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재능 진화, 월말 평가 그리고 무한 동력 수련
시간은 훌쩍 흘러 어느새 새로운 포션 제작을 시도한 지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덕분에 달력은 새로운 페이지로 넘어갔고 나도 이 세계에 온 지 한 달이 되었다.
“1495번째 실험, 실패.”
가지고 온 노트에 또 한 번의 메모가 늘었다.
만들겠다고 마음먹은 날로부터 무려 일주일이 지났지만 회복과 재생 포션은 성공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처음에 만든 체력 포션보다 들어가는 재료도 많다 보니 그 난이도가 배로 뛰었다.
‘이대로는 너무 늦는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루시아가 함께했다면 지금쯤 둘 중 하나는 만들었을 테지만 매번 그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1,000번이 넘어가는 실험 숫자를 보자 조바심이 이는 게 사실이었다.
나는 결국 숨겨 왔던 비장의 수를 사용하기로 했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포션 제조 버프 계열의 진화 가능성 89%]
[진화를 하시겠습니까?]
만약이라는 게 있으니 최대한 100%에 맞추고 싶었는데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물론 재능이 진화한다고 곧바로 포션을 제조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기대가 되는 건 사실이었다.
“간다.”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진화를 선택했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포션 제조 버프 계열의 진화]
[진화 중…….]
[남은 시간: 21시간 1분 46초]
된 건가? 아무 일도 없는데?
나는 몸을 둘러보았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다.
처음에 사용했을 때는 안젤라가 하도 비명을 질러대기에 아플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열이 조금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이마를 만져 보자 조금 뜨끈했다.
마치 감기에 걸린 것처럼 몸살 기운도 서서히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이 정도는 아무 문제없이 버틸 수 있었다.
게다가 안젤라처럼 일주일도 아니고 고작 21시간 정도면 내일 오후 강의가 끝날 때쯤 끝난다는 소리였다.
별거 없네!
“좋아. 다시 시작해 볼까.”
내게 있어 시간은 황금보다 중요했다.
감기 기운 따위가 날 막을 수는 없지.
* * *
10월의 아카데미에는 나름 큰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월말에 있을 중간 평가였다.
예전 세상에서의 중간고사와 비슷한 느낌인데 단순히 종이에 적힌 문제를 푸는 건 아니었다.
평가의 내용은 매년 그리고 매번 달랐기에 뭐가 나올지는 몰랐다.
난 그저 내가 무난하게 해낼 수 있는 과제이기를 빌었다.
“자, 오늘 수업은 여기서 마치도록 합시다. 그리고 지금부터 월말에 있을 중간 평가 내용을 조금 이야기해 볼게요.”
듣기 싫어도 무조건적으로 수강해야 하는 3학년 필수 전공 강의, 중급 전투 마법학은 말 그대로 공격 마법의 풀이와 서술부터 전투에 있어서의 기본적인 마음가짐이나 행동거지까지 알려 주는 디테일한 강의였다.
교수의 이름은 톨먼 베뉴엘.
은퇴한 배틀 메이지로서 북부 산맥 경계에서 무려 10년이 넘도록 근무한 베테랑이었다.
듣기로는 하루에도 병사들이 수십 명씩 갈려 나간다고 하는 곳인데 10년이 넘도록 근무한 거면 정말 대단한 거다.
나조차도 10년이 넘도록 특수부대에 있었지만 매일 같이 임무를 수행한 건 아니기에 그의 대단함이 더욱 피부로 와닿았다.
또한 그는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에게 수많은 도움과 가르침을 제공하는 비중 높은 인물이었기에 되도록 신경 쓰려 노력했다.
“다른 수업들은 평가가 공시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전투 마법학에서는 이번 중간 평가 기간에 기사학부로 견학을 가기로 했습니다.”
“기사학부?”
“견학이라니, 뭐지? 구경만 하는 건가?”
전혀 예상치 못한 주제가 나오자 학생들이 술렁거렸다.
그리고 기사학부 이야기에 눈빛이 초롱초롱해진 한 인물을 나는 확인할 수 있었다.
“기사학부!”
그녀는 다름 아닌 디에네 알븐.
마법사인 주제에 엄청난 기사 애호가다.
게임 속 설정일 뿐인 이야기라 게임을 플레이 할 때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물론 저 설정 덕분에 첫 번째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히로인이 되기도 한다.
참고로 첫 번째 플레이어블 캐릭터는 내년에 입학하게 될 기사학부 신입생이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입학 전에 이런 이벤트가 일어나서 다행으로 봐야 하나 고민되었다.
내년에 입학할 신입생 중 무려 셋이나 플레이어블 캐릭터.
그리고 그 셋 모두가 기사학부 소속인 동시에 아드리아스를 죽이게 되는 인물들이었다.
“정보는 여기까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평가가 있는 당일에 설명드리죠.”
톨먼 교수는 그 말을 끝으로 강의실을 퇴장했다.
그러자 학생들은 평가에 대해 서로 추리하기 바빴다.
“기사학부생이랑 대련 아닐까?”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겠냐? 우리가 기사를 일대일로 어떻게 이겨?”
“그니까 같은 학년은 아니고 저학년들이랑 붙이겠지.”
“그건 자존심 상하잖아!”
“그럼 넌 뭐라고 생각하는데?”
“응? 그러게. 우리가 기사학부에 가서 뭘 할 수 있지?”
나도 궁금했다.
이왕이면 졸업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원했는데 만약 저 말과 같이 평가가 대련이라면 손 한 번 못 쓰고 질 자신이 있었다.
내년부터 있을 평가나 시험들은 같은 3학년인 디에네를 플레이 해 봤기에 모두 꿰차고 있었지만 올해는 그저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올해까지는 그냥 죽 쒀야 할지도.’
진화를 가지고 온 이상 성장 가능성은 차고 넘쳤다.
하지만 당장의 실력이 매우 뒤떨어졌기에 적어도 곧 있을 평가들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이기 힘들었다.
‘그래. 일단은 천천히 한 걸음씩 나아가자.’
이제 곧 있으면 포션 제조 재능이 진화할 시간.
물론 100%는 아니지만 89%라면 충분히 진화가 가능하겠지.
이걸로 포션을 만들고 검술을 늘려서 특성인 듀얼 코어를 활용해야 했다.
마법의 경우 틈틈이 기초 서적을 공부하고 있으니 차차 진화로 나아지리라 믿고 사령술도 니켈이 있는 지금은 충분했다.
계획만큼은 꽤나 이상적이었다.
‘그때까지 정체를 들키지 않고 버틸 수 있냐가 문제지. 망할 카론만 아니면 괜찮을 텐데.’
생각해 보면 비단 카론만 문제가 아니었다.
이 아카데미의 내부에는 카론 이외의 빌런들이 존재했다.
대표적으로 카론이 아닌 다른 흑마법사와 제파르 교단 신자들 그리고 광녀가 한 명 숨어 있었다.
흑마법사의 경우 아무래도 카론과 연관되어 있을 확률이 다분했다.
제파르 교단 신자들과 광녀 하나는 당장 걱정은 되지 않았지만 다른 흑마법사의 경우 혹시라도 부딪히게 될까 걱정이었다.
‘그 흑마법사도 나 같은 학생을 수하로 두고 있지. 아마 세 명이었나?’
참고로 말하자면 세 명이나 되는 학생을 수하로 둔 게 녀석의 패착이었다.
그는 게임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하로 둔 학생들 덕분에 꼬리가 밟힌다.
그 후 아드리아스보다도 먼저 정체가 밝혀져 사람들에게 협공을 당한다.
게임 시간상 성장이 덜된 플레이어가 주변 인물들의 도움을 받으며 싸우는데 결국에는 그를 놓치게 되는 스토리였다.
강의실에서 나와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기숙사보다 친근해진 연구실에 도착했다.
나는 곧바로 출입자 명부와 대여 명부를 작성하고 연구동 가장 안쪽에 있는 연구실로 향했다.
[진화 중…….]
[남은 시간: 3분 43초]
정말 완벽한 타이밍이다.
곧 있으면 나오게 될 결과에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려 애쓰며 시간이 줄어드는 걸 지켜보았다.
[남은 시간: 00초]
[아드리아스 크롬웰: 포션 제조 버프 계열이 진화하였습니다.]
[재능 ‘포션 제조 버프 계열(범재)’가 ‘포션 제조 버프 계열(수재)’로 진화하였습니다.]
“좋아.”
드디어 나도 평범에서 벗어났다.
비록 그게 마법 자체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되지 않는 포션 제조일지라도 가능성을 엿본 기분이다.
이게 통했다는 건 언제든 다른 재능도 범재를 넘어서 천재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니까.
“수재가 된 기념으로 오늘은 반드시 성공한다.”
마침 진화가 끝나 몸살 기운도 사라졌다.
컨디션도 최고조이니 오늘은 왠지 뭔가 될 것만 같았다.
나는 곧바로 챙겨 온 재료들을 꺼내어 실험에 들어갔다.
* * *
[재생 물약(하급)을 제작하였습니다.]
[회복 물약(하급)을 제작하였습니다.]
재능의 성장은 놀라웠다.
솔직히 재능이란 게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지라 기대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런 내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솔직히 곧바로 만들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재능은 말로 표현이 안 되는 감각, 그 자체였다.
고작 범재에서 수재가 되었을 뿐인 재능이었는데 재료를 손에 쥐고 실험에 들어가자 내 머리는 마치 컴퓨터가 돌아가는 것과 같은 계산과 센스를 발휘했다.
“내가 이 정도인데 루시아나 디에네는 도대체…….”
루시아는 물론이고 디에네도 ‘천재’라는 수식어가 달린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재능의 종류로는 둔재, 범재, 수재, 영재, 천재이니 지금 저 둘이 어떠한 괴물인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하긴 그러니까 루시아는 게을러도 만점이지.’
디에네는 설정대로라면 노력까지 하는 인물이었다.
게임에서는 그래픽 쪼가리이기에 성장의 한계가 있었지만 직접 판단하고 살아 숨 쉬는 인물들은 얼마나 강해질지 문득 궁금해졌다.
어쩌면 내가 키웠을 때보다 강해질 수도…….
어쨌든 지금은 만들어진 포션을 가지고 자축할 때다.
사실 회복과 재생 포션은 이 세상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뒤에 따라붙는 수식어가 ‘최하급’인데다 부작용이 있는 것들뿐이었다.
내가 만든 건 비록 효능은 같을지라도 부작용이 없는 ‘하급’ 포션이었다.
“중급이나 상급은 내 수준으로는 무리다.”
재능이 진화하니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전에는 어렴풋하게 그저 되지 않을까 예상했지만, 지금은 만들 수 없음을 명확하게 인지가 가능했다.
중급 재생 포션만 해도 무려 스무 가지가 넘는 재료가 들어가니 그 배합률을 찾아내려면 얼마나 걸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지금은 하급으로 만족하는 수밖에.
나는 이왕 성공한 김에 마치 공장에서 찍어내듯 계속해서 포션을 만들었다.
하루에 한 개씩 사용한다고 해도 1년이면 365개가 필요했다.
이것도 각각 한 개씩이니 3종류의 포션이면 곱하기 3을 해야 했다.
게다가 다른 포션과 달리 회복 포션은 피로 회복에 도움이 되기에 많으면 많을수록 이득이었다.
‘바하트 영감님, 잘 먹겠습니다!’
내 돈이 아니니 재료를 사용함에도 거침이 없었다.
그야말로 최적의 조건과 환경이었다.
이렇게 빨리 성공할 줄은 몰랐기에 실험을 위해 대량으로 사 놓은 재료들을 차례차례 포션으로 만들었다.
나는 중간에 나가서 밥 먹는 것조차 거르고 4시간 동안 제조에 몰두했다.
“항상 시간이 문제네.”
한참 만들던 중에 연구실 내부에서 알람이 울렸다. 퇴실 알람이었다.
어느새 나가야 할 시간이 되었기에 나는 아쉬움을 참고 정리했다.
그래도 무려 각각 10개의 재생과 회복 포션을 만들었기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안 먹어도 배부르다, 야.’
나는 기분 나쁜 웃음을 한 차례 흘리고 배낭에 챙긴 포션을 바라봤다.
정말 밥을 안 먹었음에도 포션들을 보고 있자 배가 부른 느낌이었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무한 동력 수련의 첫걸음이 비로소 내디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