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237화 (237/415)

< 237화. 진로 그리고 제안 >

내가 논문으로 작성한 기원은 ‘제어’였다.

그리고 제어의 기원은 다름 아닌 ‘조화’에서 찾을 수 있었다.

모순, 순수, 이해가 서로 맞물리는 가위, 바위, 보와 같은 관계라면 제어와 조화는 서로 상반된 관계였다.

게임에서는 제국이 발견한 성서에서 발견된 조화의 기원으로 인해 마법계가 한 번 뒤집어지며 이름 있는 마법사들이라면 모두가 연구에 들어가기 시작한다.

결국 조화와 관계가 있던 또 다른 기원인 제어가 발견되는 건 금방이었지.

‘결국 제어를 발견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조화 덕분.’

맥스웰이 찾아왔을 때 어떻게 확신을 가지고 제어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바로 조화였다.

조화가 있기에 확신을 가지고 제어가 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화는 현재 살렘에게만 알려진 상황.

굳이 그걸 말할 수는 없지.

“아드리아스, 정말 괜찮겠어?”

연구실에 함께 있던 디에네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녀의 물음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예. 잘 다녀오세요.”

“우리끼리만 가기 찝찝한데······.”

논문의 발표 이후, 당연한 이야기지만 실제로 눈앞에서 시연을 한 만큼 통과가 되는 건 당연했다.

아카데미 졸업은 따 놓은 당상이고 여러 마탑에서도 러브콜이 전해져왔다.

그리고 지금은 권위 있는 학계에 초청되어 디에네와 루시아가 논문에 대한 강연을 하러 출발하려는 찰나였다.

“본인이 괜찮다는데 뭐 어쩌겠어요. 우리가 대신해서 선배 이름까지 알리고 올게요.”

“그래. 조심히 다녀오고.”

원래는 제 1저자인 내가 가는 게 맞았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다.

학계에 이름을 알리는 건 이미 충분했고 이 이상의 명성도 과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의 반응도 과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나도 슬슬 나가볼까.”

제어에 대한 연구는 현재진행형이었다.

그 기틀은 어느 정도 잡혔지만 여전히 구멍이 많았고 그 틈을 메우는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난 이김에 오리지널 마법까지 노리고 있기에 하루가 짧다고 느껴질 정도로 연구에 열중하고 있는 중이었다.

새로운 기원인 제어.

그릇 특성과 원죄 덕분에 무식하게 많아진 마나량으로 인해 내게는 아주 제격인 기원이었다.

“아! 아드리아스 학생!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디에네와 루시아가 먼저 나가고 마저 남아 연구 정리를 마친 뒤 밖으로 나오자 수많은 인파가 연구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이미 기척으로 느끼고 있었지만 예상보다 훨씬 많네.

“연락이 닿지 않아 부득이하게 직접 찾아왔습니다. 혹시 시간이 좀 되시는지요?”

“로들렌 신문에서 나왔습니다! 혹시 인터뷰 가능하십니까?”

“모두 순서를 지키게! 우리 아그니스 마탑에서 먼저 왔다고!”

대충 훑어보니 마탑의 관계자나 학계의 관계자들, 그리고 신문사에서 취재를 위해 찾아온 기자들까지 다양했다.

몇몇은 귀족의 심부름을 받고 온 하인들 같았는데 귀족가에서도 러브콜을 보내는 모양이었다.

‘최소 후작가쯤인가.’

하지만 이제 나도 어디 가서 꿇리지 않는 백작이 되었다.

전쟁과 논문을 통해 명성을 날리고 가문에서 운영하는 상단은 제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수준.

게다가 모하임과 동맹을 맺었으며 알븐에서도 호의를 보인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영지가 없는 귀족이 아니었다.

크롬웰을 되찾았고 영지의 상태는 양호한 수준.

에반을 시켜 특이점을 알아보라고 했지만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 별일은 없었다.

“죄송하지만 지금은 바쁩니다. 시간이 비면 제가 직접 시간이 남는다고 말해주겠습니다.”

시간만 잡아먹고 도움이 되지 않는 일들은 사절이었다.

게다가 어느 정도는 거리를 둬야 앞으로도 귀찮게 굴지 않겠지.

사람들을 물리치고 내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교장실이었다.

졸업과 관련된 이야기라고 짐작한 내가 도착하자 데오스는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아드리아스 학생. 혹시 졸업 후에 진로는 정했습니까?”

“생각해둔 건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안 그래도 요즘 제어의 기원 다음으로 고민 중인 게 진로 문제였다.

그동안 동분서주하며 이것저것 꽤 많이 챙겼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게 남아있었다.

그건 바로 플레이어블 캐릭터들.

신경 쓴다고 썼지만 아무래도 몸이 두 개가 아니었던 터라 많이 챙겨주지는 못했다.

디에네나 루시아의 경우 걱정할 필요가 없었지만 문제는 2학년 트리오와 모나스 아카데미에 있는 벤자민.

이대로 내가 졸업을 하게 된다면 곁에서 봐줄 수 없겠지.

“이건 사실 대외비이지만 아드리아스 학생에게는 특별히 털어놓도록 하지요. 아예 무관한 것도 아니니······.”

데오스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또 무슨 꿍꿍이인가 싶던 찰나 그가 놀라운 사실을 말했다.

“베리얼 마법 학부장이 내년까지만 아카데미에 남아있기로 했습니다.”

“······그건 놀랍군요.”

이건 정말 놀랐다.

게임에서는 없었던 일.

베리얼을 아카데미에 구속하고 있는 것이 황궁이었는데 아무래도 내 행동으로 인해 뭔가가 틀어진 모양이었다.

“이 사실을 아는 이는 저와 바하트 마탑주 밖에 없지요.”

“그런 정보를 제게 알려주신 이유가 있습니까?”

통! 통!

그때 가볍게 문이 두드려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데오스가 채 대답도 하기 전에 문이 열리더니 낯익은 얼굴이 들어왔다.

“연설회장 이후로 처음이군요. 마침 모여있는 것 같아 방문했습니다.”

베리얼 카스테로.

예측 불가의 사이코패스이자 손에 꼽힐 정도로 강력한 워록.

힘이 곧 권력인 세상답게 이렇게 망가진 자도 멀쩡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학부장님.”

그가 개인 교습을 끊은 지도 꽤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뜨문뜨문 약속장소에 안 나오기 시작하더니 결국에는 잠적해버렸었지.

“마침 잘됐습니다. 학부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그렇습니까? 어디까지 이야기 하셨습니까?”

“이제 막 학부장께서 내년까지만 머무른다는 말을 한 참입니다.”

“그럼 나머지는 제가 직접 말해도 되겠죠?”

“그리 하시죠.”

베리얼은 뚜벅뚜벅 걸어와 내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내가 그런 그를 빤히 쳐다보자 베리얼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동안 바빠서 제대로 교습도 해주지 못했군요. 근데도 그리 훌륭한 논문을 작성하시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과찬이십니다.”

“지금부터 제가 할 말은 원래 계획했던 게 아닙니다. 설마 아드리아스 학생이 그런 미친 논문을 작성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거든요.”

“계획이라면······학부장님의 계획 말입니까.”

“예, 제 계획이요.”

베리얼의 계획이라······.

상상만 해도 멀쩡한 계획 같지는 않을 것 같은데.

“아드리아스 학생과 이전에 대화를 한 것처럼 제가 개인교습을 해주었던 이유는 단순히 제 이득을 위해서였습니다. 뭔가 뽑아먹을 건 없나 했죠.”

“교장 선생님도 계신데 그리 말해도 되겠습니까?”

“말하지 못할 건 뭡니까?”

하여간 또라이 새끼.

데오스는 이 상황을 오히려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근데 아드리아스 학생의 마법 재능은 평균보다 조금 더 나은 정도? 모순으로 만든 꽃과 같은 번뜩임이 보이지 않았죠. 그래서 교습을 중단했습니다. 시간 낭비라고 보았죠.”

“이해합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하군요. 하지만 제가 틀렸습니다. 역시 아드리아스 학생은 남들이 가지지 못한 번뜩임을 가지고 있어요. 그건 마법적 재능과 다르다는 걸 제가 뒤늦게 깨달았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대체 뭐지?

데오스가 먼저 말을 해주려 했던 걸 보면 그다지 이상한 게 아닌 것 같은데 말이 길어질수록 궁금해진다.

“전 아카데미를 그만둡니다. 그리고 제 빈자리는 한동안 공석이 될 확률이 높지요. 워록 정도의 마법사가 아카데미의 학부장을 맡는다는 건 미친놈이 아닌 이상 없거든요.”

“그래도 로들렌의 학부장 자리면 꽤 좋은 위치 아닙니까?”

“아드리아스 학생. 마법사의 본질을 당신도 알고 있을 텐데요?”

우문이었다.

그의 말대로 마법사들의 본질은 이기심에서 발로된다.

그런 마법사들의 끝판왕격이 워록급 마법사.

그 이기심이 다른 마법사들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을 거다.

“학부장의 자리는 행동반경이 굉장히 제한적입니다. 물론 저야 강제로 앉았던 자리인지라 제멋대로 행동했지만 다른 이들은 그러지 못할 공산이 크죠.”

“좋지 않군요.”

“디바우러같은 이들이라면 좋아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와 같은 자유로운 마법사들은 족쇄와 같죠. 게다가 의무까지 지고 있으니까요.”

스윽-

말을 하던 베리얼이 갑자기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의 감정 없는 인형 같은 눈이 뱀처럼 나를 훑었다.

“사족이 길었습니다. 아드리아스 학생, 혹시 교수의 직함을 달아보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갑작스럽군요.”

갑작스럽다 못해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갑자기 교수를 하겠냐는 제의를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미 저희 둘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나온 결론은 아드리아스 학생이라면 충분히 교수의 직함을 달만한 실력임을 이번에 입증했다고 봤습니다.”

“학부장님.”

나는 천천히 입을 떼었다.

“혹시 황궁에서 허락을 받은 조건이 그겁니까.”

“음?”

내 말을 들은 데오스가 도리어 의문이 담긴 콧소리를 내었다.

그가 이게 무슨 말이냐는 듯 베리얼을 바라봤다.

베리얼의 표정은 여전히 미소 짓고 있었다.

아무 감정도 없는 얼굴로.

“역시 제 제자답습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겁니까?”

“저를 가지고 거래했군요.”

“그렇습니다.”

황궁에서 어떻게 풀려났냐 했더니 이 사이코패스가······.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온다.

“제게는 그런 말씀이 없으셨잖습니까?”

데오스가 그답지 않게 살짝 당황한 모습을 내비쳤다.

그러나 베리얼은 철판을 깐 듯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나쁠 건 없지 않습니까. 이건 아드리아스 학생에게도 이득이고, 제게도 이득입니다. 아드리아스 학생에게 내건 조건이 이것 하나가 끝이 아니지 않습니까?”

“조건?”

일단은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봐야겠다.

“아드리아스 학생. 이미 당신의 실력은 웬만한 교수를 뛰어넘었습니다. 물론 검으로요. 하지만 당신의 전공은 마법. 그러니 특별한 자리를 내년에 만들기로 했어요.”

“설마 두 개를 섞은 겁니까.”

“그렇습니다. 역시 똑똑하시네요. 하지만 바빠질 걸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제의를 받아들이고 교수가 된다면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정규 교과를 직접 개설해서 편성해도 되고, 안 해도 됩니다. 학부장처럼 그저 개인 교습을 해주어도 무관해요.”

교수의 직함을 달 되, 권리만 챙기고 의무는 내다버린 자리.

확실히 보수만 괜찮다면 나쁘지 않다.

안 그래도 졸업 이후에 플레이어블 캐릭터들과 떨어지게 되는 걸 걱정했는데 만약 받아들인다면 대놓고 가르쳐도 된다는 뜻이니까.

‘게다가 디에네도 로들렌 마탑에 들어가겠지. 아카데미에 있는 이상 자주 볼 수 있을 거야.’

한 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은 베리얼에게 놀아난다는 점.

저 미친놈이 설마 나를 황궁에 팔아먹었을 줄은 짐작도 못했다.

아무래도 내가 흑마법사인 점이나 선대와 황궁의 비사도 알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는 나를 거래조건에 넣을 생각을 하지 못했겠지.

“거래는 공평해야 거래지요.”

“그렇죠.”

“지금부터 제가 그 제의를 받아들이게끔 설득해보십시오.”

억울해서라도 이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의 말대로 이 제안은 내게도 좋은 일이었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내 말을 들은 베리얼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갔다.

< 237화. 진로 그리고 제안 > 끝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