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1화. 종막(Finale) >
불가능한 마법이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힘.
그러나 죄악은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푸스슥-
맥스웰이 만들어낸 모든 중력구가 한순간에 소멸했다.
““그것이 바로 죄악의 힘이구나. 죄악을 온전히 다루는 자를 보는 건 천년을 통틀어 그대가 처음이다.””
탐욕의 힘 중 일부인 마나 제어 666%상승은 안 그래도 강력한 내 언령 마법을 한층 더 진화시켰다.
““하지만 감당할 수 있겠느냐. 그 힘은 인간이 가질 수 없는, 아니 가져서는 안 되는 힘이다.””
-조용.
내 말 한마디에 맥스웰들의 입이 합죽이가 되었다.
“감당하고 자시고 일단 좀 맞자.”
행동의 제약이 전부 사라지자 언데드들이 순식간에 상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상대가 마법의 시조라 불리는 니바스든, 포트리온을 지배하는 마법사들의 왕 맥스웰이든 상관없었다.
‘부셔주겠다.’
천년의 계획? 새로운 세상? 신을 사역?
내가 원하는 건 오직 하나다.
나와 주변의 행복.
세상의 지배자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고 어마어마한 부귀영화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세상을 구하겠다는 거창한 목표도 결국 작은 행복을 위한 한 발자국일 뿐이었다.
콰가가각-----!
맥스웰 중 둘은 육체 능력도 뛰어난 모양인지 맨몸으로도 용아병과 대등한 싸움을 보여줬다. 하지만 결국 그게 전부.
촤아아악--!
맥스웰 하나가 결국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일단은 루나부터 구해야 돼.’
맥스웰이 발동시킨 정체불명의 마법진이 여전히 붉게 빛나고 있었다. 이 우주선 내부 같이 생긴 모든 공간에 들어찬 마법진은 중앙에 위치한 루나와 공명하며 심상치 않은 기세를 뿌리고 있었다.
-크롸라라라!
크리브마허가 육탄공격을 감행하자 맥스웰들은 도망 다니기 바빴다. 하지만 그 표정이나 몸짓들이 전혀 위기감이 없었다.
아무래도 뭔가 숨겨둔 수가 있는 것 같은데 탐욕이 끝나기 전에 어서 처리해야했다.
쿠웅---!
콰아아아아아-----!
티무르의 정권이 폭탄처럼 터져나가며 맥스웰 하나가 먼지처럼 흩어졌다. 이제 남은 녀석들은 고작 4명.
씨익-
그러나 그 네 명은 동시에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쉽게 끝날 리가 없겠지.’
그 네 명은 각자의 품속에서 물건들을 하나씩 꺼냈다. 그리고 그 물건들의 정체는 모두 네임드급 아이템이었다.
콰직!
페이드라고 알고 왔던 맥스웰이 손에서 달걀 모양의 무언가를 부쉈다. 이내 괴물 같은 입을 벌리더니 떨어지는 내용물을 머리 위로 들어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아브락사스의 알.’
실제로 본 적이 있는 아이템이었다.
사용해본 적은 없고 보스가 사용하는 걸 경험해봤는데 저 알을 먹은 보스는 일시적으로 화신과 동등한 힘을 지니게 된다.
-멈······.
멈추라는 언령 마법을 사용하고 싶었으나 역시 죄악 하나로는 무리였다. 그래도 다른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겠지.
콰아앙!
콰득! 콰가각!
미쳐 날뛰는 페이드에게 내가 직접 달려갔다.
내가 알기로 아브락사스는 실존하는 초월자였기에 초월자의 힘을 사용하는 페이드는 충분히 상대할만했다.
“크와아악!”
페이드는 마치 괴물과 같은 모습과 함께 흉측하게 찢어진 가면의 입으로 모든 걸 씹어버리고 있었다.
““그렇게는 안 되지, 아드리아스 크롬웰.””
어느새 조용하라고 했던 언령 마법이 풀리고 나머지 세 명의 맥스웰이 아이템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맡긴다. 하룬겔, 크리브마허.’
티무르와 루도, 그리고 미리내는 루나의 구출을 우선시하도록 명령하고 하룬겔과 크리브마허에게 나머지 세 명의 맥스웰을 부탁했다.
-베른헬, 이 하찮은 놈아. 뭣 하러 이리 오래도록 살아있었냐. 내가 편히 만들어주마.
리치킹이 된 하룬겔의 마법은 고절했다.
생전에 네크로맨서였지만 역사에 이름을 남겼던 만큼 그가 익힌 마법은 다양했다.
“너야말로 구질구질하네? 히히. 그런 뼈다귀 같은 몸으로, 그것도 사역이나 당하고 있는 주제에 할 소리냐?”
베른헬이라 불린 미치광이 과학자처럼 보이는 상대가 드디어 제 의지로 말을 해왔다.
조금 더 둘의 대화를 지켜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나는 눈앞의 페이드에게 집중했다.
콰아앙------!
갈락슈르가 미친 듯이 돌진해오는 페이드를 막아섰다.
“끄와아악!”
괴성을 질러대는 페이드를 나는 그대로 몰아붙였다. 탐욕과 날개의 힘은 무식하게 달려드는 페이드를 수월하게 상대했다.
[???의 날개가 타락하기 시작합니다.]
뭐지?
갑자기 시야를 가리는 메시지에 순간 위험할 뻔했다. 동시에 날개가 근질거리며 기분 나쁜 감정이 울렁거렸다.
생각해보면 단 한 번도 날개와 죄악을 동시에 사용해본 적이 없었다.
“크와악!”
생각을 더 이어나가기에는 몸이 바빴다.
당장 아가리를 들이미는 페이드에게 칼질하기에도 정신이 없었다.
카앙!
무식한 전투였지만 화신급의 육체 능력을 지닌 페이드는 마법까지 사용하며 본인의 신체를 강화시켰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페이드의 오리지널 마법이 아무래도 버프 계열이 아닐까 생각되는 순간이었다.
‘40초.’
벌써 30초 가까이 지난 탐욕의 시간은 내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지만 애써 냉정을 유지했다.
쭈우욱!
갈락슈르에서 그림자가 뻗쳐 사방으로 뻗쳤다.
오러를 이용한 그림자 마법이 순식간에 페이드의 주변을 감쌌다.
-꿰뚫어라.
더블 캐스팅.
검의 그림자들이 페이드를 노리며 찔러 들어가고 동시에 갈락슈르도 휘둘러졌다.
사방을 점유한 벗어날 수 없는 공격이 쏟아져 내렸다.
퍼버버벅!
“끄으.”
단순한 움직임만 보이던 페이드는 그대로 공격을 맞아내며 내게 다가왔다. 힘겹게 한 발자국씩 뻗어오는 모습이 나름 비장했지만······.
서걱!
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의 목을 베어냈다.
-하하하! 베른헬! 고작 이 정도냐! 이토록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날 이기지 못하는 것이 우습구나!
페이드를 쓰러트리고 주변을 둘러보자 하룬겔이 베른헬을 압도하고 있었고 나머지 두 맥스웰도 크리브마허에게 불리한 형세를 띄고 있었다.
무려 네임드급 아이템들을 사용함에도 이기지 못하는 모습을 보니 확실히 크리브마허와 하룬겔은 급이 다른 언데드였다.
‘이제 고작 30초.’
절반이나 지났다.
그 전에 루나를 저 알 수 없는 보호막에서 꺼내야했다.
“역시 운명의 개변자답군.”
쿠웅!
갑자기 날아온 공격에 마법을 이용해 막았다.
공격이 날아온 방향을 보자 그곳에는 처음 보는 인물이 나를 보며 서있었다.
“너도 맥스웰이냐?”
“정확히는 니바스다.”
가장 마지막에 등장한 걸 보면 이 녀석이 진짜인 것 같은데?
“쫄려서 결국 튀어나왔구만.”
“글쎄. 그건 아니지만 그대가 이 정도의 힘을 보유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는 건 사실이다.”
본인을 니바스라 소개한 인물은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인간이 아닌 인형과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겼다.
“내가 등장한 이유는 순수하게 경의를 표하기 위함이지.”
가공할 마력이 전율을 일으켰다.
마치 탐욕을 막 사용했을 때의 나와 비슷한 마력의 양.
저건 절대 인간이 아니었다.
-일종의 리치다. 기계식 리치군. 키메라라는 표현이 오히려 어울리려나.
하룬겔이 그새 베른헬을 쓰러트리고 내게 합류했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저 놈은 나한테 맡겨라.
“······감당할 수 있겠어?”
-네가 저 놈을 상대하면 늦을 거다.
하룬겔의 말대로 이미 탐욕이 끝나가고 있었다. 이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벌써 시간이 지나 20초 밖에 남지 않았다.
“부탁할게.”
하룬겔이 왜 갑자기 내게 호의적으로 변한건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봐야했다.
“지금 달려가도 늦었다. 굳이 말리지는 않겠다만.”
니바스가 아무 감정 없이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무시하며 하룬겔에게 니바스를 맡기고 곧바로 루나가 있는 중앙을 향해 달려갔다.
“루도!”
이미 그곳에는 티무르와 루도, 그리고 미리내가 힘껏 보호막을 공격하고 있었지만 통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루도를 불러 그의 몸을 타고 올라가 루나가 있는 높이까지 올라왔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눈물범벅이 된 루나가 어느새 오관을 소환한 채 서있었다.
“오관, 그곳을 부수고 나올 수는 없습니까?”
“힘이 온전치 않아 불가능하다. 몸에 이상이 있어.”
아무래도 포트리온의 생명력과 우로보로스를 흡수하느라 몸이 멀쩡한 상태가 아닌 모양이었다.
“그간 검으로 이 세상을 엿볼 수 있었기에 대충 무슨 상황인지는 안다. 내가 볼 때 지금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건 그대 뿐이군.”
5초.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갈락슈르를 치켜세웠다.
만약 이걸로도 실패한다면 ‘분노’를 사용해서라도······.
[???의 날개가 타락합니다.]
[1익-탐욕으로 물들었습니다.]
“뭐?”
검을 휘두르던 중에 메시지가 다시 앞을 가렸다.
[‘업적 : 이야기의 진행’을 달성했습니다.]
콰지지직!
내 검이 루나를 감싼 보호막을 긁었다.
알 수 없는 메시지가 시야에 들어차며 동시에 머리가 아파왔다.
[“드디어······.”]
원죄?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인지하기도 전에 날개에서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고통?’
왜? 날개는 내 몸에 붙어있는 게 아니라 그동안 수차례 만져 봐도 감각조차 없었는데?
콰장!
“아!”
갑자기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로 정신이 없었지만 루나를 감싼 보호막을 부수는데 성공했다. 이제 데리고 나가기만 하면······.
“중요한 건 이미 전부 끝났다.”
등에서 우수수 소름이 돋았다.
아무렇지 않게 들려오는 니바스의 목소리는 내 바로 뒤에 존재했다.
[특수 기술 ‘탐욕’의 지속시간이 끝납니다.]
[반동이 닥칩니다.]
곧바로 탐욕도 끝나버렸다.
“커억.”
“죄악이 끝난 모양이구나. 하지만 충분히 훌륭했다.”
하룬겔을 감지해보자 하룬겔은 분명 소환이 된 상태였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하룬겔은 아까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강림을 사용했구나. 누구지?”
“그대가 루나를 괴롭게 만드는 인물이군.”
“이브 밀레니엄은 아니구나.”
오관이 공포검을 들고 니바스에게 맞서는 게 보였다.
“소용없다. 이미 모두 끝났어.”
“그게 무슨 소리지?”
“말 그대로의 의미다. 이제 곧 있으면 신이 탄생하겠지.”
······늦은 건가?
아무 징조도 보이지 않는 상태지만 니바스가 저리 자신 있게 말하니 절망이 밀려왔다.
“끄윽.”
날개의 고통 따위는 잊힐 정도로 지독한 좌절과 상실이 내 가슴을 찢었다.
이미 내 몸은 탐욕의 후유증으로 제대로 가눌 수조차 없는 상황. 설령 루나를 무사히 구해냈더라도 니바스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드디어 계약을 이행할 수 있는 첫 걸음이 완성됐네.”]
갑자기 튀어나온 원죄가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난 그의 말을 들을 여력이 없었다.
[“그러니까 선물을 하나 줄게.”]
지지직--
[알 수 없는 힘이 니켈 라이프힐의 진화를 가속시킵니다.]
[진화가 완료되었습니다.]
아······.
아직은 부족하니 더 구르라는 건가.
[“이런 곳에서 좌절하는 건 너답지 않아. 뭣하면 죄악을 더 써서라도 저 녀석의 콧잔등을 박살내버리라고. 하하!”]
언뜻 사악하게도 들리는 유쾌한 원죄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아공간을 열었다.
“그래.”
“충격이 커서 횡설수설하는군. 굳이 날 계속 적대할 이유는 이제 없다. 실험체 1223번의 그릇은 이미 완성됐어. 이제 조금만 있으면 기다려왔던 신을 볼 수 있겠지.”
내가 혼잣말을 하며 아공간을 열자 미친 것처럼 보였나보다.
“하아, 다 됐고 그냥······.”
니바스의 말대로 이미 늦었을 수도 있다.
그러니 굳이 목숨을 걸면서 까지 니바스를 대적할 필요가 없을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난 꼭 네 면상을 갈겨야 속이 후련하겠다.”
진화한 니켈이 내 옆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 341화. 종막(Finale)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