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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64화 (64/415)

64화. 비기

새벽이 끝나 가고 있는 짙은 밤.

선로가 길게 이어진 숲에서 검광이 번뜩였다.

파아앗!

갈색 마나로 물든 호산의 검이 아슬아슬하게 내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충격만으로 볼이 찢겨 나가며 저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씨발. 안 그래도 잘난 거 없는 얼굴인데.’

초장부터 언데드를 소환하려다 오히려 생각을 바꿨다.

상대가 방심하는 틈을 노려야 그나마 살아날 구멍이 생길 거라 생각한 나는 중요한 타이밍에 언데드를 소환하기로 하고 일단은 얌체처럼 버텼다.

콰가각!

나와 호산 사이에 세운 어스 실드들이 칼질 한 방에 부서져 나갔다.

어스 실드로 막는다는 느낌보다 최대한 시야를 차단한다는 느낌으로 사용하며 거리를 벌리고 디버프 스킬을 사용했다.

‘블러드 커스.’

하지만 상대가 상대인지라 레벨 낮은 디버프의 효과는 미미해 보였다.

오히려 화만 돋운 모양인지 호산이 이죽거렸다.

“쥐새끼 같군.”

호산은 빨랐다.

내가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소용이 없을 정도의 압도적인 스피드였다.

캉!

검을 맞부딪히자 신체 능력의 차이가 여실히 느껴졌다.

그리고 그와 함께 내 검이 상대의 검에 갈려 나가기 시작했다.

‘소드 브레이커!’

호산이 가진 네임드급 검, 소드 브레이커였다.

말 그대로 상대의 검을 갉아먹는 악질적인 검.

저게 몸에 닿으면 몸도 분쇄해 버리니 마검에 가까운 검이었다.

나는 검을 떼어 내려 했지만 마치 상대의 검에 눌어붙은 것처럼 떼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때!

‘니켈!’

내 부름에 응답한 니켈이 호산의 옆에서 튀어나오며 검을 휘둘렀다.

쿠아앙.

검풍이 휘몰아치며 호산을 저 멀리 날려 보냈다.

아무리 그였어도 예상치 못한 공격이었는지 제대로 통한 느낌이었다.

‘방심하면 안 돼.’

나는 거리를 벌린 김에 검을 갈락슈르로 바꾸며 락 스피어를 쏘아 보냈다.

그리고 곧바로 니켈과 함께 몸을 추스르는 호산에게 공격을 가했다.

쇄액―!

콰―앙!

내가 만들어 낸 새까만 검풍이 니켈과 함께 호산을 덮쳤고 이내 폭음과 함께 먼지가 자욱하게 드리워졌다.

“조금 무시했었는데…….”

먼지 속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한 수 있는 놈이었구나.”

팅!

퍼엉.

니켈이 튕겨져 나왔다.

상대는 내가 니켈을 소환한 것에 대한 의문은 없는지 그저 묵묵히 왼손으로 새로운 검을 꺼내 들었다.

양손에 각각 하나씩의 검을 든 호산은 이내 눈 깜짝할 사이에 내 곁에 다가와 두 팔을 휘둘렀다.

하지만 나도 호락호락하게 당해 주지만은 않았다.

콰가각.

옆에 있던 니켈과 함께 합공을 가했다.

니켈과는 의지로 연결되어 있기에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합격술을 펼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호산의 검을 니켈과 함께 막고 있을 때 그의 뒤로 티무르를 소환했다.

“같잖군. 또 걸려줄 거라 생각했나.”

휘이익― 파앙!

공기가 터져 나가며 검기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온몸에 자잘한 상처가 생기며 몸이 뒤로 밀려났다.

그 사이 뒤에서 덤벼드는 티무르를 간단히 제압하는 호산을 보자 눈앞이 막막했다.

‘역시 무리인가.’

파야트 때와 마찬가지로 오러 마스터에 근접한 상대.

게다가 그는 아직 사기적인 능력을 보유한 마검과 네임드급 검을 꺼내지 않은 상태였다.

차라리 방심하고 있는 지금 최대한 휘몰아쳐야 했지만 나로서도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진 패 중 가장 강력한 패는 나태.

그러나 나태를 사용한다는 건 목숨을 담보로 강해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스승님에게 배움을 얻어서 그나마 버티고 있지.’

만약 방학 동안의 수련이 없었다면 손도 한 번 못 써 보고 썰려 나갔을 거다.

딱딱딱.

니켈이 걱정 말라는 듯 내 어깨를 툭 밀치며 먼저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래. 내게는 아직 니켈과 티무르 그리고 신화급 언데드인 루도가 있었다.

그리고 어차피 죽을 거라면 나태를 사용해 발악이라도 해 보고 죽어야지.

니켈의 검을 간단하게 막아 내고 나머지 검 하나로는 티무르의 몸뚱어리를 찢는 호산을 보며 나는 루도를 소환했다.

우우우웅.

쿵!

거대한 몸집이 아공간을 찢듯이 열어젖히며 모습을 드러냈다.

거인족에 어울리는 팔이 먼저 나오며 주변에 존재하는 나무들을 우그러뜨렸다.

콰드드득-!

이내 몸을 드러낸 타이탄 구울, 루도가 등장하며 엄청난 기세를 터트렸다.

그어어어어―!

루도가 나타나자 호산이 여유롭게 감상을 전했다.

“별 이상한 놈들을 끌고 다니는군.”

호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달려간 루도가 거대한 검으로 내려찍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버프 마법을 시전했다.

‘데스 퓨리.’

붉은 기운에 휩싸인 루도의 대검이 흉악한 기세를 흘렸다.

콰―앙!

공기가 터져 나갔다.

호산이 쌍검을 교차하며 막았지만 그가 밟고 선 땅이 움푹 들어가는 게 눈에 보였다.

아무리 호산이어도 루도의 힘에는 못 당하겠는지 점점 밀리는 게 눈에 보였다.

“흐읍!”

호산의 검에서 갈색의 마나가 휘몰아치며 검기의 폭풍이 터지는 동시에 대검을 밀어냈다.

하지만 루도는 대검이 밀려나는 순간에도 나머지 한 손으로 거대한 주먹을 휘둘렀다.

피하려고 하는 호산을 나와 니켈 그리고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티무르가 막았다.

뻐엉!

쾅! 콰드드드드득!

‘통했나?’

비록 니켈과 티무르가 함께 주먹에 얻어맞았지만 몸을 던진 그들의 투혼 덕분에 호산도 주먹에 휩쓸렸다.

아무리 호산이라고 해도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인 이상 멀쩡하지는 못할 거다.

‘하지만.’

난 방심하지 않는다.

근처의 숲에 있는 나무들을 모조리 부숴 먹으며 날아간 호산을 찾기 위해 루도를 뒤따라 붙게 하고 달렸다.

의식을 집중하자 쓰러져 있는 니켈과 티무르의 존재가 느껴졌다.

쇄앵!

퍽!

“윽!”

그 순간 엄청난 속도로 무언가가 내게 날아왔다.

간신히 피한다고 피했지만 왼쪽 어깨를 내주고 말았다.

‘검?’

뭐가 날아와서 치고 간 건가 확인해 봤더니 검 한 자루가 날아와서 박혔다.

나는 어깨에 박힌 검을 뽑아내고 앞을 보았다.

피투성이가 된 호산은 나무들이 모두 쓰러진 숲의 공터 한가운데에서 천천히 떠오르는 여명의 빛을 받으며 서 있었다.

그에게는 어느새 새로운 검들이 각각의 손에 들려 있었다.

‘마검 화란, 빛을 부리는 검 가이노스.’

하필이면 최악의 상성이었다.

마검 화란은 착용자의 체력을 가져가는 대신 마나의 화력을 높여 주고 가이노스는 대언데드용 명검이었다.

“뭐 하고 있나. 어서 덤비지 않고.”

개 같은 새끼.

그냥 놔줬으면 도망쳤을 텐데 굳이 지가 따라온 주제에 내가 덤빈 것처럼 말하네.

니켈과 티무르도 멀쩡하지 않은 데다 호산이 가장 강력한 검들을 꺼냈다.

루도를 통해 승산을 조금 봤지만 호산의 상태를 보면 그리 심각한 상처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역시 무리였나.’

강대한 힘 앞에서는 전투 재능이고 뭐고 의미를 잃었다.

그와 나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메꿀 수가 없는 간극이 존재했다.

그때 한쪽에 쓰러져 있던 니켈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주인보다 본받을 만한 언데드군. 자, 덤벼라.”

이제 보니 니켈은 왼쪽 팔이 날아간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는 듯 남은 손으로 검을 든 채 경건하게 전투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후우.’

니켈을 보자 잠시 약해졌던 내 마음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나는 아직 멀었다.

더. 더. 더.

더 강해져야 했다.

그때 니켈의 의지가 내게 전해져 왔다.

[슬로스 팬텀(전설)이 나태를 사용하고자 합니다.]

[슬로스 팬텀(전설)과 나태의 쿨타임을 공유하게 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고민할 틈이 없음에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니켈이 나태를 사용하게 되면 나는 사용할 수 없다.

과연 내가 나태를 사용하는 게 이득일까 그가 사용하는 게 이득일까.

딱! 딱!

그때 니켈이 나를 향해 턱을 부딪쳤다.

마치 자신을 믿어 보라는 듯한 그 제스처에 나는 고민을 지워 냈다.

‘나태를 사용하면 또 예전과 같은 허무한 감정을 느끼면서 자살을 할지도 모른다. 그때는 원죄가 깨워 준 덕분에 살았지만 또 그런 행운이 있을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지.’

결국 내 시야를 가리는 메시지에 조용히 수락의 의사를 비쳤다.

파르륵.

어깨에 걸쳐진 도복이 휘날렸다.

니켈이 이전과는 다른 존재감을 드러내며 귀기 어린 푸른 마나를 검에 담았다.

“마지막 발악인가. 좋다.”

과연 이게 알맞은 판단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미 결정된 일을 번복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저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했다.

니켈과의 합은 굳이 맞추지 않아도 됐다.

이미 내 생각을 공유하고 있는 니켈이 나와 겹칠 리는 없었다.

우선은 루도를 먼저 보냈다.

처음 소환했을 때는 공격이 먹혔지만 아무래도 루도의 공격은 덩치만큼이나 느릴 수밖에 없었다.

콰과과광!

주변의 나무들을 전부 부수며 대검이 휘둘러졌지만 호산은 여유롭게 피해 내고 루도의 몸에 난도질을 했다.

그워어어어―!

분노한 루도가 울부짖었지만 가이노스로 인한 타격으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루도의 시도는 충분히 도움이 되었다.

피잉! 팟!

루도가 시간을 끈 사이 나태에 적응한 니켈이 엄청난 빠르기로 호산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이내 경천동지할 폭음과 검기 세례가 맞붙었다.

콰―앙!

콰가가가각!

“후읍.”

그사이에 나는 데슈른의 책자를 통해 배운 ‘무아검’을 시도하기로 했다.

그가 알려 준 무아검은 이해하기도 힘들고 따라 하기도 힘든 검법이었는데 그중 가장 기초적인 검술 하나를 떠올렸다.

‘변화하는 검.’

나는 니켈과 폭음을 터트리며 싸우는 호산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완전히 둘만의 세계에 빠진 듯 내가 다가가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여기서…….’

머리가 과부하가 걸린 듯 삐그덕거렸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펼칠 수 있음을 직감했다.

변화하는 검.

마나가 성질을 바꾸고 형태를 갖추었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빠르기로…….

탕!

마치 총의 격발음과 같은 소리와 함께 마나의 파동이 터져 나가고 내 몸은 한계를 넘어 마치 순간 이동을 하듯 호산을 스쳐 지나갔다.

음속을 넘은 속도로 인해 몸에서 김이 올라왔다.

옷은 여기저기가 타들어 가며 마치 화상을 입은 듯 온몸이 울긋불긋해졌지만 그 결과는 놀라웠다.

호산의 가슴이 길게 베어졌다.

‘아쉽지만 내 역할은 여기서 끝.’

나태를 활성화한 니켈과 싸우느라 내게 신경을 못 써 놓고도 결국에는 막아 낸 호산이었다.

가슴을 베었지만 그저 살갗을 갈라낸 정도.

하지만 진짜는 그 뒤에 있었다.

내 불의의 일격으로 손이 꼬인 호산을 향해 니켈이 심혈을 기울이듯 천천히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그 검에는 귀기 어린 불꽃과도 같은 푸른 마나가 엄청난 밝기로 넘실거렸다.

‘설마……비기?’

‘비기’는 오러 마스터만이 사용할 수 있는 기술.

오러 마스터가 되면 얻게 되는 ‘극의’가 이로운 효과를 보정해 주는 패시브 스킬의 개념이라면 ‘비기’는 오러 마스터만이 사용할 수 있는 액티브 스킬.

비기를 얻었느냐 얻지 못했느냐가 오러 마스터의 등극 여부를 가려냈다.

후우웅.

그것은 단순한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그 단순한 움직임에는 온갖 검의 무리가 담겨 있었다.

니켈의 검을 막아 내는 호산의 마검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깨져 나갔다.

나태를 사용한 지금만 사용할 수 있는 기술.

그것은 니켈이 생전에 사용해 보지 못했던 그리고 기본 검술에만 충실했던 ‘니켈다운’ 비기였다.

정직한 내려 베기.

그것은 알면서도 막을 수 없는 검.

푸화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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