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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361화 (361/415)

< 361화. 니플헤임 그리고 루시펠 성 >

루시펠, 아니 뱀파이어가 사는 영역은 인간이 살 수 없는 혹한의 대지에 있었다.

북부, 그 너머에 있는 마경.

살아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뱀파이어 밖에 없는 땅.

스윽스윽-

뽀드득

그런 불모지를 향해 인간 두 명이 허리춤까지 오는 눈길을 뚫어가고 있었다.

치이익!

마법을 사용하며 길을 뚫던 아드리아스는 거친 눈발을 바라보며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전혀 지친 기색 없이 따라오는 비비안을 보며 이내 다시 앞을 향했다.

후우웅---

“곧 도착할 것 같습니다.”

거센 눈보라로 인해 말소리가 들리지도 않을 법 하건만 비비안은 용케 알아듣고 대답했다.

“응.”

원래는 혼자 올 예정이었던 아드리아스는 도무지 뗄 수 없었던 비비안의 덤덤한 대답을 들으며 속도를 박찼다.

치이익-

온갖 특성과 원죄로 인해 걸어 다니는 마나 저장고가 된 아드리아스로서는 이러한 혹한의 환경조차 방해가 되지 못했다. 평범한 마법사, 하다못해 워록이 오더라도 쉽게 버티기 힘든 환경을 저 혼자 극복해내는 광경에 비비안은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감탄을 하고 있었다.

“음?”

그때 앞에서 느껴져 오는 기척에 비비안이 단숨에 아드리아스의 앞으로 박차고 나오며 경계를 했다.

스스스-

“인간?”

나타난 인물은 눈을 가볍게 밟고 선 뱀파이어였다. 그는 이 지역에서 보기 드문 인간을 발견했음에도 별다른 반응 없이 공손하게 물었다.

“여기까지 온 걸 보면 우리한테 용무가 있어서 온 듯한데······. 무슨 일로 온 거지?”

생각보다 신사적인 태도에 비비안의 경계가 살짝 누그러들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뱀파이어를 두려운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만큼 당연한 반응이었다.

“초대를 받고 루시펠 가문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아드리아스의 대답에 뱀파이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초대?”

“그렇습니다.”

“혹시 초대자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을까.”

“그건 조금 곤란하군요.”

루시펠 가문의 세력이 여러 파벌로 나뉘었음을 알고 있는 아드리아스가 곤란한 기색을 띄웠다. 그리고 아드리아스가 대답하지 않는 모습에서 무언의 자신감을 엿본 뱀파이어는 굳이 캐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를 잘 아는 모양이군.”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우리를 알만한 인간이라면 상관없겠군. 이후로는 내가 안내해주겠다.”

예상치 못한 호의에 비비안이 슬쩍 아드리아스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아드리아스는 전혀 문제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어차피 저 앞이다. 길을 제대로 찾아오고 있었어.”

뱀파이어는 슬쩍 턱짓을 하며 이내 앞서 걷기 시작했다. 눈에 빠지지 않고 그 위를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며 비비안이 감탄하고 있을 때, 아드리아스가 그녀에게 조심히 속삭였다.

“저들이 먼저 공격하지 않는 한, 조금만 참아주십시오.”

“응.”

이내 뱀파이어의 뒤를 따라 걷자 거대한 얼음 절벽이 나타났다. 눈보라로 인해 보이지도 않던 그 거대한 벽에 아드리아스마저 나직이 감탄을 흘리고 있을 때, 앞서 걷던 뱀파이어가 벽에 손을 가져다댔다.

콰드득!

이내 사람 하나가 지나갈 만한 틈이 생기며 위로 올라가는 긴 계단이 형성되었다.

“가지.”

“감사합니다, 혹시 성함을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이름? 어차피 나와 다시 마주칠 일은 없을 거다. 난 앞으로 15년간 주변을 정찰해야 하거든.”

15년?

어마어마한 기간을 별 것 아니라는 듯 말한 뱀파이어는 이내 씨익 웃었다.

“인간에게는 15년이 길지도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이내 계단을 올라가는 뱀파이어를 아드리아스와 비비안이 뒤따라 올라갔다. 거의 1시간 가까이 올라가자 드디어 끝이 다가오는 계단이 보였다.

“아아······!”

이내 계단의 끝에 도착한 비비안이 눈앞으로 펼쳐진 풍경에 감탄을 흘렸다.

“인간이 이곳에 온 건 얼마만인지 모르겠군. 막시민 크로넬 이후로 처음이니까, 거의 30년 만인가?”

사람들이 알고 있던 상식이 무너지는 광경.

이름 모를 기형화초가 흐드러지게 피어난 얼음 절벽 위는 지금까지 눈보라가 치던 곳과 같은 장소가 맞는지 의문이 생길 법했다.

화사한 햇살과 함께 빛을 반사시키는 투명한 얼음들, 그 사이로 온갖 식물들과 들짐승들이 퍼져 있었다.

“니플헤임에 온 걸 환영한다.”

뱀파이어는 그 말을 끝으로 뒤로 물러나더니 이내 절벽 끝에서 떨어졌다.

‘안내는 여기까지인가.’

아드리아스는 묵묵히 주변의 경치를 둘러보았다. 이미 게임에서 본 적이 있었지만 실제로 마주하는 광경은 그의 예상보다 더 대단했다.

“저기.”

그때 쭈그려 앉아 꽃들을 구경하던 비비안이 손끝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얼음과 돌이 섞여있는 고풍스러운 성이 고고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루시펠 성. 저희 목적지입니다.”

“가자.”

“예.”

죄악, ‘색욕’이 잠들어 있는 곳이었다.

**

‘예상보다 쉽게 도착했네.’

루시펠 성을 앞에 둔 내 감상은 그거 하나였다. 그도 그럴게 항상 루시펠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그게 무엇이 되었든 간에 쉽게 풀리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집회를 먼저 부순 덕분이지.’

원래였으면 집회의 음모로 인해 루시펠 가문은 암투가 치열하게 벌어지는 수라장이 되었다. 그러나 예상보다 훨씬 일찍 집회를 정리해버린 바람에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스스스-

뱀파이어 특유의 기척이 여기저기서 느껴졌다. 그러나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우리를 관찰할 뿐이었다.

“이제 어떻게 하지?”

성문 앞에 다다르자 비비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시만요.”

나는 크롬웰을 떠나기 전에 이자벨의 저주를 다시 풀어준 뒤 들었던 성에 입성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렸다.

스릉-

촤악!

검으로 가볍게 손바닥을 베었다.

그러자 점점이 올라오는 피가 이내 주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러면 냄새를 맡고 올 겁니다.”

“아하.”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비비안을 보며 잠시 기다리자 이내 내 행동을 지켜보던 뱀파이어들이 등장했다.

“손님인가.”

내 행동을 보고 단숨에 짐작한 모양이었다.

“예.”

“누구의 손님이지?”

“그건 말해주기 곤란하군요.”

내 대답에 내게 말을 걸었던 뱀파이어가 인상을 썼다. 우리를 안내했던 뱀파이어처럼 친절한 것 같지는 않네.

“말해라, 인간.”

주변으로 점차 뱀파이어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우리를 향해 은근한 기세를 뿌리며 압박을 하기 시작했다.

“전 싸우러 온 게 아닙니다만······.”

무시당항 이유도 없지.

나는 근질거리는 표정을 짓고 있는 비비안에게 고개를 끄덕여주며 기세를 끌어올렸다.

후와아아악-----!

비비안과 내가 마나를 끌어올리자 공기가 변했다.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우리의 기운은 순식간에 상대의 기운을 잡아먹었다.

“크흠?”

예상치 못한 기세였는지 처음에 말을 걸었던 뱀파이어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는 게 보였다.

이내 자신의 추태를 깨달았는지 그는 분노한 표정을 지으며 송곳니를 드러냈다.

“인간치고는 꽤 하는 것 같다만 상대를 잘못 골랐······.”

“그만.”

쿵!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격 자체가 다른 기세가 뱀파이어들을 짓눌렀다.

그리고 난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감히 내 손님에게 무슨 짓들을 하는 거냐, 이 하찮은 것들아.”

붉은 생머리가 찰랑거렸다.

언젠가 보았던 고혹적인 입매와 선홍빛의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젤라.”

“오? 아직도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네? 아니면 언니한테 들은 건가?”

“잊을 리가 없지요.”

모든 일의 시작점이라고 볼 수 있는 사건이었던 만큼 안젤라를 잊기는 힘들었다.

“안젤라 루시펠······.”

그때 안젤라의 기세를 받고 쪼그라든 뱀파이어가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마침 잘됐네. 이 지루한 기싸움을 언제 끝내나 했더니 네들이 먼저 시비를 걸어준 덕분에 명분이 생겼어.”

“궤변이다! 우리는 단지 인간들의 침입을······.”

퍼억!

눈 깜짝할 새에 몸을 움직인 안젤라가 입을 연 뱀파이어의 머리를 붙잡았다.

“내가 좆으로 보이니?”

“끄읍!”

“어디 되도 않는 말장난이야.”

콰앙!

붙잡은 얼굴을 그대로 바닥에 내려찍자 굉음과 함께 바닥이 부서지며 뱀파이어가 처박혔다.

“아, 안젤라 루시펠! 선전포고냐!”

“말했다시피 시비를 먼저 건건 네들이다, 이 하찮은 것들아. 가서 바토리한테 말해. 네들이 내 손님을 건드린 덕분에 상황이 재밌게 됐다고.”

퍼억!

안젤라는 바닥에 내려찍은 뱀파이어를 자비 없이 발로 밟아 박살냈다. 부르르 떨다가 움직임을 멈추는 모습이 적나라했다.

“이, 이······.”

우리를 향해 모였던 대부분의 뱀파이어들이 한 파벌 소속이었는지 이를 갈며 도망갔다.

“안젤라.”

“후우, 후련해.”

“안젤라.”

나는 내 말을 무시하는 안젤라를 다시 한 번 불렀다. 그제야 나를 돌아보는 그녀를 향해 물었다.

“저를 이용하신 겁니까.”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됐네. 고마워.”

“저를 초대하신 저의가 궁금하군요.”

“너는 왜 왔는데?”

묘한 신경전이 오고 갔지만 나는 그저 웃고 말았다. 애초에 그녀는 나를 적대하지 않는다. 그건 이미 예전에 밝혀진 사실이지.

‘진화가 가능했다는 점에서 이미 증명은 끝난 셈이니까.’

내 주변에 다른 사람들도 진화가 가능하다는 문구가 뜬다. 하지만 실패했을 때의 부작용을 알고 있기에 함부로 사용하지 않을 뿐.

살아있는 무언가한테 진화를 사용한 건 안젤라와 내가 전부였다.

“보고 싶었어!”

내 미소를 본 안젤라도 피식하며 웃더니 이내 표정을 바꾸며 내게 달라붙었다.

“잘 지내는 것 같군요.”

“덕분이지. 원래는 내가 찾아가고 싶었는데 이쪽 일이 생각보다 복잡해서 초대를 해버렸어. 미안해?”

그때 옆에서 스산한 기운이 느껴졌다. 안젤라도 똑같이 느꼈는지 힐끔하며 옆을 쳐다봤다.

“근데 옆에 저건 뭐야?”

“제 동료입니다, 비비안 벨로칸.”

나는 이왕 비비안을 소개한 김에 비비안한테도 안젤라를 소개했다.

“이쪽은 안젤라 루시펠입니다. 저희를 초대한 분이죠.”

“저희? 난 너만 초대했는데.”

안젤라가 딴지를 걸어왔지만 애써 무시했다.

비비안은 그런 안젤라를 게슴츠레하게 바라보더니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돌려버렸다.

“뭐, 좋아. 일단 너도 초대한 걸로 해줄게.”

마치 선심을 쓴다는 듯 말하는 안젤라를 보니 조금 신기했다. 갇혀서 언제 죽을지 기다리던 모습과 너무 대비가 되는데?

‘생각해보면 그것도 벌써 몇 년 전 일이군.’

당시에는 그저 당장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시절이었는데 이제는 수많은 동료와 강력한 언데드들로 무장한 상태였다.

사실상 멸망급 에피소드를 제외하면 무서울 게 없을 정도의 전력.

“몸이 많이 좋아졌네? 내 취향으로 변해준 거야?”

“손님을 계속 세워두실 거예요?”

“급하긴. 지금 들어가자. 그쪽도 따라와.”

안젤라가 손짓하며 걸어갔다.

그 당당한 모습은 누가 와도 자신 있다는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엿보였다.

쿠구궁--

안젤라가 손을 대자 성문이 조금 열렸다.

“어서와, 루시펠에.”

단일 면적으로 따지면 대륙에서 가장 큰 성 안으로 안내받는 순간이었다.

< 361화. 니플헤임 그리고 루시펠 성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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