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교수직 박탈 그리고 니켈의 진화
“오해라니요? 이 포션을 제가 1년이 넘도록 연구한 끝에 발명해 낸 걸 교수님이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조용히 하지 못해! 감히 누구한테 소리를 지르는 거야! 그리고 말은 바로 해야지. 자네가 연구하던 포션과 내가 만들어 낸 이 포션은 엄연히 다른 물건이야. 어딜 생떼를 부리고 앉아 있어!”
둘의 언성이 높아지자 안 그래도 사람이 많아지는 시간대라 인파가 몰리기 시작했다.
“뭐야? 싸움 났어?”
“아니. 지금 어떤 학생이 와서 자기가 개발한 포션을 도용당했다고 하는데?”
“진짜? 아니, 아무리 그래도 교수씩이나 되는 사람이 그렇게 대놓고 도용했을까.”
확실히 저 포션의 주인이 학생인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저 학생이 미치지 않고서야 자기 것이 아닌 물건을 보고 교수에게 대들겠는가.
나는 은근슬쩍 다시 발걸음을 돌려 그들 곁으로 돌아왔다.
“저, 교수님?”
“아드리아스? 왜 아직도 여기 있지?”
“방금 시험을 치르는 와중에 궁금한 점이 생겨서요. 혹시 답변 가능하실까요?”
“지금은 적절치 않군. 다음에 질문해라.”
“방금 그 포션에 대한 문제 말입니다. 혹시 왜 아플리카 송진은 넣지 않은 겁니까?”
“으, 응? 내가 질문은 다음에 받는다고 하지 않았나.”
버반 교수가 당황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내 물음에 대한 대답은 버반에게 따지러 왔던 학생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플리카 송진은 분명 시트민 꽃잎보다 효과가 탁월하죠. 하지만 결정적인 단점으로 인해 포션 재료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어떤 단점이죠?”
“가성비 때문입니다. 아플리카 송진의 가격은 시트민 꽃잎의 비해 무려 20배 가까이 비쌉니다. 하지만 그로 인한 효능은 20배의 차이를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플리카 송진을 제외시켰습니다.”
내 물음에 술술 대답하는 게롤프라는 이름의 학생은 어떠냐는 표정으로 버반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를 읽은 구경 중인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정말 저 학생이 만든 포션인 거 아니야?”
“그러게. 자기가 만들어 본 것처럼 얘기하는데?”
“그러고 보니까 가끔 인성 빻은 교수들이 제자들의 논문이나 아티팩트 특허를 도용한다고 하던데, 설마?”
웅성거림을 들은 버반의 표정이 점차 썩어갔다.
하지만 내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조금 함정을 파서…….
“답변 감사합니다. 그러면 혹시 딱정벌레 가루 대신 파피나 나비 분진 가루를 사용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부러 재료의 이름 일부를 말하지 않았다.
아직 시험 도중이니 답을 내 입으로 직접 말할 수는 없었다.
물론 그전에 게롤프가 시트민 꽃잎을 말하기는 했지만 내가 말을 한 게 아니니 알 바 없었다.
난 분명 정답과는 거리가 먼 아플리카 송진을 물어봤어.
내 질문을 들은 두 사람 중 이번에는 버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그는 급했는지 손까지 휘저으며 재빠르게 말을 꺼냈다.
“그건 말일세! 파피나 나비 분진 가루를 도주리 딱정벌레 대신 사용하면 득보다 실이 많기 때문일세! 이 포션의 핵심 재료인 도주리 딱정벌레는 신진대사를 활발히 하고 두뇌의 각성을 돕지만 파피나 분진가루를 사용하면 환각 증세와 멀미, 근육 이완, 심각하게는 우울증 증세까지 동반될 수 있지.”
버반이 정론에 가까운 답을 말했다.
덕분에 구경꾼들은 과연 누가 진짜 포션의 주인인가 흥미진진한 모습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버반이 저렇게 대답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 이제 진짜 답을 말해라. 게롤프.
“학우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죠?”
“죄송하지만 포션의 주인인 저로서는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고려하고 파피나 나비 분진 가루를 사용하지 않은 게 아닙니다.”
“뭣? 뭐라고!”
버반이 무슨 소리냐는 눈빛으로 게롤프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게롤프는 조금은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물론 파피나 나비의 분진 가루는 부작용이 많은 걸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정작 제가 그걸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단순히 복용하기 쉽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게 무슨……?”
“저는 이 포션을 만들면서 제가 직접 시음을 해 보았습니다. 횟수로만 따져도 거의 수천 번이 될 듯하네요. 그러다 보니 배탈이 자주 나고는 했는데 배탈이 날 때마다 나온 공통점이 분진 가루가 들어갔을 때였습니다. 분진 가루도 딱정벌레 대용으로 들어갈 수 있지만, 저는 사람이 복용할 포션이라면 적어도 탈은 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분진 가루보다는 조금 비싸지만 탈이 나지 않는 도주리 딱정벌레를 사용한 겁니다.”
게롤프의 경험이 담긴 설명에 청중들이 감탄을 토해 냈다.
그리고 그 감탄은 곧 의심의 눈초리가 되어 버반에게 날아들기 시작했다.
“아, 아니야. 그, 그건 분명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물론 예전에 제가 교수님에게 설명 드릴 때는 부작용을 줄이기 위함이라고 했었죠. 하지만 제가 말한 부작용은 교수님이 지레짐작하신 그런 부작용이 아니라 그저 단순한 배탈을 의미하는 거였습니다.”
“이, 이…….”
버반은 할 말을 잃고 어쩌지도 못하다가 이내 버럭 소리 질렀다.
“당장 꺼져! 감히 신성한 평가 시간을 어지럽히다니! 네 녀석들, 둘 다 아카데미 징계 위원회에 회부하겠어!”
와아. 추하다.
결국 버반은 자충수를 두었다.
버반의 반응을 확인한 수많은 학생들이 야유를 퍼붓기 시작했다.
“우우우!”
“교수라는 작자가 부끄럽지도 않냐!”
“어떻게 제자의 성과를 훔쳐 놓고 당당하게 설치냐, 이 악마야!”
“버반 페르난데스는 교수 직함을 반납해라!”
마치 시위라도 일어난 듯 주위가 시끄러워지고 시험을 치고 있던 약초학 수강생들조차 버반을 비난했다.
버반은 주위에서 맹렬한 비난이 들려와도 오히려 핏대를 세우며 삿대질을 했다.
얼마나 흥분을 했는지 하는 말의 반 이상이 알아들을 수 없는 고함 덩어리뿐이었다.
그때였다.
“조용.”
누군가의 한 마디와 함께 사위가 순식간에 침묵에 잠겼다.
그 엄청난 광경에 나도 모르게 소름이 일었다.
“무슨 소란인가 해서 와 봤더니만 아주 가관이군.”
말을 한 인물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주변을 침묵시킨 이는 다름 아닌 바하트 알븐이었다.
그는 이 주변의 공간을 일시적인 진공상태로 만들었다가 풀었는데 그 엄청난 기교와 마력에 소름이 끊이질 않았다.
“타, 탑주님.”
“그래. 버반 페르난데스. 아주 꼴이 우스워. 이게 대체 뭔가? 교수의 체면이 아주 땅에 구겨졌어.”
“탑주님. 이 일에는 뭔가 오해가…….”
“원래라면 이번 일은 학부장인 베리얼이 관리해야겠지만 지금은 부재중이니 내가 판단하겠다.”
아카데미의 꼭대기에는 아카데미 총 관리자인 교장과 그 밑으로 학부장이 있다.
알다시피 기사학부와 마법학부가 있으므로 각각 한 명씩의 학부장이 있는데 대외적인 일은 이 둘이 해결하고 나섰다.
로들렌 마탑은 여러 단체가 뒤섞인 형태인데 특히 황실의 입김이 강했다.
그런 마탑의 마탑주인 바하트는 원래라면 정치적 중립인 아카데미의 일에 끼어들면 안 됐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가 끼어든다고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버반 페르난데스. 너는 우선 제국 수사대의 조사를 받게 될 거다.”
“알븐 전하! 전 억울하옵니다!”
“억울해? 그럼 내가 지금 당장 자네에게 정신 계열 마법을 사용해도 되겠나?”
“아, 그, 그건…….”
“어차피 넌 언젠가 걸릴 운명이었다. 네 녀석이 연구 명목으로 뒤로 빼돌린 돈이 한두 푼이 아닌 걸 이미 베리얼 녀석이 파악하고 있었지. 게다가 넌 교수의 직을 달고 나서도 공공연하게 개인 의뢰까지 받았었어. 부정할 수 있느냐?”
“아…….”
버반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두 손을 빌며 바닥을 기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다시는 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습니다. 부디 선처해 주십시오, 알븐 전하!”
그런 그를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보며 혀를 찬 바하트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제 그만 해산하거라. 뭐 좋은 구경났다고 이리 모여 있느냐.”
그리고는 시험을 치고 있던 약초학 수강생들에게는 점수 걱정은 안 해도 되니 해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포션의 주인이 너였다지? 넌 이번 사건의 전말을 상세히 설명해야 할 거다.”
“예. 탑주님.”
게롤프가 고개를 끄덕이자 바하트의 시선이 이번에는 내게로 향했다.
“그리고…… 아드리아스 크롬웰.”
“예. 탑주님.”
“또 네 녀석인가?”
하하하.
그러게요. 그냥 원래 하던 대로 하던 건데.
생각을 말로 뱉지는 않고 그저 어색하게 웃어 주었다.
“뭘 부끄럼 많은 처자처럼 처웃고 있어. 너도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한 진술서를 작성해라. 하나도 빠짐없이.”
“예. 그럼요.”
시간이 조금 아까웠지만 버반을 엿 먹인 것만으로도 10년 묵은 체증이 날아간 듯해 상관없었다.
바하트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리다가 다시 내게 말했다.
“지켜보고 있었는데 포션 제조에 확실히 재능이 있는 것 같으니 내기는 기대해도 되겠군. 부디 나를 놀라게 해 주었으면 좋겠어.”
뭐야. 처음부터 보고 있었던 건가?
바로 나타나지 않은 걸 보면 또 어디서 변태 같이 엿보고 있었나 보네.
하여간 고약한 영감 같으니.
그래도 바하트 덕분에 저 못난 교수도 속 시원히 처리했으니 이 정도는 봐주자.
나는 내 물주님에게 힘껏 고개를 끄덕여 줬다.
“그럼요. 착실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흐흐. 건방진 놈.”
버반은 아직도 바닥에 주저앉아 영혼을 잃은 표정으로 멍을 때리고 있었다.
바하트는 그런 버반을 붙잡고 그대로 모습을 감추었다.
꼴좋다. 그러게 건드릴 사람을 건드렸어야지.
* * *
“후욱!”
날숨을 내뱉으며 검을 강하게 찔렀다.
이제는 단단하게 자리 잡은 어깨와 팔뚝의 근육들이 존재감을 과시했다.
현재 시각은 새벽 2시.
오늘은 버반과 있었던 일 때문에 바하트에게 끌려가 검술을 할 시간이 부족했다.
물론 매일 아침 새벽마다 체력 단련실에서 꾸준히 운동을 하고는 있었지만 지금 하는 건 검술 수련.
휘익!
검이 날카로운 기세를 머금고 번뜩였다.
포션의 힘으로 하루가 지날수록 그 위력을 더해 가는 검술은 이제 초보의 영역을 아득히 뛰어넘은 지 오래였다.
‘니켈한테 교습을 받았으면 실력이 훨씬 늘었을 텐데.’
그래도 이제 곧 다시 니켈에게 교습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이 늦은 시간까지 검을 잡고 있던 이유.
그 이유는 이제 조금만 있으면 니켈의 진화가 끝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변했을까?’
기대가 되면서도 궁금했다.
지금까지 겪어 본 진화는 총 두 번.
안젤라의 경우와 재능의 진화였다.
재능은 그저 단계가 올라가는 수준이니 넘어가고 안젤라의 경우 모습이 변했었다.
‘마치 종 자체가 변한 느낌이었지.’
아마 니켈도 종류가 변할 것 같은데 뭐로 변하게 될지 상상이 안 되었다.
‘언데드도 종류가 많아. 그렇다고 갑자기 데스나이트가 되거나 하지는 않겠지?’
잠시 행복한 상상을 해 보았다.
어차피 곧 있으면 알게 될 테니 나는 다시 검을 휘두르는 데 집중했다.
그렇게 30분 정도 검을 더 휘두르자….
[스켈레톤 솔저(전설)가 진화하였습니다.]
시스템 화면이 내게 니켈의 진화를 알려 왔다.
나는 검을 내려놓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기다렸다. 니켈. 이제 나와라.”
나는 기대되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며 육성으로 니켈을 불렀다.
그리고 검은 아공간이 허공에서 열리며 드디어 인간의 형체를 띈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