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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특성으로 최강 네크로맨서-56화 (56/415)

56화. 벤자민 아니키우스 그리고 광신도들

“항상 명심하거라. 우리는 용사의 후예들이라는 사실을. 그분이 가까스로 봉인한 마검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할아버지가 틈만 나면 하던 잔소리가 벤자민의 귓가에 아른거렸다.

그리고 지금 그의 손에는 마검 루벤스가 들려 있었다.

“끄아악!”

“막아! 막아라!”

마을이 불타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피를 뿌리고 있었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외지인들이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벤자민! 어서 그 검을 가지고 도망가라!”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지만 벤자민은 보랏빛 천에 싸인 루벤스를 든 채 멍하니 서 있었다.

마검의 마기에 침식되지 않는 유일한 인물인 벤자민만이 마검을 들고 도망칠 수 있었음에도 그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어째서…….’

벤자민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 마검이 뭐라고 어제까지만 해도 자신을 귀여워해 주던 마을 사람들이 죽고 있는 건가.

그리고 왜 저 용병들은 이까짓 검 때문에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있나.

“찾았다! 마검이 저기 있다!”

어느 용병의 외침에 험상궂은 사내들이 벤자민을 향해 몰려들었다.

그리고 그 앞을 필사적으로 막는 마을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대체 왜…….”

이까짓 검이 뭐라고.

벤자민은 검에 쓰인 천을 벗겨 내고 마검 루벤스의 손잡이를 양손으로 잡았다.

도망칠 수 없었다.

그가 나고 자란 땅과 함께 이 마을에서 함께 살아온 사람들을 버릴 수 없었다.

스르릉.

요사스러운 소리와 함께 마검 루벤스가 칼집에서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곧이어 검신이 전부 드러난 루벤스가 울음을 토해 냈다.

끼이이익―!

마력 폭풍이 일어나며 벤자민은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한 힘을 느꼈다.

버리지 못하겠다면 차라리 적들을 모두 죽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검집에서 벗어난 마검은 평소보다 수십 배의 마기를 흘리며 벤자민을 침식해 들어갔다.

촤아악!

* * *

“헉.”

벤자민이 거친 호흡을 토해 내며 눈을 떴다.

주변을 살펴보자 어느새 해가 중천에 가까울 만한 시간이었다.

악몽을 꾸긴 했어도 오랜만에 취한 긴 잠으로 몸은 가벼웠다.

“일어났냐.”

그런 벤자민에게 인사를 건넨 아드리아스는 물통을 그에게 건넸다.

벤자민은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아드리아스를 바라보다 이내 자신의 품에 안긴 마검의 존재를 확인하고 물을 받았다.

“가, 감사합니다.”

평범한 물인가?

살짝 의심을 해 보았지만 해코지를 할 거였으면 진즉에 했을 것이었기에 사양 않고 물을 마셨다.

어느새 그들이 머물렀던 자리는 깔끔하게 정리가 된 상태였는데 벤자민은 자신의 몸을 덮고 있는 담요를 접어 아드리아스에게 건넸다.

“그, 저, 그니까…….”

“고맙다고? 그래. 인사 잘 받았다.”

“예? 예…….”

이 사내는 도대체 왜 이렇게 잘 대해 주는 건가.

마을 밖으로 나온 이후로 항상 주변을 경계하며 다녔기에 이런 호의는 처음이었다.

동정인가? 연민인가?

하긴 지금 자신의 꼴을 보면 동정심이 생기지 않고는 못 배길 처지였다.

“이것도 인연인데 이름이나 물어보자. 일단 나는 아드리아스 크롬웰.”

“벤자민 아니키우스입니다.”

“그래. 벤자민.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따로 가는 곳이 있나?”

아드리아스의 물음에 벤자민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차피 정해진 목적지는 없었으니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잠시 생각을 하느라 대답이 없자 아드리아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굳이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그냥 궁금했던 것뿐이니까. 솔직히 네가 어디로 가는지보다 왜 그러고 다니는지가 더 궁금하긴 해.”

“저희 마을이, 용병들에게 습격을……당했습니다.”

잠시 고민해 봤지만 이 정도는 말해도 상관없어 보였다.

인상이 좋지는 않지만 딱히 나쁜 사람 같지도 않고.

벤자민의 말에 아드리아스는 미간을 좁히고는 고민에 빠진 듯 턱을 쓸었다.

“갈 데가 없겠네.”

“……예.”

결국 마을이 습격당했다는 말로 간단히 유추가 가능했다.

벤자민은 한숨을 내쉬며 생각에 빠졌다.

‘이제 나는 뭘 해야 하지. 루벤스는 가지고 나왔지만 가족들도 모두 죽고 마을도 없어졌다.’

습격한 용병들을 전부 죽였지만 이미 마을 사람들도 전부 죽은 후였다.

애초에 크기가 작은 마을이라 그가 검을 뽑았을 때는 대부분 죽은 뒤였다.

‘차라리 내가 조금만 더 빨리 결정했으면…….’

후회가 가슴을 찔렀지만 꿋꿋하게 버텼다.

자신은 용사의 후예, 마검을 수호한 것만으로도 소명을 다했다.

그때 아드리아스가 말을 걸어왔다.

“갈 데가 없으면 잠깐 동행이라도 할까? 이런 오지에 있어 봤자 너한테 아무 도움도 안 될 거다.”

“감사합니다만 왜 굳이 저한테 신경 쓰시는 거죠?”

“너랑 비슷한 나이대의 여동생이 있어서 그냥 두고 볼 수가 없네. 싫으면 말아라.”

아드리아스의 말에 벤자민은 고개를 저었다.

마검을 지켜야 하는 사명을 지닌 이상 자신은 살아남아야 했다.

언제 또 이런 호의를 받을지 모르니 기회를 이용해야 했다.

“동행하겠습니다. 부디 받아 주세요.”

“오냐. 일단 제국 수도 쪽으로 가는 걸로 알고 있을게. 뭘 하든 그곳이 일을 구하거나 살기에는 편하니까.”

그렇게 뜻밖의 동행이 시작되었다.

* * *

‘용병이 습격했다고?’

마을이 습격받은 자세한 내막을 물어보기에는 아직 섣부른 것 같았다.

일단은 조금 더 친해지고 경계심을 늦춘 뒤에 물어봐도 되겠지.

미래가 바뀌었다는 건 결국 내 행동으로 인해 어디선가 어긋났다는 건데 짐작 가는 곳이 없었다.

‘원인은 차차 알아보고 일단은 벤자민을 어떻게 하냐가 문제인데.’

내 편으로 만들겠다고는 생각했지만 머리만 아파 왔다.

나도 당장 아카데미로 복귀해야 하는데 그를 살필 시간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아카데미?’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에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는 알븐가의 빚도 지워지고 곧 추가로 특허를 낼 두 개의 포션으로 돈도 충분한 상태.

벤자민의 학비를 내가 지원하고 로들렌의 부속 아카데미인 모나스 아카데미로 입학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일단 아카데미에 입학한다는 자체만으로 충분한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또한 벤자민의 나이는 올해로 15살일 터.

3년 과정인 모나스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딱 좋은 나이였다.

‘문제는 모나스도 입학 절차가 끝났을 거라는 건데.’

그 정도는 어떻게든 해결해 봐야지.

일단 어떻게든 아카데미에 집어넣는 게 목표였다.

‘검의 주인’이라는 특성상 혼자서 수련만 해도 쑥쑥 성장하는 녀석이었는데 아카데미에서 배우면 오히려 게임에서보다 빠르게 성장할 수도 있었다.

‘생각해 보니까 15살밖에 안 된 꼬맹이네.’

게임 속 플레이어블 중 가장 어린 캐릭터였다.

그럼에도 루이스 다음가는 캐릭터이니 사실상 루이스와 나이가 같았다면 이 녀석이 첫 번째가 될 수도 있었을 거다.

생각을 하며 벤자민과 걷다 보니 어느새 어둑해진 하늘과 함께 마을이 보였다.

그나마 크라테스 산맥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로 크라테스 산맥으로 향할 때도 한 번 들렸던 마을이었다.

‘이곳에서 하룻밤 지내고 말을 산 다음 메르테옹까지 가면 되겠군.’

아카데미 이야기는 그사이에 넌지시 건네기로 했다.

마을로 들어가자 이미 시간이 늦어서인지 차분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나는 그사이에 숨은 묘한 긴장을 느낄 수 있었다.

‘꺼림칙한데.’

물론 기분 탓일 수도 있었지만 일단은 예전에 신세를 졌던 마을 촌장의 집으로 향했다.

문을 두드리자 촌장은 금방 얼굴을 비쳤다.

“누, 누구? 아, 저번에 그분이시군요.”

촌장이 안으로 들어오라며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나 나는 살짝 멈칫했다.

‘촌장이 식은땀을 흘리고 있군. 호흡도 불안정하고 몸이 굳었어.’

긴장을 하고 있다.

뭐 때문에?

의문이 들자마자 나는 곧바로 마나 디텍트를 사용했다.

그러자 안쪽에 숨어 있는 인물들과 마을 바로 옆에 있는 숲 쪽의 인기척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젠장. 들켰다! 죽여!”

숨어 있던 녀석들도 내 마나 디텍트를 느낀 모양인지 곧바로 집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며 무기를 휘둘러 왔다.

‘뭐지? 예전에 들렀을 때는 없었던 녀석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제압을 한 뒤 물어보려 검을 꺼내려 했다.

끼이이익―!

갑자기 기괴한 소음이 울려 퍼졌다.

마을에 들어올 때부터 모르는 사람들을 마주칠까 긴장하고 있던 벤자민이 지체없이 루벤스를 뽑아 들었다.

‘골치 아프게 됐네.’

마검의 존재는 되도록 숨겨야 하는데 이전의 경험 때문인지 검부터 뽑고 보나 보다.

벤자민이 검을 뽑아 들자 적들은 벤자민부터 공격하기로 마음먹은 듯 덮쳐들었다.

하지만 엄청난 마력의 폭풍과 함께 벤자민이 일검을 휘두르자.

서거걱!

상체와 하체가 분리된 적들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대단하긴 하군. 마검이 너무 사긴데?’

아마 현 상태로만 따지면 마검을 들고 있는 벤자민이 루이스보다 강할 거다.

그나저나 다 죽여 버려서 정체를 못 물어봤네.

나는 벤자민의 머리를 한 차례 쓰다듬고 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는 촌장에게 다가갔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저, 전 모릅니다! 아무것도 몰라요!”

“해치지 않을 테니 설명 좀 해 봐라. 그래야 도와주든 할 거 아니야.”

그때 바깥에서 수많은 인기척이 이곳을 향해 몰려오는 게 느껴졌다.

더럽게 많네. 도대체 뭐야?

“정확히는 모릅니다. 그냥 제파르 님을 숭배하라는 말만 자꾸 반복하면서 저를 협박했습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제파르 교단?

이 벌레 같은 새끼들이…….

어쩌면 벤자민을 노린 녀석들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내가 목적이었나 보다.

‘저번의 테러를 막은 것 때문인가? 정확히 확인해 봐야겠군.’

콰앙!

내가 촌장을 심문하고 있는 사이 밖에서 폭음이 들려왔다.

벤자민이 그새를 못 참고 싸우고 있나 보군.

고향이 습격당해 모든 걸 잃은 만큼 예민할 시기겠지.

촌장을 놔두고 일단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집 주변을 둘러싼 수많은 적들과 누군가와 싸우고 있는 벤자민이 보였다.

촤앙!

상대는 꽤 여유롭게 벤자민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벤자민은 몇 대 맞은 모양인지 입술이 터진 상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파르 교단 하위 간부, 막시무스 반담.’

하위라고는 하지만 간부인 만큼 그 무력은 범인을 넘어섰다.

비록 벤자민에게 마검 루벤스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경험과 실력은 넘을 수 없는 벽임을 확인했다.

그때 내 등장을 눈치챈 막시무스가 나를 돌아보았다.

“주인공이 여기 있었군! 네가 아드리아스 크롬웰 맞지?”

싸우는 도중에도 내게 시선을 돌려 말을 하는 걸 보면 실력의 차이가 꽤 나는 듯했다.

내 이름까지 아는 걸 보면 나를 찾아온 건 확실한 모양인데.

“이 꼬맹이는 뭐냐. 호위냐? 어쨌든 거래를 하나 하지.”

“거래?”

챙!

퍼억!

“윽.”

말을 하는 사이 덤벼든 벤자민을 가볍게 막고 발로 걷어찬 막시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카데미의 공양을 막은 게 누군지 말한다면 고통 없이 보내 주기로 약속하마. 네가 파야트 님을 죽였을 리는 없으니 제3자가 있었을 텐데.”

이게 목적이었나.

저 말을 들어 보니 왜 고작 하위급 간부를 보냈는지 알겠다.

‘얕보였군.’

오히려 좋아.

나는 갈락슈르를 뽑아 들었다.

“하? 지금 뭐 하자는 거지? 아드리아스 크롬웰. 네 녀석 마법사 아니었나?”

막시무스가 뭐라고 떠들든 나는 천천히 앞으로 걸었다.

'최근에 배운 걸 써먹을 때가 금방 찾아왔군.'

그리고 막시무스와의 거리가 3미터 정도 되었을 때, 집중을 한 상태로 새까만 마나가 휘감긴 검을 휘둘렀다.

쇄애액.

서걱!

툭! 소리와 함께 정적이 흘렀다.

이내 목이 사라진 막시무스가 피 분수를 터트리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말도…… 안 돼.”

누군가의 중얼거림이 들려오고.

마나의 파동을 응용한 검풍은 주변을 천천히 경악으로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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