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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328화 (328/415)

< 328화. 인형 >

쪼로록!

“맛있습니까?”

“응!”

루나가 해맑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있는 곳은 작은 찻집.

마법사들의 도시라는 포트리온도 식당이나 옷가게 등 꼭 마법과 관련된 물건들만 파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푸른 기포가 터져 나오는 루나의 음료를 보니 역시 포트리온은 다르구나 싶었다.

“선배, 인형이 음료수를 마셔요.”

그 와중에 얘는 아직도 인형 타령이네.

아마 외모를 보고 단숨에 누구인지 짐작을 했을 텐데 그다지 거부감이 없는 모양이었다.

‘살렘 때문에 흑마법사에 대한 내성이 생겼나?’

아니면 원래부터 편견이 없던 걸 수도 있고.

뭐든 내게 나쁠 건 없었다.

“저······손님.”

그때 곁에서 뻘쭘한 모습으로 같이 앉아 있던 호튼이 나를 조심스레 불렀다.

“호, 혹시 제가 자리를 비워드려야 하는 건 아닌지······.”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저는 가게 앞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굳이 루나와 함께한다는 사실을 내색하기 싫어서 같이 앉아있게 한 건데 그게 오히려 부담이 된 듯했다.

“안 먹어?”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호튼을 보며 루나가 의아한 듯 물었다. 그녀의 손가락은 호튼이 주문한 작은 파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예, 죄송합니다······.”

“그럼 내가 먹어도 돼?”

루나의 물음에 호튼의 고개가 격렬히 끄덕여지고 루나는 해맑은 표정으로 그릇을 자신의 앞으로 옮겼다.

“고마워! 너, 착하네?”

“가,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이야, 그렇게 벌벌 떨 일이냐?

그런데 이해가 가는 것이 이곳, 포트리온에서는 유독 워록의 위상을 높게 쳐주었다. 역시 마법사들의 도시라 그런 걸까. 다른 곳 이상의 경의를 드러냈다.

“우와, 이제는 디저트도 먹네.”

“넌 언제까지 헛소리할 거냐.”

루시아의 말에 태클을 한 번 걸어주고 나는 지그시 루나를 바라봤다.

“웅?”

입 안 가득 파이를 넣고 오물거리는 루나가 귀여웠지만 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갑자기 오셔서 놀랐습니다. 어쩌다 오시기로 한 거예요?”

“헤이게이 오아거 해서.”

“다 드시고 말씀해주세요.”

꿀꺽!

“헤이겔이 오라고 했어. 친구도 온다고 했으니까 바로 왔어!”

헤이겔?

그러고 보니 최근 들어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제스터가 가장 의미심장한 인물로 뽑았던 중립 파벌 최대의 흑마법사. 도대체 왜 루나를 불렀을까.

“그게 끝이에요?”

“응! 파이 맛있다!”

순수한 루나의 대답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헤이겔이 설마 아무 이유도 없이 루나를 불렀을 리는 없을 테고······.

‘루나를 불렀다는 소리는 헤이겔도 포트리온에 있다는 건가?’

아무래도 마음 편히 축제를 즐기지는 못하겠다. 조금은 경계를 하고 있어야겠어.

나도 마음 편히 지내지 못하는 내가 답답했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게임 속 멸망을 막아내기 전까지는 항상 염두에 둬야지.

“선배, 이 인형이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에요?”

생각해보니 소개가 늦었다.

“내 친구야. 루나 펜드래곤. 너도 누군지 알지?”

“안녕!”

루나가 한 손을 번쩍 들며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루시아가 루나의 입가에 묻은 파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 꼬마야.”

“꼬마 아니야!”

허허.

루시아가 4차원인 건 알았지만 설마 미치광이의 그믐달이라 불리는 루나에게 저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겁대가리가 없나?”

“선배, 속마음이 다 들려요.”

“아, 미안.”

일부러 들으라고 한 말이다, 이놈아.

“여기는 내 후배인 루시아 에버라스트. 일단은 루나가 나랑 동갑이니까 너보다 엄연히 손윗사람이다.”

“네?”

루시아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와 루나를 번갈아보았다. 뭔가 비교당하는 것 같아서 기분 나쁜데.

그리고 나도 처음에 놀랐던 사실이지만 중세 판타지 같았던 이 세상에도 나이에 따른 호칭의 구분이 있었다. 그래서 항상 루시아가 디에네나 비비안을 보고 언니라고 부르지.

“나, 언니야.”

루나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허리춤에 손을 얹고 말했다. 그 모습이 루시아가 억울할 만하겠다 싶을 정도로 어려 보였다.

“그냥 루나 펜드래곤이라고 부를래요.”

“언니라고 해봐, 언니.”

둘의 하찮은 대화를 들으며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루시아가 이 상황을 거부했으면 정말 힘들었을 텐데······.

“커험, 거 조용히 좀 하지? 가게 전세 낸 것도 아니고.”

순간 가게 전체가 싸해졌다.

갑작스런 시비인 이유도 있지만 그 시비를 당한 사람이 우리였기 때문이겠지.

어떤 용감한 작자가 감히 워록한테 시비를 거나 했지만 상대의 표정을 보자 대충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무시하고 있군.’

루나는 니바스의 선택에 공표된 정식 워록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마법은 본인이 연구하고 개발한 것이 아닌 전승된 마법.

가문의 대대로 내려오는 오리지널 마법은 익혀도 워록으로 쳐주지 않지만 이례적으로 루나만큼은 워록으로 공표됐었다.

‘가문의 오리지널 마법이랑 달리 일인전승이라는 이유로 선택됐지.’

그 때문에 다른 마법사들은 루나를 워록으로 취급하지 않았는데 특히 중견 마법사들은 대놓고 욕을 할 정도로 루나를 좋게 보지 않았다.

“나보고 한 말이야?”

루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가리켰다.

“여기 떠드는 놈이 그쪽 말고 어디 있어?”

마법사라기보다 배불뚝이 용병과 같은 외형의 남자가 비아냥거렸다. 그러자 루나의 눈빛이 금세 싸늘해졌다.

“죽여 버려?”

말려야겠군.

“거기, 아저씨.”

내가 갑자기 나서자 루나의 시선이 자연스레 내게로 쏠렸다.

“뭐? 아저씨?”

“그럼 뭐라고 불러드릴까?”

“난 샤칸 보드맨이다. 한 번 쯤 들어봤을 테지?”

아, 네가 걔였구나.

잡몹 NPC 중 하나라 이름도 가물가물한 중견 마법사.

“찻집에는 대부분 수다를 떨러 올 텐데 굳이 우리를 콕 집어서 시비를 건 이유가 있을까?”

“시비? 내가 언제 시비를 걸었다고 그러지? 난 사실만 말했을 뿐이야.”

끝에 지어보이는 상대의 느끼한 미소가 가관이었다. 생긴 것 때문에 그런가. 진짜 한 대 쥐어박고 싶네.

그냥 쥐어박아?

루나를 말리려다 내가 성질이 날 것 같았지만 난 지성인다운 모습을 끝까지 갖추려했다.

“뭐야, 검을 가지고 있잖아? 마법사가 검이라니 얼마나 수준이 떨어지면 호신용 검이나 차고 다니는 건지······쯧쯧.”

······갖추려했‘었’다.

“······한 대만 때려도 될까?”

“하아, 선배가 검을 뽑으면 저 사람하고 일행들까지 다 죽어요. 그냥 제가 해결할게요.”

루시아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갔다.

“저기요, 못생긴 아저씨.”

“뭐? 못생긴 아저씨?!”

“지금 그쪽이 시비 거는 분이 어떤 분인지 알고 그러는 거예요?”

루시아가 입가에 한껏 조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잘난 듯이 통성명을 했으니까 이쪽도 해주는 게 예의겠죠? 저 분은 이번에 니바스의 선택을 받으신 아드리아스 크롬웰 님이십니다.”

“······뭐?”

“아직도 이해가 안가시나요? 그쪽이 비웃었던 검을 든 마법사, 어디서 들어보지 않으셨냐고요.”

당연한 말이지만 난 이미 꽤 유명 인사였다.

검과 마법 둘 다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는 살렘을 제외하고는 내가 유일했고 졸업 논문으로 파장을 일으킨 뒤 이번 니바스의 선택까지 엄청난 행보를 걷고 있었으니까.

단지 아카데미 생활만 하느라 얼굴을 내비춘 적이 없어서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할 뿐.

“우오오!”

“아드리아스 크롬웰이래!”

“그러네. 마법사 중에 검을 지니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어. 자존심 때문에라도 호신용 검은 안 들고 다니지.”

숨죽이며 지켜보던 주변 사람들이 감탄을 토해냈다. 눈치를 보아하니 다들 몰랐던 모양이었다.

“아아······.”

상대방도 그제야 깨달았는지 점차 창백해지는 안색으로 말을 꺼내지 못했다.

“으, 으흠.”

그리고 그의 테이블에 함께 앉아있던 일행들이 슬그머니 자리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어, 어이!”

샤칸이 다급하게 주변을 불렀지만 그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물러났다.

결국 자리에 혼자 남은 샤칸이 발악하듯 외쳤다.

“다, 당신이 정말 아드리아스 크롬웰이란 말이오!”

“루시아, 그냥 말하지 말지 그랬냐. 어디까지 하나 보려고 했는데.”

“거짓말.”

루시아가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내게만 들려왔다.

“정말로 아드리아스 크롬웰이라고? 새파란 애송이가?”

“새파란 애송이?”

“아, 아! 마, 말이 잘못 나와아읏!”

말을 하다 혀를 씹었는지 샤칸이 고통스러워했다. 그렇다고 봐줄 순 없지.

“자, 그래서 왜 시비를 걸었는지 다시 들어볼까? 이번에는 헛소리하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봐.”

“죄, 죄송합니다. 앞으로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바로 항복해오는 상대방을 보며 나는 루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여전히 싸늘한 눈초리로 상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루나한테 맡기면 저 사람은 무조건 죽는다.’

루나가 착하고 순수해보여도 그건 자신이 흥미 있는 일이나 적대적이지 않은 사람들만을 향해서였다.

그녀의 이명은 미치광이의 그믐달.

괜히 저런 살벌한 칭호가 붙은 게 아니지.

“루나.”

그래도 그게 루나에게 맡기지 않을 이유가 되진 않았다.

조금 잔인하게 들려도 내게는 저 사람의 목숨보다 루나의 기분이 더 중요했으니까.

······나도 어딘가 좀 망가진 게 아닐까?

“음?”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내 물음에 루나가 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계속 눈을 마주치면 부담스러울 법도 했지만 그녀의 오팔색 눈은 질리지가 않았다.

“축제니까 봐줄게.”

결국 루나가 용서했다.

나야 뭐 루나가 괜찮다고 하면 오케이인지라 고개를 끄덕였다.

“샤칸 보드맨이라고 했지?”

“그······죄송합니다.”

“그레이베어 학파로 알고 있는데 내가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곱게 편지에 써서 보내줄게.”

“아, 아드리아스 님! 자비를······!”

“충분히 자비로운데? 그냥 용서해주지말까?”

“아닙니다! 괘, 괜찮습니다.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본인의 학파를 알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겠지. 하지만 게임에서 가끔씩 저곳의 용병 마법사들을 고용한 적이 있기에 기억에 남아있었다.

그렇게 일련의 소란이 끝나고 샤칸이 도망치듯 가게를 벗어나자 이번에는 찌를 듯이 쏠리는 시선들이 불편해졌다.

‘워록 처음 보나?’

이래서 워록들이 축제 시작 전에는 미리 도착하지 않는 거군. 게임을 할 때는 이런 디테일이 없었으니 좋은 걸 배웠다.

“저번에 놀러 다니기로 약속했는데 이번 기회에 같이 돌아다닐까요?”

“좋아! 헤헤.”

어느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루나가 해맑은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래, 넌 계속 그렇게 웃을 일만 있었으면 좋겠어.

‘이번 축제에서 무슨 일이 생긴다하더라도······.’

반드시 지키고 싶었다.

**

우우웅---

“왔구나.”

반짝거리는 수정구의 불빛을 보며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여전히 로브의 후드로 모습을 감춘 맥스웰 펜드래곤이었다.

“배우도 전부 모였고 모든 준비가 끝났다.”

'아주 오래 전부터' 세웠던 계획.

곧 그 대단원의 막을 열 차례였다.

“그대들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길······.”

< 328화. 인형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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