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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196화 (196/415)

< 196화. 재능 실감 >

“이건 재밌군.”

노아를 본 살렘이 보자마자 꺼낸 첫 마디였다.

그는 노아를 마주치자 단숨에 뭔가를 눈치 챘다는 듯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보자마자 아시는 겁니까?”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오만하지만 살렘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는 대륙 10인이자 워록급 흑마법사였으니까.

“이 사람이 나를 치료해줄 사람인가.”

노아는 그저 덤덤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살렘이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흐흐. 아주 재미난 걸 가져왔어. 역시 아드리아스 넌 좋은 녀석이야.”

“노아는 실험체가 아닙니다. 치료를 부탁드려요.”

“그럼, 그럼. 걱정하지 말라고.”

어쩐지 믿음이 가지 않는 말을 해대는 살렘이 손을 휘저었다.

그의 축객령에 결국 밖으로 나온 나는 이내 다시 본관으로 향했다.

마침 본관은 방금 들려온 통곡의 협곡 함락 소식에 정신이 없었는데 비비안과 아이비가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함께 있었다.

“플로렌스 상단에 연락해야 합니다! 그리고 에버라스트 상단! 에버라스트 상단에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까?”

“황궁에서 곧 전언이 올 겁니다! 미리 대비를 해둬야 해요!”

“전쟁 물자 재고는 어떻게 되고 있지? 계획했던 대로 준비가 되어 있나?”

전장을 방불케 하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수많은 직원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으며 그 가운데에는 에이미와 그녀의 비서인 마리아가 진두지휘를 하고 있었다.

“아드리아스.”

마침 나를 발견한 비비안이 불렀다.

그들에게 다가가자 에이미도 나를 보고는 말했다.

“오빠, 상황이 심각해.”

“그렇겠지.”

“그렇겠지가 아니야. 이제 이건 북부 원정이 아니라 전면전이라고. 원정이라는 단어가 빠지고 말 그대로 전쟁이 됐어.”

그녀는 손톱을 깨물다가 다시 말했다.

“제국에서 모병이 아닌 징집을 시작할 거야.”

“에이미. 잠깐 따라와 봐.”

나는 그녀에게 손짓하고 사람들이 없는 응접실로 들어갔다.

내 뒤를 따라온 에이미는 신경쇠약에 걸린 사람처럼 불안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자, 봐봐. 잘 생각해. 에이미, 넌 제국이 질 거라고 생각해?”

“아니.”

“그러면 애국심이 투철해서 그렇게 불안해하는 거야?”

“······아니.”

“우리 가문을 몰락시키게 한 건 현 황제야. 제국의 힘이 약해지면 오히려 좋은 거야. 백성들은 죄가 없더라도 우리가 그런 것까지 일일이 신경 쓸 수는 없잖아.”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네가 할 수 있는 것만 해. 네가 지킬 수 있는 것만 지켜. 주변이 어떻게 되든 네 알 바가 아니야. 네 사람들만 신경 써.”

“······.”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하고 악착같이 이용해. 네가 벌어들이는 수익만큼 결국 사람들을 구하는 거지. 우리가 아니었으면 헐벗은 몸으로 전장에 나섰어야할 사람들일 수도 있어.”

“하아.”

한숨을 내쉰 에이미가 냉정을 되찾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변했네, 오빠.”

“주제 파악을 하는 거지.”

“그런가? 그게 아니라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 같아서 한 말이야.”

“난 이상주의자가 아니야. 난 내 능력을 알고 있고, 할 수 있는 최선을 알고 있을 뿐이야.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전쟁에서는 나보다 네가 더 도움이 될 수도 있어.”

이미 일어날 걸 알고 있는 전쟁만큼 세를 키우기 좋은 것은 없다.

비록 북부 야만족과의 전쟁인 만큼 승리해도 먹을 게 없지만 분명 누군가는 손해를 보고 누군가는 이득을 보기 마련.

그 중 손해를 본 가문의 영역을 야금야금 삼켜야했다.

앞으로 있을 풍파를 견디려면 단단한 성벽을 미리 준비해야 하니까.

“이번 기회에 성장하고 곧바로 엘프와의 교역이 시작되면 아마 다른 곳이 견제하기도 전에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커져있을 거야. 그렇게 되면 크롬웰을 되찾는 것도 순식간에 해결되겠지.”

“크롬웰······.”

에이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런 그녀가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어깨를 두드렸다.

게다가 지금 그녀의 곁에는 괴물 같은 사람들이 있으니 걱정할 필요도 없겠지.

“오빠는 괜찮아? 혹시 끌려가거나 그러는 거 아니야?”

“제국은 고작 야만족 따위한테 지지 않아. 이번에는 조금 방심해서 요새가 뚫렸다지만 제국에 얼마나 많은 힘이 있는지 너도 알잖아.”

“말 돌리지 말고. 오빠는 어떻게 되는 거야?”

“나도 아직은 모르지.”

어깨를 으쓱 해보이며 그녀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지금은 네 일에 집중해.”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밖으로 나왔다.

밖은 여전히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비비안과 아이비는 마치 유기당한 소동물처럼 멍하니 서있었다.

“비비안, 아이비. 손님들을 모셔놓고 죄송합니다. 제가 안내해드리죠.”

에이미는 상단의 일로 정신이 없을 테니 내가 둘을 데리고 다니기로 했다.

데리고 다닌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구경할만한 뭔가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어색하게 둘을 이끌고 저택을 돌아다닐 때, 나를 구원해주는 의외의 인물이 등장했다.

“왔군.”

변장을 한 막시민이었다.

이자벨의 혈마법으로 변장을 했는데 혈마법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나는 그 구조나 방법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손님인가.”

“예. 안 그래도 방금 이자벨을 만났습니다. 어디 다녀오셨다고?”

“그래.”

그는 나와 내 뒤에 서있는 둘을 보더니 뜬금없이 손짓했다.

“다 같이 따라와라.”

그리고는 뻔뻔하게 어딘가로 걸어가는데 그런 그를 보며 비비안과 아이비가 설명을 바라는 얼굴로 나를 보았다.

이자벨이야 별로 유명하지 않으니 그렇다쳐도 막시민을 뭐라고 설명해야할 지 모르겠네.

“제 스승님의······지인이십니다.”

“네 스승은 누군데? 저번에도 대답 안했잖아, 너.”

아이비가 묻자 머리를 긁적인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할 일도 없는데 일단 가시죠.”

막시민이 왜 따라오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름 뜻이 있겠지.

우리한테 해코지를 할 건 아니니 말을 들어서 나쁠 건 없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나도 알지 못했던 연무장이었다.

새로 지어진 것인지 시설이 꽤나 좋았다.

“저번 라스틸리아에서, 넌 죽을 뻔했다.”

우리가 도착하자 막시민이 뜬금없이 말을 꺼냈다.

괜히 비비안과 아이비를 의식하게 만드는 말을 한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난 앞으로 웬만하면 너의 곁에 서려고 한다. 하지만 막상 네가 죽게 되면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 되겠지.”

“아드리아스가 죽어?”

비비안이 중얼거렸다.

“걱정이 되더군. 이미 난 너무나 오래 방랑을 해왔다. 이자벨이 일어난 이상 이제 그만 정착을 하고 싶어.”

막시민이 등허리에 매단 검을 뽑았다.

이 양반은 변장만 했다 뿐이지 전혀 정체를 숨길 생각이 없어 보이네.

아이비가 벌써부터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듯 막시민의 검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러기 위해서 네가 강해졌으면 한다. 어디 가서 죽지 않을 정도로만.”

그가 검을 까딱거렸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 검술은 다름 아닌 ‘무결’이었다.

‘역시 막시민도 천재급 재능인 모양이네. 보고 바로 베낄 수 있다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겠지.

비록 완벽하게 같지는 않았지만 그 형태와 검술의 의도를 정확히 꿰차고 있었다.

“네가 영감한테 배운 검술이 아닌 갑자기 사용하기 시작하던 검이 이쪽이었지.”

“맞습니다.”

“잔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다시 한 번 말하지. 결국 보검이든 절세의 검법이든 모두 도구일 뿐이다. 중요한 건 검을 휘두르는 네 자신.”

“도구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장인이 도구 탓을 하지 않는 이유는 장인은 이미 최상급의 도구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애초에 도구와 자신을 분리할 거면 검을 휘두르지 말고 주먹을 휘두르는 무투가가 됐어야지.

“네 말을 부정하지 않는다. 나도 평범한 검을 사용하지 않으니.”

그가 자신의 ‘배신 처형자’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껏 나보다 강한 검사는 만나본 적이 없으니 내가 강해진 방법을 말하고 있는 거다. 요즘에는 그저 도구의 힘만 빌리려는 녀석들이 많아져서 조언했지.”

“당신, 설마······.”

아이비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녀는 입을 벌리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다 침을 삼켰다.

“막시민 크로넬?”

“이렇게 생각해봐라. 도구를 네 손으로 직접 만드는 거다. 너에게 가장 어울리고 강력한 도구를.”

아이비의 말을 무시한 막시민이 다시 검을 휘둘렀다.

분명 ‘무결’인데 느낌이 달랐다.

그건 결을 베는 것이 아닌 공간 자체를 베고 있었다.

“하······.”

마나를 싣지는 않았기에 실제로 공간이 베이지는 않았지만 내 검술 천재의 재능은 그가 휘두른 검에서 그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나만 눈치 챈 게 아니었다.

“진짜 막시민 크로넬인거야?!”

“공간이 쪼개졌어.”

막시민의 검을 본 둘의 감상이었다.

“너도 이제 나름 길이 잡혔을 테니 내가 따로 알려줄 건 없다. 그저 방향을 잡아줄 뿐.”

막시민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다양하게 검을 변형시켜서 휘둘렀다.

처음과 같은 임팩트는 없었지만 충분히 영감이 될 만한 움직임들.

“도구를 골라서 사용할 줄 알아야한다. 결국 사용하는 건 너라는 걸 다시 강조하마.”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연무장을 걸어 나갔다.

아이비는 뭔가 근질근질한 표정으로 그를 붙잡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녀의 선택은 결국 나였다.

“저 사람, 막시민 크로넬이지?”

“아니요.”

“뭐가 아니야! 저 검술하며 특유의 짧은 검까지, 저게 막시민 크로넬이 아니라면 누가 막시민이라는 거야?”

“막시민 크로넬이 저희 집에 왜 있습니까.”

나는 그냥 모르쇠로 일관했다.

아니라는데 별 수 있겠나.

그것보다 나는 방금 전에 막시민이 휘둘렀던 검을 따라해 보았다.

의외로 따라하는 것은 쉬웠다.

‘이렇게 인가······.’

공간이 갈라졌다.

아주 미미한 수준으로 별 의미가 없는 정도였지만 이걸 완벽히 체득하면 괴랄한 무기가 될 것 같았다.

“와아······.”

비비안이 멍하니 내가 휘두르는 검을 보았다.

그리고 아이비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걸 한 번에 따라한다고?”

“예? 아, 원형은 원래 알고 있던 검법입니다.”

변형되기는 했지만 원형이 ‘무결’이니 틀린 말은 아니지.

“장난쳐? 나도 눈이 있어. 방금 전에 저 사람이 휘둘렀던 첫 번째 검법이 원래 네 검법이겠지?”

“그렇습니다.”

“두 번째로 휘둘렀던 게 변형된 거고.”

“정확합니다.”

아이비가 이마를 짚으며 머리가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근데 넌 지금 그걸 한 번에 따라한 거잖아?”

“원형을 알고 있으니 따라 하기는 쉬웠습니다.”

“농담하지 마. 그게 쉬운 일이었으면 아무도 고생 안 해. 너, 지금 네가 뭔 짓을 했는지 자각이 없냐?”

내가 대체 뭘 어쨌다고 이렇게 열을 내는 거야.

나는 그저 머리를 긁적이다 다시 검을 휘둘렀다.

“원래 알고 있던 검법에······.”

무결을 휘두르다 막시민의 조언을 받아들여 의도를 바꿨다.

결을 베는 것에서 공간을 베는 것으로······.

아니, 조금은 섬세하지 못했던 탓에 그냥 찢어버렸다.

찌이익-

공기가 찢기는 소리가 나며 일순 검이 지나간 자리가 울렁였다.

“이렇게 쉬운데.”

잠시만.

너무나 당연해서 간과하고 있었는데 내 검술 재능은 천재였다.

천재여서 당연하다고 느끼는 건가? 이거 사실은 어려운 일?

“미친놈.”

결국 보고 있던 아이비가 한 소리했다.

아무래도 어려운 일이 맞는 모양이었다.

“마법사 주제에 어떻게 그렇게 검이 뛰어난가했더니 별명에 딱 맞는 놈이었구만.”

그리고는 굳이 한 마디 덧붙였다.

“괴물 새끼.”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아무래도 난 정말 천재가 된 모양이었다.

< 196화. 재능 실감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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