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7화. 종말의 네 기수 >
크롬웰에서의 휴식은 단 하루뿐이었다.
나는 곧바로 비비안을 대동하고 어디론가 갈 준비를 했다.
“그렇게 급한 일이야? 3년 만에 본 건데······.”
에이미가 서운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녀를 달래는 것밖에 없었다.
“미안해, 에이미. 크롬웰은 너한테 맡길게.”
“나야 뭐, 어차피 지켜주는 분들은 따로 있는 걸.”
나는 에이미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헝클였다. 묶은 머리가 풀리며 부스스해진 머리를 에이미가 쓸어 담았다.
“가기 전까지 이럴 거야?”
“금방 돌아올게.”
마지막으로 에이미와 인사를 나누고 기다리고 있던 모른에게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여기는 걱정하지 말거라. 오히려 나는 네가 걱정이 되는구나.”
“이번에는 비비안도 함께하니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그래. 맥스웰도 쓰러트렸다는 네가 어디 가서 쉽게 당하지는 않겠지. 그래도 부디 몸 조심하거라.”
에반과 노아는 다시 본인들의 활동 구역으로 돌아갔다. 헤이겔의 위치를 파악해달라는 내 부탁으로 인한 움직임이었다.
“가죠.”
“응.”
막시민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이자벨만 나와서 배웅을 해주었다. 살렘도 마찬가지로 얼굴을 비치지 않았는데 3년 만에 본 것 치고는 참 무정하다 싶었다.
‘루이스는 에이미의 호위를 맡기고 아가타는 밀린 네임드급 활을 구하게 시켰지. 오히려 전쟁으로 정신이 없는 상황이라 별다른 이목을 끌지 않고 쉽게 끝낼 수 있을 거야.’
비비안과 함께 각자 말을 두 필씩 몰고 크롬웰을 벗어났다. 헤이겔의 위치를 알기 전까지 먼저 가야할 곳이 있었다.
‘비명이 울리는 늪지대.’
이브 밀레니엄의 무덤이 있는 곳.
루나가 있는 장소였다.
**
꾸드득-
제국의 남부.
온종일 전투가 끊이지 않는 피로 물든 땅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드디어······.”
전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검은 턱시도 차림의 사내는 무언가를 주변에 흩뿌렸다. 그러자 허공에 기묘한 기류가 흐르며 주변이 움찔거렸다.
“맥스웰. 넌 실패했지만 난 성공했다.”
땅에 묻혀있던 시체들이 밖으로 꺼내지기 시작했다. 이내 그 시체들은 서로 뭉치기 시작하며 허공으로 날아들었다.
꾸드득!
뭉친 시체 덩어리에서 피가 흘렀다.
그 과정은 단숨에 끝나지 않고 조용히, 그러나 꾸준하게 진행되었다.
그 모습을 본 헤이겔이 중절모를 벗어던지며 웃었다.
“오거라! 진정한 혼돈이여!”
꾸득!
시체 덩어리에서 회색의 긴팔이 솟아나와 헤이겔을 잡았다. 헤이겔은 순순히 몸을 맡기며 웃었다.
“내가 이겼다.”
콰직!
헤이겔마저 흡수한 덩어리는 이내 꾸역꾸역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점차 드러나는 그 모습은 말을 탄 사람처럼 보였다.
[“오너라.”]
백색 일색으로 이루어진 말을 탄 기수.
월계관을 쓴 거인이 활로 변형된 거대한 팔을 휘둘렀다.
“저게 뭐지?”
그 모습을 뒤늦게 발견한 양측 군대가 소란을 떨었다.
“괴물이 나타났다!”
“저건 또 뭐야!”
“일단 마법으로 대응해라.”
순식간에 전장 한가운데를 향해 집중포격이 떨어졌다. 남부 연합, 제국 할 것 없이 쏟아내는 공격에 연기가 자욱하게 끼었다.
후웅-
연기를 뚫고 무언가가 날아왔다.
그리고 날아온 무언가는 수십 명의 병사를 터트리고 지나갔다.
“화살?”
“마, 막아라!”
거의 기둥만한 화살이 소리도 없이 날아와 사람들을 터트리고 지나갔다. 크기도 크기였지만 가공할만한 힘으로 인해 스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이 찢겨 나갔다.
“뭐, 뭐야!”
“크허억!”
그렇게 날아간 화살은 땅에 박히고도 사람들을 죽여 나갔다. 박힌 화살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거나 얼굴에서 기포가 터져나가며 끔찍하게 죽어갔다.
“도대체 저 괴물은······.”
귀족 중 하나가 중얼거렸다.
인외의 괴물이라는 것을 깨닫자 이어지는 것은 곧 후퇴였다.
“도망쳐라! 모두 후퇴해!”
퉁! 퉁! 퉁! 퉁!
후퇴를 알리는 북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 일정한 소리에 맞춰서 화살도 날아왔다.
[“오너라.”]
전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
비명이 울리는 늪지대는 마경은 아니지만 마나 이상 현상으로 항상 비명 소리가 들리는 기분 나쁜 장소였다.
덕분에 사람이 없는 건 당연했고 솔직히 루나가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조차 이해가 가지 않는 곳이었다.
‘이런 곳에서 살았는데 어떻게 그리 명랑한 성격일까.’
어찌됐든 길을 떠난 우리는 일주일 정도가 걸려서 늪지대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루나가 여기······?”
비비안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눈초리로 늪지대의 초입을 바라봤다. 이 근방은 아무도 살지 않는 땅이라 썰렁하기 짝이 없었는데 늪지대의 풍경까지 보니 의심이 드는 게 당연했다.
“들어가죠.”
“응.”
다행히 주의할 만한 건 없는 장소라 우리는 말을 근처 나무에 묶어두고 걸어서 늪지대에 들어갔다.
우으으!
아아악!
들어가자마자 우리를 반겨오는 비명에 인상이 찌푸려질 만도 했지만 나는 물론이고 비비안도 아무 내색 없이 걷기만 했다.
푸욱-
-굳어라.
마력 낭비 같았지만 딱히 쓸 일도 없었기에 발이 빠지기 시작하는 부분부터 늪지대를 모두 굳혀버렸다.
“루나는 멀어?”
“글쎄요. 불러볼까요?”
아마도 우리가 늪지대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이곳은 그야말로 루나 펜드래곤의 영역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닌 장소였으니까.
“오네요.”
마침 저 멀리서 무언가가 도도도 달려오고 있었다.
“친구! 비비안!”
3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한 모습인 루나가 밝은 미소를 지으며 허공을 달려오고 있었다.
‘괴물 같은 마력······.’
루나는 포트리온에서 있었던 일 이후로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마력을 지니게 되었다. 아마 우로보로스의 마력이 전부 날아가지 않고 몸에 남은 듯했는데 정확한 건 본인조차 모르는 눈치였다.
“잘 지내셨죠?”
“응! 비비안, 오랜만이야! 많이 컸네!”
원래 너보다 컸단다.
참고로 비비안은 나보다 한 살 어리니 나와 동갑인 루나가 언니였다. 믿기지는 않지만.
루나는 비비안과 3년 만에 재회라 무척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비비안도 루나를 귀여워하던 터라 크롬웰에서 이야기를 나눴을 때도 가장 많이 이야기했던 게 루나와 루시아에 과한 내용이었다.
“몸은 괜찮아?”
“응! 멀쩡해!”
비비안이 마치 어린 동생을 대하듯 루나의 머리를 매만지기 시작했다. 크롬웰에 있었을 때도 저런 모습을 보이고는 했는데 왠지 안심이 되는 풍경이었다.
“집은 어느 쪽에 있죠?”
“저기! 따라와.”
루나가 다시 허공을 달리기 시작했다. 다시 봐도 말도 안 되는 마력이네.
내가 루나를 굳이 찾아온 이유는 다름 아닌 그녀의 집에 있는 특별한 장치 때문이었다. 나도 포트리온에서 듣게 된 사실이었지만 헤이겔과 따로 연락할 수단이 이곳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여기야!”
“음······.”
그녀가 안내한 집은 음침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가 흐르는 나무 집이었다. 늪지에서부터 뿌리를 뻗고 자란 나무의 속을 그대로 사용하는 형태였는데 뭔가 보면 볼수록 루나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루나, 그 전에 이브의 무덤에 먼저 가봐도 될까요?”
“엄마?”
루나가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손짓했다.
“근처에 있어. 따라와!”
그녀를 따라가자 나무 덩굴로 얼기설기 만들어진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그 앞에는 작은 비석이 있었는데 조악한 솜씨로 만들어져 귀엽게 느껴졌다.
“이거야!”
이브 밀레니엄의 무덤.
실제로 보게 되자 기분이 묘했다.
사실상 포트리온에서 루나를 지킨 건 내가 아닌 이브였다. 물론 모든 계획 자체가 이브와 맥스웰의 합작이었지만 지킨 건 사실이지.
‘이브가 아니었으면······.’
어쩌면 내 손으로 직접 루나를 죽여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상황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자 얽혀있는 덩굴 사이로 이브의 모습이 보였다. 마력이 희미하게 느껴지는 걸로 보아 보존 마법을 걸어둔 듯싶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루나도 살고, 나도 망가지지 않았다.
내가 잠시 추모를 하고 있자 루나가 돌연 내게 물었다.
“엄마를 언데드로 만들려고?”
“······상상력이 뛰어나시네요.”
가끔 4차원적인 루나의 말을 들으면 헛웃음이 나올 때가 있었는데 지금 같은 상황이 그랬다.
“난 또 언데드로 만들려는지 알았네.”
“설마요.”
추모를 마치고 바로 옆에 있는 집으로 향했다. 집 안에 들어가자 소박하지만 옹기종기 있을 건 다 있는 내부 모습에 자연스럽게 이곳에서 생활했을 루나의 모습이 그려졌다.
“저기 안쪽에 있어.”
루나의 안내를 받고 집안으로 들어가자 이전에 본 기억이 있는 통신 아티팩트가 보였다. 예전에는 들고 다녔던 것 같지만 이제는 본체에서 떨어트릴 수 없게 됐다는 게 루나의 설명이었다.
“근데 헤이겔이 연락을 안 받아. 어떻게 하려고?”
“뜯어봐야죠.”
헤이겔의 위치를 알기 위해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본 결과였다. 이미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묵시록의 기사들이 나타나는 걸 막을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헤이겔의 위치만큼은 미리 파악하고 싶었다.
“도와주시겠어요?”
“당연하지!”
루나가 허리에 손을 얹고 의기양양한 태도로 말했다. 이내 그녀와 자리를 깔고 앉아 통신 아티팩트를 분해하기 시작했다.
“신호가 발생하는 장소를 찾으면 되는 거지?”
“예. 그거면 충분해요.”
그렇게 본격적으로 아티팩트의 분해 및 분석에 들어갔다. 아티팩트는 단순히 헤이겔의 것하고만 이어진 게 아니었기에 쉽게 알기는 힘들었다.
덕분에 틈틈이 작업을 하며 루나가 여기서 어떻게 생활해왔는지 느껴보고 일취월장한 비비안의 요리 실력도 느끼며 크롬웰에서 못 다한 휴식을 취했다.
“어떻게! 나도 배울래!”
확장 가방에 챙겨온 재료로 간식을 만들어주자 루나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비비안을 졸랐다.
“나도 만드는 법 배우고 싶어!”
“알려줄게.”
때로는 저렇게 아티팩트의 분석을 때려치우고 일탈하기도 했지만 뭐든 좋았다. 애초에 살자고 하는 일인데 행복이 우선이지.
“어?”
한참 비비안에게 요리를 배우던 루나가 고개를 급하게 돌리며 한쪽 방향을 바라봤다.
“왜 그러세요?”
“누가 들어왔어.”
늪지대에 누군가가 들어왔다고?
나는 곧바로 만지작거리던 아티팩트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가보겠습니다.”
“같이 가!”
“나도.”
혼자서 살짝 나갔다 오려고 했는데 상관없겠지. 솔직히 우리 셋 정도의 전력이면 무서울 게 없었다.
“빨라.”
그때 루나가 중얼거리며 마력을 끌어 모았다.
“벌써 앞이야.”
“예.”
나도 느껴졌다.
엄청난 속도로 다가온 누군가는 어느새 우리가 있는 집 앞까지 도착했다.
그런데 뭔가 익숙한 기운이······.
“똑똑, 안에 계십니까?”
“아?”
이 목소리는 분명······.
“안에 아드리아스 크롬웰 계십니까아?”
“오랜만이군요.”
나는 문을 열고 나서며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내 인사를 받은 인물이 특유의 실눈으로 호선을 그렸다.
“이야, 정말 오랜만입니다. 제자님.”
베리얼 카스테로.
마법학부장을 내려놓고 사라졌던 최악의 마법사가 날 보며 웃고 있었다.
< 347화. 종말의 네 기수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