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244화 (244/415)

< 244화. 증명하는 자들 >

“······로들렌 황가에 내려진 축복으로서 이후에도 없을 무궁한 영광의 길로······.”

기나긴 연설이 이어지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았다.

황궁 안에는 4대 공작 가문과 황가의 사람들이 마치 동물을 구경하듯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번 탑 참가자는 총 123명.

그중에서 몇 명이 살아서 돌아가고, 아니면 탑에 탈출할지는 모르지만 내가 알던 것보다 많은 숫자였다.

‘많을수록 좋지.’

이왕이면 같은 곳에서 출발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좋았다.

탑은 이곳과는 완전 다른 별개의 세상.

게임에서는 그저 그러려니 했지만 현실이 되자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장소였다.

“······탑에 증명하는 모두에게 로들렌의 축복을!”

드디어 기나긴 축사 겸 연설이 끝나고 사람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떠나기 전 마지막 해후라고 할까.

영영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길인만큼 가족이나 관계자들은 모두 걱정스런 모습들이었다.

“괜찮아?”

바하트와 인사를 마치고 온 디에네가 내게 물었다.

에이미의 배웅이 없어도 괜찮겠냐는 의미인 듯싶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돌아올 건데요.”

“그래, 어련하시겠어.”

“그것보다 형님은 안보이시네요?”

“카를로스 오빠? 또 어디 싸돌아다니겠지.”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말했지만 서운함이 눈에 보였다.

이 무렵의 카를로스는 원래 없던 사람이라 뭘하고 다니는지 모르겠네.

“아드리아스 크롬웰.”

그때 대화중이던 나와 디에네의 사이를 바하트가 밀고 들어왔다.

“마탑주님. 다음에 볼 때까지는 꽤 걸리겠군요.”

“혹시라도 허튼 짓은 하지마라.”

그는 뭔가 못마땅한 눈초리로 나를 보며 말했다.

“나도 이미 탑을 겪어봤다. 네 녀석이 유례없이 강하다는 건 알지만 탑의 안쪽은 네 상상 이상이야. 방심하면 안 된다.”

“예, 그러겠습니다.”

“흐음······.”

영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듯 콧소리를 내는 걸 보니 내가 적당히 대답한다고 느꼈나보다.

하지만 난 바하트보다 탑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의 걱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디에네는 제가 신경 쓰겠습니다.”

“흥. 탑에서 그런 게 가능한 줄 아느냐? 결국 모두 흩어질 게다.”

뭔가를 더 말하려던 바하트는 이내 이동하기 시작하는 참가자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까지군.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하자면 저 녀석들도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바하트가 가리킨 이들은 학생들이 아닌 일반인들이었다.

황궁에서는 일반인들에게 자체적으로 참가 자격을 주기도 하는데 대부분 공을 세웠거나 거래를 통해 얻은 경우들이었다.

그들을 조심하라는 말에 또 뭔가 지저분한 일이 있을 수 있겠구나 생각하며 나도 이동을 시작했다.

여기서부터는 참가자들과 탑의 입구로 안내를 맡은 헥토르만 이동할 수 있었기에 모두 손을 흔들며 우리를 배웅했다.

“긴장되는군.”

“상상이 안 돼. 아예 다른 세상이라면서?”

들뜬 학생들의 말소리가 들려오고 이내 우리는 어느 넓은 공동에 도착했다.

“이게 탑······?”

마침내 도착한 장소는 탑이라 불리는 거대한 문이었다.

외형은 전혀 탑과 연관이 없는 생김새였기에 참가자들은 모두 의아한 눈초리로 그 문을 바라봤다.

물론 이미 전해들은 바가 있었지만 실제로 마주하자 의아함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이제 곧 시간이군.”

황제는 이번 행사에 참가하지 않았다.

그를 대신해서 재상인 헥토르 카자프가 진행을 맡았는데 그는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

“이제 모두 준비하십시오. 입장하실 시간입니다.”

그의 말과 함께 문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점차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거대한 문은 이내 강렬한 파장을 일으키며 빛을 발했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헥토르가 인사를 하며 뒤로 물러났다.

동시에 거대한 황금빛 문이 열리며 빛이 쏟아졌다.

“아드리아스.”

내 옆에 붙어있던 비비안이 이름을 부르며 나를 바라봤다.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비비안조차 두 눈에 호기심과 두려움이 섞여있었다.

“걱정마세요.”

탑은 분명 광대하고 어렵다.

하지만 난 수십 번의 탑 클리어 경험이 있다.

“저만 믿고 따라오시면 됩니다.”

변수가 생기지 않는 이상 무조건 살아남는다.

**

-띠링!

[차원의 연결 고리를 발견하셨습니다.]

[유니크 던전 ‘증명의 장소’로 이동합니다.]

공간 전이는 언제나 당황을 몰고 왔다.

미리 예상하고 있던 나도 애써 신경을 곤두세우며 주변을 확인했다.

“오, 온 건가?”

“로, 로들렌! 로들렌에서 온 사람들 모두 여기로 모여!”

조금 전까지 넓은 공동에 있던 우리는 황금의 문을 지나친 순간 그보다 넓은 공간으로 이동된 뒤였다.

바닥은 깨끗한 대리석으로 이루어져있었고 주변은 끝이 보이지 않는 높다란 크리스털 벽으로 둘러싸인 장소.

무엇보다도 이 장소에는 우리만 있는 게 아니었다.

“미리 전해들었지만 신기하군.”

족히 수백 명은 될 듯 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의 복장이나 외모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것과는 달랐다.

“모두 경계하지 마시오! 우리는 일단 힘을 합쳐야하는 동료요!”

아무래도 무협 세계관에서 온 것처럼 보이는 중년의 남성이 소리쳤다.

용케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게 신기하네.

“저 자들이 아무래도 ‘중원’이라는 곳에서 온 사람들인가 보군.”

“저거 봐봐. 인간이 아닌데?”

“특이하게 생겼군.”

탑에서 활동하는 주 세력은 크게 다섯 개다 있었다.

첫째로 내가 플레이 한 ‘죄악’, 그러니까 로들렌에서 온 세력.

그리고 무협 세계관을 가진 중원 세력, 인간은 없고 인형들만 있는 세계관에서 온 룬 세력, 수인들의 세력인 케찰, 마지막으로 우리와 같은 판타지 세계관에서 온 케이레스가 있었다.

게임 상에서는 그저 그러려니 했는데 실제로 보니 확연히 차이가 나는 생김새와 외형들로 인해 구분이 어려울 것 같지는 않네.

“아드리아스, 일단 우리끼리 뭉치자.”

어느새 다가온 디에네가 로들렌 세력을 모두 집결시켜놓고 내게 다가왔다.

알븐의 이름값과 특유의 카리스마로 벌써 휘어잡은 모양이다.

“디에네.”

“어.”

“모두를 구할 수는 없습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나중에 제 말의 의미를 알게 될 겁니다. 깨닫게 된다면 그 후로는 저를 찾아오세요.”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비비안을 데리고 대열에서 이탈했다.

디에네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녀의 말을 듣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여서 자리를 선점하고, 더 나아가서 주변을 통제해야 했다.

‘사실 디에네도 끌고 오고 싶지만······.’

그녀의 성격상 우리 셋이서만 활동하자고 하면 절대로 따라주지 않겠지.

그렇다면 직접 겪어봐야 할 거다.

이 탑 안에서 세력이라 함은 큰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만한 단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띠링!

[0층 : 자격의 증명]

이 공간에 채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은데 벌써 시련이 시작되었다.

나는 속도를 더 높여 최대한 벽을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모두 준비해라! 들어오기 전에 미리 전해들었을 거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특정한 몇몇 층들은 시련의 내용이 겹치기 때문에 먼저 탑을 갔다 온 인원들이 경험이나 공략을 전수해준다.

아카데미에서도 졸업반들이 유일하게 듣는 강의가 탑의 공략에 관한 강의.

다른 차원의 사람들도 삼삼오오 모여서 시련을 대비하기 시작했다.

“아드리아스!”

멀리서 우리 쪽 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게 들려왔지만 무시했다.

다행히 비비안은 내 행동에 의심의 여지도 없이 잘 따르고 있었다.

“비비안.”

“응.”

“이미 들어서 알 테지만 곧 괴물들이 나올 겁니다.”

나는 그녀를 향해 미소 지었다.

“저희는 최대한 녀석들을 죽일 겁니다. 버티는 게 아니라 사냥하는 거죠.”

“응.”

의문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비비안의 행동에 믿음이 갔다.

곧이어 바닥이 흔들리며 중앙에서부터 하얀 몸통을 지닌 인간 형태의 괴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버텨라! 버티기만 하면 다음 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

이내 중앙에서부터 각 세력들끼리 모여 있던 사람들이 괴물들을 막아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비비안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드리아스, 사냥한다고 했잖아.”

“예, 저희는 이쪽입니다.”

내가 벽 쪽을 바라보며 말하자 비비안이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쯤이면 되겠군요.”

나는 사람들의 신경이 온통 중앙으로 집중되었을 때, 벽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크리스털로 이루어진 벽이 으깨지며 부서지기 시작했다.

일종의 히든 피스라고 할까.

-끄룩.

중앙에서 나타난 것들과는 달리 더 왜소하고 작은 형태의 괴물들이 벽 너머에서 나타났다.

그들은 무너진 벽을 보며 당황한 눈초리로 소리를 내다가 이내 나와 비비안을 향해 폭력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모조리 처리하겠습니다.”

“알았어.”

이 괴물들을 죽인만큼 포인트가 계산이 된다.

실제로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탑에서 모두 계산하고 있지.

그리고 그 포인트는 보상으로 돌아온다.

남들이 힘들게 중앙을 막고 있을 때, 우리는 그들이 신경 쓰고 있지 않는 틈을 타 달달한 포인트 사냥을 하는 셈.

“비비안, 누가 더 많이 잡는지 내기하죠.”

“내기?”

“예. 이기는 사람이 부탁 하나 들어주기입니다.”

“좋아.”

내기라는 말 때문일까.

갑자기 비비안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콰가가가각---!

특유의 신들린 듯한 움직임을 발휘하는 비비안을 보며 나는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무서운데?’

당연히 이길 거라고 생각하고 내건 내기였기에 질 경우는 상정하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내가 진다면 그녀가 무슨 부탁을 해올지 상상이 되지 않았기에 나는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어쩌면······.’

내 정조(?)가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그렇게 비비안과 함께 벽의 뒤에서 약해빠진 녀석들을 열심히 잡자 어느새 눈에 띄게 줄어드는 숫자를 보고 끝이 다가왔음을 직감했다.

-띠링!

[0층 : 자격의 증명 클리어]

[순위가 공개됩니다.]

지금 나오는 메시지 창은 모두 볼 수 있었다.

탑의 고유 시스템으로 사람들도 이미 다 배우고 오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

[1위 아드리아스 크롬웰 218포인트]

[2위 비비안 벨로칸 201포인트]

[3위 네리오 63포인트]

간발의 차였다.

나는 아쉽다는 표정의 비비안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이내 나올 메시지를 기다렸다.

[1위를 달성하셨습니다.]

[0층의 신기록을 갱신하셨습니다.]

[1위 달성, 황금 도장을 획득하셨습니다. 보상은 1층에서 수령 가능합니다.]

[신기록 갱신, 백금 도장을 획득하셨습니다. 보상은 1층에서 수령 가능합니다.]

탑은 올라간 최종 층수에 따라 보상이 주어지는데, 예외가 있다면 바로 0층이었다.

0층에서 주어지는 별개의 보상은 앞으로도 탑을 이용하는데 굉장한 도움이 되었기에 필수나 마찬가지였다.

메시지를 확인한 사람들이, 그중에서도 특히 로들렌 측 인물들이 나를 찾았다.

“아드리아스가 1위야!”

“역시 아드리아스! 압도적인데? 근데 어디서 이렇게 많은 놈들을 잡은 거야?”

“다른 세력들 봐봐. 다들 지금 우리만 쳐다보고 있어.”

“1, 2위 모두 우리한테 있으니까. 하하!”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이들을 보니 조금 양심에 찔린다.

결국 모든 건 내 이득을 위해 행동한 건데 말이야.

저 멀리서 디에네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1층으로 갈 수 있는 포탈이 생성되었다.

[자격의 증명이 완료되었습니다.]

[증명자,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드디어 진정한 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 244화. 증명하는 자들 > 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