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테러 그리고 결단
12월 중순.
오늘부터 아카데미는 일주일간 축제 기간을 가진 뒤 방학에 들어간다.
축제라고 해 봤자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부분 동아리 활동을 하던 녀석들이 그간 준비해 온 축제용 체험장이나 점포, 전시회 등을 여는 것이라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나는 그저 구경만 할 따름이었다.
비단 마법학부만이 아니라 기사학부에서도 이런저런 걸 준비하는데 이로 인해 기사학부 캐릭터를 플레이 하면 언제나 이벤트나 해프닝이 발생하고는 했다.
‘이번에 테러가 일어나는 장소는 소경기장. 연말 이벤트 토너먼트.’
로들렌 아카데미는 원래 총 두 번의 토너먼트를 개최했었다.
공식 춘계 토너먼트와 연말 이벤트 토너먼트.
그러나 연말 토너먼트의 경우 테러가 일어난 이후 사라졌다.
‘적어도 내가 게임을 플레이 한 시점부터 연말 토너먼트는 없었지.’
매년 행해졌던 행사였는데 테러 이후 폐지된 걸로 알고 있었다.
춘계 토너먼트와의 차이점이라면 춘계 토너먼트는 실제 성적에 반영이 되는 실전 느낌이 강하다면 연말 토너먼트는 졸업반들만 참가하는 전통 비슷한 이벤트였다.
이벤트용 토너먼트인 만큼 참가 자격은 졸업반에 한해서 자유였다.
대체로 기사학부 학생들이 과반수를 차지했고 가뭄에 콩 나듯 마법학부 학생이 참가했다.
“엄마! 저거 봐요!”
“와, 정말 신기하다. 우리 한 번 가 볼까?”
축제 기간 동안에는 일반인들의 출입도 허가가 되기에 사람이 바글바글거렸다.
예비 신입생들은 물론, 학생들의 가족과 그저 아카데미를 동경해서 오는 이들 등등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연말은 항상 이런 분위기였다.
나는 인파를 피해 다니며 목적한 곳에 다다랐다.
그 건물은 바로 이벤트용 토너먼트가 열리는 소경기장이었다.
기사학부에 있는 대경기장과 달리 규모가 조금 작았는데 연말 이벤트 토너먼트는 항상 여기서 열려 왔다.
“이야. 올해에는 마법학부 참가자가 꽤 있네?”
“그러게. 우리야 볼거리가 늘어서 좋지.”
수다를 떠는 사람들을 지나치며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토너먼트를 구경하며 먹을 만한 간식들을 파는 곳과 관중석으로 갈 수 있는 통로가 보였다.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네.’
민간인 출입이 가능해진 만큼 곳곳에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인원들이 있었지만 의미가 없었다.
애초에 아카데미 측에서는 감히 로들렌 아카데미를 공격할 만한 간 큰 이는 없다고 자신하는 모양이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 습격을 당했음에도.
‘빌어먹을 새끼들.’
제국은 고였다.
그 오만함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져 버렸다.
‘그래서 죄악을 모으는 건가.’
신들의 세계를 열어 직접 신이 되기 위해.
그렇게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우선은 카를로스 알븐이나 디에네 알븐을 찾기로 했다.
축제 기간이 일주일인 만큼 테러가 일어날 시간을 특정하기는 힘들었다.
카를로스 옆에 있으면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
그때였다.
관중석으로 나온 나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단서를 잡을 수 있었다.
‘하잘?’
볼로릭에서 도망쳤던 하잘이 관중석에 서서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그의 주위에는 같은 기사학부 학생으로 보이는 이들이 반갑게 조잘대고 있었는데 그는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다.
이번 테러의 주범은 제파르 교단의 광신도.
그가 이곳에 있는 데는 연관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곧장 그를 향해 다가갔다.
“하잘. 무사하셨군요?”
갑자기 등장한 나를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쳐다봤다.
그리고 하잘은 안색을 살짝 굳히며 내 인사를 받았다.
“아드리아스 학우. 오랜만입니다. 다행이게도 무사히 흑마법사 놈의 계략에서 빠져나왔어요.”
빠져나오기는.
도망친 주제에.
세간에는 그저 흑마법사에게 당해 실종으로 처리되었지만 오직 나만은 진실을 알고 있었다.
하잘이 나를 아는 척하자 이내 주변에 있던 기사학부 학생들이 ‘아, 그 흑마법사를 물리쳤다는 마법사!’ 하면서 아는 척했다.
그리고 그들 중 그 누구도 하잘을 의심하는 기색이 없었다.
“정말 다행입니다. 몸은 괜찮으시고요?”
“예. 보다시피 괜찮습니다. 요 몇 달 요양을 하고 왔거든요.”
그렇게 말한 그는 이내 다른 곳에 볼일이 있다며 이별을 고했다.
기사학부 학생들은 아쉬워하면서도 그에게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미래가 변했다.’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볼로릭 사건이 아니었으면 하잘은 첫 번째 플레이어블 캐릭터와 싸우게 될 악당이었다.
그가 테러에 가담한다면 원래 있던 미래는 없어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하잘이 어디론가 향하는 걸 보고 조심히 그의 뒤를 미행했다.
그는 마치 누가 따라오는 건 아닌지 유심히 주위를 살피며 움직였는데 내 미행을 알아차리기에는 경험이 부족해 보였다.
하잘이 도착한 곳은 소경기장에서 멀지 않은 한 축제용 점포였다.
하지만 워낙 구석진 곳이라 사람도 별로 없었고 간판에 검술학개론이라고 적혀 있어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제파르 광신도가 아카데미 내에 하잘만 있는 건 아니었지.’
광신도들의 아지트인가?
혹시나 싶어 점포에 들어가자 그곳에 있는 한 학생이 반갑게 나를 맞아 주었다.
“어서 오세요. 저희는 검술에 대한 논의를 하는 점포입니다.”
마법학부 부지 내에서 검술을 논의한다니.
대놓고 손님을 받기 싫어하는 게 눈에 보였다.
그것보다 문제는 분명 앞서 들어갔던 하잘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점포 내에 다른 통로가 있나?’
점포 안쪽을 둘러보고 싶었으나 앞을 막은 상대가 거슬렸다.
이 녀석도 광신도인가?
제파르 교단의 무서운 점 중 하나가 여기 있었다.
사상적인 문제라 겉으로 티가 나지 않는다는 것.
그렇기에 게임에서도 밝혀내지 못한 광신도가 다수 있을 거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물었다.
“여기에 방금 한 학생이 온 거 같은데 어디 갔죠?”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무도 안 왔습니다만?”
상대의 미세한 반응에서 그가 거짓을 말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곧장 신체에 마나를 둘러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예상치 못했던 반응과 속도였는지 그는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다가 내 검 손잡이에 턱을 맞고 기절했다.
기절한 녀석을 따로 안 보일 만한 곳에 숨겨 두고 주변을 수색했다.
그러자 안쪽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혼자 조용히 마무리해야겠어.’
흑마법은 사용할 수 없었다.
지금은 축제 기간이라 혹여나 일어날 사고를 막기 위해 사방에 경보 마법을 깔아 뒀을 터.
니켈과 티무르를 소환하는 순간 흑마법의 발생을 알아차릴 게 뻔했다.
그러나 제파르 교단에서 주의해야 할 놈들은 간부들뿐.
간부씩이나 되는 인물이 위험하게 여기 있을 리 없으니 흑마법 없이도 자신은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자 길게 파 놓은 땅굴이 있었다.
마법으로 뚫었는지 균일한 흔적이 보였다.
‘소경기장까지 이어진 건가.’
밑에서부터 터트리고 공격할 셈인가?
실제 테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이번은 그럴 생각인 모양이었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조금씩 인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땅굴은 일직선으로 만들어졌기에 엄폐물도 없었고 결국 멀리서 광신도로 보이는 인원 두 명이 보이기 시작할 때쯤 나도 들킬 수밖에 없었다.
“누구냐?”
“여긴 어떻게 들어왔어.”
문답무용.
나는 곧바로 땅을 박차고 그들에게 쇄도해 들어갔다.
하지만 그들도 만만치 않아 어렵지 않게 내 검을 막아 냈다.
“뭐 하는 새끼야!”
“마법사 아니었어?”
내가 로브를 입고 있어서 검을 휘두를 거라 예상치 못한 모양이다.
하지만 어쩌나. 난 진짜 마법사가 맞는데.
‘그리스.’
예상치 못한 마법에 미끄러진 상대가 그대로 내게 목이 베였다.
“미친!”
남은 한 명은 동료가 죽는 걸 보고 안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놓칠 내가 아니었다.
어스 실드를 그의 앞에 세워 퇴로를 차단하고 락 스피어를 날리며 앞으로 달렸다.
상대는 락 스피어 막아 내며 어스 실드를 뛰어넘으려 했지만 이미 내게 따라잡힌 후였다.
퍼억!
“으아악!”
그의 등을 길게 베고 바닥에 엎어진 상대의 몸을 발로 밟았다.
“제파르 교단이냐.”
“이, 이 씨발! 뭐 하는 새끼야, 너!”
교육이 필요하다.
나는 곧바로 검으로 상대의 어깨를 꿰뚫었다.
“끄아악!”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라. 제파르 교단 맞냐고.”
“맞아! 맞다고!”
“이 땅굴의 목적은 뭐지.”
“몰라. 이 씨발놈아!”
푸욱.
소리 지르는 상대를 죽이고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냈다.
어차피 제파르 교단이 확실하다면 목적 따위 알 바 없다.
그냥 막으면 될 뿐.
‘소리가 커서 들켰겠지만 오히려 좋아.’
적들의 작업을 방해할 시간이다.
* * *
비비안 벨로칸은 축제의 날이 밝자마자 곧바로 마법학부 쪽으로 향했다.
그간 몇 번이나 아드리아스를 찾아갈까 말까 고민하던 그녀는 축제를 핑계로 용기를 내 보기로 결심했다.
‘축제에서 같이 노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그렇게 아침부터 마법학부 쪽으로 넘어온 그녀는 혼자 거리를 돌아다니며 아드리아스를 찾기 시작했다.
운 좋게 마주치면 인연이고 아니면 그냥 어쩔 수 없는 거고.
애써 좋게 생각하며 돌아다니던 중 소경기장이 눈에 띄었다.
축제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행사 중 하나는 뭐니 뭐니 해도 연말 토너먼트가 빠질 수 없었다.
게다가 소경기장이 있는 위치도 마침 마법학부라 아드리아스가 소경기장에 갔을 확률도 커 보였다.
그녀는 곧바로 소경기장에 들어가 기웃거렸고 드디어 그녀가 찾고 있던 아드리아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근데 저건…….’
아드리아스와 대화를 나누는 남자가 낯익었다.
자세히 보니 볼로릭에서 실종되었다던 하잘이었다.
‘살아 있었구나.’
막상 아드리아스를 발견했지만 쉽사리 다가가지 못했다.
그를 마주하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뭐라고 말을 나누어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의 앞에 마주 선다고 생각하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렇게 혼자 고민하고 있을 무렵 하잘이 자리를 뜨고 그 뒤를 아드리아스가 몰래 쫓아가는 게 보였다.
‘뭐 하는 거지?’
무슨 대화를 나누었기에 저렇게 몰래 쫓아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자신도 따라가야 할 것만 같아 조심스레 쫓아갔다.
꽤 떨어져서 따라갔기에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둘은 점차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하잘이 어떤 점포로 들어가고 잠시 기다리던 아드리아스가 뒤따라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수상한 기운이 물씬 풍겼지만 비비안은 딱히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어쩌면 아드리아스를 도울 만한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아 가슴이 뛰었다.
‘은혜를 갚아야 해.’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그녀는 이내 시간이 꽤 흐른 걸 느끼고 화들짝 놀라며 다급히 점포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점포에 이상함을 느끼고 주변을 잘 살펴보자 안쪽에 지하로 내려갈 만한 통로를 발견했다.
‘아드리아스!’
상상 속에 아드리아스가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생각되자 마음이 급해졌다.
혹시 납치라도 된 건 아닐까? 안으로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고 있나?
온갖 상상이 비비안의 머릿속을 누비고 재빨리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로 내려가자 길게 이어진 땅굴이 보였고 그녀는 무작정 굴을 따라 직진했다.
그러자 저 멀리 작은 공동처럼 보이는 공간에서 누군가가 싸우는 것이 느껴졌다.
쾅!
굉음과 함께 누군가가 튕겨져 나왔고 튕겨져 나온 인물을 본 비비안의 안색이 굳었다.
“아드리아스!”
* * *
땅굴은 생각보다 깊었다.
그리고 마침내 땅굴이 끝나고 공동이 보였다.
공동에서는 하잘뿐만 아니라 대여섯 명의 광신도가 벽 곳곳에 무언가를 설치하고 있었다.
분명 바깥쪽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을 텐데도 참 열심히네.
나는 방심하고 있는 적들을 겨냥해서 곧바로 락 스피어를 날렸다.
쇄액― 퍼벅!
“쥐새끼가 들어왔다!”
한 명이 죽고 나서야 부랴부랴 달려드는 걸 보고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일단은 검부터 휘둘렀다.
기사학부 학생도 있는지 검술이 날카로웠다.
분명 검술만 놓고 보면 나보다 훨씬 위 줄의 실력자.
하지만 내게는 전투 재능의 보조가 있었다.
서걱!
“끄아악!”
손목이 잘린 상대가 비명을 지르고 다른 녀석은 목을 꿰뚫려 소리도 못 낸 채 죽었다.
그리고 지긋지긋한 인연이었던 하잘도 결국 내게 복부를 찔렸다.
“너, 넌 대체…….”
예상했던 대로 광신도들은 오합지졸이었다.
간부만 아니면 내 선에서 모두 처리가 가능…….
휘익.
전투 재능이 살기를 느끼고 내게 경고를 보냈다.
하지만 내 몸이 반응하기도 전에 날아온 적의 공격은 빠르고 강렬했다.
쿠앙!
“큽.”
입에서 피가 흘렀다.
갈비뼈가 부러지고 내장이 상한 것 같았다.
그 압도적인 속력과 힘에 반응조차 못 했다.
바닥에 쓰러진 상태로 간신히 고개를 들자 제파르 교단의 간부 중 하나로 보이는 자가 미소를 지은 채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파야트!’
설마 제파르의 간부 중에서도 상위권의 전투력을 가진 파야트가 있을 줄이야.
이건 예상 밖의 일이었다.
그는 분명 게임 시나리오 중반 이후에나 등장하는 녀석인데.
“어머. 딱 내 취향의 쥐새끼네. 넌 내가 좀 가지고 놀아야겠다.”
많고 많은 간부들 중 하필이면 파야트라니.
그의 실력은 비록 오러 마스터에는 미치지 못하나 아이비 클레어보다 위 줄일 정도의 강자였다.
내 히든카드인 니켈과 티무르로도 막지 못할 강자.
그렇게 그가 점점 다가오고, 나는 시간이라도 벌기 위해 언데드 소환을 준비하고 있을 즘.
갑자기 누군가가 내 앞을 가로막으며 나타났다.
“어머. 넌 누구니? 너도 저 쥐새끼랑 같이 온 년이니?”
“…….”
비비안?
도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지?
그녀는 파야트의 앞을 막은 채 대답 없이 검만 들고 있을 따름이었다.
날 지켜 주는 건 고맙지만 비비안으로는 파야트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일단은 시간을 벌었다.’
지금은 그 시간을 이용해 해결책을 강구해야 했다.
‘녀석들이 설치한 폭탄을 터트리면…….’
분명 수많은 사람들이 죽겠지.
게다가 비비안도 위험에 빠질 테고.
하지만 내가 살아남으려면 난전을 유도하는 게…….
“내가 아드리아스를 지킬 거야.”
고민에 빠져있을 때 비비안이 먼저 상대에게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내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와 뛰어난 검술을 보여 주는 비비안은 파야트와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콰가강! 휘익!
언뜻 보면 막상막하였으나 미소 짓고 있는 파야트의 표정이 불길했다.
그리고 불길한 예상은 언제나 그렇듯 들어맞았다.
펑!
“흐윽.”
강하게 걷어 차인 비비안이 저 멀리 나가떨어졌다.
이내 파야트가 점차 비비안에게 다가가 근육질의 팔로 그녀의 머리채를 붙잡았다.
“난 너처럼 예쁜 애들이 싫더라.”
곧이어 그가 비비안을 죽이려는 기색을 보였다.
나는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내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비비안 덕분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벌었다. 여기서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최선의 수는…….’
비비안은 분명 나를 쫓아 여기까지 왔을 게 뻔했다.
그녀를 죽게 둘 수 없다.
‘비비안.’
피에 젖은 그녀의 얼굴을 보자 학대를 받던 어린 비비안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그러자 그녀와 결계에서 함께 했던 한 달간의 기억이 차례차례 스쳐 지나갔다.
나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가, 그것도 하필 비비안이 죽는 건 견딜 수 없었다.
차라리 모든 걸 불사르더라도…….
[‘순수한 원죄’가 숙주의 부름에 반응합니다.]
[특수 기술 ‘나태’를 사용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