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계획 정리 그리고 면담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플러트러스 포션이 케일 정제수를 만나게 되면 붉은 침전제가 생기며, 동시에 검은 기포가…….”
카일러의 강의를 들으며 그와 관련된 스토리를 떠올렸다.
그의 시나리오가 개시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미리 생각을 정리해 둬야지.
‘문제의 발로는 카일러가 만든 포션을 그의 제자가 외부로 빼돌리면서 일어난다.’
포션의 효능은 육체 능력과 마나 효율의 일시적인 증가.
효능만 보면 이게 왜 나쁜 건가 싶지만 문제는 역시나 부작용.
평범한 부작용이었으면 조용히 넘어갔을 수도 있지만 평범하지 않은 게 문제였다.
무려 신체의 변형과 함께 마나 폭주라는 무시무시한 부작용이 그 포션으로 인해 일어난다.
‘사용된 재료도, 제조에 사용된 마법도 전부 흑마법과 관련된 거지. 물론 이건 일이 전부 끝난 뒤 밝혀지긴 하지만.’
사건을 조사하다 결국 카일러까지 이어지게 되는 스토리는 결국 플레이어가 카일러와 싸우는 전개로 흐른다.
물론 초반 챕터답게 카일러가 강한 흑마법사는 아니었지만 학생의 수준에는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지금의 디에네라면 혼자서도 이길 수 있겠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자 카일러의 수업은 이렇다 할 문제없이 순탄하게 끝났다.
도중에 나를 한 번 호명하며 내가 만들어 낸 포션에 대한 칭찬을 제외하고는 내게 딱히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다.
‘나를 모를 리는 없으니 그냥 거리를 두는 건가.’
하지만 어쩌지.
난 너한테 관심이 많은데.
그의 제자가 사건을 일으키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으니 벌써부터 걱정할 건 없었다.
지금은 그저 그의 수업을 들으며 미리 준비만 하고 있으면 될 뿐.
“선배. 지금부터 시간 있어요?”
옆자리에 앉아 있던 루시아가 웬일로 자리를 뜨지 않고 내게 말을 걸어왔다.
원래 같았으면 내가 저번에 알려 준 단서 때문에 후다닥 연구실로 뛰어가는 게 정석인데.
“왜 갑자기.”
“아니 그냥. 선배가 저번에 말해 준 거 있잖아요. 그 슬라임 핵으로 우연히 만들었다는 그거.”
“어. 좀 해 봤어?”
“네. 일단 선배가 말씀하신 것처럼 만드는 데는 성공했거든요? 근데 그 이상으로는 힘드네요.”
이야. 그걸 벌써 해냈다고?
솔직히 이렇게 빨리 해낼 줄은 몰랐다.
그렇다면 사분의 일 정도는 왔다는 소리인데.
“그 이상으로 뭘 원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나중에 시간 내서 같이 해 보자.”
“나중에요? 지금 바빠요?”
“어. 볼일 있어서 먼저 갈게.”
“어디 가시는데요?”
“교장실.”
카일러도, 루시아도, 그 외에 산재한 해결거리가 넘쳐 났지만 우선은 날 부른 교장부터 만나러 가야지.
* * *
루이스 아트만은 오전 강의로 인해 땀에 흠뻑 젖은 몸을 이끌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며칠 동안의 고민 끝에 결국 참지 못하고 행동에 옮기는 중이었다.
열차에서 내리고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기자 주변에서 그를 알아본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모나스 수석이다.”
“쟤가 마법학부까지 뭔 일이래?”
들려오는 소리를 무시하고 마법학부의 강의동으로 향했다.
루이스는 지금 그 무엇도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아.”
마침내 찾던 인물이 보였다.
오전 강의가 끝나 거리로 쏟아져 나온 학생들의 시선이 한 곳에 몰려 있었기에 찾는 일은 쉬울 수밖에 없었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그는 평상시와 같은 마법사의 로브에 조금 낡아 보이는 검을 옆구리에 찬 모습이었다.
만약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그 언밸런스한 모습에 비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여기 있는 그 누구도 그를 비웃을 수가 없었다.
‘기사와 마법사의 재능을 모두 갖춘 자.’
마치 옛 전설처럼 존재한다는 이야기만 들려왔지 체질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제국의 창시자인 에드먼드 대제가 그와 같은 체질이라고 들었었다.
루이스가 투지에 불타는 눈빛으로 서 있자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던 아드리아스가 멈췄다.
그의 시선이 루이스에게 닿자 다른 학생들의 시선도 자연스레 그쪽으로 향했다.
“뭐야. 쟤 신입생 대표잖아.”
“땀 흘리는 거 봐. 급하게 왔나 보네. 근데 여긴 왜 왔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오고 루이스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마침 잘됐다.
이 기회를 이용해야지.
“아드리아스 크롬웰 선배님.”
루이스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주변에 있던 학생들이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그 상황을 지켜봤다.
정작 이름이 불린 아드리아스는 여전히 차갑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루이스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간 고민했습니다만 결국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으신 건 알고 있지만 제게 부디 한 수 가르쳐 주실 수 있습니까.”
루이스의 말이 끝나자 폭발적인 반응이 주변에서 터져 나왔다.
“와, 씨, 미친!”
“뭐야, 뭐야! 지금 신입생 대표가 대련 신청한 거야?”
“개재밌겠다. 누가 이길까?”
사람들은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아드리아스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드리아스는 여전히 입을 다문 채 특유의 차가운 눈빛으로 루이스를 바라만 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엥?”
누군가의 당혹스러운 감탄사가 흘러나왔지만, 그럼에도 아드리아스는 조용히 걸음을 옮기며 대답 한마디 없이 루이스를 지나쳐갔다.
그 지독하게 냉정하고 차가운 모습에 모두가 얼어붙었다.
아드리아스가 그대로 갈 길을 가 버리며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제서야 사람들이 하나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뭐지?”
“그냥 갔네.”
“꺼져라. 애송이. 이런 뜻인가?”
“아직 부상이 낫지 않아서 쫀 거 아니야?”
“재수 없네. 마법사가 검을 휘두르는 것도 마음에 안 드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터져 나오는 그때에도 루이스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 없었다.
‘아무도…… 느끼지 못한 건가?’
이 압박감을 나만 느꼈다고?
루이스는 간신히 숨을 토해 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아드리아스가 사라진 거리를 바라보았다.
그 텅 빈 풍경이 이제는 사라진 자신의 투쟁심과 같았다.
‘나는 아직 멀었다. 더 강해져야 돼.’
아드리아스를 직접 마주해 보니 깨달았다.
주변에서는 자신을 모나스의 신성이니 역대 기록들을 갈아엎은 수석이니 말이 나오고 있었지만, 역시 세상은 넓고 강자들은 많았다.
게다가 아드리아스 크롬웰은 아카데미에서 지내는 3년 동안 두각을 드러내지 않고 있던 학생.
아마 그를 제외하고서라도 숨겨진 강자들이 더 있을 것만 같았다.
‘다음에 마주칠 때는 반드시 당신의 걸음을 멈춰 세워 보이겠습니다.’
사라졌던 그의 투지는 또 다른 의지로 가슴 속에 차올랐다.
* * *
교장실이 있는 행정동으로 향하는 열차를 타며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설마 루이스가 나를 찾아올 줄이야.
전혀 생각도 못 했네.
이건 내게 있어서 엄청난 슈퍼스타가 몸소 나를 찾아온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덕분에 긴장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지나쳤네.’
나도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아마 내 무의식은 내 생각보다 훨씬 루이스를 대단하게 여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대단한 건 사실이지. 원래는 이 세상의 주인공이나 마찬가지인데.’
대답이라도 해 줄 걸 그랬다.
갑작스러운 상황 속에서 당황과 긴장을 동시에 한 탓에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어차피 교장실에 가야 했기에 그의 부탁을 못 들어주는 건 매한가지였지만 무시한 것 같아 미안하네.
‘거기다 긴장을 해서 나도 모르게 기운을 내뿜은 것 같기는 한데…….’
루이스니까 그 정도는 문제없겠지.
루이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있자 열차는 금세 중앙 행정동에 도착했다.
솔직히 할 게 많은 나로서는 시간을 뺏긴 기분이었지만 그 누구도 아니고 교장이 불렀으니 거절할 수 없었다.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언데드들부터 수복시켜야 하는데.’
특히 왼팔이 날아간 니켈의 경우 이번에 얻은 호산의 시체를 이용해야 했다.
사실 오러 마스터에 근접한 강력한 빌런이니 만큼 언데드로 소환하고 싶었지만, 결국 그 시체는 내 언데드들을 고치는 데 사용하기로 했다.
시간이 나지 않아 미뤄 두던 찰나, 오늘에서야 고쳐야지 계획해 두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교장의 부름으로 그조차 어그러졌다.
용무가 빨리 끝나고 돌아간다면 아마 시도는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에 호산을 죽이고 얻은 검들도 처리해야 하고, 할 일이 산더미군.’
검들을 내가 직접 사용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좋은 사용처가 있었다.
호산의 검은 무려 11개로 니켈이 부숴 버린 마검 화란을 제외하고도 10개나 되었다.
솔직히 마검 화란과 소드 브레이커 등을 제외하고는 특출한 검이 없었다.
‘마침 벤자민이 결승전 관람을 와서 다행이었지.’
검들의 사용처란 다름 아닌 루벤스의 먹이였다.
벤자민의 시그니처나 다름없는 마검 루벤스는 다른 검들을 잡아먹으며 성능이 강화되는 성장형 마검이었다.
벤자민에게 따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아 놓았으니 그때 건네줘야지.
생각을 하는 도중 어느새 교장실이 존재하는 본 건물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거대한 건물에 비해 사람이라고는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아 어색했다.
다행히 아침에 보았던 모건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마법 승강기에서 나오는 게 보였다.
“아! 아드리아스 학생!”
그는 마침 잘됐다는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교장실까지는 제가 안내해 드리죠.”
“감사합니다.”
그를 따라 승강기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로들렌 마탑에도 이런 승강기가 있으면 길도 잃지 않고 얼마나 좋을까.
승강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지에 멈췄다.
모건이 앞장서고 그 뒤를 따라가자 교장실로 보이는 문 앞으로 다가설 수 있었다.
똑똑.
“모건입니다. 아드리아스 학생을 데려왔습니다.”
“예. 들어오세요.”
안쪽에서 데오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모건이 문을 열었다.
모건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평범해 보이는 집무실이 눈에 들어왔다.
교장, 데오스 캐니언은 마치 영화에서나 볼 법한 풍성한 수염에 긴 백발을 늘어뜨린 노인이었다. 그 인자해 보이는 인상과 털털한 성격은 아카데미 재학생들에게 존경을 받게끔 해주었다.
‘겉으로는 그렇지만 이 양반도 속이 조금 꺼멓지.’
그래도 악하다거나 그런 건 아니라 딱히 경계할 필요는 없는 양반이었다.
다만 경계까지는 아니어도 얕잡아 보이면 안 된다.
그리고 그에게는 또 한 가지 숨겨진 비밀이 있었는데…….
“전 이만 업무를 보러 돌아가 보겠습니다.”
“예. 수고했어요. 모건.”
모건이 나가자 그제야 데오스에게 말했다.
“아드리아스 크롬웰입니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예. 아드리아스 학생.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강의는 잘 들으셨나요?”
그는 차분하게 미소 지으며 내게 앉으라고 손짓했다.
그리고는 직접 차를 끓이기 시작했는데 저런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로 호의를 사는 게 특기였다.
“예. 4학년이나 되었는데도 아직까지 배울 게 많다는 걸 느꼈습니다.”
“하하. 배움에는 끝이 없죠. 저도 이 나이가 되도록 배우는 게 있답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끓인 차를 들고 내 맞은편에 앉으며 내려놓았다.
이제 슬슬 나를 부른 이유나 말해 줬으면 좋겠는데.
“혹시 바쁘신가요?”
“아닙니다. 오늘은 오후 강의도 없어서 괜찮습니다.”
“다행이군요.”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아무 말 없이 찻주전자를 바라봤다.
묘한 시간이 흘렀다.
‘심리적으로 압박감을 주는군.’
하수나 통할 책략이다.
어차피 이곳에 온 이상 나는 마음을 다급히 먹지 않기로 결심했다.
뭐를 위해 불렀는지는 몰라도 내가 불리할 건 전혀 없으니까.
‘설마 흑마법을 들켰을 리도 없고, 애초에 흑마법이 들켰으면 교장 면담이 아니라 학부장들이나 바하트가 들이닥쳐서 나를 공격했겠지.’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원하던 때가 지났는지 데오스가 찻잔에 차를 따르기 시작했다.
“아드리아스 학생은…….”
차를 따르며 입을 연 데오스가 묘하게 말을 끌었다.
내가 뭐.
“많이 달라지셨군요. 평범한 학생 같지 않습니다.”
“그렇습니까?”
“예. 보통은 교장실에 들어오면 안절부절못하거든요. 아드리아스 학생도 예전에는 그랬습니다. 하하하.”
내가 예전에 교장을 만난 적이 있었나?
아카데미 재학생이라고 모두가 교장과 면담을 해 보는 건 아니었다.
기억을 되새김질 해 보자 아버지의 부고로 인해 면담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제정신이 아니었지.’
그래도 쪼들릴 건 없다.
오히려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저 능구렁이 같은 노인에게 괜히 꼬투리를 잡히겠지.
나는 아무 말없이 그저 데오스가 따라 준 차를 한 입 마셨다.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던 데오스는 자신도 차를 마신 뒤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고 아드리아스 학생은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계십니까?”
“예. 더할 나위 없이.”
내 대답을 들은 데오스는 침음을 내며 잠시 찻잔을 바라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드리아스 학생은 혹시…….”
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
듀얼 코어를 추궁하려고 하나.
“혹시 전공 학부를 변경할 생각은 없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