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0화. 집결 >
우르르르--!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생명체를 향해 마을에 흩어져 있던 수인들이 모여들었다.
저 멀리 바다에서부터 어느새 머리 위까지 다가온 거대한 용의 형체는 이내 천천히 속도를 줄이며 고도를 낮췄다.
“섬에서 온 게 분명하군. 목표했던 놈들이 분명하다.”
울루그가 건틀릿을 낀 주먹을 움켜쥐며 전의를 불태웠다.
손 쉬운 먹잇감이라고 생각했었으나 드래곤이 등장한 순간부터 방심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먼저 공격할까요?”
라타냐가 투창을 준비하며 물었다.
울루그는 그의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쁠 거 없지.”
“모두 저 드래곤을 요격해라!”
울루그의 말을 전해 받은 라타냐가 소리쳤다.
동시에 수많은 마법과 투척 무기가 지상으로 내려오는 드래곤에게 향했다.
피잉----!
콰광-!
“통하지 않는다?”
드래곤의 주위로 얇은 막이 펼쳐졌다.
곧이어 드래곤이 시선을 내리더니 입을 벌렸다.
“브레스다! 피해라!”
비록 드래곤이 멸종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특징마저 잊히지는 않았다.
아가리를 벌리는 드래곤이 무슨 행동을 하는지 눈치 챈 수인들이 급하게 산개했으나 이미 브레스가 쏟아지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아---------!
고밀도의 마나로 만들어진 산성 브레스가 지상을 불태웠다.
“끄어어억!”
“드, 드래곤이야! 진짜 드래곤이라고!”
드래곤의 존재를 처음 마주한 수인들은 무지하게 달려들었던 본인들의 과오를 후회하며 도망쳤다.
“흠.”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울루그가 수하들을 통제하는 라타냐에게 말했다.
“인간들이 드래곤의 등 위에 타있다. 저건 섬에서 얻은 건가? 어찌됐든 내가 나서지.”
“우, 울루그 님!”
송곳니를 드러낸 울루그는 라타냐의 대답도 듣지 않고 곧바로 달려갔다.
거구라고는 믿기지 않을 엄청난 속도로 나아간 울루그는 마침 땅에 내려앉으려는 드래곤에게 주먹을 날렸다.
콰아앙!
굉음과 함께 확실한 손맛을 느낀 울루그가 미소를 지을 때, 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마치 저승에서 올라온 듯 스산한 목소리였다.
-하찮은 종자여.
“음?”
드래곤은 멀쩡했다.
이제 보니 뼈로 만들어진 방패가 자신의 주먹을 대신 맞은 상황이었다.
“씬입니까.”
동시에 드래곤의 위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
드래곤의 등 위에서 오만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사내.
“아드리아스 크롬웰인가.”
단번에 알아본 울루그가 근육을 긴장시켰다.
“먼저 공격했다는 건 저희를 적대하는 걸로 알고······.”
아드리아스가 검을 뽑아들었다.
“모두 죽이겠습니다.”
“와라!”
그가 어떻게 자신들을 알아봤는지 지금은 중요치 않았다.
그저 투쟁만이 남았을 뿐.
휘릭!
콰직!
드래곤의 등에서 뛰어내린 아드리아스가 떨어지는 힘을 이용하며 울루그를 내리찍었다.
건틀릿으로 막아낸 울루그는 생각보다 강한 상대의 힘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마법사가 아니었나!’
그도 아드리아스 크롬웰에 대한 풍문을 접했기에 검과 마법, 둘 모두 사용하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소문도 어디까지나 제국 내에서 유명한 이야기.
변방에 숨어사는 수인에게는 그저 어느 정도 다룰 줄 안다는 이야기로 들렸을 뿐이었다.
콰가가가각!
콰아앙---------!
아드리아스 쯤은 단숨에 제낄 줄 알았으나 의외의 실력에 울루그가 당황할 무렵, 다른 수인들도 바쁘기는 마찬가지였다.
“고작 인간 따위가······!”
비비안이 일당백의 기세로 몰려든 수인들을 막아냈다.
동시에 여전히 크리브마허의 위에 있던 루나가 광역 마법을 시전했다.
“다 터트려 죽여주마!”
광기 어린 루나의 목소리가 전장을 뒤흔들며 곧 거대한 화염구체가 떨어져 내렸다.
“흐읍!”
노아를 상대하면서도 주변을 예의주시하던 라타냐가 들고 있던 창을 힘껏 던져 화염구를 꿰뚫었다.
콰아아아앙---------!
공중에서 비산하는 마법이 마을 곳곳에 떨어졌다.
“어이쿠!”
“도, 도망쳐!”
애꿎은 마을 사람들이 피신할 무렵 울루그가 포효를 터트렸다.
“크허엉!”
그와 동시에 유형화된 오러가 또렷한 형태를 지니기 시작했다.
쿵!
분명 거리가 있었음에도 어깨를 두드리는 타격.
“오러 비기.”
공간을 초월하는 공격이었다.
“크헝!”
울루그는 멀리서 신들린 듯 주먹을 내질렀다.
덕분에 아드리아스는 상대의 움직임을 먼저 읽고 막는 수밖에 없었다.
‘전투에 있어서 거리의 이점은 절대적이다. 하지만······.’
울루그의 공격을 막아내던 아드리아스가 미소 지었다.
“오러 마스터, 별 거 없군요.”
“크허헝!”
아드리아스의 말을 도발로 받아들인 울루그가 손을 더 매섭게 뿌렸다.
더욱 빨라진 공격이었지만 아드리아스는 여전히 여유롭게 상대의 공격을 막았다.
“어째서······어떻게 내 공격을 다 간파하는 거냐.”
결국 털끝조차 건드리지 못한 울루그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오러 마스터.
이 세상에서 초인이라 불리는 존재.
자신을 대적할 수 있는 상대는 오직 같은 초인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지옥에서 수련하고 왔거든요.”
“지옥?”
자신을 놀리는 건가 싶었지만 아드리아스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곳에서 겪은 일에 비하면 버틸만합니다.”
“넌, 너도 오러 마스터인가?”
“아쉽게도 아닙니다. 단지······.”
아드리아스가 검으로 공간을 찢었다.
“오러 마스터를 이기는 검사일 뿐이죠.”
일부러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던 아드리아스는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싶었다.
과연 마법의 힘없이 오러 마스터, 아니 초인을 이길 수 있을까.
그 해답은 곧 눈앞에서 증명될 차례였다.
쫘아악-----!
불쾌한 소음이 울리며 공기가 찢겼다.
하얀 빛을 발하는 갈락슈르가 눈앞에 모든 걸 지워냈다.
“큼!”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살기 어린 기운에 울루그가 급하게 뒤로 물러났다.
스걱!
그러나 반응이 좀 늦었던 듯 얕은 자상이 새겨졌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그대로 동맥이 잘렸을 공격.
“후우.”
아드리아스도 방금의 공격이 최선이었던 듯 한숨을 내뱉으며 검을 갈무리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이상을 느낀 울루그가 외쳤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왜 그렇게 절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 모르겠지만 다른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뭐?”
전투에 집중하느라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울루그는 조심스레 주변의 기척을 확인했다.
“음흉한 놈들, 하필 이런 때에 오다니······.”
그런 울루그의 중얼거림에 화답하듯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가 도착했기에, 그대들이 연명하는 것이다.”
그림자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자들.
일견 평범한 인간과 같았지만 붉게 빛나는 눈동자가 위험한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나타난 이들은 고작 셋.
그러나 전장은 그들의 기운만으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뱀파이어.”
울루그가 으르렁거리며 그들의 정체를 말했다.
강력한 육체와 특유의 혈마법으로 반(半)불사나 마찬가지인 존재들.
“우리가 제때 도착하지 않았으면 당하는 건 씬, 너희들이었을 거다.”
“웃기지 마라. 내가 고작 초인도 되지 못한 인간 따위한테······.”
“그는 제 실력을 전부 보여주고 있지 않아. 어리석군, 울루그.”
울루그와 아드리아스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선 뱀파이어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크르르, 이제 상관없다. 루시펠이 온 이상 이 상황도 끝이지.”
울루그는 인정했다.
자신들만의 힘으로 이들을 사냥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여전히 존재감을 드러내며 구경 중인 드래곤과 그 드래곤 위에 남아있는 인원들의 강한 기운은 도저히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뱀파이어들이 합세했다.’
상황이 바뀌었다.
뱀파이어는 하나하나가 강력한 존재들.
본인조차 일대일 승부의 승리를 점칠 수 없는 괴물들이었다.
“형세 역전이다, 인간.”
“시간이 됐군요.”
그때 검을 갈무리했던 아드리아스가 태연하게 시간을 확인하고 말했다.
“시간?”
“저도 저희 쪽 사람을 미리 불러뒀거든요.”
울루그는 자신과 뱀파이어를 앞에 두고 여유롭게 서있는 아드리아스를 보며 비웃었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는 것 같은데 속임수를 쓰는 거라면 잘못 짚었다고 말하고 싶군.”
“글쎄요.”
아드리아스는 울루그의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벌써 도착했는데 또 알아차리는 게 늦으시군요.”
아오오---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평범한 늑대와는 묘하게 다른 이질감에 울루그가 코를 킁킁거렸다.
“그림자 송곳니?”
울음소리를 낸 짐승의 냄새는 자신도 익히 알고 있는 영물, 그림자 송곳니의 냄새였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닌 여러 마리의 냄새.
“으하하하하! 이게 누구야!”
그와 함께 울루그에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렘 예디디아······.”
“검정고양이 울루그 아니야! 오랜만이네?”
거대한 그림자 송곳니를 탄 채 섬뜩한 미소를 짓고 있는 인물은 다름 아닌 살렘이었다.
아오오--
나타난 이들은 살렘이 끝이 아니었다.
“신 에반, 주군의 명을 받고 왔습니다.”
“에반 폰 오를레옹?!”
대륙 10인 중 하나이자 성국을 져버린 성기사, 에반. 그를 알아본 뱀파이어 하나가 인상을 찌푸렸다.
“저도 왔습니다!”
조금은 엉뚱해 보이는 소환술사, 드미트리 하옌도 도착하고,
“허허허. 즐거워 보이는구나.”
“할아버지! 나 여기 있어!”
“어이구, 우리 루나도 거기 있구나. 재미있게 놀았니?”
“응!”
최악의 네크로맨서라 불리는 모른도 당도했다.
그러나 정작 수인과 뱀파이어들을 놀라게 한 건 따로 있었다.
“어머, 우리 아이들이 여기 있네.”
“일이 쉽게 풀리겠군.”
늑대 한 마리에 같이 탄 막시민 크로넬과 이자벨 루시펠의 등장이었다.
“서, 설마 막시민 크로넬?”
“아, 아니겠지. 그 자가 왜 여기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수인들이 술렁일 때, 뱀파이어들은 한 술 더 떴다.
“이자벨 님······!”
“안녕, 조나단.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보기 좋네.”
“이, 이자벨 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설마 이런 곳에서 뵐 줄이야······.”
이자벨 루시펠.
감히 루시펠의 성을 달 수 있는 최고위 직계 뱀파이어.
퀸의 자리가 공석인 지금, 가문에서 지내지는 않았지만 엄연한 여왕 후보 중 하나였다.
그렇게 아드리아스가 예고했던 이들이 전부 그림자 송곳니를 탄 채 등장하자 분위기가 반전했다.
“아, 아드리아스 크롬웰. 어떻게 이들을 부른 거지? 네가 이들을 모두 불러냈다고?”
울루그는 초인으로서의 냉정함도 잃은 채 말을 더듬었다.
“울루그라고 했나요.”
아드리아스는 천천히 걸어가 부서진 건물 잔해에 털썩 앉았다.
여유가 넘치는 그 행동에 울루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죠, 울루그.”
아드리아스가 나직하게 말했다.
“그쪽 말대로 형세가 역전됐잖아요?”
아드리아스 크롬웰.
그가 고개를 모로 꺾으며 울루그를 바라봤다.
“이대로 죽으실 겁니까, 아니면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실 겁니까.”
아드리아스의 시선은 천천히 움직이며 다른 수인들과 뱀파이어들에게도 향했다.
그의 말은 단순히 울루그에게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경고이자 권고.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예견한 아드리아스의 마지막 물음이 적들을 향해 떨어졌다.
< 310화. 집결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