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4화. 예상치 못한 만남 >
교장실 문을 두드리자 곧바로 데오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이내 문을 열자 안 그래도 고약했던 마나 냄새가 진동을 하기 시작했다.
“자네가 이 논문의 제 1저자인가?”
“어허, 카르멘. 서로 통성명과 인사부터 하고 말해야 하지 않겠나?”
“그래! 내가 너무 급했군!”
들어서자마자 저들끼리 말을 주고받는 게 어질어질했다.
미리 도착한 디에네에게 눈인사를 하고 데오스한테도 인사를 건넸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제가 논문 준비로 바빠 연락을 못 받았습니다.”
“오오! 역시 자네가 제 1저자군!”
카르멘이라는 덥수룩한 수염의 마법사가 호들갑을 떨었다.
누가 워록 아니랄까봐 광인처럼 보이는 모습이었다.
“하하. 구도자들께서 우리 학생에게 관심이 많으시군요. 일단 아드리아스 학생과 루시아 학생은 편히 앉으시죠.”
갑자기 방문한 루시아에게도 자리를 권하는 데오스가 노련했다.
난 디에네의 옆에 앉으며 맞은편에 있는 마법사들을 보았다.
총 열 다섯 명 정도 되는 인원들이었는데 그중 맞은편에 앉은 세 명만이 디바우러였다.
교장실의 다른 좌석에 앉은 나머지는 전부 그들의 조수들.
“일단 제가 설명해드리죠, 아드리아스 학생. 이들은 포트리온에서 온 구도자분들로 아드리아스 학생과 디에네 학생께서 공동 집필 중인 논문을 보고 찾아왔습니다. 논문과 관련해서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니 부디 좋은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군요.”
구도자는 디바우러를 좋게 돌려 말하는 호칭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구도자라는 단어보다 디바우러라 불리었고, 그들도 딱히 자신들을 뭐라 부르든 연연하지 않았다.
아무튼 내게 있어서도 나쁘지 않은 기회였다.
대부분의 디바우러는 명예욕이나 물욕이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내 논문을 빼앗으려는 것보다 말 그대로 지식적인 탐구를 위해 찾아왔을 가능성이 높았다.
“포트리온의 마법사들이 저희 논문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자네가 제 1저자이지? 그렇지?”
“그렇습니다.”
아까부터 제 1저자에 집착하는 카르멘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바하트의 딸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지만 자네는 처음이군. 이름이 뭐라고?”
“아드리아스 크롬웰입니다.”
“처음 들어봐!”
수염을 덜덜 떨며 말하는 카르멘은 확실히 정상인이 아니었다.
저러다 갑자기 눈깔이 돌아가서 마법을 난사하는 건 아닌가 걱정되는 무렵에 또 다른 디바우러가 말을 걸어왔다.
“디에네 양과 먼저 대화를 나눠서 들었습니다만 그대가 이번 논문의 진짜 주인이라죠?”
“디에네가 없었으면 한낱 망상에 불과했던 내용입니다. 주인이라고 불리기에는 그녀의 공이 더 크군요.”
“흐음. 겸손하시군요.”
처음 카르멘을 말렸던 애꾸눈의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상징적인 특징 덕분에 나는 상대가 누군지 단번에 알아봤다.
‘말려 죽이는 비앙테.’
포트리온에 입성하기 전까지 엄청난 명성을 떨쳤던 전투 워록.
예의바른 행동과 말투였지만 방심할 수 없는 상대였다.
“어쨌든 당사자들이 모두 모인 것 같으니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지. 그쪽도 연관이 있는 자인가?”
마지막 디바우러가 루시아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자 디에네가 대신 대답해주었다.
“네, 저희를 도와주고 있는 친구에요.”
“좋군.”
카르멘과는 달리 말끔한 인상의 노인은 누가 보아도 마법사라는 게 연상이 될 외형이었다.
그는 이내 탁자에 우리가 주변에 배부한 논문 복사본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일단 무단으로 자네들의 논문을 읽은 걸 사과하지. 가끔 이쪽의 마법학부장과 연락을 하고는 하는데 흥미로운 주제의 논문이 나왔다고 해서 말일세.”
어떻게 입수했나했더니 베리얼의 짓이었군.
잘했다, 베리얼.
“논문의 진행은 어느 정도지?”
“9할 이상입니다.”
“아직 좀 남았군.”
9할 이상이라고 말했지만 디바우러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그들도 우리가 말하는 9할이 무슨 의미인지 아는 거겠지.
“그래도 등급을 배정하기에는 충분하다. 그래서 우리가 대신 등급을 배정했는데 괜찮은가?”
“오히려 감사합니다.”
논문의 등급 배정은 해마다 공신력 있는 마법사들을 뽑아 그들을 통해 한 해 동안 나오는 논문에 대한 등급을 매기는 일이었다.
그러나 여기에 예외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디바우러가 매기는 등급이었다.
이들이 매긴 등급은 훨씬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특히 아무 논문이나 등급을 매기지 않기에 논문의 저자들로서는 누구나 디바우러가 등급을 매겨주길 원했다.
“등급을 벌써 매겼다는 말씀이신가요?”
듣고 있던 디에네가 조용히 끼어들었다.
그러자 옆에 있는 비앙테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사실 그냥 공표해도 되었지만 저희 셋이 개인적으로 논문의 저자들을 만나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오게 된 거죠.”
그 뒤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슬쩍 곁을 보니 디에네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연기하는 게 눈에 보였고 루시아는 대화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상대를 견적내고 있는 게 보였다.
“사실 따지고 보면 웃긴 일이지. 우리가 뭐라고 남들의 연구 성과에 등급을 매기겠는가.”
침묵을 깬 것은 셋 중의 리더로 보이는 디바우러였다.
아직까지 그의 이름을 듣지 못해 누구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나라고 모든 인물을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
“게다가 자네들이 성립해낸 이번 논문은 감히 우리가 평가하기도 미안하네. 하지만 학계의 발전을 위해 우리가 등급을 매기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되겠지.”
“저희는 오히려 영광입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그, 등급을 말하기 전에 질문을 좀 해도 되겠나?”
“말씀하십시오.”
노인의 눈빛이 순간 번뜩였다.
마치 날 꿰뚫어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난 편안하게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있을 뿐이었다.
“이 논문. 생각 자체는 누구나 할 수 있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말이야. 이 생각을 논문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야. 확신의 영역이지.”
지긋한 마나의 향기가 짙게 깔렸다.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공기가 무거워지는 기분이었다.
“확신, 그래, 확신! 확신이 없으면 시도는 무슨 쳐다도 보지 않을 주제! 예를 들면 이런 말이야. 아무 명성도 없던 사람이 갑자기 길에 굴러다니는 돌을 주워들고는 이게 보석의 원석이라 말하며 가공하는 일이나 마찬가지. 남들은 그 돌을 눈으로 보았지만 그게 보석의 원석이라는 확신을 할 수 없는 거야. 아니, 오히려 원석이라며 확신하는 녀석이 미친 게지.”
그의 말이 맞다.
내 논문은 확신이 없으면 애초에 만들어질 수 없는 논문.
아주 정확한 비유를 들어줬다.
“근데 자네는 그 돌을 주워다 마치 원석이라도 되는 것처럼 가공해버렸지. 그 확신에 대한 근원이 궁금하네.”
“그건 말할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대답할 수 없었다.
내가 게임 속의 정보를 알기 때문에?
아니다. 이번 논문의 주제 자체로 인해 발생한 문제다.
내가 이번 논문을 확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게임 속의 지식도 있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있었다.
애초에 게임 속에서도 그 원인으로 인해 발견했던 지식.
“대답은 그걸로 충분하네. 그냥 막 연구한 것이 아닌 근원이 있다는 것은 그 말로도 충분히 이해했으니.”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행히 그는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다.
그러나 카르멘은 아니었나 보다.
“왜 말을 못하지? 난 궁금하다!”
“제 개인적인 사정입니다. 영업 비밀이라고 할 수 있죠.”
내가 점잖게 말하자 비앙테도 거들었다.
“그가 우리에게 말할 의무는 없죠. 게다가 우리는 손님으로 온 자리이니 부디 예의에 맞게 행동하십시오, 카르멘.”
“끄응.”
카르멘이 앓는 소리를 내며 풀이 죽었다.
아무래도 비앙테의 말에는 거스르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시간을 오래 끌었군. 자네들과 이야기하고 싶은 게 많으니 우선 우리가 정한 등급부터 말해주도록 하지.”
리더가 손을 허공에 한 번 긋자 화려한 색상의 문자가 새겨졌다.
몽환적인 색감으로 가득한 그 문자는 곧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글자가 되었다.
“저건······.”
“이번 논문의 등급은 ‘등급 외’일세.”
처음 들어보는 등급에 모두들 할 말을 잃었다.
보편적인 논문의 등급은 5부터 1까지 숫자로 매겨지는데 번외로 특급 등급이 있었다.
그러나 특급도 아닌 등급 외라니 나조차도 처음 들어봤다.
“등급 외라는 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요.”
그때까지 우리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고 듣고만 있던 데오스가 물었다.
우리의 물음을 대변한 그의 질문에 리더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마 생소한 등급일 게지. 사실상 나온 적이 없다 해도 무방한 등급이니.”
그는 비앙테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비앙테가 이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등급 외는 말 그대로 등급을 벗어났다는 이야기에요. 특급도 그런 분류지만 특급과의 차이점은 보편적인 지식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하는 점입니다.”
“보편적인 지식?”
“네. 그대들이 만든 이 논문은 보편적인 지식이 될 겁니다. 한 마디로 세상의 상식이 되어야 할 만큼 학술적 가치가 높다는 뜻이지요.”
조금은 얼떨떨했는데 비앙테의 설명을 듣자 터무니없이 높게 쳐준 모양이었다.
디에네도 그리 느꼈는지 살짝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보편적 지식이라면, 예를 들어 5대 원소와 같은 기본 상식을 말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이 논문이 완성되고 다시 한 번 제대로 심사를 받은 후 통과가 되면 모든 마법학계에 변동이 일어날 겁니다. 물론 통과가 된다고 해도 충분한 연구가 진행이 되어야겠지만요.”
비앙테의 설명이 끝나자 데오스가 경악한 표정으로 우리와 디바우러들을 번갈아보았다.
그러나 놀란 것은 디에네와 루시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대는 놀라지 않는군.”
리더인 노인이 미소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물론 나도 등급 외라는 생소한 단어에 고개가 갸웃해졌지만 놀라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굳이 알릴 필요는 없겠지.
“표정 관리를 하고 있을 뿐 놀라지 않은 건 아닙니다.”
“재미있군. 여유롭게 거짓말까지 하는 모습이라······.”
나름 그럴 듯한 이유를 댔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눈치 챈다.
역시 디바우러인가.
그래도 잘못한 건 없었기에 당당했다.
“사실 난 자네의 이름을 오래 전부터 들어왔기에 잘 알고 있었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군. 역시 대단해.”
날 알고 있었다고?
디바우러는 속세와는 단절된 이들.
그런 그가 나를 알고 있었다는 게 신기했다.
“과찬이십니다. 전 일개 아카데미 학생일 뿐입니다.”
“그래. 등급은 말했으니 이제 이 논문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보자꾸나.”
“그전에 제가 먼저 질문을 해도 되겠습니까?”
“말해보게.”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그러고 보니 통성명을 못했군.”
리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카르멘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난 카르멘. 주로 아티팩트를 만들지.”
“비앙테입니다. 젊었을 적에는 방랑하며 살았었지만 지금은 포트리온 구석에서 고대 마법이나 연구하는 일개 마법사죠.”
둘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디에네와 루시아는 이름을 듣고 그들의 정체를 유추했는지 놀란 탄성을 토해냈다.
특히 비앙테를 향한 그들의 눈길은 동경이 가득 담겨있었다.
내 기준에서는 그냥 피도 눈물도 없는 무자비한 배틀 메이지인데 말이야.
“지금까지 모습을 속여서 미안하네.”
마지막으로 남은 리더가 입을 열었다.
그는 미안하다는 말과 달리 웃는 낯이었는데 우리에게 양해를 구했다.
“본 모습은 사정상 보여줄 수가 없네. 하지만 이름은 말해줄 수 있지.”
생각보다 뜸을 들인다 싶었을 때 본 모습이 아니라는 말에 어렴풋이 무언가가 내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설마······.’
내 생각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그가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맥스웰 펜드래곤. 종종 인격이 바뀌니 양해를 부탁하네.”
포트리온의 주인.
그가 내 눈 앞에 있었다.
< 234화. 예상치 못한 만남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