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296화 (296/415)

< 296화. 통과 그리고 관심 >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동안 내가 한 거라고는 그저 진광의 공격을 쥐꼬리만큼 파악한 것뿐.

콰직!

검을 들고 있던 팔이 잘려 날아갔다.

이내 수십 개의 검이 동시에 몸에 박히고, 나는 말했다.

“다시.”

그러자 자연스레 몸은 원상복구가 되었다.

이제는 익숙해질 만큼 당연한 과정.

나는 다시 회전하기 시작하는 거대한 검의 폭풍을 바라보며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스릉-

그리고 날아오는 첫 번째 검을 몸을 돌려 피해내며 잡았다.

‘이번에는 이거군.’

매번 잡히는 검도 달랐다.

그리고 얼마 전에 알아낸 거지만 검마다 제각기 특징도 다르고 움직임도 묘하게 달랐다.

‘검마다 사용하는 검법이 다르다.’

미쳤지.

저 수많은 검을 통제하는 것도 모자라 수천 개의 각기 다른 검술을 사용한다고?

역시 지옥의 대왕 중 하나다웠다.

“벌써 58일째야. 이러다 곧 100일은 금방이고 1년도 채우겠는데?”

진광이 허공을 떠다니며 이죽거렸다.

이제는 익숙해진 말들이었기에 오히려 지금이 며칠 째인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수단으로 느껴졌다.

‘58일······.’

현재까지 가장 오래 버틴 시간은 4일하고도 5시간.

‘이제 통과할 때가 됐다.’

사실 통과하려면 진즉에 통과가 가능했지만 애써 견뎠다.

4일을 버텼던 시점에서 이미 이 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다시는 겪지 못할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

난 이 수많은 검술들을 모두 내 것으로 체득하는 중이었다.

콰가각!

날아드는 칼날들을 무심히 막아내며 시야를 넓게 펼쳤다.

내가 파악하지 못한 검술은 이제 기껏해야 서너 개.

폭풍 사이에 숨은 저 서너 개의 검을 기다리기에는 더 이상의 시간이 아까웠다.

“이제 나갈 생각이냐.”

돌연 진광이 평소와는 다른 말을 꺼냈다.

그런 진광을 향해 나는 말없이 시선만 돌릴 뿐이었다.

카가강!

그 와중에도 날아오는 공격들을 피하거나 막는 건 당연한 일.

“어느 순간부터 네가 시험을 통과하는 것이 아닌, 수련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내 짐작이 맞겠지?”

“······.”

“아니, 아마 맞을 거다. 난 도산지옥의 진광. 그런 내 눈이 틀렸을 리는 없지.”

차례로 들어오는 칼들의 궤적이 익숙했다.

이미 어떻게 공격이 들어오고 빠져나가는지 파악이 된 칼들.

난 진광의 말을 그저 조용히 들으며 폭풍을 막아냈다.

“그렇다면 이게 마지막 일주일이라는 뜻이겠지.”

쾅!

갑자기 흐름이 변했다.

그동안 단조로웠던 폭풍이 의지를 지니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쉽게 보내주지는 않을 거야.”

분위기가 변하며 연무장이 마치 전장과도 같이 변했다.

칼 하나하나가 마치 실제로 검을 든 무인처럼 느껴졌으며 나는 수십, 수백 명에게 동시에 공격을 받는 기분이었다.

콰강!

카가가가각----------!

나는 최대한 칼들의 외형을 확인하고 그에 맞는 대처법을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도 하기 전에 내 몸은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재능 : 검술(천재), 운동(영재), 전투(영재)]

바로 미친 듯한 재능의 힘에 의해서.

휘익-

콰각!

내 모든 움직임은 재능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다.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이는 상황.

그 순간에도 내 검은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역시, 내가 잘못보지 않았어.”

칼들의 마찰음 사이에서 진광의 말이 아련히 전해져왔다.

**

일주일.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결국 나는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몸에 상처 하나 없이 버틸 수 있었다.

스륵-

그 마지막 일주일조차도 내 움직임은 계속 성장해나갔다.

어떻게 움직여야 더 효율적인지, 어떻게 검을 휘둘러야 더 매끄러운지······.

지금까지는 사실상 폼으로 달고 다니던 천재급 검술 재능을 완전히 개화를 한 기분이었다.

“끝.”

진광이 시험의 종료를 고했다.

그와 동시에 나를 공격하던 모든 칼들이 일시에 정지했다.

죽지 않는다고 해서 지치지 않는 것도 아니기에 나는 그대로 검을 떨어트렸다.

더 이상 검을 들 힘 따위는 남아있지 않았다.

‘오히려 일주일동안 버틴 게 용하네.’

내 괴물 같은 재능은 체력조차도 뛰어넘었다.

움직이지 못할 만큼 혹사된 몸을 극도의 효율로 이끌어 결국 버티게 만들었다.

“눕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난 쓰러지지 않았다.

여전히 땅에 두 발을 딛고 선 채 진광을 바라봤다.

“괜찮습니다.”

“오, 뭐야? 이제 존대를 해주는 거야?”

내가 반말을 했었나?

입을 연 적이 거의 없어서 기억이 안 난다.

“66일. 네가 시험을 통과한 기간이다.”

“길었군요.”

“길어? 길다고? 하하하하하!”

진광이 폭소를 터트리며 허공에서 굴렀다.

그러더니 어린 아이의 외모답지 않은 번뜩이는 눈빛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66일! 도산지옥의 최단 통과 기록이다!”

“그거, 참······영광이군요.”

“영광? 아니, 넌 이게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모르고 있어.”

진광은 마치 미친 사람처럼 키득대더니 허공에서 내려와 내 앞에 섰다.

“나는 도산지옥을 관리하는 대왕, 진광이다. 억겁의 세월동안 이곳을 관리하며 수많은 죄인들에게 판결을 내리고 시험을 내렸지.”

그는 손을 들어 저 멀리 보이는 운무에 뒤덮인 거대한 산맥을 가리켰다.

마치 한 폭의 수묵화와 같은 그 모습을 보고 있자 진광이 말을 이었다.

“저게 산으로 보이나?”

“산이 아닙니까?”

“기(氣)가 없으니 눈치 채지 못한 모양이군. 저것들은 여기서 쓰러져나간 원혼들이다. 수천 년의 세월동안 나의 시련을 통과하지 못한 자들의 무덤.”

······무려 산맥이다.

그냥 산 능성이 하나가 아니라 유려한 산맥.

근데 그게 다 영혼들이라고?

“놀라기는 일러. 여기는 도산지옥, 겨우 첫 번째 지옥이다. 앞으로 남은 지옥들을 생각하면 웃긴 일이지.”

진광은 특유의 비웃음을 해보이며 내게 시선을 돌렸다.

“지금까지 너 이전에 도산지옥을 가장 먼저 통과한 기록이 며칠인지 아나?”

“며칠입니까.”

“4년 98일 4시진 일다경.”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나 정도 되는 재능이니까 이렇게 빨리 통과했지.

4년도 빠르게 느껴지는 편이었다.

“이놈 봐라? 당연하다는 표정이네?”

“무려 4,444개의 칼을 마주하고 일주일을 버티는 일입니다. 통과하지 못하고 원혼이 된 이들이 오히려 이해가 되는 시험이니까요.”

“그 와중에 개수를 셌어? 하긴, 넌 내가 가진 모든 걸 가져가려했으니까. 그러니까 하는 말인데······.”

진광이 품속에 손을 집어넣더니 무언가를 꺼냈다.

“이것도 가져라.”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작은 도장이었다.

옥으로 만들어진 직사각형의 도장.

“이건 뭡니까.”

“아무렴 내가 너한테 몹쓸 걸 줬겠어? 그냥 가지라면 가져.”

“뭔지 알아야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알면 무조건 받을 거야?”

아니 그니까 도대체 그게 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그게 저주 받은 물건일지 어떻게 알고.

‘아이템창도 사용 못하네.’

상태창도 꺼내지 못하는 상황이라 당연한가.

지옥에 들어온 이후로 나는 모든 시스템을 차단당했다.

다행이라면 내 재능들은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것.

“들어보고 결정하겠습니다.”

“흥, 그냥 안줄래. 어쨌든 시험은 통과했으니까 저 길 따라서 쭉 내려가.”

진광이 삐진 듯 토라진 표정을 지으며 도장을 도시 집어넣었다.

저러니까 또 가지고 싶어지네.

하지만 이것도 진광이 노린 것일 수도 있으니 나는 그냥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

진광은 나를 연신 곁눈질하며 입을 씰룩거렸다.

하는 짓만 보면 진짜 애가 따로 없네.

“저 진짜 갑니다.”

“잠깐만!”

영겁을 살아온 지옥의 대왕도 이렇게 보니 참 인간적이다.

겪어보니 아직 초월자가 되지 못한 존재 같았다.

“이게 뭐 그리 큰일이라고! 그냥 받으면 되잖아!”

“그래서 그게 대체 뭡니까?”

“내 옥새다.”

그는 다시 도장을 보여주며 중얼거렸다.

“모든 대왕들이 하나씩 가지고 있는 물건이지.”

“그걸 왜 저한테?”

진광은 다시 뜸을 들이더니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나를 비롯한 대왕들은 단 하나를 제외하고 전부 신에 이르지 못한 몸이다. 신이 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신을 뛰어넘는 무력을 가지는 것.”

그거 참 이루기 쉬워 보이네.

초월자를 뛰어넘는 무력? 미쳤군.

“다른 하나는 절대적인 지식과 통찰력을 함유하고 모든 감정을 말소시키는 것.”

어찌 하나 같이 말도 안 되는 조건들이었다.

그러니까 초월자라는 이름이 붙은 거겠지. 진광은 신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또 하나는 떠받들어지는 것.”

“그건 좀 쉬워 보이는군요.”

“그래, 한 세상의 지적 생명체 중 1/3정도가 떠받들면 가능하지.”

“······어렵군요.”

“아니, 그나마 가능성이 높지.”

근데 그것들이랑 지금 나한테 옥새를 주려는 거랑 뭔 상관이지?

내가 빤히 진광을 바라보자 그는 옥새를 내밀며 말했다.

“내 후계자가 돼라! 그리하여 내 이름을 천하에 알려라!”

“싫습니다.”

“왜!”

이제 보니 저게 성물인 모양이었다.

초월자로부터 성물이나 성흔을 받으면 화신이 되는데 진광, 이 녀석은 아무 설명도 없이 나를 화신으로 만들 생각이었나 보다.

초월자가 되다 만 것에 성물을 받아도 그 화신이 되나? 그건 정확히 모르겠네.

“내 후계자가 되면 더 강해질 수 있어!”

“되지 않아도 강해질 수 있습니다.”

“내 모든 걸 훔쳐 먹어놓고는 그냥 가겠다고?”

훔쳐 먹었다니 말이 좀 섭섭하네.

그닥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저절로 익혀지는 걸 어떡해?

“네가 내 무공들을 빼앗으려고 일부러 시험을 통과하지 않고 버틴 건 이미 알고 있어!”

“진광님도 딱히 말리지 않고 지켜보셨죠.”

“으윽.”

진광은 난처한 기색으로 표정을 일그러트리더니 이내 몸을 떨며 말했다.

“이제 대화 따위 필요 없어. 정 수틀리면 널 여기서······.”

진광이 살기 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생긴 건 꼬맹이였지만 그 살기만큼은 초월자의 근접한 무언가였다.

“시험을 통과한 절 헤칠 생각이십니까.”

“내 알 바야? 어차피 넌 지금 지옥에 떨어진 영혼. 그리고 바로 내 앞에 있지.”

화신이 된다는 것은 엄청난 리스크를 짊어지게 된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이 있는 나로서는 그 리스크를 업고 갈 수 없었다.

“내 후계자가 되지 않으면 널 이 자리에서 소멸시켜버리겠다.”

“죄송합니다.”

내 마지막 대답에 진광은 이내 악귀의 형상으로 변하며 내게 달려들었다.

그 모습이 꽤나 섬뜩했기에 다급히 막을 준비를 했지만······.

“으아아아! 됐어! 필요 없어!”

다시 모습이 원래대로 돌아온 진광이 그대로 바닥을 구르며 땡깡을 피웠다.

“됐으니까 꺼져! 꼴도 보기 싫어!”

날 정말로 헤칠 생각은 없었나보네.

그렇다고 그의 화신이 될 생각은 없었기에 그저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속세로 돌아가면 진광님을 위한 법당을 세워드리겠습니다.”

“흥! 됐어!”

엄청난 무력을 지녔지만 왜 초월자가 되지 못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어쩌다 지옥의 시험을 치르게 되었지만 딱히 진광에게 나쁜 감정은 없었기에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고 길을 따라 내려갔다.

“다시 말하지만 도산지옥은 겨우 첫 번째 시험이었다고! 나중에 후회하지 마!”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한 진광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

화르륵!

초열을 뛰어넘는 지옥의 업화가 넘실거렸다.

그 가운데에서 나른하게 누워있던 누군가가 고개를 들었다.

“뭔 일인데.”

“대, 대왕님. 조금 전에 막 도산지옥을 통과한 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래? 이게 얼마 만에 통과자냐. 그래도 여기까지 올 일은 없으니까 굳이 보고하지 않아도 돼.”

“그, 그것이 말입니다······.”

우물쭈물하는 수하를 보며 온 몸이 불에 타고 있는 듯한 형상의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누가 내 앞에서 말끝 흐리래.”

“죄송합니다, 대왕 전하! 사실 도산지옥을 통과한 자의 이력이 특이해서 말입니다.”

“설명해봐.”

“일단 죽은 자가 아닙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그게 다야?”

“그리고 도산지옥의 최단 통과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꽈득!

근처에 있던 돌 부스러기를 손에서 굴리고 있던 남자가 단숨에 돌을 뭉갰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돌려 수하에게 물었다.

“얼마 만에 통과했지?”

“딱 66일입니다.”

“66일?”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 남자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재차 물어보았다.

“66일?”

“그, 그렇사옵니다. 신도 믿을 수가 없었지만 사실이었습니다.”

“죽지도 않고 지옥에 들어온 자가 도산지옥을 66일 만에 통과했다라······.”

지옥의 업화보다 뜨거운 남자의 머릿결이 주황빛에서 백색으로 변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머리의 열로 인해 그의 앞에 선 수하는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천수관음, 지옥에 도대체 뭘 보낸 거냐.”

그 어느 불꽃보다도 뜨거운 남자가 미소 지었다.

< 296화. 통과 그리고 관심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