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2화. 합류 >
대륙 남서쪽 끝에 위치한 작은 바닷가 마을 뷜레뇽.
시골이자 별다른 특색이 없어서 외부인의 출입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마을로 오랜만에 여행객들이 찾아왔다.
“뭐시여. 뭐 저리 많은 사람들이 왔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요?”
숫자가 적지도 않았고 모두 수상쩍기 그지없는 복장을 하고 있었다.
몇몇 이들을 제외하면 전부가 두터운 망토와 후드로 얼굴을 가린 모습이었다.
“괜히 말 걸지말거라. 엮이면 좋은 꼴을 못 볼 것 같구나.”
“근데 이런 곳에는 왜 왔을까요? 고기 사러 왔나?”
마을 공터에서 한참 어구를 손질하던 주민들이 숙덕거렸다.
그러자 외지인 중 하나가 후드를 걷으며 앞으로 나왔다.
“어이, 형씨들. 뭐 좀 물어봅시다.”
덥수룩하게 곱슬거리는 흑발과 턱수염을 지닌 사내였다.
다부진 몸이 망토나 옷으로도 가려지지 않았기에 마을 주민들은 긴장한 모습으로 그를 쳐다봤다.
“무슨 일이시오?”
“우린 용병단인데 이곳에서 잠깐 머물렀다가 배를 타고 나갈 거거든? 잠깐 쉴만한 장소가 없으려나? 주점이라거나.”
“주점이라면 저기 바로 옆에 있소.”
주민 하나가 손으로 가리키자 사내는 미소 지으며 감사를 표했다.
“고마워, 형씨. 아! 그리고 여기 촌장 댁을 좀 알고 싶은데?”
“촌장님을? 촌장님이 부른 용병들이오?”
“아니 그건 아니고. 말했듯이 배를 구하려고 하거든. 바다로 나갈 일이 있어서 말이야.”
“배를 구하는 일이라면 선착장에 오두막으로 가시오. 그곳에서 해결이 가능할 것이오.”
“오! 좋은 정보 감사해, 형씨.”
사내는 품에서 동전을 꺼내 대답을 해준 주민에게 튕겨 건넸다.
얼결에 동전을 잡은 주민은 10만 윌짜리 동전을 받아들고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뭘 이런 걸 가지고.”
이내 용병들이 우르르 주점 방향으로 사라지자 어구를 만지작거리던 주민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평범한 용병들이 아니야.”
“그런 것 같습니다.”
바닷가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어부였다.
그리고 어부들은 드세고 힘이 좋았다.
그렇기에 웬만한 용병들에게는 기가 눌리지 않았는데 방금 나타난 이들은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부디 조용히 지나갔으면 좋겠군.”
**
주민이 알려준 주점에 들어온 무토 키네인은 자리를 잡고 술을 시켰다.
그리고는 함께 온 일행들을 한 차례 스윽 훑어보았다.
“존나 찝찝하네.”
“하핫! 형님, 또 뭐가 그렇게 불만이십니까?”
그의 옆에 앉은 거대한 덩치의 부단장, 스잔 키네인이 호탕하게 웃으며 자신의 형을 쳐다봤다.
그런 스잔을 바라본 무토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앞으로 나온 맥주를 들이켰다.
“크으. 그냥 다 마음에 안 들어. 아무래도 건수를 잘못 잡은 느낌이야.”
“재밌지 않습니까! 언제 이렇게 다채로운 구성으로 원정을 와보겠습니까! 그것도 무려 고대 유적······!”
“스잔.”
무토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실수를 인지한 스잔이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흐흐. 너무 신이 나서 그만.”
“이제 곧 있으면 파이시나 다른 쪽 일행들이 올 거다. 미리 애들 좀 시켜서 선착장에 보내놔.”
“옙! 형님!”
이내 스잔이 휘하 용병 몇 명을 불러 일을 시키는 사이 중간에 함께 합류하고 마을까지 같이 온 인물들 중 하나가 무토의 맞은편에 앉았다.
“무토 님께서는 저희와 함께하시는 게 불편하신 모양이군요.”
“굳이 그쪽이 불편한 게 아니라 전반적으로 다 불편한 거니 오해하지 마.”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맞은편에 앉은 상대는 신비집단 중 하나인 샤히 샤마드의 일원이었다.
무려 용병왕이라 불리며 꽤 아는 게 많은 무토조차 그 실체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조직.
그가 알기로는 종교집단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 실체가 명확하지 않았다.
‘차라리 제파르 쪽 미친놈들처럼 대놓고 행동하면 파악하기 쉬울 텐데 이놈들은······.’
무토가 다시 맥주를 들이키며 다시 시켰다.
“5잔 더!”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갑작스런 외지인 손님들에 호황을 맞이한 주점은 시끌벅적했다.
이후로도 도착할 원정대 일행들을 생각하면 좁게 느껴질 지경.
툭!
“왔나.”
바깥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무토가 중얼거렸다.
술을 마시며 웃고 떠들던 용병단원들도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이내 주점의 문이 열리고 10명의 인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으음······.”
스잔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에게 다가갔다.
“누구냐?”
“나야, 파이시.”
파이시의 말에 스잔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토에게 고개를 돌렸다.
“파이시가 왔습니다, 형님!”
“그래.”
이미 들어왔을 때부터 정체를 파악한 무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들어온 파이시와 그 옆의 일행들을 보며 말했다.
“집회의 일행들인가?”
“어.”
“흐음······.”
집회의 흑마법사들이 온다는 사실만 알고 누가 오는지는 사전에 들은 바가 없었다.
모두 두터운 여행자용 로브를 입은 채 후드를 쓰고 있어서 파악이 어려웠다.
‘파이시를 제외한 여자가 넷. 그리고 남자가 다섯.’
의외의 성비였다.
여자 흑마법사가 그렇게 많았던가?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몇몇 여성 흑마법사를 생각하며 무토가 자신이 앉은 탁자를 손짓했다.
“인사나 하지. 서로 얼굴도 익힐 겸.”
무토의 말에 파이시가 고개를 끄덕이며 탁자로 다가갔다.
그리고 마침 탁자에 앉아있던 샤히 샤마드 일행의 우두머리가 인사를 건넸다.
“집회가 더 빨리 왔군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파이시 님.”
“오랜만이야, 가르디온.”
무토는 둘의 인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파이시의 일행들을 눈짓하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소개 좀 해줘라. 누군지는 알아야 전력을 확인하지.”
그때 서있던 인물 중 하나가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무토의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 모습을 본 스잔이 싸늘하게 말했다.
“어이, 잔챙이는 여기 앉으라고 한 적 없는데?”
“아니야, 스잔. 그냥 놔둬.”
무토는 겁 없이 자신의 옆에 앉은 인물을 봤다.
곧이어 그 인물은 조용히 후드를 벗으며 무토를 바라봤다.
“무토 키네인, 만나서 반갑습니다.”
“음?”
무토는 드러난 상대의 얼굴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
아니, 많이 본 얼굴이 맞았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뜻밖의 인물의 등장에 무토는 자연스레 시선을 파이시에게 돌렸다.
그러나 파이시는 아무 말 없이 앉아만 있을 뿐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네. 크롬웰 백작 맞지?”
“예.”
“이 상황을 설명 좀 해줄 수 있나?”
무토가 파이시를 보며 말했다.
그에게 있어서 이 계획의 책임자는 파이시였으니 당연한 시선 처리였다.
그러나 막상 대답이 나온 쪽은 파이시가 아니었다.
“우연히 정보를 알게 되어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게 다라고?”
순간 주점 내부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키네인 용병단의 단원들이 전부 아드리아스를 바라보며 기세를 흘리고 있었다.
“예, 그게 답니다. 저쪽의 일행들도 제가 개인적으로 데려왔습니다. 소개하죠.”
아드리아스는 태연하게 말하며 일행들을 한 명씩 소개했다.
“이쪽은 제 호위 기사, 비비안 벨로칸이라고 합니다. 여기는 제 동료, 노아 클레어. 그리고 이 분들은 제가 따로 고용한 용병들입니다.”
“크롬웰 백작.”
무토가 나직하게 말했다.
“이게 지금 뭐하는 건지 알고 온 건가?”
“알죠. 고대 유적이 목표 아닌가요?”
“고대 유적이 중요한 게 아니야. 제국의 백작이 흑마법사들과 어울려도 되겠냐는 질문을 하는 거다.”
“같은 목적 앞에서는 때론 손을 잡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태연하게 말하는 아드리아스를 보며 무토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주점 밖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이라도 그냥 나가라. 못 본 척해주지.”
“나가지 않겠다면 어쩌시겠습니까?”
“장난치는 게 아니야. 그리고 난 지금 그대를 보호해주려는 거지.”
무토는 자못 심각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원정이 성공적으로 끝나도 그대가 안전할 것 같나? 제국에 복귀하면 그대의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도 있어.”
은근슬쩍 파이시나 가르디온을 눈짓한 무토가 다시 한 번 제안했다.
“그러니 그만 나가라. 이들의 입은 내가 단속해주마.”
“무토, 순진한 건지 단순한 건지 모르겠군요.”
아드리아스의 말에 주변 분위기가 싸늘함을 넘어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무토도 표정을 굳히며 그런 아드리아스를 바라봤다.
“무슨 소리지.”
“제가 설마 그런 것도 생각하지 않고 왔겠습니까.”
아드리아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미소 지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히려 나중에는 제게 감사해할 겁니다. 저희는 나가서 기다리고 있죠.”
자리에서 일어난 아드리아스는 그 말을 끝으로 일행들을 대동한 채 밖으로 나갔다.
무토는 그 모습을 보고 있다가 여전히 자리에 있는 파이시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 어째서 크롬웰 백작을 데려온 거지?”
“처음에는 모른을 데려오려고 했다.”
“모른 드왈스키?”
악명 자자한 네크로맨서의 이름에 무토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근데 일이 좀 꼬였네.”
“뭐가 어떻게 꼬인 건데?”
그때 나간 줄 알았던 아드리아스의 일행 중 하나가 도도도 달려왔다.
“파이시! 친구가 나오래!”
“알았다.”
파이시는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에 무토는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는 말하고 가야지.”
“안 돼! 내 친구가 지금 바로 오랬어! 허튼 소리하면 안 된다고!”
재잘대는 꼬맹이의 말에 무토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후드를 뒤집어 쓴 꼬마를 바라봤다.
이건 또 뭐하는 녀석인가 싶던 찰나에 그의 뇌리로 한 인물이 스쳐지나갔다.
“루나 펜드래곤?”
“빨리 와, 파이시!”
파이시는 무토의 만류에도 말없이 꼬마를 따라 나갔다.
그 모습에서 불가항력이 느껴져 무토는 다시 한 번 의아함을 느꼈다.
파이시가 누군가에게 휘둘린다고?
애초에 이 계획을 구성한 장본인이?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생각해보니까 그녀는 주점에 들어오고 나서도 인사를 제외한 그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아드리아스가 모든 대화를 주도했지.
“뭔가가 있는 게 확실한데······.”
상황이 복잡해졌다.
그건 비단 무토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닌 듯 함께 앉아있던 스잔이나 샤히 샤마드의 가르디온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허, 제국의 백작인 아드리아스 크롬웰이라······.”
“형님! 그래도 아드리아스 크롬웰 정도면 전력에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무려 로들렌 아카데미 수석 졸업자면서 최연소 교수가 된 녀석입니다!”
스잔의 말에도 무토는 표정을 필 줄 몰랐다.
그러다 무언가 떠올린 듯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이거 일이 제대로 꼬였어!”
“형님?”
“스잔, 최근에 로들렌 아카데미에서 일어난 일 기억하냐?”
“로들렌 아카데미요? 우리 해적질하기도 바쁜데 남의 아카데미 일을 어떻게 압니까, 형님!”
“이 멍청한 새끼야. 저번에 네가 알려준 거잖아.”
“제가요?”
스잔이 생각에 잠겼을 때 무토가 급히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다 밖으로 나와! 아드리아스 크롬웰을 찾아라!”
무토의 명령에 키네인 용병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까지도 떠올리지 못하던 스잔은 이내 기억을 떠올리며 탁자를 내리쳤다.
콰직!
“아! 아드리아스 크롬웰이 제파르의 테러를 막은 일! 근데 그게 왜 그렇습니까?”
질문을 했지만 이미 밖에 나간 무토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대답은 가르디온이 대신 해주었다.
“제파르 교단도 이번 원정에 합류하니까요. 아마 아드리아스와 마주치면 문제가 생기겠죠.”
“어어? 그렇네?”
“만약 일이 커지면 원정 자체가 흔들릴 겁니다. 그동안 준비한 걸 생각하면······.”
“으아! 막아야 돼!”
스잔이 부랴부랴 밖으로 나갔다.
그런 키네인 용병단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샤히 샤마드의 일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침묵을 유지했다.
“모든 건 신의 뜻대로.”
가르디온이 천천히 합장하며 말했다.
< 282화. 합류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