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9화. 포트리온의 히든피스 >
작은 소란을 뒤로하고 일행들과 난 예정대로 포션 거리로 들어왔다.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색색의 연기들과 익숙한 향기에 묘한 향수를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포션으로 발악했었지.’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성장한 상태였지만 여전히 포션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여기가 포션 장인들이 모이는 구역입니다. 저도 여기서 지내고 있죠.”
“호튼도 포션 제작을 합니까?”
“예. 사실 마법사보다 연금술사라는 호칭이 더 어울립죠.”
호튼이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리고 아드리아스 님께서 제작하신 포션에 비하면 너무나 부족한 결과물들밖에 없습니다.”
“그건 봐야 알겠죠. 그것보다 여기서 가장 유명한 가게는 어딥니까?”
“바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저 안쪽에 가면 모드리안 학파의 상점이 있는데 그곳이 가장 인정받는 곳입니다.”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루시아를 플레이할 때 참고를 많이 했던 학파였다. 사실상 마법보다는 포션의 연구를 주력으로 삼는 상업적인 마법사들의 모임이지.
‘히든 피스가 있는 곳은 다른 곳이지만 일단 모드리안부터 가야겠다.’
만나야할 사람도 있었고 히든 피스를 제대로 활용할 만한 재료들도 이곳에서만 구할 수 있었다.
“저거 봐! 엄청 커!”
모드리안 학파가 운영하는 상점도 결코 평범한 외형이 아니었다. 거대한 솥이 건물 위에 얹어진 모습이었는데 가분수 모양으로 건물보다 솥이 더 큰 모양새였다.
게다가 그 솥 안에는 액체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는데 실제로 가게에서 파는 포션 중 하나였다.
“저기가 ‘모드리안의 솥’입니다.”
가게의 이름을 말하면 누구나 저기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는 솥에 짓눌려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가게에 들어갔다.
웅성웅성-
“사람이 많네요.”
루시아가 질색하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호튼이 말했듯이 이 가게가 포션 구역에서는 가장 유명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축제를 앞두고 있었기에 더욱 사람이 몰린 처지지.
“저, 저거······.”
“루나 펜드래곤이다!”
그리고 몰려든 인파는 단숨에 루나의 외형을 알아봤다.
“······.”
나는 슬쩍 루나의 반응을 살펴봤다.
내가 저런 관심을 받게 된다면 꽤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은데 다행히 루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했다.
‘솔직히 모르겠네.’
이런 관심이 익숙한 건가.
그녀는 개의치 않는 모습으로 가게 내부를 둘러보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찾으시는 물건이 있으십니까?”
마침 점원이 나와 우리를 맞이했는데 그 시선은 루나를 향해있었다.
“아닙니다. 조금 둘러보겠습니다.”
내가 나서서 대답하자 점원은 넌 뭐냐는 표정으로 나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편히 살펴보십시오.”
점원이 물러나자 호튼이 조심스레 물었다.
“물건을 고르시는 동안 저도 잠시 물러나있겠습니다.”
“예, 용무가 끝나면 부르겠습니다.”
호튼도 물러나고 나자 난 본격적으로 쇼핑을 시작했다. 게임에서는 물건의 리스트만 주르륵 나열됐었는데 실제로 물건들을 살피니 기분이 신선했다.
“선배, 이거 봐요. 작열하는 불꽃, 실물로 처음 봤어요.”
루시아도 나름 이런저런 포션들을 살피며 신기해했다. 하지만 내가 찾는 건 이런 완제품이 아닌 포션의 재료들.
‘찾았다.’
원재료들만 따로 모아둔 장소에서 나는 생각해둔 재료들을 집었다.
“쟨 누군데 루나 펜드래곤하고 같이 다니지?”
“혹시 집회의 흑마법사인가? 특이하게 검을 차고 다니는군.”
“괜히 아는 척하지 말고 지나가자고. 시비라도 걸리면 골치 아프니까.”
그 와중에도 주변이 소란스러웠지만 신경 쓰지 않고 물건들을 살폈다.
마침 밖에서는 쉽게 구하지 못할 희귀 재료들이 널려있었고, 히든 피스를 위한 재료들도 드물지 않게 보인 덕분에 정신없이 골랐다.
툭!
“음?”
그때 내 옷깃을 잡는 손길이 느껴졌다.
“이거 사도 돼?”
루나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무언가를 손에 들고 있었다.
“예, 물론이죠.”
“나 돈 없어.”
“제가 내드리겠습니다. 걱정 말고 원하시는 게 있으시면 다 고르세요.”
“응!”
근데 지금 확인해보니 영 이상한 물건을 골랐다. 내가 알기로 저 라벨이 붙은 포션은 먹으면 입에서 불을 뿜는 물건으로 알고 있는데······.
‘루나가 좋으면 됐나.’
상관없지, 뭐.
그렇게 각자가 살 물건을 고르고 계산대에 섰다. 역시 사람이 몰리는 가게답게 직원도 많았는데 금방 계산할 수 있었다.
“총 678만 윌입니다.”
많이도 나왔네. 루시아가 고른 건 제외한 금액이었다.
“여기 있습니다.”
“678만 윌, 확인했습니다.”
“혹시 뭐 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네, 말씀해주세요.”
“프레데릭 님께서 이곳에 계십니까?”
프레데릭은 현 모드리안 학파의 수장이었다. 워록은 아니었지만 포션 업계에서 주름을 잡는 마법사.
모드리안 학파의 본거지는 다른 곳에 있었으나 축제가 코앞인 만큼 포트리온에 방문했을 수도 있었기에 물었다.
“들은 바가 없군요. 오셨으면 저도 전해들었을 텐데 소식이 없었습니다.”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다.
여기에 온 이유에는 프레데릭도 한몫했는데 아쉽지만 없다면 어쩔 수 없지.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들어가십시오.”
재료를 산 걸로 만족하고 일단은 나가야겠다.
“다 사셨어요?”
먼저 물건을 사고 기다리던 루시아가 다가와 물었다.
“어.”
“또 들를 곳이 있을까요? 포션은 이만하면 된 것 같은데.”
“한 군데만 더 가자.”
포션 구역에 온 가장 큰 이유를 빼놓을 수는 없지.
우리는 곧바로 가게에서 나와 호튼과 합류했다.
“이제 다른 곳에 가면 될까요?”
“그 전에 다른 곳 좀 살펴보려고요. 혹시 마굴의 공방이라는 곳을 아십니까?”
“물론입니다. 그쪽으로 안내해드릴까요?”
“부탁드립니다.”
모드리안의 솥은 큰 대로 변에 있었던 것에 반해 지금 방문하는 곳은 복잡한 샛길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굴의 공방이 뭐하는 곳이에요?”
“나도 정확히는 모르고 아는 사람한테 들은 적이 있어서 가보려고.”
그곳도 포션 가게 중 하나였다.
포트리온은 생각보다 넓었는데 포션 구역 또한 그만큼 넓었고 가게 또한 많았다.
‘우연히 찾았지.’
그리고 이내 도착한 마굴의 공방.
모드리안의 솥에 비하면 영세하기 짝이 없는 가게였다.
딸랑-
“어서 오쇼.”
안에는 일하기 귀찮은지 마법봉 대신 파리채를 휘두르는 노인이 카운터에 앉아있었다.
“우와, 저도 이런 곳에서 일하고 싶어요.”
루시아가 그 불성실한 태도에 마치 꿈의 직장을 찾았다는 듯 말했다. 난 간단하게 그 말을 무시하고 가게를 둘러보았다.
‘저건가?’
찾았던 물건이 바로 눈앞에 있는 듯했다.
“혹시 이 물건들도 파는 겁니까?”
“응? 그건 불량품이라 못써. 다른 거 둘러보소.”
내가 찾던 물건이 맞았다.
“혹시 이것도 돈만 내면 살 수 있습니까?”
“불량품이라니깐?”
“상관없습니다.”
갑작스런 내 행동에 루시아와 호튼이 이상하게 날 바라봤다.
“굳이 불량품을 사겠다는 이유를 모르겠군.”
“흥미가 있어서요. 애초에 버리지 않고 여기 모아둔 이유도 있을 거 아닙니까.”
“미련이오, 미련. 그것들을 만든다고 온갖 귀한 재료들을 다 쏟아부었지. 결과는 보다시피 실패. 그것들만 아니었어도 이 가게도 번듯하게 있었을 텐데······. 에잉, 쯧.”
노인은 혀를 차더니 이내 턱짓했다.
“말했듯이 비싼 재료들이 들어가서 써먹지 못할 불량품이라도 가격은 비싸게 받을 거요. 그래도 사시겠소?”
“얼마입니까?”
“허, 이제 보니 어디서 듣고 온 모양이군. 내가 젊을 적에 자랑 좀 했었지. 온갖 귀한 재료들을 모아놨었다고. 어디보자.”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가리킨 물건들 쪽으로 다가왔다.
“으음. 이건 1,500만 윌. 그리고 이건 2,300만 윌. 이건 800만.”
노인의 입에서 가격이 나오자 호튼의 입이 벌어졌다.
“아니, 마굴 영감님. 이 실패작들을 정말 그 가격에 팔겠다는 소리입니까? 제 손님들한테 덤터기 씌우시면 안 됩니다!”
호튼은 아까 전의 소란으로 내 정체를 알고 있으니 최대한 내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했다. 그 노력은 고맙지만 지금은 아니지.
“괜찮습니다.”
“예? 예······.”
내가 나서서 상관없다고 말하자 노인의 눈빛이 변했다. 마치 호구를 잡았다는 눈이랄까.
“허허, 젊은이가 보는 눈이 좀 있구만. 내 특별히 2개 이상을 사면 10% 할인을 해주겠소.”
“영감님, 이건 얼마입니까?”
“그거? 그건······3,300만 정도겠군.”
어째 가격을 높여 부른 것 같지만 그것도 상관없었다. 나중에 자기가 뭘 판 건지 알면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될 정도의 껌 값이었으니까.
“음, 이거 하나만 주십시오.”
“응? 겨우 하나로 되겠소?”
“말씀하신대로 불량품을 막 사기에는 가격이 좀 부담스럽군요. 흥미는 있지만 하나만으로 충분합니다.”
“아쉽군, 쩝.”
그건 그렇고 너무 욕망에 솔직한 거 아니야.
내가 아니었으면 다른 사람이 사려고 했을 때도 살 마음이 싹 가셨겠다.
“이건 2,400만 윌이오. 더 싸게는 안 되오.”
“알겠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곧장 가격을 지불했다.
그 모습에 호튼이 볼을 감싸며 안절부절 못했고 루시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돈이 많은 건 알지만 그건 너무 낭비 아니에요?”
루나는 뭐든 좋다는 표정으로 천진하게 내가 산 걸 제외한 불량품들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2,400만 확실히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고객님. 다음에도 다시 방문해주십시오.”
“······예.”
돈을 받자 급변하는 태도에 소름이 돋았지만 애써 무시하고 곧장 가게에서 나왔다.
“아드리아스 님.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그건 정말로 불량품일 뿐인데······. 지금이라도 제가 마굴 영감한테 가서······.”
“괜찮습니다. 배려에 감사드려요.”
2,400만 윌로 구입한 거면 오히려 싸게 먹힌 거다. 아무도 이 물건의 정체에 대해 모르니 하는 소리지.
‘포트리온에서 찾은 첫 번째 히든 피스.’
그 정체는 바로······.
[망가진 엘릭서]
[복용 시 사망]
[추가 공정을 통해 ‘엘릭서’로 만들 수 있다.]
조합법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전설의 물약이었다.
**
포트리온 외곽에서 구할 수 있는 히든 피스는 엘릭서가 끝이었다. 실제로 더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아는 건 이게 끝.
남은 이스터 에그와 히든 피스는 심층부에 존재했다.
‘금방 시간이 갔군.’
엘릭서를 구한 뒤 포트리온을 조금 둘러보자 금세 시간이 흘렀다. 아직 살펴보지 못한 구역들도 많지만 이제는 심층부에 들어가야 할 시간.
“좋은 아침, 선배.”
웬일로 제 때 일어난 루시아가 졸린 표정을 하고 여관 1층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는 생생한 표정의 루나가 금방이라도 뛰어올 것 같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친구!”
전날 저녁에 루시아가 둘이 같이 잔다고 했을 때는 솔직히 걱정을 많이 했다.
나야 루나와 함께 한 시간도 길고 이제는 가족과 같이 여기지만 세간의 시선은 악명 높은 흑마법사 중 하나였다.
"아무 일 없었지?"
“뭔 일이요?”
루시아가 도리어 되물었다.
별 일 없었나 보네. 하긴 자기가 먼저 같이 있고 싶다고 했으니까······.
루나에게는 예전부터 입단속을 시켰기에 내가 흑마법사인 것을 들킬 일이 없었다.
어려보이지만 꽤 생각이 깊은 그녀였기에 믿을 만하지.
“친구, 잘 잤어? 난 수다 떨다 잤어!”
“루시아랑 잘 지내서 감사할 뿐입니다.”
“당연하지! 내가 언니인 걸! 잘 지낼 거니까 걱정하지 마.”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하는 루나가 귀여웠다.
루시아도 이제 반쯤 포기했는지 루나가 언니라는 말에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제가 언니한테 맞춰줘야죠, 뭐.”
“아니야! 내가 루시아한테 맞춰주는 거야.”
갑자기 거기서 또 왜 싸워.
사이가 좋아진 건지, 나쁜 건지 알 수 없는 기싸움을 지켜보다가 시간을 확인했다.
“슬슬 갈 시간이네요.”
심층부는 이미 열렸다.
이제 초대된 장소로 향하면 본격적인 니바스 축제가 시작될 거다.
“같이 가도 되지?”
“예?”
루나의 물음에 당황했다.
당연히 같이 가는 거 아니었나?
“안 돼?”
내 반응에 루나의 눈망울이 촉촉해졌다.
“아닙니다. 전 당연히 같이 가는 건 줄 알고 놀라서 그랬어요. 루나는 저희랑 같이 다녀도 괜찮겠어요?”
“응!”
다시 해맑은 표정이 된 루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는 저랑 같이 다녀요. 괜히 미아 되지 말고.”
“미아 안 되는데?”
“아니요. 혼자 다니면 분명 미아가 될 거예요.”
어리둥절한 루나에게 루시아가 손을 건넸다.
“손 꼭 잡고 다녀요, 언니.”
“응.”
루시아가 웬일이지.
웬만한 일에는 항상 귀찮아하던 그녀가 저렇게 다른 사람을 신경 쓰는 건 처음 봤다.
‘루나의 귀여움은 루시아의 나태함도 꿰뚫는 건가?’
아니면 전날 저녁에 많이 친해진 건가?
루나와 같이 다니면 좋은 소문이 나기는 쉽지 않은데 루시아가 이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어쩌면 날 신경 써주고 있는 걸 수도 있겠지.
“그럼 출발하죠.”
어차피 심층부에 가면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곳은 워록들과 그 조수들만 모이는 곳.
흑마법사에 대한 편견보다 지식을 갈구하는 미치광이들의 소굴이지.
그게 바로 포트리온의 진짜 모습.
우리는 그 심층부로 향했다.
< 329화. 포트리온의 히든 피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