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 (267)
마무리 그리고 탈출
나는 잠시 흥분을 가라앉혔다.
상대는 초월자, 그중에서도 썩은 희망을 속삭이는 자였다.
지금까지 그가 했던 행동들을 보면 달콤한 과실을 앞세워 뒤통수를 치는 형식이었다.
[“그랬었지. 하지만 넌 내 보상을 거절하지 않을 거야, 그렇지?”]
희미한 웃음이 느껴졌다.
[“애초에 네가 이곳을 방문했던 것도, 관찰자가 경고했음에도 나가지 않았던 것도, 모두 보상을 위해서 한 행동이지 않나.”]
‘맞아.’
부정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얻게 될 보상이 뭔지는 알 수 없어도 앞으로 있을 위기를 생각하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고 포기하지 않았다.
[“네가 원하는 것은 재물이 아니겠군. 강대한 힘인가?”]
강대한 힘.
물론 원한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가장 원하는 것.
‘약속을 지킬 수 있게 해 줘.’
[“약속?”]
속삭이는 자가 의문을 표했다.
곧이어 그는 내 머릿속을 헤집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마치 기계와 같이 무미건조한 웃음.
[“고작 그딴 약속을 위해 보상을 날리겠다는 말이냐?”]
‘그래.’
속삭이는 자가 뭐라 비웃든 상관없었다.
모두가 나를 손가락질하고 멍청하다고 말해도 내 결정은 변하지 않을 거다.
[“진심이군.”]
우우웅―――.
허공이 진동했다.
곧이어 찬란한 빛이 쏟아지며 무언가가 내 손에 떨어졌다.
“이건…….”
[“감정을 응축시킨 열매다. 반으로 쪼개서 하나씩 먹이면 네 약속은 이루어지겠지.”]
역시 초월자.
이렇게 가볍게 해결해 버리다니 기가 막히는군.
[“그리고 하나 더.”]
두근!
갑자기 심장이 조여 오기 시작했다.
“크흡?”
[“욕심의 열쇠는 가져가마. 이걸로 보상은 끝이다.”]
속삭이는 자가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사라졌다.
뭐지? 나한테 뭘 한 거냐?
의문을 토해 냈지만 대답은 없었다.
[강제 진화가 진행 중입니다.]
[아드리아스 크롬웰의 진화 가능성 ?%]
[남은 시간: 7시간]
강제 진화?
도대체 무슨 진화인지도 모르겠다.
시간도 7시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마치 억지로 단축한 듯 온몸이 고통스러웠다.
‘지랄맞네.’
하지만 이보다 더한 고통을 수시로 느껴 봤기에 감흥은 없었다.
그저 무엇을 위한 진화인지가 궁금할 뿐.
“오오! 깨어나셨군요.”
마침 비비안이 어느 노인을 데려왔다.
중원 출신의 의사였다.
“아드리아스?”
비비안이 내 안색을 보며 이마를 짚었다.
차가운 그녀의 손이 느껴졌다.
“열이 심해. 이건 뭐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날 보던 비비안이 내 손에 들린 열매를 보았다.
열매는 평범한 사과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비비안.”
“응.”
“가넷을…….”
나는 힘들게 열매를 반으로 쪼갰다.
그리고는 반쪽을 비비안에게 건넸다.
“이걸 가넷한테 먹여 주세요. 제가 줬다고 하면 될 거예요.”
“응.”
그녀는 아무런 의문도, 질문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열매를 받았다.
그러고는 의사에게 나를 잘 부탁한다 말하고 그대로 나갔다.
언제나 헌신적인 비비안에게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비비안이 떠나자 의사 양반이 내 몸 상태를 확인했다.
“열이 심하군요. 우선은 해열제를 처방해 드리겠습니다. 주거 지역의 복구도 끝났기에 약탕도 곧 대령할 수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남궁일영은 괜찮습니까?”
“도련님께서는 무사하십니다. 저희 도련님을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주름진 얼굴에 눈물이 맺혔다.
그는 내 손을 꼭 붙잡고 말했다.
“제 모든 능력과 기술을 동원하여 아드리아스 님을 치료하겠습니다. 도련님의 은인은 곧 저희들의 은인, 그 외에도 필요하신 일이나 부탁이 있으시면 언제든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주거 지역이 모두 복구가 되었다는 건 이제 탈출도 가능한 건가.
“탑의 출구는 어떻게 됐습니까?”
“출구로 이어지는 길도 정비가 됐습니다. 하지만 열리진 않고 있습니다.”
의문이긴 했다.
만약 출구가 멀쩡했다면 나는 진즉에 탈출당해 로들렌에서 눈을 떴겠지.
아마 속삭이는 자가 일부러 걸어 잠근 것 같았다.
지금쯤이면 열렸을 수도 있겠는데.
“지금 다시 확인해 보라고 해 주실래요?”
“예? 아, 알겠습니다.”
노인은 의문이 가득 담긴 표정이었지만 별다른 말 없이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그도 방 밖으로 나가고 나자 방에는 다시 나 혼자만 남게 되었다.
[“재밌었다.”]
“원죄.”
아니지. 관찰자라고 불러야 하나.
이 음흉한 새끼. 이번에 그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왜 관찰자라고 불리는지 알 수 있었던 경험.
[“결과적으로 잘됐잖아. 하하.”]
‘잘돼? 거기 있던 사람들이 대부분 죽고 내 언데드들도 전부 박살 났어. 특히 새로 만든 듀라한은 아예 소멸했다고.’
기껏 오러 마스터의 시신으로 야심 차게 만든 듀라한이 이번 전투로 소멸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 그 외에 다른 애들은 괜찮다는 것뿐.
그러나 상대적으로 괜찮다는 거지 부서지거나 사라진 부위를 고치기 전까지는 다시 소환도 못 한다.
[“느껴지는 게 없어?”]
‘뭐?’
느껴지는 거?
[“덕분에 쫓는 자를 내가 먹어 치웠다.”]
“먹었다고?”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터져 나왔다.
화신을 먹었다는 소리인가?
[“내가 강해지면 결국 너도 강해지겠지. 이건 절대 손해가 아니야.”]
‘뭐가 변한 거지?’
원죄의 스테이터스를 열어 보았지만 변한 게 없었다.
아니, 차이점이 하나 보이기는 했다.
[진화가 가능한 개체가 탐색되었습니다.]
설마…….
[“진화가 가능해졌지.”]
‘이걸 노리고 있었던 거냐?’
이번 일에서 의외였던 것은 원죄의 말과 행동.
내가 죽을 정도의 위기가 닥칠 것 같으면 항상 막거나 투덜댔던 원죄가 이번에는 유독 조용했지.
아니, 오히려 종용했었다.
[“확실히 위험하기는 했었어. 반반이었다고 해야 할까.”]
‘…….’
딱히 그를 탓할 수는 없었다.
결국 모든 게 내 결정이자 선택이었으니.
[“니켈이 지니고 있던 카오스 미믹의 핵이 아니었으면 죽었을 거다.”]
‘카오스 미믹?’
갑자기 그게 왜 나와?
[“기억 안 나? 네가 거꾸로 매달려 있을 때 화신 녀석이 유독 니켈을 노렸었다는 걸.”]
‘그게 카오스 미믹 때문이었다고?’
그렇다면 남은 의문점은 왜 화신이 카오스 미믹의 핵에 집착했냐는 건데.
[“카오스 미믹도 추월자의 부산물이다. 네가 가진 왕관과 같은 거지.”]
‘없어졌어.’
나는 아공간에서 쉬고 있는 니켈을 확인했지만 카오스 미믹의 핵은 없어져 있었다.
[“화신이 가져가고 그 화신을 내가 먹었다. 카오스 미믹의 핵도 내가 먹은 셈이지.”]
관찰자가 아니라 먹는 자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다 처먹어라, 그냥.
[“먹는 자는 이미 따로 있어. 유감이지만 그 칭호는 못 쓰겠네.”]
‘그래서. 진화를 시켜 달라고 일어난 거냐?’
[“원래는 그럴 생각이었다만 속삭이는 자가 괴상한 짓을 벌이고 갔네. 내 차례는 다음으로 미루지.”]
원죄가 씨익 웃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의 진짜 정체가 궁금했다.
7개의 죄악 아이템은 사실 모두 이 녀석의 부산물.
그중 2개를 동시에 사용했더니 초월자의 화신과도 비벼 볼 수 있을 정도.
비록 초월자가 현세에 강림하면 커다란 페널티와 함께 힘의 다운그레이드가 이루어진다지만 놀라운 사실이었다.
‘만약 7개를 모두 모으면?’
초월자의 본체를 이기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화신이라면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겠지.
“넌 도대체 정체가 뭐냐?”
[“정체? 뭐, 숨겨진 거라도 있는 줄 아냐? 보이는 그대로다, 이 멍청아. 하하.”]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바깥에서 누군가가 달려오는 인기척에 원죄는 마치 쥐구멍에 숨듯 사라져 버렸다.
덜컥!
나타난 인물은 내 예상대로 가넷이었다.
그 뒤를 비비안이 따라 들어왔다.
“아드리아스…….”
“감정은 되찾으셨습니까?”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지금 그녀의 표정이 모든 걸 말해 주고 있었으니까.
“어, 어떻게 하신 거죠?”
“이것도 받으세요.”
나는 나머지 열매의 반쪽을 건넸다.
가넷은 떨리는 두 손으로 열매를 받았다.
“이, 이걸 대체 어디서 구하신…….”
가넷은 말을 잇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마치 울음이라도 터트리는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
“정말, 약속을 지켜 주셨군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가넷.”
탁탁탁탁!
벌컥!
“아, 아드리아스 님! 말씀하신 대로 확인해 보니 탑의 출구가 열렸습니다! 이제 모두 나갈 수 있어요!”
“아아…….”
노인의 말에 비비안과 가넷이 놀란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 * *
“작별이군.”
남궁일영이 나를 마주 보고 서 있었다.
그런 그의 뒤로는 중원 세력의 인물들이 밝은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오랫동안 탑에서 지내신 것 같은데 돌아가면 적응하실 수 있겠습니까?”
“난 남궁일영이다.”
오만할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그가 말하니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무려 화신의 머리를 벤 사람이니 말 다 했지.
“부디 잘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그는 무슨 말을 하려다 갑자기 말을 끊었다.
“만약?”
“아니다. 이별은 짧을수록 좋겠지. 이만 가겠다.”
탑의 최강자, 남궁일영.
무려 50년이 넘는 세월을 탑에서 군림한 자가 바깥세상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미 가넷을 제외한 다른 세력들은 전부 나간 상태였기에 인사는 길어졌다.
“아드리아스 님! 저희 도련님이 신세 많이 졌습니다!”
“부디 행복하십시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알을 조사하러 갔던 정예 원정대에 포함되었던 인원들은 대부분 죽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영역에 남아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인사를 건넸다.
“어디 가서 남궁세가의 이름을 먹칠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아, 어디 가서 말하고 다니지나 마라.”
남궁일영이 습관적으로 한숨을 쉬더니 이내 피식 웃었다.
웃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여전히 미친 외모였다.
중원 세력이 한 명씩 탈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남궁일영이 마지막으로 한마디 남기며 사라졌다.
“잘 지내거라, 제자야.”
제자라…….
나도 이제 남궁세가의 속가제자인 건가.
아마 남궁일영의 항렬을 생각하면 무림에서는 나도 꽤 높은 위치겠지.
빛이 되어 사라지는 남궁일영을 마지막으로 출구가 고요해졌다.
“이제 우리 차례네.”
디에네가 내 어깨를 건드리며 말했다.
그녀는 미래의 디에네가 왔었다는 사실을 듣고 놀라워했었다.
덕분에 지금은 동기 부여가 됐는지 빨리 돌아가서 수련을 하고 싶은 눈치였다.
“가넷.”
“먼저 가세요.”
“아니요. 전 가넷이 나가는 걸 보고 갈 겁니다.”
소중한 사람을 다시 되돌릴 수 있는 물건을 가지고 아직까지 나가지 않고 있는 가넷이 답답했다. 당장이라도 가서 열매를 먹였으면 하는데.
“후후.”
“제가 곤란한 모습을 보는 게 재밌는 모양입니다.”
“네.”
솔직하구나.
결국 나도 웃음이 나왔다.
가넷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고마웠습니다. 아드리아스, 비비안, 디에네.”
“부디 뮤줄라와 행복하게 사십시오.”
가넷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게요.”
“행복해야 해.”
“고마웠어요!”
비비안과 디에네의 인사를 들으며 가넷이 천천히 출구로 발을 디뎠다.
살짝 불안한 듯 흔들리는 걸음걸이.
나는 뒤에서 가넷을 격려했다.
“괜찮습니다. 저희가 뒤에 있어요.”
그러자 가넷은 잠시 멈춰서더니 우리를 돌아보며 환하게 웃었다.
“네!”
그리고는 힘차게 앞으로 나아갔다.
기다린다고 변하는 건 없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파아아앗――――!
이내 빛에 둘러싸여 사라지는 가넷이 손을 흔드는 걸 마지막으로 모두가 떠났다.
후련한데?
“이제 우리도 나가자. 아무도 없으니까 으스스해.”
디에네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예. 빨리 나가죠.”
탑에는 이제 아무도 남지 않았다.
거주자들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나간 상태.
내년에 열릴 탑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속삭이는 자가 당장 탑을 버리지는 않을 거라고 말했지만 불안한 건 사실이니까.
“가죠.”
비비안과 디에네.
둘과 함께 출구로 발을 내디뎠다.
화아아앗!
빛이 우리를 감싸며 처음 들어왔을 때와 같이 장소가 바뀌었다.
[보상의 방에 도착했습니다.]
“……이건 또 예상 못 했는데.”
깜깜한 암흑과 같은 장소에 도착했다.
바로 탈출하는 줄 알았더니 보상의 방으로 올 줄이야.
게임에서도 등반을 포기하고 출구로 나서면 이곳에 오게 된다.
보상의 방은 각자가 개별의 방으로 들어가기에 이곳에 있는 건 나 혼자.
이번에는 초월자와의 전투라는 어마어마한 일에 휘말려 보상의 방은 없을 줄 알았다.
게다가 난 이미 개인적으로 받기도 했고.
[정산을 시작합니다.]
[탑 클리어 40층#^#%!$!&@]
불안하게 또 왜 이래.
[탑 클리어…… 탑의 정복에 성공하셨습니다!]
게임에서는 본 적 없는 처음 보는 문구가 나왔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우우웅―――――.
천장에서 빛이 떨어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