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188화 (188/415)

< 188화. 자매와 흑마법 >

“무례하다! 감히 그라시아님에게 망발을 하다니!”

도대체 내 말 중에 어떤 부분이 무례했다는 건지 모르겠다.

기분이 좋았던 터라 좋게, 좋게 가려고 했는데 슬슬 짜증이 나네.

“어허, 난 괜찮다. 어차피 우매한 중생이지 않느냐. 한낱 벌레가 어찌 사람의 뜻을 알겠어.”

“미친놈.”

내가 모르는 인물이라면 비중도 크지 않다는 이야기인데 자뻑이 너무 심하다.

그라시아라고 하니 이전에 교장이 보내준 태블릿 문서로 확인한 바가 있었다.

에어코스 아카데미 백금의 그라시아.

카시온 성국의 아카데미인데 아카데미라는 이름을 단 수도원의 일종으로 신학과 마법, 검술 등을 익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라시아는 성국의 추기경 고드릭 헌트의 손자라고 하는데 저 모습을 보면 카시온 성국도 갈 때까지 간 모양이다.

“자네, 방금 나한테 한 소리인가?”

나는 대답할 가치를 못 느꼈다.

괜히 더 지랄 맞아지기 전에 자리를 뜨기로 마음먹은 나는 에어코스 학생들을 무시하고 지나치려 했다.

“저 자가 가, 감히 그라시아님에게!”

“멈춰라!”

소란이 일어나자 주변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상대도 그걸 확인했는지 오히려 더욱 기고만장하게 내 앞을 가로막았다.

“흥! 내게 모욕을 주고 그냥 도망치려 하는 것 같지만 그렇게는 안 되지.”

그라시아는 자신의 손에 낀 새하얀 장갑을 벗더니 이내 내게 던졌다.

물론 나는 슬쩍 고개를 움직인 것만으로 피해냈지만.

“결투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지랄.”

난 착한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참는 성격도 아니고.

아드리아스 크롬웰은 원래 그런 성격이었다.

스스스스스-

알-구르드의 만인지적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평범한 이들이라면 감당하지 못할 전장의 선봉에 섰던 맹장이 지닌 살기였다.

“으음······.”

눈에 띄게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기 시작한 그라시아가 갑자기 주변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이제 좀 정신이 들어?

“여긴 네가 오냐오냐 자라온 카시온이 아니야.”

나는 상대를 똑바로 쳐다보며 다가갔다.

아마 지금쯤 엄청난 살기를 느끼고 있겠지.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그에게는 가혹할 정도의 기운일거다.

내가 다가갈 때 동안 몸이 굳은 채 아무것도 못한 그라시아는 이내 내 딱밤을 맞고 뒤로 넘어졌다.

“크윽.”

“꺼져라.”

나는 기운을 풀고 주저앉은 그를 내려다보았다.

“죽고 싶지 않으면.”

“히끅!”

그라시아는 딸꾹질을 하며 엉덩이를 질질 끌며 물러났다.

저 모습을 보니 왜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인물인지 알겠다.

정말로 별 볼일 없는 녀석이라 그런 거였네.

“백금의 그라시아가 손도 못쓰고 쓰러졌어.”

“역시 아드리아스 선배. 타 아카데미랑은 격이 다른 걸 보여주네.”

주변의 반응을 보면 꽤 실력이 있는 듯한데 내가 볼 때는 모두 속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녀석한테 백금이니 뭐니 하는 이명이 붙은 게 웃길 따름인데.

그라시아는 그제야 사람들이 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얼굴을 붉히며 일어나 어디론가 도망쳤다.

꼴에 창피한 건 알았는지 별말 없이 사라지네.

“아드리아스 선배님. 멋있었습니다.”

“기강을 제대로 잡았네요! 안 그래도 남의 아카데미에서 설치고 다니는 꼴이 보기 싫었는데 정말 대단합니다.”

평소에는 말도 걸지 않던 것들이 내 주위로 몰려와 칭찬을 해대기 시작했다.

외부의 적이 생겼으니 내부로 똘똘 뭉치게 되는 건가.

아카데미의 위상을 높이려는 의도 따위는 1도 없었지만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겠지.

‘굳이 만나고 싶다면 로베르토나 백한기를 보고 싶네.’

그 둘을 제외한 나머지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들이다.

백금의 그라시아, 무투의 호겐, 수수께끼의 노아.

셋 다 모른다.

내가 모른다는 건 네임드가 아닐 확률이 높으니 신경을 꺼도 되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당신이 아드리아스 크롬웰?”

검술 지도를 위해 애들한테 연락해놓고 먼저 도착한 연무장에는 특이한 소녀가 있었다.

작은 체구의 소녀는 후드를 쓰고 앞주머니에 손을 낀 채 멍하니 주변을 구경하다 나를 발견하고는 다가왔다.

마치 모든 감정이 말소된 듯한 메마른 눈을 가진 녀석.

일견 평범해보였지만 내 검술 천재 재능은 단번에 그녀가 가진 힘을 파악하게 해주었다.

“누구십니까?”

“육도(六道)의 노아. 만나서 반가워.”

이 녀석이 수수께끼의 노아.

이렇게 강한 녀석을 내가 왜 몰랐지?

“오길 잘했네. 사실 안 오려고 했는데 당신 소문을 듣고 온 거거든.”

말과는 달리 그녀의 표정은 따분해보였다.

육도는 내가 알기로 조금 복잡한 형식의 아카데미로 알고 있다.

명칭도 학원이라고 불리며 우리와 같은 강의 신청제가 아닌 반으로 이루어져 정해진 수업을 듣는 형식.

그리고 내부에는 따로 6개의 파벌이 존재하며 파벌에 속하는 것만으로 강자로 인식되는 곳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한 마디로 파벌에 속하지 못하면 잔챙이라는 소리.

‘그런 육도를 최초로 통합했다고 했지.’

솔직히 말하면 내가 지금까지 게임 속에서 직접 겪어본 아카데미는 로들렌과 케슈른 비올가의 미르코 아카데미 밖에 없었기에 수준이나 내부 사정은 잘 몰랐다.

이 정보도 교장인 데오스가 태블릿으로 보내줘서 알았을 정도.

“당신은 내가 궁금하지 않아?”

노아는 내가 아무 말 없이 서있기만 하자 무감정한 인형같이 물어왔다.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거지만 이렇게 강한 녀석을 나는 왜 몰랐던 걸까.

“강하군요.”

“응? 그럼. 강하지. 당신보다는 약할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놀랐습니다. 로들렌 아카데미가 아닌 다른 곳에 당신 같은 사람이 있을 줄은 짐작도 못했어서.”

“너무 우물 안 개구리 아니야? 강한 거랑 다르게 너무 순수하네.”

“예. 덕분에 개안했네요.”

“그러면 내 덕분에 개안했으니까 부탁 하나만 들어줘.”

왠지 이 소녀에게서 익숙한 향기가 난다.

약간 루시아의 느낌이 나는데?

뻔뻔한 것도 그렇지만 세상을 달관한 듯한 표정과 말투도 마치 시한부와 같은······.

‘시한부?’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의 난 이 녀석에게 관심이 생겼다는 것.

조금 더 정보가 필요했다.

“뭐죠?”

“들어줄 거야?

“들어보고요.”

“간단해. 나랑 대련 한 번 해줘.”

“좋습니다.”

마침 나도 이 녀석의 정체가 궁금했는데 잘 됐다.

그녀가 강하다는 걸 직감과 같은 무언가로 깨달았을 뿐 어떤 식으로 싸우는지는 전혀 몰랐으니까.

“참관인이 없으니 가볍게 하죠.”

“여긴 불편하네. 우리는 싸움이 나면 참관인도 없이 그 자리에서 둘 중 누군가가 불구가 되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았는데.”

“험한 곳이군요.”

양아치 학교냐?

아니지, 실제 쇠붙이와 폭탄과 같은 마법으로 싸우니 더 무시무시한 곳이다.

“난 오히려 이런 곳에서 어떻게 당신과 같이 강한 사람이 생겼는지 궁금해.”

그때 내 전투 재능이 경고를 발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한 걸음 물러났고 내 관자놀이가 있던 곳에 노아의 발차기가 순식간에 훑고 지나갔다.

“벌써 시작입니까.”

“말을 걸면서 방심을 유도하는 것도 내 실력이야.”

덤덤하게 말한 노아가 맨몸으로 내게 달려들었다.

대련용 검은 저 멀리 구석에 있으니 지금 당장은 맨주먹으로 싸워야했는데 아무래도 노아는 그런 상황이 익숙한 모양이었다.

“어? 저기 아드리아스 크롬웰 아니야?”

“뭐야? 누구랑 싸우고 있는데?”

연무장에 있던 기사학부 학생들이 수군거리며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나는 그런 그들을 향해 외쳤다.

“대련용 검 두 개!”

“알겠습니다!”

누군가가 다행히 내 말을 받아주고 나는 멈추지 않고 쇄도해오는 노아의 박투술을 막았다.

“맨몸 싸움에 꽤 자신이 있나봅니다?”

“내가 당신을 유일하게 이길 수 있는 방법이라고 판단했어.”

꽤 자신이 있으니 하는 소리겠지?

하지만 어쩌나. 나도 맨몸격투에는 조금 자신이 있었다.

특히 관절기가 주특기인 그래플링.

뚜둑!

노아가 뻗은 주먹이 그대로 얽혀드는 내 손에 잡히며 팔이 뽑혀나갔다.

이번에 제대로 느낀 거지만 포인트를 이용한 능력치 향상이 꽤 큰 도움이 되었다.

설마 그거 살짝 만졌다고 팔이 뽑힐 줄이야.

우득-

하지만 노아는 금방 거리를 벌리며 자신의 팔을 다시 끼워 맞췄다.

그 기계 같은 움직임과 변함없는 표정이 마치 인간이 아닌 인형과 같이 느껴졌다.

“전문적으로 익힌 기술이네. 내가 얕봤어.”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대련용 검이 도착했다.

내가 조용히 손을 뻗자 학생 하나가 달려와 내게 검을 건네주었고 나머지 하나도 상대에게 건넸다.

“마나 없이?”

“아까도 말했지만 참관인이······.”

“나 불렀어?”

인파를 헤치며 누군가가 나왔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

“아이비 조교님.”

“오랜만. 내가 참관인 해줄 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 싸워.”

그리고 그런 아이비를 향해 노아가 입을 열었다.

“언니.”

“내가 말했지? 오면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언니?

잠깐만. 아이비가 노아의 언니라고?

생각해보니 노아의 성을 듣지 못했었다.

“응. 나, 언니 말고는 처음으로 져 볼지도 모르겠어.”

무미건조하게 말한 노아가 이내 내게 검을 겨눴다.

“참관인이 왔으니까 전력으로 할 거야. 괜찮지?”

“예. 마음껏 오십시오.”

지금의 내 실력은 아이비와 동급이거나 그 이상.

아마 아이비 클레어도 검술에 관해서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겠지만 나는 복합적인 재능들이 훨씬 붙어있었다.

게다가 방심했다고는 하지만 오러 마스터인 세이르를 이기고 엘프 최강의 검사라는 이명을 지닌 후겐과의 싸움에서도 1-2분 정도를 버텼다.

휘릭-

노아의 움직임은 경쾌했다.

탄력 있는 움직임과 아크로바틱한 몸놀림.

예상치 못한 동선과 박자가 꽤 인상적이었다.

후웅-

카가가가각-

그리고 쾌검과 섞인 연속적인 검법.

그렇다고 힘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아마 마나의 도움을 받아 이만한 파괴력을 드러내는 거겠지.

카르르르륵-

예상대로 강했다.

아마 또래에서는 적수를 찾기 힘들 정도로 강할 듯싶었다.

“하아.”

노아가 호흡을 가다듬으며 잠시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는 내게 말했다.

“왜 막기만 하지? 당신도 반격을 하거나 공격을······.”

쇄애액--

깡!

말을 하던 그녀를 향해 검풍을 날렸다.

상대가 어떤 검법을 사용하는지 궁금했을 뿐이지 공격을 안 하려던 게 아니었다.

내가 자비로운 사람으로 보였다면 그녀는 큰 착각을 한 것이다.

검풍을 막아내며 부드럽게 밀려난 그녀를 향해 순식간에 나아갔다.

지금의 내가 사용하는 건 무아검.

검술 재능이 천재로 올라서며 내 무아검도 변했다.

카가강! 휘릭-캉!

이제 매번 한 번의 변화가 아닌 복합적인 변화가 섞여들었다.

빠르면서도 일점으로, 무거우면서도 강하게.

그리고 이를 순식간에 변환시키며 상대가 적응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 결과 아까 전과는 달리 정반대의 상황이 되어 노아가 수세에만 몰린 상태.

아무리 빠르고 기묘한 움직임을 보인다고 해도 압도적인 실력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이전과 다른 폭발적인 힘이 상대의 검에서 느껴졌다.

콰앙-------!

일단 힘에 몸을 맡기며 뒤로 물러섰다.

갑작스런 변화에 이건 또 뭔가 싶었는데, 슬쩍 아이비의 눈치를 보자 확연히 굳어있는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두근!

“음?”

순간 기묘한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거리를 벌린 김에 잠시 노아를 살펴보자 이전과 달리 그녀의 목 부분에 거뭇한 무언가가 보였다.

아까 전에도 있었나 싶은 문신과 같은 무언가.

내 시선을 눈치 챈 건지 그녀가 애써 후드를 깊게 눌러썼지만 이미 보일 건 다 보였다.

‘흑마법?’

정확히는 저주의 일종으로 보였다.

단정할 수 있는 이유는 이 두근거림이 근거였다.

흑마법과 관련된 네임드템이 발견됐을 때 느껴지는 파동.

그게 지금 느껴지고 있었다.

노아가 아이템은 아닐 테니 유추하기에는 어려울 게 없었다.

“여기까지 하죠.”

“난 더 할 수 있어.”

“아니. 대련은 끝이야.”

아이비가 적절하게 끼어들었다.

그리고는 나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잠깐 따라와 줄 수 있냐?”

“알겠습니다.”

내가 눈치 챈 걸 그녀도 안 모양이다.

대련이 흐지부지 끝난 탓에 구경꾼들은 아쉬워하는 낯으로 불만을 토해냈지만 그렇다고 대련을 재개할 생각은 없었다.

어쩌면 노아에게 있는 문제가 아이비의 흑마법사 혐오나 내가 노아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이유와도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만약 그녀가 흑마법과 관련된 어떠한 이유로 단명했다면 그 명성을 떨치기 전에 죽었을 테니 내가 모르는 것도 당연했다.

“난 아직······.”

“노아.”

아이비가 조금은 엄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삭막한 얼굴이 된 노아가 눈을 돌려버렸다.

“겁쟁이.”

“뭐? 너 언니한테 뭐라고 그랬어?”

“됐어. 그것보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다음에는 제대로 결판을 지었으면 좋겠네.”

그녀는 대련용 검을 바닥에 떨어뜨리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런 그녀를 아이비도 굳이 붙잡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자매 사이에 복잡한 사정이 있는 듯했다.

< 188화. 자매와 흑마법 > 끝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