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진실
네임드템이 있나?
내 마나가 흔들리는 걸 봐서는 흑마법과 관련된 아이템이 분명했다.
아버지가 남기고 가신 건가.
혼자 추측을 하며 내려가자 허공을 날아다니는 먼지 같은 것들이 사방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요정의 꽃에서 나오는 발광 가루. 이 근처에 요정의 꽃도 핀 건가?’
나름 귀한 연금 재료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은 내려가서 확인하는 게 먼저이기에 가루를 채집할 틈이 없었다.
계단을 내려가다 드디어 보이기 시작한 바닥에 두 눈을 의심했다.
이내 급하게 내려가 보니 온 사방에 요정의 꽃이 피어 있었다.
“말도 안 돼.”
도대체 어떻게?
요정의 꽃은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이 아니었다.
대기 중의 마나가 풍부하지 않으면 절대로 자라지 않는 게 요정의 꽃이었다.
그 외에도 이것저것 조건이 필요했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이 마나였다.
‘마나가 풍부한 곳은 손에 꼽지.’
그러한 곳들은 대부분 마경과 같은 오지들뿐이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요정의 꽃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드넓게 펼쳐진 꽃밭 한가운데에 무언가가 서 있었다.
‘나무?’
멀리서 봤을 때는 그저 나무로만 보였는데 가까이 다가가자 뭔가가 다름을 알았다.
그리고 이내 내 시야에 가득 담길 만큼 가까워 오자 시스템창이 떴다.
[코덱스 아포칼립스: 0장 순수한 원죄]
[열매가 맺히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 시야를 가린 한글을 본 나는 나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이, 뭔, 개…….”
감정을 다스리는 훈련이 무색하게 당황을 감출 수가 없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눈앞에 드러나는 현실은 없어지지 않았다.
설마 이 나무가…….
“코덱스 본체?”
자유도가 높은 게임이라고는 하지만 다른 게임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일 뿐 결국은 게임의 틀에서 플레이 해야만 했다.
아카데미 학생인 캐릭터를 플레이 하면 아카데미 생활이 주가 되고 용병인 캐릭터를 플레이하면 용병 의뢰 해결이 주가 되듯 생각보다 제약이 많았다.
12번의 클리어.
그렇지만 한정된 행동반경으로 인해 지금까지 내가 본 코덱스는 기껏해야 분노, 색욕, 폭식 그리고 얼마 전까지 내 손에 있던 나태뿐이었다.
코덱스가 전부 모이고 그로 인한 최종 보스를 봐 왔을 뿐 개별로 확인한 적은 없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본체가 어떤 외형인지도 몰랐고 설마 이런 모습일지 상상도 못 했었다.
나무는 작았다.
기껏해야 나보다 조금 더 큰 정도의 어려 보이는 나무는 딱히 생김새가 특이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생김새와는 다르게 엄청난 양의 끈적하고 칙칙한 마나가 느껴졌다.
얼마나 농도가 진한지 그럴 리가 없음에도 마나의 향이 나는 것 같았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시간이 조금 흐르자 다시 냉정해질 수 있었다.
이게 왜 여기 있는지는 둘째 치고 처리를 어찌해야 할까.
단순히 없애면 되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그리 단순할 리는 없었다.
그렇게 고민을 하고 있을 때쯤 나뭇가지에 무언가가 있는 걸 발견했다.
‘쪽지?’
누군가가 매달아 놓은 것처럼 보이는 쪽지였다.
나는 곧바로 쪽지를 풀어 보았다.
그러자 쪽지 안에 내장된 마법이 발동하며 시야를 하얗게 물들였다.
* * *
어느 날, 갑작스러운 부름에 황궁으로 향하였다.
날 부른 이는 그 누구도 아닌 바로 황제 폐하 본인이었다.
“케인 크롬웰.”
“예. 폐하.”
“자네는 짐의 충실한 신하일 터.”
“신, 케인 크롬웰. 폐하의 충실한 신하가 맞사옵니다.”
“자네에게만 내리는 특별한 명령을 하달하겠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날로부터 나는 마법사로서의 본분을 잊고 흑마법사들 중에서도 악명이 자자한 네크로맨서, 모른 드왈스키의 산하에 들어가 흑마법을 익혔다.
다행히 폐하와의 거래가 만족스러웠는지 그는 나를 대함에 있어서 모자람이 없었다.
그렇게 폐하의 명을 듣고 3년의 세월 동안 흑마법을 익힌 나는 다시 제국에 복귀했다.
“자네에게 큰 짐을 지우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군.”
“아닙니다. 폐하.”
폐하께서는 이내 내게 주먹 크기만 한 씨앗을 건네며 이를 관리할 것을 명했다.
이유도 모르고 이 씨앗의 정체도 몰랐다.
하지만 난 그저 그의 충실한 하인으로서 씨앗을 맡아 관리할 뿐이었다.
씨앗은 특이했다.
보통의 식물이 아닌 듯 마나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는데 특히 흑마법으로 인해 성질이 변한 내 마나에 예민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씨앗을 연구하며 가꿔 오던 어느 날, 나는 씨앗을 싹 틔우는 데 성공했다.
이 사실을 황제 폐하께 아뢰자 제국 제일 마법사인 바하트 알븐 전하와 함께 친히 살피러 오셨었다.
“자네의 노고에는 내 마땅히 치하하고 싶지만 이 일은 은밀한 일이니만큼 대접을 못 해 주는 게 아쉽군.”
“아닙니다. 폐하. 그저 영광일 따름이옵니다.”
그렇게 나는 씨앗을 키워 작은 묘목으로 만들 수 있었다.
황제 폐하께 인정받았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나는 영지의 상황도, 가족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도, 주변이 어찌 되어 가는지도 모르게 연구에만 몰두했다.
그러자 상황은 내가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변해 버렸다.
가세가 기울고 영지를 빼앗겼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폐하께서 지켜 주시리라 믿었다.
나는 그의 밀명을 수행 중인 중요한 인물이었으니.
하지만 그게 착각임을 알아채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캐서린…….”
갑작스럽게 아내가 죽었다.
원인 불명의 죽음이었다.
그리고 이 뒤에 뭔가가 있음을 짐작하고 알아내자 그 뒤로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둠이 도사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그 어둠은 내가 빛이라고 생각했던 황제였다.
가세가 기운 것도, 영지를 압수당한 것도, 아내의 죽음도 모두 제국의 그림자와 맞닿아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짐작해 볼 만한 건 내가 묘목을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 뿐.
두려웠다.
나도 언제 죽을지 모르고 내 아이들에게도 손길이 뻗칠 수 있다고 생각되자 필사적이 되었다.
그 후로 식음을 전폐하며 묘목을 연구했다.
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온갖 고문서를 찾아 뒤지니 드디어 묘목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다.
“신들의 시대를 여는 열쇠.”
그 열쇠 중 하나인 ‘원죄’라 불리는 나무였다.
총 7개의 죄악으로 이루어진 페이지들과 내가 관리하고 있는 본체, 즉 원죄가 모이면 세상이 개벽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물론 직접 보지 않고는 사실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나 이를 통해 황제가 위험한 일을 꾸미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나를 압박하는 건가.’
너무나 위험한 일이기에 황제의 입장에서는 알고 있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겠지.
게다가 이미 묘목으로 성장한 원죄는 나머지 7개의 페이지가 모이기만 하면 되기에 나는 더 이상 필요가 없었다.
“네 뜻대로는 안 된다.”
이미 아이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것들을 잃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복수.
나는 원죄의 위치를 옮기고 원죄를 중심으로 결계를 만들었다.
천하의 바하트 알븐이 오더라도 이것만은 깰 수 없으리.
‘원죄를 사용한 결계.’
이곳에 들어올 수 있는 건 오로지 나와 내 피를 이은 후손들뿐.
그렇게 원죄를 이용해 결계를 만들던 도중 원죄의 다양한 활용법과 효능을 알 수 있었다.
솔직히 이 덕분에 위치를 옮기고 결계를 만들 수 있었다.
그 기능으로는.
원죄는 흑마법사의 피로 주종 관계를 계약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그렇게 계약이 된 주인의 몸에 잠복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외의 다양한 능력들.
아마 제국 놈들조차 모르는 사실일 거다.
아마 연구를 한 나만이 알고 있겠지.
그러나 그렇게 많은 것들을 알아냈음에도 내가 활용할 방도는 없었다.
나는 어느새 나도 모르게 독에 중독되어 있었다.
“흐흐. 너희들 뜻대로는 되지 않아.”
내가 죽더라도 네놈들은 원죄를 가져갈 수 없다.
단지 안타까운 점은 세상에 남겨질 내 자식들.
부디 여기 얽히지 않고 평화롭게 살기를 바라면서도, 모순적이게도 이 기억이 담긴 쪽지를 둘 중 누군가가 찾아 주기를 원하며 남겼다.
부디 내 억울함과 크롬웰의 복수를 대신해 주기를…….
* * *
시야가 점차 돌아왔다.
방금 보았던 건 아버지의 마법인가.
머릿속으로는 자연스럽게 원죄를 다룰 방법이 떠올랐다.
‘이게, 이렇게 됐던 거군.’
아버지가 모른의 제자였던 이유도.
크롬웰가의 가세가 기울었던 이유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도 돌아가셨던 것도.
모두 제국이 연관되어 있었다.
“제국도 죄악을 모으고 있었을 줄이야.”
흑막이라 생각했던 흑마법사 집회의 뒤에는 더 큰 흑막이 존재했다.
게임에서는 단 한 번도 풀리지 않았던 정보.
나는 손안에서 화르륵 타오르는 쪽지를 지켜만 보았다.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제국과 집회가 한 팀이 아닌 건 확실하다. 오히려 서로가 죄악을 모으려는 경쟁 상대에 가깝겠지.”
표면적으로는 제국이 흑마법사들을 사냥하고 있으나 필요할 때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일 거다.
마치 정치란 게 그러하듯.
그리고 이로 인해 나에 대한 의문도 조금 풀렸다.
‘역시 아드리아스가 플레이어블이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어.’
나도 세상의 멸망을 막을 씨앗 중 하나였던 거다.
그렇기에 별 볼 일 없는 악당에 불과했던 아드리아스에게 내가 들어오게 된 거지.
나는 검을 뽑아 손아귀를 살짝 베었다.
피가 방울방울 맺히더니 이내 주르륵 흘러내렸다.
“마셔라.”
나는 피가 묻은 손을 ‘원죄’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원죄는 내 손아귀에서 나오는 피를 쭉쭉 흡수하기 시작했다.
[‘코덱스 아포칼립스: 0장 순수한 원죄’가 사용자를 주인으로 인식합니다.]
[이제 더 이상 기운을 발산하지 않습니다.]
다른 네임드 아이템들은 본인들이 스스로 주인을 선택하는 데 반해 이런 점은 다행이었다.
이내 원죄의 주인이 된 나는 원죄를 흡수했다.
[‘코덱스 아포칼립스: 0장 순수한 원죄’가 사용자의 몸 안으로 잠복합니다.]
[마나 회복량 144% 상승]
[마나의 질이 시간이 흐를수록 올라갑니다.]
[마나의 성질이 시간이 흐를수록 어두워집니다.]
[‘죄악’이 모이면 성능이 향상됩니다.]
[‘죄악’이 모이면 추가 성능과 기능이 개방됩니다.]
오랜만에 수많은 메시지가 떠오른다.
왠지 모르게 몸에 힘이 넘치는 기분이었다.
‘나름 득템인가.’
전혀 기뻐할 만한 득템은 아니었다.
시한폭탄을 들고 있는 대가로 능력치를 상승시킨 기분이랄까.
결국 코덱스 아포칼립스의 본체를 내가 항상 지니고 있는 셈이었다.
“아버지.”
나는 꽃들이 만발한 가운데 원죄가 사라져 텅 빈 땅을 바라봤다.
비록 그로 인해 가세가 기울고 어머니가 죽었지만.
탓할 수는 없겠지.
이제 제가 그 짐을 짊어지겠습니다.
편히 쉬세요.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