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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212화 (212/415)

< 212화. 장막의 그림자 >

“고생했다.”

저 멀리에서 허공으로 사라지는 니켈과 용아병들을 향해 중얼거렸다.

이미 보르기옌 내부까지 들어온 적들은 모두 전멸한 상황.

밖에는 때마침 등장한 모하임 덕분에 걱정할 필요가 없었기에 이만 소환을 해제했다.

“푸헤헤헤!”

외성벽 위에 서서 전황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누구보다 먼저 성벽 가까이까지 다가온 모하임 가의 인간병기, 클루소가 괴상한 웃음을 터트리며 야만족들을 쓸어 담고 있었다.

“크롬웰 각하?”

그리고 그 뒤를 바쁘게 쫓고 있던 대너드가 나를 보며 아는 척을 했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각하! 이곳에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그쪽으로 올라가죠.”

나는 성벽 위에서 말하고 있었기에 대너드가 올렸던 고개를 다시 내리며 야만족들을 과격하게 처리했다.

신사다운 말투와는 다르게 거칠기 짝이 없는 손속이었다.

“으하하하하!”

동시에 저 멀리서 금빛의 오러가 터져 나오며 미누스의 광기 어린 표정이 보였다.

아무래도 잔뜩 신이 난 모양인데 그의 활약이 곧 내 전공이나 마찬가지라 기꺼울 따름이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클루소를 놔두고 성벽 위로 올라온 대너드가 피 묻은 검을 털며 환하게 반겼다.

역시 모하임이라고 해야 하나.

그들의 행동 하나, 하나가 평소와는 달리 뭔가 어긋난 느낌이 들었다.

“모하임이 이곳으로 올 줄은 몰랐군요.”

“전하께서 열을 발산할 곳이 필요했습니다. 아무래도 가장 치열한 전장이 좋을 것 같아서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달려왔죠. 그보다 각하께서는 클라우디아에 계셨던 것 아닙니까?”

“저도 조금 전에 도착했습니다. 보르기옌의 지원 요청을 받고 함께 가던 병력들을 앞질러서 먼저 도착했죠.”

“그렇다면 클라우디아 후작가의 지원 병력도 오고 있는 중이군요?”

“예.”

내 말을 들은 대너드가 곤란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지원이 오는 걸 꺼림칙하게 여기는 게 분명했다.

“곤란하군요. 전하께서 몸을 풀기에도 적은 숫자라 나누기에는 아쉬운 데······.”

적의 숫자가 적음을 아쉬워하는 그를 보자 역시 모하임 공작가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간댕이가 부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가 걱정할만한 일은 없을 것이기에 나는 미리 말했다.

“제가 급하게 와서 그렇지 클라우디아에서는 내일쯤에야 도착할 겁니다.”

“그거 참 다행이군요! 한시름 덜었습니다.”

원래였으면 반대의 반응이 나와야할 것 같은데.

뭐, 좋은 게 좋은 거다.

전투는 순식간에 끝나가고 있었다.

모하임의 전투력은 다른 공작가와는 달리 초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병사들에게서 나온다.

한 명, 한 명이 일당백의 베테랑들.

오러 마스터나 워록과 같이 전장을 좌우할 수 있는 압도적인 초인이라는 말은 모하임에는 의미를 잃었다.

실제로 그들은 오러 마스터와 워록을 죽이는 의뢰도 적지만 성공한 적이 몇 번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러고 보니까······.’

오는 도중에 잠깐 확인한 태양의 기사단들이 아니었으면 진즉에 내성까지 뚫렸겠구나 싶었다.

오러 마스터인 레이튼은 적의 오러 마스터와 드잡이질을 하는 중이었는데 얼핏 우세해보였기에 걱정은 없었다.

“후퇴!”

모하임의 광기 앞에 야만족들은 결국 후퇴했다.

레이튼을 상대하던 적의 오러 마스터도 잘 됐다는 듯이 도망치는 게 보였다.

추가로 이어지는 언데드의 출현도 없어 이번 수성전은 이대로 끝나는 분위기였다.

“아니, 이게 누구야! 크롬웰 백작 아니야!”

전투를 막 마치고 온 미누스가 상기된 표정으로 내게 팔을 걸어왔다.

그에게서 짙은 피의 향기가 전해졌다.

“언제부터 있었던 거야? 우리 싸우는 거 봤어?”

“저도 막 도착했습니다. 대단하더군요. 역시 모하임입니다.”

“그래! 넌 기뻐해도 된다! 이 힘이 오롯이 크롬웰을 위해 쓰이고 있으니까!”

그들은 모하임의 깃발만이 아닌 크롬웰의 깃발도 들고 다녔다.

활약을 하는 건 모하임이었지만 이 전공은 엄연히 크롬웰의 것이라는 걸 나타내는 증거였다.

미누스의 말 때문인지 그와 함께 온 병사들의 표정이 시큰둥해졌다.

이 고생을 해도 결국 전공은 모두 내 차지이니 억울하겠지.

“야야, 눈 안 깔아? 내가 따로 챙겨준댔지?”

미누스가 길거리 시정잡배의 그것처럼 건들거렸다.

하지만 그 모습에 그 누구 하나 비웃지 못하고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다.

“근데 외성까지 뚫렸을 줄이야. 히크샴, 이 새끼는 뭐하고 있는 거냐?”

“보르기옌 영주는 황궁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뭐? 지원을 불러놓고 도망갔다고? 이 새끼가······.”

내 말에 전장의 흥분이 아직 가라앉지 않은 듯 미누스가 정장이 찢어질 듯한 근육을 과시하며 영주성 방면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렇게 노려본다고 도망간 히크샴이 돌아오지는 않지.

다행히 대너드가 미누스를 잘 말렸다.

그 사이 내성에 있던 인원들이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모하임 만세!”

“모하임 전하께서 직접 오시다니! 모하임 전하 만세!”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하지만 민간인들은 내성으로 피신해있던 상황이었기에 대부분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가 퍼지자 미누스의 표정이 밝아졌다.

금빛의 미누스라는 말에 어울리게 허영심이 꽤 있는 사내였다.

“하하하! 이 맛에 전쟁을 하는 거지!”

“그렇습니까?”

대너드가 어색하게 맞받아쳐주는 게 꼭 콩트 같네.

미누스가 보르기옌 측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사이, 아직도 갑옷을 벗지 않은 비비안과 피오네가 내게 다가왔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비비안이 할 말입니까?”

안색을 보면 거의 탈진하기 일보 직전이다.

그런 그녀의 옆에는 피오네가 울먹이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비비안 선배님이 저희를 위해서 고생하셨어요. 하마터면 저 앞에서······.”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수고했다고 둘의 머리를 두드려주었다.

사실 나도 니켈의 시야를 확인했을 때 식겁했었다.

다행히 니켈이 늦지 않은 덕분에 그녀가 목숨을 끊는 걸 막을 수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어찌 됐을 지를 생각하자 아찔해졌다.

“비비안, 앞으로는 그런 무모한 행동은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응.”

그녀는 싫은 내색 없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이, 크롬웰 백작! 잠깐 얘기 좀 하지! 레이튼 경도 이쪽으로 오시죠.”

“알겠습니다.”

전후처리로 인해 쉴 틈이 없군.

나는 미누스의 부름에 곧바로 그에게 향했다.

**

아드리아스가 떠나자 자리에 남은 비비안과 피오네는 보르기옌의 집사의 도움을 받아 쉬러 들어갔다.

일개 학생의 신분인 그들은 전후처리 과정에서 제외되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게 감사하다고 느낄 판국이었다.

영주성 내부로 안내를 받은 비비안과 피오네는 이내 같은 방을 배정 받고 욕실에서 흙먼지와 피를 씻어냈다.

쏴아아-

“선배님. 근데요······.”

“음?”

“비비안 선배님이 내성 외부에서 막는 동안 아드리아스 선배님은 안계셨잖아요. 근데 어떻게 비비안 선배님의 행동을 눈치 챈 거죠?”

“그게 무슨 말?”

“아니, 아까 전에 아드리아스 선배님이 그런 무모한 행동은 앞으로 안 했으면 좋겠다고 했잖아요. 근데 생각해봐요. 아드리아스 선배님은 그때 아직 오시기 전이란 말이에요?”

피오네의 말에 비비안도 그제야 이상한 점을 깨닫고 샤워기의 물을 맞으며 생각에 잠겼다.

아드리아스가 도착한 건 분명 비비안이 내성으로 들어오고 나서도 시간이 좀 지난 이후였다.

그러나 마치 자결을 하려던 걸 보기라도 한 것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사실 더 일찍 도착했던 걸까요? 옆에서 보고만 있었나?”

“아드리아스라면 보고만 있지 않았을 거야. 아마 급하게 막으려고······.”

거기까지 말한 비비안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혼란스럽게 입을 손으로 막았다.

그녀의 반응에서 뭔가 있다는 것을 눈치 챈 피오네가 물었다.

“뭐에요? 아드리아스 선배님이 어떻게 알았는지 아신 거예요?”

“아니.”

비비안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직 그녀로서도 심증에 불과한 말이라 함부로 입 밖으로 뱉을 수 없었다.

아니, 설령 심증이 사실이더라도 그녀는 말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요?”

다행히 피오네는 피곤한 기색의 비비안을 건드릴 생각이 없어보였다.

덕분에 비비안은 조금 더 생각에 잠길 수 있었다.

‘그때는 경황이 없었지만 가면의 검사가 나를 지키려고 급하게 뛰어들었지. 검술도 분명 아드리아스랑 비슷했어.’

애초에 이상했다.

흑마법사들끼리 싸움이라도 난 게 아닌 이상 누구는 보르기옌을 공격하고, 누구는 보르기옌을 지키려한다는 것이 특이했다.

“피오네.”

“예, 선배님.”

“제국은 흑마법사의 적이지?”

“예? 뭐, 그렇죠. 정확히는 흑마법사가 제국의 적이죠.”

“응.”

제국의 적인 흑마법사가 제국을 공격하는 것은 별로 특이하지 않았다.

반대로 제국을 지키려는 흑마법사는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 흑마법사가 제국을 지키려고 한 이유,

정확히는 보르기옌을 도와준 이유가······.

‘설마······.’

생각을 좁혀갈수록 한 가지의 선택지가 떠올랐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그는 마법과 검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인물.

그리고 마법에는 종류가 다양했다.

‘아드리아스?’

마침 기사학부 조교인 아이비 클레어와 있었던 마찰도 떠올랐다.

아드리아스를 흑마법사라 의심했었던 그 일화가 떠오르자 비비안은 닭살이 돋아났다.

그리고 그 닭살의 의미는 아드리아스의 정체를 밝혀낸 것에 대한 의미가 아닌 감격의 그것이었다.

‘나를 위해서?’

흑마법사인 것을 제국 내부에서 들키면 즉결처형이었다.

만약 아드리아스가 흑마법사라면 꽤나 큰 위험을 무릅쓰고 보르기옌을 도왔다는 말이 된다.

그 이유는 분명······.

“하아······.”

“선배님?!”

힘이 풀린 비비안이 물줄기를 맞으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놀란 피오네는 안절부절 못하며 그녀를 지탱해주려 했다.

“아니야. 괜찮아.”

“정말 괜찮으세요?”

“응. 조금 지친 것 뿐이야.”

“많은 일이 있기는 했죠.”

“많은 일······. 있었지.”

비비안은 중얼거리며 얼마 전에 아드리아스에게 버려졌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그는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아닐 수도 있지만.”

이 모든 가정은 아드리아스가 흑마법사여야 성립이 됐다.

어쩌면 자신을 떨어트려 놓은 이유도 아드리아스가 본인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고 생각되었다.

“피오네.”

“일으켜드릴까요?”

“아니. 그것보다 아드리아스가 널 왜 데리고 갔던 건지 다시 설명해줄 수 있어?”

“그냥 부탁하니까 들어줬었어요. 진짜 그게 다에요.”

비비안은 피오네의 대답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샤워기를 잠갔다.

“샤워 끝나셨어요?”

“응.”

“같이 나가요.”

“피오네.”

“예?”

“난 포기하지 않을 거야.”

갑작스런 비비안의 말에 어벙한 표정이 된 피오네가 잠시 말문을 잇지 못했다.

“저기, 그러니까······뭐가요?”

“아드리아스.”

비비안은 짧게 말하고 욕실에서 먼저 걸어 나갔다.

녹빛 머리카락이 찰랑이는 그 뒷모습을 피오네가 멍하니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에? 아드리아스 선배님?”

그리고 표정이 변하며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비비안 선배님, 아드리아스 선배님을 좋아하시는구나!”

**

집회의 한 축을 담당하는 워록, 제스터 르반은 갑자기 들려온 소식에 어깨 위를 덮은 자신의 고깔모자를 움켜쥐었다.

“되는 일이 없군. 이번에는 또 뭐? 모른이 분노를 데리고 제국의 영토로 들어갔다고?”

황제의 진노가 아직까지 집회로 번지지 않은 이유는 순전히 ‘분노’가 집회에 손에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모두가 확인한 뒤, 황제에게 준다는 약조를 한 상황이었지만 서로의 사이가 나빠지면 어찌 될지 모르는 거래였다.

그렇기에 분노를 손에 넣자마자 제국으로 반입은 금지하기로 약조했는데 모른이 그 약조를 헌신짝 내버리듯 어겨버리고 말았다.

“도대체 또 무슨 일을 꾸미는 것이냐.”

“아무래도 아드리아스 크롬웰과 연관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는 지금 제국에 붙어서 콩고물을 먹으려고 하니까요.”

듣기 싫은 이름의 등장에 제스터의 한숨이 늘어갔다.

황제의 신경을 거스르면서까지 전쟁을 격하게 만들고 있는 상황에서 아드리아스가 메이튼을 막아낸 일로 계획이 크게 뒤틀렸다.

그 와중에 보르기옌에서까지 괴상한 언데들의 활약으로 계획이 막혀버리자 제스터의 인내심이 바닥났다.

“죽인다.”

“아드리아스 크롬웰을 말입니까? 모른의 파벌과 전면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괜찮다. 어차피 모른의 이번 후계자 결정으로 불만을 가졌던 자들이 많아. 오히려 아드리아스 크롬웰을 죽일 수 있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녀석들이 대부분일 거다.”

“모른과 루나 펜드래곤은······.”

“고작 그 둘이 무섭다고 당하고만 있으라는 거냐? 그보다 중요한 건 분노가 제국의 땅을 밟았다는 거다! 황제가 이 사실을 알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회수를 하려고 할 거고 만약 황제의 손에 분노가 넘어간다면 지금까지 실컷 까불었던 우리를 좋게 넘기지는 않겠지.”

제스터의 말은 일리가 있었기에 그의 수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노의 자리를 원래대로 돌리는 동시에 아드리아스도 제거한다. 이건 집회의 명운이 달렸을 수도 있는 일인 만큼 전력을 다하지.”

“그 말씀은······!”

“내가 직접 나서겠다.”

제스터의 선언에 그의 수하가 마른침을 삼켰다.

사실상 그의 진짜 정체를 아는 이들이 얼마 없을 만큼 오랫동안 집회에서 활동해온 워록.

일대일로 붙는 전투에서는 지금껏 진적이 없다고 불리는 결투의 귀재.

백전불패 암전(暗轉)의 제스터가 출진을 선언했다.

< 212화. 장막의 그림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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