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5화. 재화 >
후드를 쓴 인물의 얼굴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모두가 그의 정체를 짐작하고 있었다.
“포트리온은 지금 출입이 막힌 것 아니었나?”
“그것보다 어서 병사들부터 수습해라! 고작 한 명에게 겁을 먹은 게 한심하군!”
“가, 각하. 상대는 오러 마스터와 워록을 동시에 달성한 유일무이한 초인입니다. 일단은 물러나고 지원을 부르심이······.”
민둥산 위의 참모진이 혼란에 빠져있을 때, 아드리아스로 짐작되는 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 비켜!”
“으아악! 이쪽으로 온다!”
그 모습을 지켜본 예리치 백작은 얼굴이 새빨개지며 화를 냈다.
“저 놈이 아직 아무것도 안했는데 왜 도망친다는 말이냐! 지금부터 도망치는 놈들은 전부 목을 베라!”
“각하! 그보다는 어서 물러나심이······.”
“여기서 물러나면? 고작 초인 하나 때문에 2천명의 대군을 무르라고? 황궁에서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겠구나!”
부장은 고개를 조아리며 말문을 닫았다.
예리치 백작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허억!”
그때 예리치 백작의 명령을 듣고 병사들의 후퇴를 막으러 가던 몇몇 기사들이 헛바람을 들이키며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을 의아하게 보던 남은 기사들도 이내 느껴지는 기운에 안색이 창백하게 질리며 그대로 몸이 굳었다.
“가, 각하. 아무래도······.”
예리치 백작도 바보는 아니었다.
기사들마저 압도되는 광경을 보자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지만 너무 늦고 말았다.
‘어느새······!’
아드리아스로 보이는 인물은 고작 몇 번의 걸음으로 민둥산 위에 있는 참모진에게 도달했다.
“아, 아드리아스 크롬웰인가?”
온몸을 엄습해오는 기운을 느끼며 예리치 백작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스릉-
그러나 대답 대신 들려온 것은 검이 뽑히는 소리였다.
“막아라!”
멍하니 있던 기사들이 그제야 다급히 움직이며 주변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척! 척! 척!
“대답해라! 그대가 정녕 아드리아스 크롬웰이 맞나?”
끝내 예리치 백작이 발악하듯 외쳤다.
그러자 후드를 쓴 인물이 천천히 후드를 걷기 시작했다.
“아아!”
“아드리아스 크롬웰이다!”
모습을 드러낸 아드리아스는 이전과 달리 짧아진 머리카락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굴에는 처음 보는 흉터들과 룬문자로 이루어진 짧은 문신이 새겨져있었다.
“선배님.”
그 모습을 지켜보던 루이스가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무사하셨군요.”
“······루이스 아트만.”
묘한 기류가 흘렀다.
서로가 적인 상황이었지만 루이스는 진심으로 아드리아스의 생환을 기뻐하고 있었다.
“네가 내 영지를 공격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군.”
“죄송합니다. 하지만 전 공격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솔직하게 말한 루이스는 이내 천천히 검을 뽑아들었다.
“그렇다고 선배님이 예리치 각하를 죽이는 것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황궁의 개가 된 건가.”
“아닙니다. 하지만 약속했습니다. 전 기사로서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 분을 호위하기로 말이죠.”
아드리아스의 싸늘한 눈빛이 루이스의 전신을 스치고 지나갔다. 루이스는 저도 모르게 긴장하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만약 가능하다면 저희는 이대로 물러나겠습니다. 보내주시겠습니까?”
“루이스. 너는 여전하구나.”
아드리아스가 검을 가볍게 늘여놓았다.
그 모습에 참모진들이 안도하는 기색을 띠었지만 루이스는 오히려 표정을 굳히며 경계심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여전히 바보 같은 성격이야.”
후욱-
쾅--------!
눈으로 쫓기 힘든 검이 순식간에 예리치 백작을 노리고 들어갔다. 하지만 대비를 하고 있던 루이스는 황금빛 오러를 두르며 그 공격을 막아냈다.
“허억!”
너무나 갑작스런 일격에 모두가 놀라는 사이 아드리아스가 더욱 싸늘해진 기운을 내뿜으며 말했다.
“날 막는 거냐.”
“죄송합니다.”
루이스는 사과를 하면서도 물러날 기미가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아드리아스의 입가에 결국 희미한 미소가 그려졌다.
“좋아. 어디까지 막을 수 있는지 보자.”
아드리아스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전과 달리 화려한 발걸음과 움직임이 마치 꽃들이 흩날리는 풍경처럼 변했다.
“흐읍!”
그러나 그런 아드리아스의 움직임을 상대하게 된 루이스는 마나를 극한으로 순환시키며 검을 휘둘렀다.
콰가가가각------!
검룡이라 불린 천재 검사와 최연소 오러 마스터의 격돌이었다.
“각하를 모시고 물러나라!”
“오러 파편을 조심하라!”
주변에 있던 기사들은 격이 다른 싸움에 둘 사이로 끼어 들 수가 없었다. 결국 참모진을 보호하며 부랴부랴 뒤로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저것이 초인의 힘······!”
“아드리아스 크롬웰이 정말로 돌아왔군요. 그렇다면 알븐 전하께서도 돌아오신 걸까요?”
여러 궁금증들이 휘몰아쳤지만 지금은 둘의 전투를 지켜보는 일밖에 할 게 없었다. 만약 루이스가 상대를 막아내지 못한다면 이곳의 인원들은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할 일이었다.
카드드득!
“선배님! 아직 아무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부디 후퇴를 허락해주십시오!”
“아직 말할 여유가 있는 모양이구나.”
아드리아스가 쉬지 않고 움직이자 결국 밀리기 시작한 루이스의 눈에서 금빛이 쏟아져 나왔다.
콰직!
순식간에 상황이 역전되었다.
눈동자의 색이 금빛으로 변한 루이스는 상대의 움직임을 미리 읽고 한 발 빠르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오러 비기?”
아드리아스의 입에서 처음으로 놀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주변에서 지켜보던 사람들도 두 눈을 부릅떴다.
“오러 비기라니! 아니, 루이스 경이 오러 마스터였다는 말인가!”
“아니 왜 오러 마스터라는 사실을 숨겼던 거지?”
사람들의 의문에 찬 음성이 나왔지만 루이스는 오직 전투에만 집중했다. 상대는 최초로 오러 마스터와 워록의 경지를 둘 다 밟은 전인미답의 초인이었다.
“실망시키지 않는구나.”
아드리아스가 거리를 벌렸다.
그 행동조차 미리 읽었지만 루이스는 따라가지 않고 조용히 상대를 바라봤다.
“그럼 나도 최선을 다해줘야겠지.”
화아악-
아드리아스의 오러 비기로 알려진 날개가 펼쳐졌다.
“색깔이······.”
그 모습을 본 루이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그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는 새하얗던 날개의 색이 지금은 모두 검게 변해있었다. 그리고 날개의 개수도 3익으로 늘어나있었다.
후웅-
‘빠르다!’
마나의 움직임을 읽고 예지에 가까운 힘을 가지게 된 루이스가 사고를 가속시켰다. 그의 오러 비기는 마나를 보는 능력과 사고 가속 능력, 동시에 오러의 힘까지 증폭시키는 종합 세트였다.
콰지지직---!
금빛 오러와 흑색의 오러가 맞부딪히며 사방으로 파편이 튀었다.
불에 댄 듯 달구어진 분위기가 사방으로 휘몰아치고 쇄도해나가는 두 자루의 검이 수채화를 그리듯 색을 물들였다.
‘이렇게 강하시다고?’
루이스는 자신의 오러 비기로도 따라가지 못하는 상대의 움직임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천하의 막시민조차 따라잡았던 예지 능력이 압도적인 신체 능력의 격차로 의미가 퇴색되어갔다.
콰앙!
루이스의 검을 힘으로 짓누른 아드리아스가 여유롭게 한 손을 들었다. 그리고는 딱밤을 준비하며 루이스의 이마에 갔다댔다.
“재밌었다, 애송아.”
퍼엉!
손가락을 퉁기자 루이스가 그대로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예리치 백작 휘하의 참모진들은 비탄의 한숨을 내쉬었다.
“끝······났구나.”
“오러 비기를 사용한 루이스 경조차 이기지 못하다니······. 게다가 상대는 마법도 사용하지 않았어.”
아드리아스의 시선이 소란을 일으키는 방향으로 돌아갔다. 그의 눈에 서린 살기가 이내 예리하게 벼려질 때, 루이스가 다시 일어났다.
“안 됩니다.”
루이스가 단숨에 아드리아스의 앞을 가로막았다.
“전 죽기 전까지 맡은 바 소임을 다할 것입니다.”
“······하아, 이럴 때는 네 성격이 정말 그지 같다고 느껴지네.”
아드리아스가 날개를 거뒀다.
그러나 여전히 검을 쥔 채 루이스를 가리켰다.
“그렇다면 네 말대로 해주지. 네 목숨을 내놓으면 저들을 살려주겠다.”
뜻밖의 제안에 모두가 얼어붙었다.
사람들은 차마 그 제안을 수락하라고 루이스에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 그런 무모한 제안이 어디 있소!”
예리치 백작이 조금은 공손해진 말투로 항의했다.
“그럼 네가 죽던가. 난 둘 중 하나를 원하는데.”
“그런······.”
그러자 루이스가 전혀 두렵지 않다는 표정으로, 오히려 잘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시죠. 그걸로 선배님의 분이 풀린다면 그리 하겠습니다.”
“루, 루이스 경!”
“안 됩니다! 오러 마스터인 루이스 경이 희생하다니······!”
사람들의 아우성이 이어지자 아드리아스의 표정이 다시 싸늘하게 변했다. 전에 없던 흉터로 인해 더욱 날카로워진 인상이 공포심을 유발했다.
“됐습니다. 이미 결정을 내렸습니다.”
루이스는 그런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저으며 미소 지어주었다.
“전 괜찮으니 여러분들은 살아주십시오.”
“루이스 경······.”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되려던 상황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아드리아스가 초를 쳤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크롬웰에 다시 쳐들어오면 그때는 내가 단신으로 네들의 가문을 다 부셔놓을 거다. 그걸로 내가 죽게 되더라도 깽판이란 깽판은 다 부려놓고 죽을 거니까.”
“크, 크흠.”
이곳에 있는 자들은 대부분 가문이 있는 자들이었기에 애써 시선을 피했다.
“알았으면 빨리 꺼져. 아니면 그냥 루이스도 죽이고 네들도 다 죽일 거니까.”
“루이스 경! 이 희생은 절대 잊지 않을 걸세! 내가 그대의 활약은 기필코 황궁에 보고를 올려놓겠네!”
아드리아스의 협박에 예리치 백작과 그 휘하의 부하들은 서둘러 도망치기 시작했다. 데리고 온 병사들을 수습할 생각도 없이 급한 모습이었다.
“선배님, 병사들은 살려주실 거죠? 말했지만 아무도 헤치지 않았습니다.”
“헤치지 않은 게 아니라 헤치지 못한 거다.”
철컥!
아드리아스는 말을 정정해주며 검을 집어넣었다. 그 모습에 루이스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절 언제 죽이실 겁니까?”
“널 내가 왜 죽여. 닥치고 따라와.”
“예?”
루이스가 여전히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서있자 아드리아스가 눈을 부라렸다.
“넌 지금부터 크롬웰에 죗값을 치른다. 앞으로 넌 우리 가문의 전투 병기야.”
“그, 그런······.”
“뭐야. 약속을 지키는 거 아니었어?”
“그런 약속은 한 적이······.”
“그럼 그냥 죽을래?”
“······.”
결국 루이스는 고개를 숙이며 아드리아스의 뒤를 따랐다.
쿠우웅!
아드리아스가 다가서자 크롬웰의 성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앞에는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오빠!”
눈물을 흘리며 달려 나오는 에이미가 아드리아스에게 안겨들었다. 그런 에이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아드리아스는 뒤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
그곳에는 실감이 나지 않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인지 쉽게 다가오지 못하는 비비안이 우물쭈물하며 서있었다.
“다녀왔어요, 비비안.”
아드리아스가 먼저 말을 꺼내자 그제야 눈물을 보이기 시작하는 비비안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어서와.”
“많이 기다렸죠?”
그런 둘의 사이를 에이미가 버럭 소리 지르며 끼어들었다.
“말이라고 해! 우린 당연히 오빠가······우흑.”
울음이 터진 에이미를 다시 달랜 아드리아스가 이내 모습을 보이는 모른, 살렘, 에반, 막시민, 이자벨, 노아, 드미트리, 아가타를 보았다.
“모두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랜 기다림.
3년 만의 재회였다.
< 345화. 재회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