젤라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너무 강박을 가진 것 같군.”

“난 그년이 죽을 때까지 마음 놓을 수 없어.”

“어찌됐든, 나는 관여하지 않겠다.”

“그래. 어차피 네가 도와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어. 난 단지 경고하러 온 것뿐이야. 우리 사이에 끼어들지 말라고.”

바토리는 그 말을 끝으로 와인을 한 번에 마셔 넘기며 일어났다. 그 모습을 넌지시 바라보던 블라디미르는 나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괜한 걱정이다, 바토리. 차라리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을 찾아가서 말하는 게 더 나았을 거다.”

“다른 녀석들? 감히 내 행차에 끼어들 수 있는 놈은 아무도 없어.”

“간섭할 수 있는 건 고작해야 나뿐이라는 건가.”

“······흥.”

인정하기 싫지만 딱히 부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인 바토리는 그대로 몸을 돌려 성을 나섰다.

“흐음······.”

그런 바토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블라디미르는 턱을 쓰다듬었다. 사실 외부인이 왔다는 사실에는 그리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블라디미르였으나 바토리의 반응을 보고 오히려 흥미가 생겼다.

“안젤라 루시펠.”

그가 관심 있는 것은 그 손님들보다 안젤라였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그의 막내 동생. 대부분의 직계는 인간과 뱀파이어의 혼혈인 그녀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는 달랐다.

갑자기 돌아와서는 처음 보는 힘을 휘두르던 그녀는 나태함에 빠져있던 블라디미르의 호기심조차 건드릴 정도였다.

“지켜만 볼까.”

그의 무료했던 최근의 삶을 그나마 흥미롭게 만들어주었던 동생이었다. 비록 그녀가 바토리에게 죽임을 당할 지라도 도와줄 생각은 없었지만 관찰하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나 싶었다.

딱!

블라디미르가 신호를 보내자 그림자 속에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부르셨습니까.”

“안젤라를 관찰해라. 그녀에게 일어나는 일에 관여하지는 말고.”

“인간들은 어찌할까요?”

“음······.”

솔직히 아무런 관심도 없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도 생겼다.

언젠가 이자벨이 데려왔던 그 인간처럼, 규격 외의 인물일 수도 있는 일 아닌가.

“살펴봐라. 기회가 되면 한 번 죽여보고. 실력이 궁금하긴 하구나.”

“알겠습니다.”

마치 벌레를 죽여보라는 것처럼 가볍게 던지는 명령에 수하도 덤덤히 받아들였다.

“그래도 안젤라가 부른 인간들인 만큼 죽지 않을 한 수 정도는 있겠지.”

칠흑 같이 어두운 성 안에서 블라디미르의 독백만이 천천히 흘렀다.

< 362화. 직계 뱀파이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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