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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274화 (274/415)

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 (274)

벤자민 그리고 교육

나흘 정도 비워 둔 아카데미에 다시 돌아오자 한창 토너먼트로 뜨거워진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때문인지 나를 찾아와서 시험을 치르려는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아니, 없는 줄 알았다.

‘학생회에서 통제를 하고 있을 줄이야.’

이 사실을 몰랐으면 조금 서운할 뻔했다.

내가 알고 있는 중원의 무공을 공짜로 푼 셈인데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건 솔직히 자존심이 상하니까.

어쨌든 본격적인 학기의 시작은 토너먼트가 끝난 이후인 3월 초이니 아직 여유는 많았다.

애초에 학기가 시작한 이후로도 여유가 많을 예정이지만.

쿵!

아직 익숙하지 않은 집무실에 앉아 있자 누군가가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미 다가오는 기척에서 누구인지 알고 있던 나는 조용히 말했다.

“살살 열어라.”

“나인지 알았어요?”

루시아가 졸린 눈으로 배시시 웃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내 옆자리에 앉아 있는 비비안에게 다가가 무릎베개를 청했다.

“한가한 모양이네요, 선배.”

“내가 할 말이야. 할 일 없어?”

“없어요.”

루시아는 디에네와 같이 로들렌 마탑의 견습 마법사로 들어갔다.

내가 알던 게임의 흐름 중에서는 로들렌 마탑에 들어가는 경우가 없었지만 아무래도 나와 같이 작성한 제어 논문이 미래를 바꾼 모양이었다.

지금쯤이 가장 바쁜 시기일 텐데 이렇게 놀러 온 걸 보면 역시 루시아라고 해야 할까.

“할 일이 없다고?”

“네. 다 끝내고 왔거든요.”

“그러면 네 연구는?”

“주말 정도는 좀 쉬면서 해도 돼요.”

나른한 표정으로 꼬박꼬박 대답하는 모습이 영 믿음직스럽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가 압도적인 재능의 천재라는 것도 알고 있기에 뭐라 할 수도 없었다.

“그나저나 선배가 교수님이라니 믿기지가 않아요. 애들한테는 뭘 가르칠지 생각해 뒀어요?”

“대충은.”

“뭐, 선배라면 어련히 잘하시겠죠. 근데 선배…….”

비비안의 무릎을 벤 상태로 중얼거리던 루시아가 돌연 진지한 얼굴로 나를 불렀다.

“왜.”

“곧 있으면 디에네 언니 생일이라는 거 알고 계셨어요?”

난 또 뭔 소리를 하나 했다.

플레이어블들의 생일은 모두 알고 있었지만 생일이 다가온다는 건 잊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까 다음 주에는 벤자민의 생일인데.’

참고로 내 생일은 1월 13일이었다.

애초에 기념일을 잘 챙기지 않았기에 내 생일도 잘 챙기지 않는 내가 다른 이들의 생일을 챙길 리가 없었다.

“선물 준비해야죠.”

“그래.”

그래도 이번에는 이야기가 나왔으니 자그마한 선물이라도 챙겨 줘야겠네.

루시아는 이내 비비안과 함께 무슨 선물을 고를지 수다를 떨었다.

덕분에 아가타로 인해 복잡했던 생각이 조금은 전환이 되는 것 같아 나쁘지 않았다.

똑똑똑!

“교수님, 안에 계시나요?”

“들어와.”

같은 건물에서 본인의 연구를 진행하던 애덤이 집무실에 들어왔다.

그는 순간 비비안의 무릎을 베고 있는 루시아를 보고 흠칫했다.

그러더니 어색하게 손을 흔들어 그녀에게 아는 척을 하고는 내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야?”

“기사학부 신입생 하나가 교수님을 뵈러 왔습니다.”

“어디 있는데?”

“일단은 건물 앞에 있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창밖에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많은 검을 멘 벤자민이 환한 미소로 내게 허리 숙여 인사를 하고 있었다.

“올라와.”

내가 손짓하며 말하자 입 모양을 보고 알아들은 그가 곧바로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곧이어 집무실로 올라온 벤자민이 다시 한 번 허리 숙여 인사를 건넸다.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형님.”

“말투가 왜 그래?”

“존경하는 형님께 이 정도 말투는 아무것도 아니죠.”

초롱초롱한 벤자민의 눈을 보자 살짝 곤란해졌다.

벤자민도 원래는 좀 더 차가운 캐릭터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변했을까.

“무슨 일로 왔어?”

비비안과 루시아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아도 내색조차 하지 않는 벤자민은 자신 있게 나를 찾아온 용무에 대해 말했다.

“시험을 치르러 왔습니다.”

“세레나가 통과시켜 줬나?”

“예.”

호오, 내 예상을 깨고 벤자민이 첫 주자였다.

적어도 3인방 중 하나가 먼저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틀렸네.

“그래, 바로 가자.”

어차피 하던 일도 없었다.

아가타에 대한 일은 이미 서신을 통해 모른과 에반에게 정보를 부탁했기에 여기서 고민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으니…….

“이왕 하는 거 연무장에서 하면 좋겠네.”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가자는 거야. 내가 말한 일주일의 기한이 거의 다 와 가는데 너밖에 오지 않은 건 문제니까.”

벤자민으로 자극을 좀 줘야지.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하면 아카데미 학생들이 강해질수록 내게 이득이었으니까.

비비안은 당연히 따라붙었고 루시아가 흐느적거리며 그런 비비안에게 달라붙었다.

결국 넷이서 오게 된 연무장은 전날보다 사람이 많아 보였다.

연무장의 크기를 생각하면 거의 기사학부 전교생이 여기 모여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숫자였다.

“어? 교수님이다!”

“결국 오셨네. 아무도 회장님이라는 1차 거름망을 못 피했으니 오죽 답답하셨을까.”

“힌트라도 주시려는 건가?”

몰골들이 말이 아니었다.

나름 열심히 연구를 하고 수련하는 모양인데 그럼에도 내게 온 사람이 없다는 건 세레나의 기준이 꽤 높았다는 이야기겠지.

“고생이 많군.”

“아닙니다!”

학생들이 기대 어린 눈빛을 보내왔지만 난 오늘 뭔가를 알려 주려 온 게 아니었다.

정작 알려 줄 사람은 따로 있지.

“괜찮다면 자리를 좀 만들어 주면 안 될까.”

“야, 야! 비켜! 빨리 자리 비워, 이것들아!”

연무장 가운데가 비었다.

이내 내가 빈자리에 서자 벤자민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쟨 뭐야?”

“신입생 아니야?”

웅성거리는 소리들을 들으며 난 나직하게 말했다.

“첫 도전자다. 잘 보고 배울 게 있으면 배워라.”

내 말이 끝나자 모두의 표정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몇몇 이들은 믿기지 않는 듯 고개를 젓고, 몇몇 이들은 시기와 질투가 섞인 표정으로 벤자민을 노려봤다.

‘압도적인 재능 앞에서는…….’

하지만 난 그 모든 감정이 이내 변할 거라 믿었다.

검의 재능 하나만큼은 이 세계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루이스조차 뛰어넘은 사내.

“후우.”

그 사내가 지금 내 앞에서 자신을 증명하려 했다.

“어떻게 날 설득할 거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벤자민은 당당하게 말하며 왼쪽에 찬 검 중 하나를 뽑아 들었다.

서슬 퍼런 검날이 예리한 빛을 뿜었다.

‘마검 화란.’

벤자민이 가지고 있는 마검 루벤스에 비하면 마검이라 불리기도 귀여운 수준이지만 평범한 검들과 비교하면 다 씹어 먹는 스펙의 검.

내가 검귀 호산을 죽이고 얻은 검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화란에 묘한 감상이 생겨났지만 이내 벤자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받아 주실 수 있습니까?”

그는 갑작스레 말하더니 대답도 듣지 않고 내게 검을 휘둘렀다.

존경한다던 놈이 예의를 밥 말아 먹었군.

하지만 이 정도는 당연히 막아 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 어린 그의 눈빛에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 검을 뽑아 들었다.

투둥!

가볍게 막아 낸 검에서 악기와 같은 소리가 났다.

“교수님께서 저 벽에 새긴 검흔. 그건…….”

단순했던 벤자민의 움직임이 복잡해졌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중원의 보법과 비슷했다.

‘역시 벤자민.’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고 해야 하나.

그의 움직임을 알아본 나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새긴 검흔은 ‘창룡추혼검법(蒼龍追魂劍法)’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오 대 세가 중 으뜸이라 불리는 남궁세가의 모든 무공은 각 검법에 맞는 신법과 보법이 따로 존재했다.

내가 감탄하는 부분은 벤자민이 창룡추혼검범의 짝인 추혼보(追魂步)를 유추했다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

‘지 마음대로 해석하고 만들었어.’

지금 벤자민의 움직임은 추혼보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창룡추혼검법과 어울리지 않는 움직임도 아니었다.

부족한 부분이 보이지만 얼추 맞아떨어지는 움직임들.

콰드드드드득!

드디어 벤자민이 재해석한 창룡추혼검법이 튀어나왔다.

용이 지나가는 듯한 강맹한 기운이 그의 검에 담기며 나를 몰아붙였다.

“오와아아아!”

“미친!”

주변에서 들려오는 탄성이 검과 검이 부딪히는 소음에 묻혔다.

벤자민은 이미 한 번 제대로 보여 주었음에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 다시 움직이며 나를 공격했다.

“합격이다, 벤자민. 하지만…….”

이왕 누군가를 가르치는 위치가 되었으니 지도를 좀 해 줘야겠지.

콰앙!

위에서 아래로 단순히 내려찍었지만 그 검에는 태산과 같은 기운이 담겨 있었다.

재차 공격하려던 벤자민은 그 한 번의 일격에 그대로 나가떨어졌다.

“……아?”

“빈틈이 너무 많아. 아무래도 급조한 움직임이라 그렇겠지.”

사실 이건 단순히 벤자민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남궁세가 무공의 정수는 검법이 아닌 심법.

심법은 마나를 강제로 쌓게 해 주는 기술로 로들렌에는 없는 기술이었다.

이 심법이 없는 한 남궁세가의 무공을 익혔어도 반쪽짜리 무공이었는데, 하물며 검흔만 보고 자기 마음대로 해석한 기술이 완벽할 수는 없었다.

‘나도 결국 심법은 모르지만.’

남궁일영은 심법만큼은 알려 주지 않았다.

검법은 전부 알려 줘 놓고 심법만 빼놓다니 처음에는 팥 없는 찐빵이라고 생각했지.

“역시 교수님이십니다.”

벤자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허리를 숙였다.

“가르침 감사합니다.”

“그래, 고생했다.”

우리의 대련 아닌 대련이 끝나자 곧 주변에서 박수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모두들 감격한 표정이었는데 몇몇 이들은 열의에 불타는 표정이었다.

지금 보니까 루이스랑 크리스도 있었네.

내일까지는 오겠지?

“방금 벤자민의 움직임을 보면 알겠지만 내가 알려 줄 건 조금 특이하다. 누군가는 잡기술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새로운 경지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

내가 볼 때 무공은 이 세상의 무기술보다 뛰어났다.

그러니까 탑에 입장했던 그 누구도 익혀 오지 못한 거겠지.

아무에게나 알려 주는 것도 아니거니와 천재급 검술 재능이 있지 않은 이상 베껴 올 수도 없으니까.

‘막시민, 그 양반도 탑에 입장했었으니 베껴 올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극한의 신체적 재능으로 검법이나 검술 따위는 그저 도구라고 여기니까 무시했겠지.

“시험만 통과하면 제한 없이 알려 주겠다.”

“그런 기술을 알려 주면 남는 게 뭐죠, 교수님?”

누군가의 외침에 나는 전날에도 말했던 걸 그대로 말해 줬다.

“나는 대가를 바라는 게 아니라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야. 굳이 뭔가를 남겨야 하나?”

“그렇지만 아무것도 남지 않으면 그건 미련한 행동 아닌가요?”

“왜 아무것도 남지 않지? 실력이 향상한 학생들이 남을 텐데.”

“그, 그렇지만 그건 교수님한테는 아무 보상이…….”

세상이 곧 위태로워지니 조금이라도 강한 체스 판의 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굳이 할 필요는 없겠지.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하고는 뒤돌아서 왔던 길로 걸어갔다.

“말했지만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야. 교수가 됐으니 학생을 가르치는 것뿐이라고. 너무 의미를 부여하지 마라.”

“…….”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일부 학생들의 심정이 이해는 됐다.

나라도 반대의 입장이었으면 멍청하고 미련한 놈이라고 생각했겠지.

“개멋있다…….”

“저런 분이 진짜 교수님이시지!”

하지만 대부분의 이들은 내 말에 열광하는 분위기였다.

역시 몸을 쓰는 녀석들이라 그런가, 조금 단순했다.

마법학부였으면 아마 끝까지 캐물었겠지.

“저도 꼭 시험을 통과하겠습니다!”

“아드리아스 교수님! 저도 반드시 교수님의 지도를 받아 보겠습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들려오는 환호 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집무실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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