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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112화 (112/415)

112화. 전장의 주인

“사다리! 사다리부터 걷어 내!”

“샤먼의 마법이다! 고개 숙여!”

콰앙―!

그동안의 공격은 마치 애교였다는 듯, 알-구르드가 말한 총공세는 맹렬했다.

지금까지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던 오크 족장들이 대거 투입되고 오크 워리어와 오크 샤먼의 숫자도 이전과 달리 발에 차일 듯 쏟아져 나왔다.

“궁수! 충차를 집중 공격해라!”

“마법사! 3시 방향에 화력 지원!”

아수라장이 된 성벽 위에서 용병으로 고용된 빌튼은 창백하게 질린 안색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찔러!”

요새에서 보급된 창으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오크를 찔렀다.

사다리를 걷어 내면 좋겠지만 이미 오크들이 올라탄 무게로 걷어 내기가 불가능해졌다.

빌튼은 그저 지휘에 따라 기계적으로 창을 찔러 넣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오는 게 아니었는데…….”

이미 며칠 전부터 해 온 후회였다.

그러나 계약서까지 작성이 된 상태에서 도망을 치면 탈영으로 간주되어 쉽사리 도망친다는 결정도 못 내렸다.

그럼에도 몇몇 인물들은 야반도주를 감행했는데, 처음에는 그들을 비웃던 빌튼도 왜 뒤따라가지 않았을까 후회가 되었다.

“워리어가 올라왔다!”

“기, 기사님을 불러!”

퍼억!

어느새 한쪽에서는 온몸에 창이 꽂힌 채 올라온 오크 워리어가 병사들을 터트리고 있었다. 무거운 둔기를 휘두를 때마다 머리가 하나씩 터져 나가는 그 광경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이 비현실적이었다.

이내 오크 워리어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병사들을 모두 죽인 후, 성큼성큼 빌튼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아, 안 돼!”

“도망쳐!”

“자리를 이탈하지 마라! 다 같이 힘을 합치면 워리어 하나쯤은 이길 수 있다!”

지휘관의 외침이 들려왔지만 전의를 상실한 병사들이 늘어만 갔다.

빌튼도 그 분위기에 압도되어 제자리에 굳었지만, 차마 도망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오크 워리어가 이내 가속도를 붙이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지금! 창을 위로 들어 올려! 찌른다고 생각하지 말고 받아 낸다고 생각하고 하체에 힘을 실어!”

굳게 보급용 창을 꼬나들고 동상처럼 굳은 빌튼의 귀로 지휘관이 아닌 다른 인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빌튼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에 따라 창을 치켜들고 몸을 단단히 굳혔다.

푸욱!

곧이어 엄청난 충격과 함께 빌튼은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뒤로 튕겨져 나갔다.

‘죽는 건가?’

순간 주마등처럼 스치며 헛웃음이 나왔지만 이내 다시 들려오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잘했습니다.”

고개를 돌려보자 그곳에는 조금 전 창을 들어 올리라고 말을 했던 사내가 자신의 몸을 받아 들고 있었다.

“베, 베리 샌더스.”

“보십시오, 당신이 한 일을.”

빌튼은 앞을 보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목에 창이 박힌 오크 워리어가 고통스러워하며 죽어 가고 있었다.

“내가 오크 워리어를……?”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복면의 사내는 빌튼을 바로 세워 주고 말했다.

이미 그가 들고 있는 검은 얼마나 많은 오크를 죽였는지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견디십시오. 이 전쟁, 반드시 이길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앞을 향해 달려 나가는 사내를 빌튼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절망의 한 가운데에서 피어나는 꽃이 저러할까.

짧았지만 강렬했던 경험에 빌튼은 자신의 애검을 뽑았다.

그의 말대로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 * *

“끝도 없네.”

오크의 숫자는 지긋지긋할 정도로 많았다.

그 끝 모르는 물량도 물량이지만 수많은 샤먼의 광폭화는 그런 오크들을 고통도 모르는 광전사로 만들었다.

아무리 큰 부상을 입어도 입에 거품을 물며 달려드는 오크들을 보자 나조차도 기가 질릴 수밖에 없었다.

서걱!

―크르륵.

병사들이 감당하기 힘든 워리어를 한 마리 더 잡아내고 주변을 보자 사다리가 걸쳐지지 않은 성벽이 드물 정도였다.

마법사들이 마법을 시전할 때마다 수십 마리가 넘는 오크들이 죽어 나갔지만 전황에 영향이 크지는 않았다.

‘그래도 아직이다.’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더 무르익으면……. 지금 섣불리 나서면 단번에 뒤집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시기를 앞당길 수는 있겠지.’

콰드드득!

콰앙―!

저 멀리서 루나가 날뛰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의 위치를 보면 아무래도 요새 밖으로 나가서 싸우는 듯했는데, 아직까지 알-구르드가 참전한 기색은 없었다.

나는 계획을 정하자마자 곧바로 성벽 위로 올라오는 오크들의 멱을 땄다.

그리고 저 멀리서 싸우고 있을 루나와 같이 성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샌더스 경!”

다급한 소리가 들려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바닥에 가뿐히 착지하자 오크들이 당황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들에게 검으로 화답해 주었다.

쇄애액―!

서거걱!

검풍이 피 안개와 같이 오크들을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검풍에 담긴 융합 마법, 블러드 커스가 그들의 몸에 침투하여 순식간에 약화시켰다.

‘그냥 블러드 커스를 사용했을 때보다 검에 담는 게 더 위력적이라 신기했지.’

모른의 흑마법서로 배운 저주 계열 흑마법.

그냥 사용했을 때는 사용이 된 건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효과가 미미했는데 검에 담아 상대를 상처 입히면 엄청난 효과를 보였다.

오크 족장들과의 결투도 이걸로 손쉽게 잡아냈을 정도.

―카하투!

오크들이 성난 황소처럼 다가오려 했지만 자기들끼리 엉켜 쓰러지고 난리가 아니었다.

나는 그런 그들의 급소만 공격하며 전투 재능에 몸을 맡긴 채 춤을 췄다.

그와 동시에 몇몇 사다리를 검풍으로 부숴 버리자 오크들이 바닥으로 우르르 처박혔다.

“샌더스 경! 괜찮소?”

누군가가 걱정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오랜만에 물을 만난 고기처럼 오크들 사이를 휘저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더, 더 많은 사체가 필요했다.

―투투가!

내가 날뛰는 것을 막기 위해 드디어 오크 족장들과 워리어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앞을 가로막는 일반 오크들을 집어 던지며 길을 열었다.

“이건 좀…….”

아무리 나라도 무리겠다 싶어서 곧바로 남아 있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뒤에서 쫓아오는 것이 느껴져 성벽에 오르자마자 사다리를 끊어 버렸다.

“샌더스 경, 괜찮으십니까?”

지휘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뒤 상황을 훑어보자 상황이 조금은 나아진 것 같았다.

그러나 전황과는 달리 병사의 수가 조금 줄어든 것처럼 느껴져 곧바로 지휘관에게 물어보았다.

“병사들이 조금 줄어든 것 같은데.”

“남문으로 적의 주공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급하게 병력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안 그래도 샌더스 경도 호출하셨습니다.”

루나가 있는데도 많이 힘든 모양이군.

그나저나 오크 로드는 아직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건가.

“남문 부근에 오크 로드 출현!”

내 생각을 읽은 듯 곧바로 터져 나오는 전령의 소식에 고개를 돌렸다.

남문은 마침 루나가 맡고 있던 자리.

주공이라는 말처럼 알-구르드는 정직하게 남문으로 온 모양이었다.

“샌더스 경, 지금 바로 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지휘관의 말에 잠시 동문의 상황을 살펴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루나는 네임드 캐릭터.

고작 이런 곳에서 쉽사리 죽을 녀석이 아니지.

그래도 남문 쪽이 적의 주공이라면 훨씬 많은 양의 사체가 쌓여 있을 터.

‘오러 마스터 오크? 나도 궁금하군.’

물량과 정예.

과연 둘 중 누가 이길까.

* * *

콰드드드득!

거대한 낫이 반원을 그리자 열 마리가 넘는 오크가 한 번에 갈려 나갔다.

피와 살이 흩뿌려지는 공간은 단 한 명의 인간을 제외하고는 근처에 다가서는 이가 없었다.

“베리 샌더스 경도 놀라웠지만, 저건 완전 괴물이군.”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루나 펜드래곤을 바라본 이들은 다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이나 루나의 전투력은 압도적이었고, 소수의 강자가 전쟁의 판도마저 바꿀 수 있다는 걸 몸소 증명하는 자리가 되기도 했다.

루나는 자신의 몸에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은 모습으로 낫을 거두었다.

“시시해.”

루나는 잔뜩 기대했던 것과 달리 수준이 낮은 오크들로 인해 심통이 난 상태였다.

일단은 다가오는 오크들을 모조리 죽이고 있었지만, 이쯤 되자 오크들도 루나에게 다가가지를 않았다.

오죽 다가오지 않았으면 직접 요새 밖으로 나가서 싸울까.

덕분에 남문은 총공세가 이루어지는 것과 별개로 안정된 상황을 보여 주고 있었다.

쿠우웅!

그때 엄청난 굉음과 함께 순식간에 분위기를 뒤바꾸는 기세가 오크들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솜털이 일어서는 걸 느낀 요새의 병사들은 마른 침을 삼키며 굉음의 진원지를 살펴보았다.

“오, 오크 로드!”

오크 로드, 알-구르드가 거대한 철퇴를 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평범한 오크보다 배는 큰 덩치로 멀리서도 눈에 띄는 알-구르드는 그저 달려오는 것일 뿐인데도 사람들의 안색을 하얗게 만들었다.

―크하하하하!

포효와도 같은 웃음이 터져 나오며 금세 성벽 근처까지 도달한 알-구르드가 오크들을 학살 중인 루나에게 철퇴를 휘둘렀다.

콰아앙―!

경천동지할 폭음과 함께 루나가 날라 갔다.

하지만 큰 피해는 없는지 가볍게 바닥에 착지하며 눈을 빛냈다.

“오크 로드! 히히, 넌 내 친구 거야. 내가 잘 다뤄 줄게.”

―크하하! 저번에 보았던 전사보다 뛰어난 인물이 있을 줄은 몰랐군. 명예로운 전투가 되겠어!

서로가 서로의 말만 하며 다시 한 번 전장의 한가운데에서 맞부딪혔다.

그 엄청난 전투에 성벽 위의 전투가 잠시 소강상태가 될 정도였다.

“다 부질없군. 오러 마스터는 괴물이야.”

“하아, 말로만 들었지 오러 마스터가 저 정도일 줄이야.”

이번 전쟁의 승자는 저 둘의 싸움에서 결정이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저 둘의 싸움이 무르익어 갈수록 전황은 차차 오크들의 손을 들어 주고 있었다.

“루나 펜드래곤이 묶이니 전체적으로 열세입니다!”

전령의 보고에 필리온이 굳은 얼굴로 전장을 내려다보았다.

이미 사령관인 도슨은 직접 나가 싸우고 있는 중이었다.

‘큰일이군.’

루나가 날뛸 때는 그저 대단하다고만 느꼈었는데, 이렇게 그녀가 전장을 이탈해 버리자 그 빈자리를 확연히 실감할 수 있었다.

루나와 알-구르드의 전투로 인한 소음이 죽어 가는 병사들의 비명을 가리고 있었지만 상황은 점차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다른 성문 쪽에 지원을 요청해라.”

“아, 알겠습니다.”

조금 전에 지원 요청을 한 터라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필리온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피, 필리온 경! 외성 문이 파괴되었습니다!”

곧이어 들려온 좋지 않은 소식에 필리온이 다급하게 외쳤다.

“최대한 버텨야 한다! 준비된 돌을 떨어뜨려라!”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더 이상 지휘하기에도 위급한 상황이 닥치자 결국 필리온도 자신의 아버지를 따라 검을 뽑으며 망루에서 내려왔다.

필리온은 성벽 위로 내려오자 상황이 훨씬 안 좋음을 실감했다.

이미 반쯤 오크들에게 먹혀 버린 남문 성벽 위는, 이제 악과 깡밖에 남지 않은 병사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바쳐 사수하고 있었다.

“밀리면 안 된다! 우리의 뒤에는 가족들이 남아 있다!”

“이 땅을 오크 따위에게 더럽혀지게 둘 순 없다! 막아라!”

그 처절한 외침에 필리온은 자신도 모르게 피가 끓었다.

그동안 왜 아버지가 지휘를 하다말고 달려 나가 싸웠는지 조금은 이해가 갔다.

“우리는! 엔데버의 전사들이다!”

필리온이 소리쳤다.

“엔데버의 땅에서 나고 자란 우리가! 고작 오크들 따위에게 질 수 없다! 우리는! 이 피와 땀이 얼룩진 땅을 반드시 사수해 낸다!”

필리온의 외침은 굉음이 터져 나오는 전장에서도 병사들의 귀로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그들은 힘이 빠진 팔을 굳게 들어 올리며 기합을 내질렀다.

“반드시 사수한다!”

“우리 가족은 엔데버에서만 12대를 지냈어! 우리 선조들의 넋이 남은 땅을 절대 오크 따위에게 뺏기지 않아!”

다시 한 번 사기가 들끓어 오르며 악에 받친 병사들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유구한 엔데버 요새의 군가였다.

군가가 울려 퍼지자 전장 곳곳에서 싸우던 엔데버의 병사들은 너도나도 따라 부르며 전장을 군가로 가득 메웠다.

“대수림을 부숴라! 싸워라! 엔데버!”

전장에서 울려 퍼진 군가 덕분일까.

어금니를 깨물며 버텨 내는 병사들의 활약으로 조금은 전세가 역전되어 가고 있었다.

“죽어!”

병사들과 힘을 합친 필리온의 검도 오크 워리어 하나의 목을 꿰뚫었다.

이대로만 가면 승기도 되찾을 것 같다는 생각이 모두의 뇌리를 스칠 때…….

콰아아앙―!

이전과는 다른, 고막이 떨어질 듯한 충돌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충돌음 끝에는 가녀린 몸뚱이가 딸려 왔다.

쿵!

성벽에 날아와 부딪힌 이는 다름 아닌 루나 펜드래곤이었다.

“루, 루나 펜드래곤!”

그제야 오크 로드가 있는 쪽을 바라본 사람들은 이내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알-구르드의 모습을 보았다.

“오러 비기…….”

알-구르드의 등 뒤로 거대한 오크의 형상이 오러로 만들어져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 형상은 알-구르드의 몸짓을 따라 하고 있었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에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저, 저런 걸 어떻게 이겨.”

“루나 펜드래곤도 졌어. 이제 다 끝났다고.”

어떤 이는 들고 있던 병장기마저 떨어트리고 절망에 빠졌다.

필리온조차 그런 병사를 향해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게 오러 마스터……. 끝이구나.’

그와 반대로 오크들의 기세는 끝없이 솟구쳐 올랐다.

그들은 알-구르드의 웅장한 모습을 보며 진격에 박차를 가했다.

―크아하!

그렇게 오크들이 성벽을 넘고 달려오는 순간.

이변이 발생했다.

―크흑?

―컥!

죽은 줄 알았던 사체들이 오크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미처 대비하지 못한 녀석들의 급소를 차디찬 쇠붙이가 꿰뚫기 시작했다.

“아, 아…….”

엔데버의 병사들은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한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죽은 사체들이 하나둘씩 몸을 일으키고…….

그렇게 일어난 사체들의 옆에는 항상 누군가가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당신은 대체…….”

필리온이 떨어지지 않는 입을 간신히 떼어 냈다.

남문으로 다가오는 자는…….

그저 조용히…….

하지만 차갑게…….

그러나 폭발할 것 같은 야성을 드러내며…….

“지금부터 이곳은.”

그의 걸음걸음마다 언데드가 피어났다.

“제가 맡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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