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후계자
오러 마스터를 언데드로 만들어도 생전에 사용했던 오러 비기는 사용할 수 없었다.
만약 오러 비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면 네크로맨서가 오러 마스터 군단을 만들어 세상을 정복했겠지.
‘하지만 니켈은 사용할 수 있다.’
물론 단발성에다 6일에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다는 제한이 있지만 그게 어딘가.
오러 마스터에 근접했던 강자인 검귀 호산을 이긴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 쓸모가 증명이 되었다.
철컥.
폐허의 공터에서 니켈과 루델론이 마주 보고 섰다.
생김새로 따지면 온통 검은색 일색인 루델론이 훨씬 분위기 있어 보이지만 도복을 펄럭이며 여유롭게 팔짱을 끼고 있는 니켈도 만만치 않았다.
“거참, 개성 있는 녀석이구나. 나와 연배가 비슷했을 것 같아.”
모른의 말과 함께 드디어 루델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녀석도 오러 마스터였던 만큼 자신이 생전에 사용했던 검술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캉!
니켈이 반보쯤 물러나며 충격을 최소화했다.
동시에 그대로 상대방을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보였다.
‘나쁘지 않아.’
내 생각을 실시간으로 읽고 있는 니켈도 자신의 신체적 불리함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방어적인 전술과 함께 카운터를 노리고 있었다.
후웅.
역시 데스나이트답다는 생각이 떠오를 만큼 가공할 파괴력이 상대의 검에 머물렀지만 니켈은 맞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아슬아슬하게 피해 내며 루델론의 갑주를 건드렸다.
“확실히 오러 마스터답군. 게다가 노련함이 보여.”
아직까지는 양쪽 다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저 밸런스가 곧 무너질 것을 나와 모른, 둘 다 알고 있었다.
그만큼 팬텀과 데스나이트 사이에는 채울 수 없는 간극이 존재했기에.
콰가가가!
캉! 콰드득!
예상했던 대로 처음에는 그럭저럭 버틸 것 같았던 니켈이 점차 밀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방어적인 전술을 사용한다 해도 한계는 분명했다.
원죄로 인한 패시브가 있다고 하더라도 신체 능력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능력들뿐이었으니.
‘다른 죄악들을 모으면 신체 능력도 향상될까?’
지금의 대련과는 상관없이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곧이어 굉음이 터져 나왔다.
쿠아아앙―!
루델론의 몸에서 붉은 기운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루델론이 가진 특성 중 하나, 브루탈 템페스트(brutal tempest).
신체 능력 향상과 더불어 관성을 무시하는 공격이 일시적으로 가능해지는 괴물 같은 특성.
안 그래도 밀리고 있던 니켈에게는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나는 곧바로 알고 있는 정보를 니켈에게 생각으로 전해 주었다.
그러자 내 생각을 읽은 니켈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물러났다.
콰가가각!
하지만 엄청난 속도를 자랑하는 루델론은 물러나는 니켈을 손쉽게 따라갔고 니켈의 몸에는 점차 상흔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대단하구나. 녀석이 다치기 전에 이쯤에서 그만두는 것이 어떻느냐?”
이미 이겼다고 생각했는지 모른이 말을 걸어왔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거절했다.
“죄송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허허, 그렇다면 뭐……. 네 의견을 존중하겠다.”
점차 상흔이 늘어나는 니켈의 몸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위태로워 보였다.
하지만 나는 니켈을 믿으며 때를 기다렸다.
‘확실히 신체적인 스펙을 무시할 수는 없네.’
본 드래곤보다는 살짝 낮지만 그래도 최고위급 티어에 속하는 데스나이트의 신체는 고작해야 5티어에 불과한 니켈의 운동 능력을 아득히 상회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숨겨진 수가 있다.
그렇기에 나는 니켈을 믿고 조용히 숨을 죽였다.
그가 곧 나에게 신호를 줄 것을 알고 있었기에.
[슬로스 팬텀(전설)이 나태를 사용하고자 합니다.]
[슬로스 팬텀(전설)과 나태의 쿨타임을 공유하게 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그리고 그 신호는 금방 왔다.
“모른.”
“음?”
내가 중얼거리자 모른이 고개를 갸웃거렸고, 동시에 니켈에게서 푸른 귀기가 넘실거렸다.
특수 기술 나태로 단숨에 스펙이 올라간 니켈은 루델론의 공격을 피하며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다른 오러 마스터들의 오러 비기에 비하면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 단순한 내려 베기.
그것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콰드득!
거친 마찰음과 함께 검은 무언가가 모른의 발치로 떨어졌다.
그 검정 물체를 확인한 모른이 헛웃음을 흘렸다.
“허허허…….”
눈 깜짝할 새에 일어난 일.
모른은 마법사이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를 수도 있었다.
“방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게지? 내가 제대로 본 게 맞나?”
모른이 발치에 떨어진 무언가를 주워 들며 말했다.
그가 주운 것은 바로 루델론의 팔이었다.
검은 갑주째로 날아온 오른팔에는 아직까지도 검이 움켜쥐어 있었다.
“숨겨 둔 수가 있어 자신 있게 나서 봤습니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하군요.”
“아니다. 오히려 놀라움이 가시질 않는구나. 네가 자신 있게 나선 것에서 숨겨 둔 수가 있음은 미리 짐작하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그리 말한 모른은 곧바로 루델론을 불러오며 팔을 끼워 맞췄다.
아무렇지도 않게 끼워 맞추고 있었지만 저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네크로맨서인 나는 알고 있다.
‘진짜 대단하긴 하다. 따라 할 엄두도 안 나네.’
별것 아닌 것처럼 단숨에 루델론의 팔을 붙인 모른은 그대로 소환 해제를 시키더니 이내 니켈에게 다가갔다.
오러 비기를 사용하며 나태가 끝난 니켈은 반쯤 탈력 상태가 되어 힘없이 그런 모른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에 보였던 그 움직임. 일시적이지만 굉장한 힘이었다. 대신에 후유증도 있나 보군.”
“비장의 수라 알려 드리기에는 곤란하군요.”
“허허, 아무리 그래도 고작해야 팬텀이 데스나이트를 이길 줄이야. 물론 내 루델론이 방심하지 않았으면 승부는 어찌 될지 몰랐겠지만…….”
그 말에는 나도 인정한다.
아무리 오러 비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해도 니켈과 루델론의 신체 스펙은 압도적인 차이를 보였다.
물론 일시적으로 니켈도 스펙이 올라갔지만 그럼에도 데스나이트를, 그것도 특성을 발동시킨 루델론의 움직임을 따라가기에는 무리였다.
‘오러 비기가 튀어나올 걸 알았으면 루델론이 상대도 안 해 줬겠지.’
그러나 결국 승자는 나였다.
모른도 내가 숨겨 둔 수를 가지고 있었음을 짐작하고 있었지만 결국 당한 것처럼 만약이라는 가정은 의미가 없었다.
한 가지 불안한 건 이래 놓고 모른이 딴마음을 품냐는 것인데…….
“으음……. 그 마지막 수는 오리지널 마법인가? 설마 벌써 워록이 된 것이냐?”
“그건 아닙니다. 편법이죠.”
“쯧. 아쉽지만 깊게 물어보면 실례겠지. 그보다 이 녀석의 정체도 신기하군. 확실히 수준급의 오러 마스터였다.”
“제국에 있는 빈 하르츠 국립묘지에서 우연히 얻은 시체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저도 모르고 그저 우연히 손에 넣은 시신으로 만들었습니다.”
“흐음. 알았네. 일단…….”
니켈을 흥미로운 눈빛으로 지켜보던 그는 이내 내게 다가와 언데드 하나를 소환했다.
거대한 플레시 골렘, 시체를 뭉쳐서 만든 녀석은 심각한 악취를 풍겼다.
“약속은 약속이니……. 받거라.”
플레시 골렘이 속에서 무언가를 토해 냈다.
토해 낸 물건은 다름 아닌 내기로 걸었던 집회 반지.
“이렇게 쉽게 주셔도 되는 겁니까?”
반지는 집회 내에 10개밖에 존재하지 않는 물건.
그런 만큼 모른도 많아 봤자 2개나, 어쩌면 이 하나밖에 가지고 있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모른은 그런 내 물음에 그저 조용히 미소 지어 주었다.
“내 파벌에서 소유한 반지는 그 하나가 전부다. 난 너무 늙었어. 새로운 시대를 열기에는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 버렸지.”
그는 내 손에 직접 반지를 쥐여 주었다.
“집회의 역사도 꽤 길었단다. 그러나 그 긴 시간 동안 집회의 주인이 된 자는 단 한 명도 없었지. 그리고 나타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고.”
그의 손은 거칠거칠했다.
투박하고, 시체를 다루는 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따뜻한.
묘한 손이었다.
“그러나 조금 전의 전투를 보니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쯤 감겼지만 그의 눈빛은 형형했다.
마치 빛을 바라보는 눈이었다.
“집회를 차지하게 될 첫 주인.”
“대부님?”
그리고는 갑자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내가 당황하여 그를 일으키려고 했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 늙은이, 모른 드왈스키는 이 집회 반지를 아드리아스 크롬웰에게 건넴으로써 파벌을 양도하겠습니다. 그와 함께 전폭적인 지지를 선언하는 바.”
단순히 반지만 주고 끝날 줄 알았던 이야기가 순식간에 진행이 되어 정신이 없었다.
지금 이 할아버지가 뭐라고 하고 있는 거냐?
그런 나를 향해 옆에 있던 루나도 외쳤다.
“나도! 나도 친구 도와줄게! 나도 이제 친구 파벌이야!”
“그…… 이야기가 너무 갑작스럽습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일단 일어나 주십시오. 제가 너무 민망합니다.”
내 말에 모른이 나직하게 웃으며 다시 일어났다.
분명 내 목표 중 하나는 집회를 접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래의 정보를 이용해 차근차근 잠식해 나갈 생각이었지 이런 식으로 급전개가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모른의 파벌을 흡수한다는 게 마냥 좋은 일도 아니었다.
애초에 그의 파벌에 속한 사람들이 뭘 믿고 나를 따라와 줄까.
모른이 지지를 선언했다고 해도 큰 반발이 있을 거다. 거기에 더해 다른 파벌들에서도 갑작스러운 내 성장을 견제해 올 건 당연한 수순이고.
‘안 그래도 에이카가 파벌에 합류하라고 권유했었는데……. 곧바로 적이 되게 생겼군.’
나는 손에 들린 반지를 보았다.
‘2’라고 써진 반지는 이게 열 개의 반지 중에 두 번째 반지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거절해도 소용없네. 알다시피 나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현역으로 남아 있을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 차라리 빠르게 후계를 만들어 뒤에서 지원을 하는 게 훨씬 나은 일이지.”
내 복잡한 생각을 눈치챈 모양인지 모른이 익살맞게 웃으며 말했다.
마치 너무 큰 선물을 받아 곤란해하는 손자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것 같았다.
“이 늙은이도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게 아닐세. 아드리아스 크롬웰, 자네의 능력과 재능을 보고 이 한 몸 바쳐 보기로 한 게지.”
나는 잠시 말없이 모른과 루나를 바라보고, 다시 한 번 반지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잘 생각했네.”
“어차피 집회를 먹을 생각이긴 했습니다. 이 반지의 존재를 몰랐을 때도요.”
“허허! 역시 통이 크군. 내가 사람을 잘 골랐어.”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이용해 줘야지.
모른과 루나라면 꽤 대단한 전력이기도 했다.
현존하는 가장 강한 네크로맨서와 워록급 버퍼.
조합으로 따지면 거의 무적이나 다름없긴 하다.
‘언데드한테도 강령 버프가 통하면 세계 정복도 노려볼 만했을 텐데.’
실없는 생각을 하며 반지를 니켈에게 주었다.
내가 차고 다니기에는 부담스러우니 아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니켈에게 주는 게 낫겠지.
니켈의 손에는 벌써 2개의 집회 반지가 끼워지게 되었다.
뜻하지 않게 5분의 1이나 되는 반지가 내 손 안으로 들어왔다.
“이야기는 다 끝났습니까?”
어느새 망치질 소리가 안 들린다 했더니 트라울러가 오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새하얀 갈락슈르가 들려 있었는데 다행히 멀쩡한 모습이었다.
“거, 꽤나 민망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영감님이 함부로 그런 결정을 내리실 분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으니 더욱 놀랍군요.”
“들었으면 상황을 대충 알겠구나. 그리됐으니 어서 무구를 만들어 주거라.”
“일단 이 검에 대해 잠시…….”
트라울러가 갈락슈르를 다시 내게 돌려주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이 검을 둘러싼 봉인은 인간의 힘으로 풀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단서는 확인할 수 있었지.”
“단서?”
“그래, 단서.”
트라울러가 자신 있게 입꼬리를 올렸다.
“봉인을 풀 단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