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최연소 워록 그리고 교습
계약을 마친 나는 오랜만에 집에 들러 에이미의 얼굴을 한번 보고 나왔는데 그녀는 요즘 내가 보내 주는 돈을 모아 뭔가를 해 보려는 모양인지 바빠 보였다.
‘뭐든 열정을 가지고 한다는 건 좋은 일이지.’
에이미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게 무엇이든 지원해 줄 생각이었다.
오늘은 월요일로 드디어 아카데미가 정상 운영으로 돌아오는 날이었다.
흑마법 포션 사건은 표면적으로는 해결된 것처럼 공표되었는데 카일러를 죽인 장본인으로서 아무 일도 없이 넘어가 다행이었다.
‘그건 그렇고 포션 제조 수업이 없어져서 공강이 돼 버렸네.’
당연한 말이지만 카일러가 담당했던 포션 관련 강의들은 모두 공강이 되어 버렸다. 아카데미 측에서는 빠른 시일 내에 새로운 교수를 고용한다고 밝혔는데 천하의 로들렌 아카데미가 수준 낮은 마법사를 아무나 데려다 쓰지는 않을 테니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았다.
덕분에 월요일이 통째로 비게 된 나는 아침부터 개인 연구실에 들어와 있었다.
지금 하고 있는 건 역시나 루시아의 치료제 연구.
‘완벽히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는 아직 무리지만 병세를 늦추는 약은 만들 수 있어.’
루시아가 내색하고 있진 않지만 아마 고통이 꽤 심할 거다.
루시아가 앓고 있는 병은 현대의 암과 비슷한 병이었다.
차이점이라면 현대에는 없는 마나와 관련이 있는 선천적인 병이라는 건데 이 덕분에 루시아가 마법에 재능이 있는 거라고 보면 되었다.
‘재능을 얻은 대신 단명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니까.’
그러나 걱정할 건 없다.
수십 번의 루시아 플레이 경험으로 결국에는 치료해 본 내가 있으니.
그 경험으로 나는 완벽한 치료제뿐만 아니라 병세를 늦추는 약도 만들어 본 적이 있었다. 이 약의 경우 지금 실력으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었기에 포션 제작 재능의 경험치를 높일 겸 겸사겸사 만들기로 했다.
“머리 아퍼.”
흑마법 재능의 진화가 아직 끝이 나지 않아 두통이 심했다.
날이 갈수록 열이 오르고 머리가 아파 왔는데, 그렇다고 쉬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 어쩔 수 없이 연구실에 출근하고 있었다.
진화가 끝나기까지는 아직 며칠이 남아 있었는데 진화 시간이 꽤 길어 나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진화 시간이 길다는 건 그만큼 좋은 걸로 진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하루 종일 연구실에 틀어박혀 연구만 하고 있자 어느새 저녁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도 저녁은 챙겨 먹어야 할 것 같아 연구를 대충 마무리 짓고 연구실 밖으로 나오는데 문 앞에 사람이 서 있었다.
“깜짝이야.”
살짝 정색을 하며 서 있던 인물을 살펴보자 전혀 의외의 인물이었다.
‘베리얼 카스테로?’
마법학부장이 여기는 왜?
“언제 나오나 기다렸는데 설마 이렇게까지 오래 걸릴 줄은 몰랐습니다.”
속을 알 수 없는 실눈 캐릭터, 베리얼 카스테로.
내가 겪어 본 마법사 중에서 바하트보다 이상한 캐릭터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아카데미 내에서 가장 엮이기 싫은 캐릭터 중 하나지.’
애초에 오러 마스터나 워록급 인물들 중에서 정상인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몇몇을 빼면 정말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들이었는데 베리얼의 경우 같이 있으면 불안해지는 타입의 불쾌한 캐릭터였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괴물.’
이건 비유가 아니라 진짜인 게, 게임 플레이 당시에도 베리얼의 옆에 있다가 뜬금없이 죽임을 당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니 내가 왜 죽었는지도 모른다.
몇 번 당하고 나자 그냥 그런 캐릭터구나 싶은 또라이였다.
‘그런데 또 기가 막히게 아카데미 안에서는 사고를 안 친단 말이야.’
내 캐릭터가 죽었을 때는 전부 아카데미 밖.
대체로 평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야외로 나갔을 때였다.
그러니 지금은 안심해도 되겠지.
“베리얼 학부장님. 여긴 어쩐 일이시죠.”
“바로 본론부터인가요? 많이 바쁘신 모양입니다?”
아니. 그냥 너랑 오래 얘기하기 싫은 건데?
하지만 속마음을 숨기고 애써 좋게 말했다.
“아닙니다. 학부장님께서 직접 찾아오신 게 신기해 저도 모르게 질문을 먼저 했습니다.”
“그래요? 그럼 그런 걸로 해 두죠. 저도 사담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니 오히려 그게 편합니다. 제가 이곳에 온 건 다름이 아니라 아드리아스 학생에게 제안을 하러 왔습니다.”
“제안…… 말씀이십니까?”
나는 애써 기억을 되새겨 베리얼과 엮였던 적이 있었나 뒤져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떠올려 보아도 그와 직접적으로 연관되거나 무슨 일이 있었던 기억은 없었다.
“그렇게 긴장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드리아스 학생도 아시다시피 학장인 저는 다른 교수님들과 다르게 개인 교습을 맡습니다. 그건 아시죠?”
“예.”
“그 개인 교습을 아드리아스 학생에게 하고 싶어서요. 어떻게 생각해요?”
베리얼의 개인 교습?
근데 말이 좀 이상한 게 교습을 해 주는 게 아니라 하고 싶다였다.
말이 아와 어가 다르다고 저 말을 들어 보면 교습을 베푼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안 그래도 그와 엮이는 건 최대한 피하고 싶은 심정이었기에 나는 조금 고민해 보는 척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학부장님의 제안은 정말 과분할 정도로 감사하지만…….”
“과분할 정도로 감사하면 받으시죠, 제 교습. 그럼 저는 그런 걸로 알고 있겠습니다.”
“예?”
저, 저 미친놈이?
베리얼은 그 말을 끝으로 쏜살같이 사라졌다.
마치 반론의 여지도 주지 않겠다는 그 태도에 어안이 벙벙했다.
“씨발?”
* * *
베리얼은 자신의 말을 지켰다.
다음 날, 내 강의가 끝나는 시간에 강의동 입구에서 기다리는 베리얼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멀뚱히 서 있는 그 모습은 사람이 아닌 무생물처럼 느껴져 기괴했다.
“야. 저기 봐 봐. 학부장님이신데?”
“그러게. 최근에 모습이 안 보였었는데 어디 다녀오신 건가? 근데 왜 저기서 저러고 계시지?”
학생들의 이목을 끌고 있음에도 아랑곳 않고 꿋꿋하게 서 있는 베리얼을 조용히 피해 가려 했다. 하지만 그런 내 시도는 금방 무너져 내렸다.
“아드리아스 학생?”
베리얼은 특유의 마법을 사용해 순식간에 내 근처로 걸어왔다.
마나를 이용해 가볍게 걸어옴에도 기사에게 꿇리지 않을 정도의 이동속도였다.
‘베리얼의 마법은 마법이라 불리기 힘든 독창적인 기술. 굳이 따지자면 마법이 아니라 마나를 이용한 기술이라고 보는 게 더 편하지.’
이를 가능케 하는 건 그의 몸에 새겨진 마법진 덕분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설정상, 그는 자신의 심장에 직접 마법진을 새긴 또라이 중 상또라이였다.
‘하긴, 그 스승에 그 제자지.’
베리얼의 스승이 누군지 알면 그 무식한 방법이 이해가 간다.
근데 그런 또라이가 내게 개인 교습을 한다고?
정중히 사양하겠다.
“아드리아스 학생. 제 말이 들리지 않으십니까?”
“학부장님. 부르셨었군요.”
뒤늦게 내가 반응하자 베리얼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자, 이제 강의도 끝났으니 교습을 시작해 볼까요?”
베리얼이 교습이라는 단어를 꺼내자 주변의 웅성거림이 더욱 심해졌다.
마법학부장의 개인 교습은 원래 졸업반들을 위한 것.
그런 개인 교습을 졸업반도 아닌 나에게 해 준다는 소리에 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우와. 요즘 보면 좀 이상하긴 하다. 저 녀석 요즘 개인 연구실도 쓰고 있지 않았냐?”
“뇌물 먹였나? 요즘 에버라스트 포션 잘나간다며. 게다가 최근에는 다른 포션도 특허 냈다면서?”
“이거 우리 같은 일반 학생들은 서러워서 아카데미 다니겠냐. 더럽다, 더러워.”
최근 들어 느끼는 거지만 명성이 올라간 만큼 나를 동경하는 이들도 늘었지만 그만큼 시기와 질투를 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특히 나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봐 왔던 동기들이나 내 선배라고 볼 수 있는 졸업반 학생들의 견제가 나날이 심해져 가고 있었다.
‘그래 봤자 난 신경도 안 쓰고 있지만.’
어찌 됐든 이 어수선한 분위기는 제쳐 두고 베리얼의 말부터 따르기로 했다.
이미 여기까지 이야기가 나왔는데 안 한다고 뿌리칠 수도 없고, 무엇보다 거절 후에 베리얼이 어떤 돌발 행동을 할지 몰랐기에 당장은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예. 가시죠.”
여전히 의문인 점은 왜 나에게 교습을 해 주려는 것이냐다.
베리얼과는 정말 단 한 톨의 인연도 없었기에 그가 내게 개인 교습을 해 주게 된 이유를 모르겠다.
‘내가 특이체질이라 연구해 보고 싶은 게 있나?’
수많은 학생들의 시선을 받으며 베리얼의 뒤를 따라갔다.
벌써부터 주변에서 태블릿을 꺼내 투덕대는 게, 아무래도 금방 소문이 퍼질 것 같았다.
내가 안 좋게 표현했지만 남들 눈에 보기에는 둘도 없는 기회였다.
무려 최연소 워록의 칭호를 가지고 있는 세기의 천재 베리얼 카스테로.
그런 베리얼에게 졸업반도 아닌 학생이 개인 교습을 받는다면 누구라도 말이 나올 수밖에 없겠지. 아니, 사실 졸업반에서도 특출한 인원들만 받을 수 있는 게 개인 교습이었기에 대단한 사건임은 맞았다.
한참 베리얼의 뒤를 따라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소용돌이 숲’이었다.
아카데미 부지 내에 있는 숲들 중 하나였는데 그 면적이 웬만한 남작령 크기였다.
‘설마 여기서 날 죽이려는 건 아니겠지?’
상대는 아무 생각도 없는데 나 혼자 호들갑 떨고 있는 것 같기는 했다.
근데 몇 번 데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나오는 반응이었다.
“아드리아스 학생.”
“예.”
“마법의 기원에는 순수, 이해, 모순이 있지요.”
베리얼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그거 아십니까? 사실 마법의 기원은 훨씬 종류가 많고 다양했다는 걸?”
신화시대의 마법을 말하고 있는 건가.
당연히 알고 있었다.
이미 게임을 플레이 하며 이 세상의 숨겨진 역사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나였다.
하지만 굳이 아는 척하지 않고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그렇습니까?”
“아직 정확한 종류가 밝혀지진 않았지만 무려 10여 종이 넘는 기원이 존재했다고 합니다. 지금 존재하는 3개의 기원은 첫 번째 기원인 ‘순수’에서 파생되어 발견이 되었지만 나머지 기원들은 아직 실마리조차 잡히지 않고 있죠.”
순수에서 파생된 모순과 이해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기원의 종류가 무려 10가지가 넘는다는 건 몰랐다.
그리고 그 나머지 10여 종류의 기원이 나오지 않는 이유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왜냐하면 순수와 이해 그리고 모순은 서로 얽히는 관계이기에 연관성이 있어서 파생될 건덕지가 있었지만 밝혀지지 않은 것들은 전혀 연관성이 없었기에.
이 연관성이란 마치 가위바위보와 같았다.
어느 날 바위를 발견했는데 이를 연구하자 가위와 보를 찾아낸 격.
여기서 갑자기 나비를 찾거나 사과를 찾을 수는 없지 않은가.
‘순수는 이해를 이기고, 이해는 모순을 이긴다. 마지막으로 모순은 순수를 이기지.’
물론 절대적인 건 아니고 워록의 역량에 따라 갈리지만 기본적인 상성이 저렇다는 이야기였다.
순수로 오리지널 마법을 만든 워록은 이해의 워록에게 강한 모습을 보인다.
같은 수준이라는 전제하에 위의 사실이 마법계의 정석.
“아드리아스 학생. 사실 제가 아드리아스 학생에게 개인 교습을 해 주려는 건 학생이 만든 마법진을 봤기 때문입니다. 모순에 대한 이해도가 탁월해요.”
그래서 나를 가르치기로 했구나.
별 것 아닌 작은 해프닝으로 생각했는데 그 일이 이렇게 이어질 줄은 몰랐다.
“대체로 모순을 기원으로 둔 마법들은 흑마법이 많죠.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말을 하던 베리얼이 의미심장한 실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드리아스 학생은 흑마법을 익혔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