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107화 (107/415)

107화. 오크 로드

통신을 끊은 헤이겔은 연초를 품에서 꺼내 피우기 시작했다.

곧 자욱한 연초 연기가 그의 주변을 휘감았다.

아드리아스와의 대화는 나름 유의미했다.

“거절이라…….”

하긴 제국의 백작 직위를 가진 자가 쉽게 집회에 발을 들일 수는 없을 거다.

분명 이해는 하나 조금은 괘씸하게 느껴졌다.

“카론 녀석을 좀 건드려 볼까.”

분명 제스터가 지랄을 할 게 눈에 보였지만 상관없었다.

애초에 헤이겔의 실력은 제스터보다 위.

불만이 있으면 직접 와서 따지라고 해도 뭐라 못할 거다.

아드리아스는 꽤 재능이 있어 보여 더 이상 건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이 바닥이라는 게 원래 그렇듯 새싹을 밟아 죽이지 못했다면 오히려 친하게 지내야 했다.

상대가 언제, 어느 때에 도움이 되거나 위협이 될지는 알 수가 없었으니.

‘아드리아스 크롬웰은 고작 20대 초반. 그 나이로 카일러를 혼자 죽였으니 예상보다 뛰어난 재능과 실력을 지녔을 확률이 높다.’

그런 자와는 두고두고 좋게 지내는 게 여러모로 이득이지.

그렇다고 해서 좋을 대로 내버려 두지는 않을 거다.

서열 정리는 바로 해 줘야지.

“오랜만에 이곳저곳 연락을 돌리게 생겼군.”

* * *

그랑디스 왕국에서의 첫 아침을 맞이했다.

곧바로 대수림 접경 지역으로 떠날 생각이었기에 간단한 조식을 여관에서 해결했다.

묽은 수프에 딱딱한 빵을 찍어 먹던 도중 루나가 계단으로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좋은 아침.”

밝은 모습으로 인사를 건네는 루나는 여전히 신비로운 모습이었다.

어떻게 사람이 저런 식으로 태어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외모.

루나에게는 미리 대수림으로 들어갈 거라고 말해 놓은 상태였다.

내 맞은편에 앉은 그녀는 본인 몫의 빵을 수프에 찍어 먹었다.

“으음, 조금 싱거운데.”

그녀는 곧바로 수프와 빵을 집어 들고는 데스크로 향했다.

“싱거워! 장사 이런 식으로 할 거야?”

“죄, 죄송합니다. 금방 다시 내오겠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그녀였기에 여관 주인은 급히 수프와 빵을 챙겨 주방으로 들어갔다.

저런 성격으로 어떻게 거처에 숨어 지내는지 모르겠네.

‘생각해 보면 루나도 자주 죽는 캐릭터네.’

플레이어한테 죽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체로 다른 인물들에게 죽는데 가장 큰 원인은 성국이었다.

‘성국과는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지.’

많고 많은 흑마법사들 중에서도 유난히 앙숙 관계였다.

그 관계는 그녀의 어머니인 이브 밀레니엄에서부터 이어져 왔다.

선대에서부터 이어져 온 악연이라 쉽사리 끊을 수도 없고, 애초에 무조건 죽는 것도 아니라 내가 지금 무언가 해 줄 수 있는 건 없었다.

빵과 수프를 다시 받아 온 그녀는 내 앞에도 그릇을 내려놨다.

“네 것도 가져 왔어.”

“감사합니다.”

“친구잖아. 뭘 감사해, 히히.”

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배려에 다시 보게 된다.

이렇게만 보면 미치광이의 그믐이라는 칭호가 어울리지 않는데 사람 인생이란 모르는 일이었다.

“근데 친구야, 어제는 헤이겔이랑 무슨 얘기한 거야?”

“같이 듣고 있던 거 아니었습니까?”

“응, 아닌데?”

루나가 입에 빵을 집어넣으며 태평하게 말했다.

양 볼이 볼록하게 튀어나온 모습이 꼭 다람쥐 같았다.

“집회에 가입하라고 하더군요.”

“집회!”

오물거리며 빵을 급하게 넘긴 루나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혹시나 주변에까지 들릴까 노심초사하며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너도 들어오는 거야? 집회에 내 또래 친구가 들어온 적은 없었는데!”

“아닙니다. 거절했어요.”

“왜?”

정말 몰라서 묻는 건 아니겠지?

아니다. 루나라면 정말 몰라서 묻는 거일 수도?

“들켜서 좋을 일이 하나도 없잖아요.”

“음, 그렇긴 해. 근데 나는 태어날 때부터 집회에 가입돼서 잘 모르겠다.”

조금 불쌍하다고 느껴질 법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이 녀석도 알고 보면 꽤 불행한 인생이라 조금 연민이 생기네.

애초에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사례라, 실제로 그녀가 행한 악행은 없어도 현상 수배가 되었다.

온갖 루머는 다 몰고 다녀도 실제로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친 적은 없는 아이러니한 소녀였다.

‘사람들은 미지를 두려워하니까.’

영혼을 보는 선천적인 능력만으로도 인간의 공포심을 자극하기 좋지.

그런 능력에 더불어 어머니는 전설적인 마녀이고, 외모도 신비로우니 사람들은 그녀를 보며 괜한 소문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대수림까지는 길이 남았고, 최종적으로 드래곤의 무덤까지 찾으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었다.

“저, 루나 님. 혹시 대수림 방향으로 가시는 겁니까?”

여관을 나서려던 때에 여관 주인이 루나를 불렀다.

“응, 왜?”

“아, 혹시나 최근에 소문을 듣고 가시는 건가 해서 말입니다.”

“소문?”

대수림에 소문이라.

지금쯤이면 아마 대수림에 서식하는 오크 떼가 기승을 부리고 있을 시기였다.

“아, 듣지 못하셨나 보군요. 무려 40년 만에 나타난 오크 로드입니다. 지금 그 오크 로드 때문에 대수림 근처 경계선 부근이 난리입니다.”

“오크 로드! 재밌겠다.”

오크 로드가 있었네.

게임에서는 지금 시점에 이곳으로 올 만한 상황이 없어서 오크와 싸우고 있다는 것만 알았다.

‘일이 조금 꼬이겠군.’

대수림 안쪽으로 들어가야 하는 나로서는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오크는 일반인이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강대한 신체를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었지만 마나를 사용하는 기사들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오크 중에서도 오크 워리어나 오크 족장 같은 경우에는 기사들도 함부로 상대하지 못하는 강자들이었다.

‘사막 쪽에 서식하는 레드 오크들도 있지. 그 녀석들은 대수림에 사는 오크보다 수는 적어도 훨씬 까다로워서 생각난다.’

어쨌든 오크 로드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대수림의 오크들이 부족 단위로 흩어진 게 아닌 결집이 되었다는 소식이나 마찬가지이기에 걱정이 앞섰다.

만약 길을 가다 오크 정찰조라도 만나게 되면 수많은 오크 떼에 둘러싸이게 될 건 불 보듯 뻔했으니까.

“그랑디스 왕국 측에서도 대대적으로 용병들을 모집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저는 루나 님께서 혹시나 이 일에 관심이 있어 오신 줄 알았습니다.”

“좋은 거 준대?”

“일단 오크 로드의 목에 20억 윌의 포상금이 걸려 있고 따로 왕가의 보상이 주어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공에 따른 포상이 따로 있다고 하는데 아마 사냥한 오크의 수에 따라 주어지는 것 같습니다.”

만약 내가 아카데미 재학생이 아닌 용병이었다면 나쁘지 않은 일거리였다.

하지만 지금 시간대에 대부분의 플레이어블 캐릭터는 내실을 다지고 있을 시기여서 이런 이벤트를 놓친 모양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드래곤의 무덤이 우선이다.’

게임처럼 사냥을 한다고 레벨업을 하는 것도 아니니 무시하는 게 상책이었다.

문제는 내가 무시한다고 무시할 수 있느냐가 문제지.

“친구야.”

내가 이름으로 호명하지 말아 달라고 한 이후부터는 항상 친구라고 부르는데, 그 호칭이 썩 마음에 든 눈치였다.

“예.”

“대수림 안쪽에 들어가려면 무시할 수가 없잖아. 어떻게 할 거야?”

“최대한 피해 봐야죠.”

“그러지 말고, 차라리 오크 로드 모가지 따고 가자!”

음? 좀 솔깃한데?

아무리 오크 로드가 대단하다고 해도 네임드 캐릭터인 루나에게는 미치지 못한다.

아마 그녀의 강령술이 당첨된다면, 오크 로드의 목을 베는 것도 힘들지는 않겠지.

물론 일이 그리 쉽다면 왕국에서도 고전하지 않을 테지만.

‘결국 오크와 인간의 전쟁인데, 그렇게 마실 나갔다 오듯 오크 로드의 대가리를 깨부수고 올 수는 없겠지.’

내가 잠시 고민하자 루나가 말했다.

“뭐가 그리 걱정이야, 쫄았어?”

“일이 그렇게 쉽게 흘러가면 좋지만 오크 로드만 상대할 수는 없으니까요.”

“어차피 전쟁 중이라 대수림 안쪽으로 들어갈 수 없을걸? 차라리 오크 로드의 멱을 따야지 들어가는 게 훨씬 쉬울 거야.”

그렇게 오크 로드의 멱을 따고 싶으면 나는 놔두고 혼자 가면 좋을 텐데.

영혼 각인을 받기 위해서라도 일단은 루나의 기분을 맞춰 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대로 오히려 오크 로드를 죽이는 게 정석일 수도 있었다.

‘예상 못 한 일이긴 한데.’

일단은 대수림 접경 지역으로 가 보고 상황을 파악하는 게 우선일 것 같았다.

예상대로 대수림 안쪽으로 들어가기 힘든 상황이라면 루나의 말대로 오크 로드의 목을 따는 걸 목표로 삼아야 할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도 전부 루나가 동행하기 때문.

‘루나 펜드래곤이면 오크 로드도 금방 잡아내겠지.’

생각을 마친 나는 루나에게 말했다.

“일단 가시죠. 가서 확인해 봅시다.”

* * *

바야트라 대수림 접경 지역, 바야트라 요새.

접경 지역에 존재하는 거점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장소였다.

땡땡땡땡!

“1시 방향에서 다수의 오크 출현.”

거대한 종소리와 함께 병사들의 전보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이미 일상이 된 터라 전투를 준비하는 병사들과 용병들은 긴장된 기색이 없어 보였다.

“밥 좀 먹자, 이 빌어먹을 놈들아.”

어느 한 용병이 투덜거리며 성벽 위로 올라섰다.

언제나와 같이 지겨운 초록 피부의 근육질 덩어리들이 진군하는 모습이 보였다.

“음? 야, 저거 좀 이상한데?”

평소와 같은 차륜식 도발이라 여겼던 사람들은 이내 이상함을 깨달았다.

오크들의 기세가 유난히 거칠었고, 흥분한 듯 충혈된 두 눈이 부리부리했다.

“씨발! 샤먼이다!”

샤먼의 출현은 바야트라 요새 내부를 술렁이게 만들었다.

그동안 최전방 전선인 엔데버 요새 인근에서만 모습을 드러냈던 오크 샤먼이 처음으로 후방 요충지이자 인력 분배소 역할을 하는 이곳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샤먼이 여기까지 왔다는 건 전방이 뚫렸다는 건가?”

“그런 소식은 없었어. 아마 흘러나온 무리 중 하나겠지.”

애써 침착하게 판단해 보았지만 혹시라도 전방 요새가 위험에 처하거나 뚫린 건 아닌지 걱정이 되는 가운데, 수백 규모의 오크 부대는 점점 가까워져 왔다.

“마법사! 준비!”

“사격 개시!”

용병 마법사부터 그랑디스 왕실 마법사까지.

다채로운 실력을 지닌 마법사들이 일차적으로 폭격을 가했다.

콰광! 쾅!

화살보다 사거리가 긴 그들의 공격은 오크들의 머리 위에서 분쇄되었다.

“샤먼이 확실해졌군.”

반투명한 막이 요새에서 쏘아지는 마법들을 막아 내는 걸 확인한 병사들의 표정이 굳었다.

이내 후속 마법의 캐스팅이 이어지는 동안 화살 세례가 오크들을 향해 쏟아졌다.

휘이익!

투두두두둑!

―크아하!

단단한 근육으로 전신이 뒤덮인 오크들은 급소만 막으며 터프하게 진격했다.

간혹 화살이 몸에 박혀도 그저 비웃기만 하며 화살대를 부러뜨릴 뿐이었다.

“온다!”

“이 악물고 막아라!”

샤먼이 참전한 이상 지금까지와는 다른 파상 공세가 펼쳐질 게 눈에 보였다.

며칠 동안 쉴 틈도 없이 차륜전을 치른 요새의 병력들로는 오크들의 영악한 작전이 기가 막힐 정도였다.

“사다리다!”

“사다리를 걷어 내!”

궁수들과 마법사들이 계속해서 투사체를 쏘아 냈지만 샤먼의 주술로 광폭화된 오크들은 끄떡도 없었다.

그렇게 긴장된 호흡을 내뱉으며 육탄전을 준비하고 있던 순간.

쇄애액―!

오크 부대의 후방에서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접근해 오더니 단숨에 오크들의 사이를 가로질러 샤먼으로 보이는 개체의 목을 갈랐다.

서걱!

툭, 데구르르.

샤먼이 죽자 순식간에 광폭화가 풀린 오크들은 어찌 된 상황인지 인지를 못 하며 혼란에 빠지고, 요새 위에 있던 병력들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저건 대체……?”

오크 샤먼의 목을 벤 사내.

아드리아스 크롬웰의 등장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