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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229화 (229/415)

< 229화. 떠오르는 크롬웰 >

들어오자마자 느껴지는 싸늘한 분위기에 의아함을 느꼈지만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곧바로 치고 들어오는 황제의 말에 살짝 곤란함을 느꼈다.

황제가 미카엘라를 보낸 건지,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어서 묻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조금 전에 만나기는 했습니다.”

“부디 자네가 현명한 판단을 내렸으면 좋겠군.”

뭔 소리야.

애초에 아무 대화도 나눠보지 못하고 얼굴만 잠깐 마주쳤을 뿐이다.

‘오히려 이걸 노린 건가.’

미카엘라가 나를 찾아온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이러한 오해를 만들기 위함이 아니었나 싶었다.

다음에 만나면 나를 이용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줘야지.

갑자기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탓에 그의 표정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내려다보고 있는 시선만은 확실하게 느껴졌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무려 메이튼의 습격을 미리 대비하여 하마터면 함락당할 뻔한 것을 최소한의 피해로 구해냈지. 북부 전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병참기지를 개인의 기량으로 지켜 내다니 놀라운 일이야.”

“운이 좋았습니다.”

“운?”

황제가 천천히 계단을 내려와 내 근처까지 다가왔다.

그러자 어느새 나타난 근위기사가 그의 곁을 호위하려 들었다.

“물러나라.”

“예, 폐하.”

황제가 호위를 물리는 것이 들리고 이내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어라.”

그의 말에 따라 고개를 들어 그의 인중을 바라봤다.

고개를 들어도 눈을 마주치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기에 한 행동이지만 표정이 전부 보였다.

그는 오만한 눈빛으로 입가만 미소 짓고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라 자네가 고용한 모하임의 용병들도 수많은 전공을 세웠지. 음, 아주 좋아. 싱클레어를 제치고 자네가 1위를 차지할만해.”

“과분한 일입니다.”

“우리 재상도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더군. 자네가 전공 1위인 것은 과분한 처사라고 말이야. 그도 그럴 것이 모하임이 세운 전공들이 아니었으면 메이튼을 구한 것만으로 1등 공신이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의견이었는데······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굳이 이 질문엔 겸손할 필요는 없겠지.

그것보다 카자프 공작이 나를 견제하려고 공을 낮추려 한 모양인데 왜 다시 전공 1위로 두었는지 모르겠군.

“모하임이 제게 힘을 빌려준 것은 양 가문 간의 정당한 거래였습니다. 만약 이와 같은 일이 전공으로 취급되지 못한다면 다른 가문들이 용병을 사용하는 것도 모두 전공에서 제외해야 합니다.”

“그니까 자네 말은 재상이 틀렸다는 건가?”

“저의 경우만 예외로 두지 않으셨으면 했을 뿐입니다.”

사위가 조용했다.

사람들이 숨을 죽인 채 나와 황제의 대화를 듣고만 있었다.

황제는 지그시 나를 바라보더니 코웃음을 치며 다시 옥좌로 돌아갔다.

“맞는 말이야. 하지만 자네가 말한 말에 한 가지 이야기해주자면, 짐의 말이 곧 상식이고 법이다. 예외? 짐 앞에서 그런 단어는 의미를 잃지.”

좌석에 앉아 턱을 쓰다듬은 황제가 이어서 말했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백작. 이번 전쟁의 전공으로 황제직할령인 크롬웰을 주겠다. 듣자하니 상단도 운영을 한다지? 그대의 상단에는 제국의 영지 내에 존재하는 모든 통행세를 감면해주지.”

통이 큰 황제의 포상에 그동안 조용하던 사람들이 놀란 탄성을 자아냈다.

나도 이건 예상하지 못했던 터라 조금 놀랄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기껏해야 작은 마을 두어 개 정도 줄줄 알았다.

“폐, 폐하······.”

“뭔가, 재상.”

“······혀, 현명하신 결정이옵니다.”

헥토르가 썩은 표정으로 황제를 불렀다가 꼬리를 마는 게 원래 주기로 했던 포상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흐음, 내가 볼 때는 이것만으로도 부족한 것 같아. 우리 제국의 자랑이라고 할 수 있는 인재인 크롬웰 백작에게 내가 더 해줄 수 있는 게 없을까?”

“황은이 망극합니다, 폐하.”

“생각해보니 자네는 아직 혼인을 하지 않았더군. 짐의 슬하에 자식을 여럿 두었는데 그 중 한 명은 어떤가?”

“폐, 폐하!”

황제의 폭탄발언에 결국 헥토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게 보였다.

그러나 아무도 그런 그를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전의 황제가 발언한 내용으로 충격에 빠져 웅성대고 있었다.

“재상. 앉게나.”

“황가의 혈손은 매우 귀합니다. 부디 신중히 결정을 내리시길······.”

퉁!

황제가 검집을 바닥에 내리찍었다.

그러자 헥토르가 움찔하며 자리에 앉았다.

“짐이 곧 황가이고 황궁이거늘 무슨 소리인가. 크롬웰 백작에게 보낼 자식은 출가외인이다. 그냥 주겠다는 소리야.”

일이 복잡해진다.

나는 일단 상황을 지켜보다 천천히 나섰다.

“폐하께서 저를 생각해주시는 마음이 하해(河海)와 같아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래, 알고 있으면 됐다.”

“그렇습니다. 알고만 있어도 충분하지요.”

“······그게 무슨 소리지.”

“제게 황녀를 내리시겠다는 마음만으로도 너무 벅찹니다. 말씀만으로도 이미 가문의 영광입니다. 허나 제가 아직 많이 부족하여 감히 폐하의 보은을 감당할 자신이 없습니다.”

“감히 짐의 제안을 거절하겠다는 소리인가.”

낮게 깔리는 황제의 목소리에서 은은한 분노가 느껴졌다.

참 곤란하게 만드는 걸 좋아하는 양반이군.

“제게 시간을 주실 수 있습니까?”

“시간?”

“말했듯이 아직은 제가 많이 부족합니다. 오히려 폐하의 성은에 누가 될 정도로 보잘 것 없지요.”

나는 조곤조곤하게 할 말을 했다.

황제의 시커먼 속내에 어울려 줄 필요도 없었고, 만에 하나 진짜로 날 위한 거였어도 내 쪽에서 사양이다.

그래도 무턱대고 거절할 수는 없으니 시간을 버는 쪽으로 말해봐야지.

“시간을 달라는 소리는 그대가 부족하지 않게 되었을 때 짐의 성의를 받겠다는 이야기인가?”

“그렇습니다.”

“짐의 보은은 그런 식으로 형편 좋게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황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옥좌에 턱을 괴며 웃었다.

“짐의 제안을 거절하려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이겠지.”

“감히 어찌 제가······.”

“허, 표정 하나 변함없이 뻔뻔하게도 말하는구나. 흥이 식었다. 마침 자네가 마지막이었으니 짐은 이만 퇴실하도록 하지. 말했던 보상을 안주진 않을 테니 걱정 말거라.”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일어서더니 그대로 황제만이 지나다니는 뒷길로 사라졌다.

그야말로 변덕의 끝판왕.

설마 저 정도로 막 나가는 성격일 줄은 나도 몰랐기에 어안이 벙벙했다.

물론 목적했던 바를 달성하고도 남아 큰 보상을 얻은 데다, 아무 문제없이 논공행상이 끝났기에 금방 추스를 수 있었다.

“끄, 끝난 건가.”

“가도 되는 거겠지요?”

“허어, 참.”

마치 정지되었던 시간이 다시 흘러가듯 홀에 앉아 있던 귀족들이 주섬주섬 일어나며 말문을 트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여전히 옥좌 앞에 있는 나를 보며 수군댔다.

“크롬웰이 다시 부흥하겠군.”

“크롬웰의 전성기가 언제였지?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한데 설마 저런 녀석이 나타날 줄이야.”

“폐하께서 황녀를 내주실 정도면 대세는 크롬웰인가?”

“미쳤군. 모하임과 알븐이 이번 연회에 일찍 온 이유를 알고들 있겠지? 아직 연회가 이틀 남았으니 줄을 대놓아야겠어.”

난리가 났군.

저런 반응들을 보면 황제가 의도한 것 같았다.

그 목적이 뭔지 몰라서 찜찜하군.

한 번 의심이 되기 시작하자 크롬웰 영지를 준 것도 뭔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애초에 황제가 내게 호의를 보일 이유는 없으니 크롬웰 영지에도 확실한 조사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준 걸 안 받을 수는 없으니까 일단은 영지 이전 수속이나 먼저 처리해야겠다.’

에이미가 기뻐하겠군.

그거면 됐다.

**

남은 연회 기간 동안 온갖 귀족들에게 둘러싸인 채 보냈다.

머리 아픈 일이었지만 공과 사는 구분할 줄 알았기에 최대한 그들과 어울리며 친분을 다지는 척했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제파르 교단의 간부인 제레드와 후에 화신이 되는 호넨의 동태를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사를 바로 간다고?”

“응.”

연회 마지막 날.

모든 일정이 끝나고 돌아가는 일만이 남았다.

나는 곧바로 아카데미에 돌아가기로 했기에 에이미에게 인사를 건네러 왔다가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급하게 갈 필요 없어.”

“상단을 만든 것도 결국 크롬웰을 되찾기 위해서였어. 우리 가문의 뿌리가 되는 곳.”

“그런 곳이니까 조금 더 준비를 하고 가야지.”

“준비는 사실 끝났어. 말은 안 했는데 항상 크롬웰을 되찾을 생각을 하면서 조금씩 준비해뒀거든.”

“몇 십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을 벌써부터 준비하고 있었다고?”

“그게 내 보람이니까.”

아직 황제의 꿍꿍이를 모르는 상태에서 에이미를 보내기가 싫었다.

사실 막시민 커플과 살렘이 있는 한 그녀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기는 힘들었지만 노파심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아, 이리 와봐.”

“왜?”

“이거 받아.”

나는 왼손에 끼워진 크롬웰의 인장반지를 빼내 에이미에게 건넸다.

“이걸 왜 나한테 줘?”

“지금부터 네가 영주 대리야. 어차피 바로 간다며? 조금 더 빨리 말해줬으면 서류 작업을 해줬을 텐데 그럴 시간이 없으니까 이걸 챙겨가야지.”

“아······.”

내가 에이미의 손을 잡고 억지로 쥐어주자 그녀는 잠시 멍하니 손바닥 위에 올려진 반지를 구경했다.

“상단은 어떻게 할 거야?”

“어, 응? 어. 계속 해야지. 딸린 식구가 몇인데. 그리고 처음에 영지가 생기면 돈이 많이 들어. 여러모로 잘 되고 있는 상단을 접을 필요는 없지.”

“그래. 잘 생각했다.”

나는 에이미의 머리를 한 번 헝클어뜨리며 떠날 준비를 마쳤다.

“간다. 무슨 일 있으면 내가 준 아티팩트 사용하고.”

“1년에 한 번 쓸 수 있는 건데 꼭 아무렇게나 쓰라는 듯이 말하지 마.”

손을 흔들며 먼저 황궁을 빠져나왔다.

황궁의 출입구에는 먼저 나와 있던 아카데미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는 잘 했어요?”

루시아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일이 있어서 그런데 먼저 가줄래?”

“엥? 무슨 일이요?”

“이번에 받은 영지 관련 일 때문에 누구를 좀 만나봐야 될 것 같아서.”

내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생겨난 영지인 만큼 이해해주는 눈치군.

“그럼 괜히 기다렸네. 저희끼리 먼저 가요.”

“다시 한 번 축하해. 영지 되찾은 거.”

“예, 감사합니다.

디에네가 밝은 표정으로 말하며 루시아와 함께 걸어갔다.

그러나 비비안은 그들의 뒤를 따라가지 않고 제자리에 서있었다.

“비비안 언니?”

“난 아드리아스랑 같이 갈게.”

비비안이 내 곁에 나란히 섰다.

그리고는 내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 돼?”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비비안한테는 시간 낭비일 걸요.”

“괜찮아.”

지금 만나러 가는 인물이 딱히 위험한 것도 아니니 상관없으려나.

솔직히 혼자 가는 게 제일 편했지만 전쟁 때 위험했었던 비비안의 모습이 눈에 밟혀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아예 그냥 둘이 사귀어버리지 그래요? 아주 꽁냥꽁냥 죽이 잘 맞네.”

“루시아.”

디에네가 나지막이 루시아를 나무랐지만 그녀는 마치 삐진 듯 고개를 돌리며 먼저 걸어가 버렸다.

그런 루시아를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던 디에네가 우리에게 말했다.

“그럼 우린 먼저 갈게. 아카데미에서 봐.”

“예.”

“응.”

그렇게 두 명이 사라지자 예전에 느꼈던 그 어색한 공기가 주변을 감쌌다.

괜히 더 조용해진 것 같아 뭐라도 말을 꺼내려는 순간 비비안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방해됐어?”

“뭐가요?”

“내가.”

내가 그런 분위기를 풍겼나.

나는 고개를 저으며 걷기 시작했다.

“아닙니다. 가시죠.”

“응.”

지금 만나러 가는 인물은 다름 아닌 에반이었다.

통곡의 협곡에서 나를 도와주고 다시 암흑가를 접수하러 떠난 그는 내게 접선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크롬웰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

황제의 함정일지도 모르니 이왕이면 구체적인 정보가 필요했다.

아마 에반이라면 큰 도움이 되겠지.

이김에 아예 에반의 본거지를 크롬웰로 옮기라고 해도 되겠군.

‘황제의 함정이 아닌 것만 확실해지면 진짜 기반이 생긴다.’

야만족과의 전쟁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태풍이 불거다.

그리고 내가 있는 곳이 곧 태풍의 눈이 되게 만들어야했다.

< 229화. 떠오르는 크롬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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