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검술 수련, 꼼수 그리고 늘어나는 관심
나는 바깥에서 구해 온 적당한 길이의 나뭇가지를 들고 방 한가운데에 섰다.
제국 아카데미의 학생 전용 무료 기숙사는 무료임에도 넓은 방을 개개인 별로 배정해 주기에 수련에 지장은 없었다.
기숙사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하자면 이렇게 무료로 제공하는 기숙사도 있는 한편 돈을 지불하고 들어가는 기숙사 또한 존재했다.
그러한 기숙사에는 대부분 귀족 자제들이나 부호의 자식들이 머물렀다.
듣기로 방의 퀄리티는 이곳과 크게 차이 나지 않으나 본인들의 재력이나 세를 과시하기 위해 입주하는 느낌이었다.
‘이전의 아드리아스도 돈만 있었다면 어떻게든 그곳에 입주하려 했겠지.’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있다.
지내는 기숙사별로 친해지거나 모임을 갖는 건 당연한 수순.
그렇게 알게 된 인맥이 후에 아카데미를 졸업하고도 이어지는 게 다반사였다.
물론 졸업자들은 로들렌 아카데미를 졸업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디서든 환영하는 인재이다.
하지만 인맥 형성의 효율은 유료 기숙사가 압도적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겠지.
“인맥이 뭐냐. 난 졸업부터 걱정해야 할 판인데.”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나를 니켈이 묘한 눈길로 쳐다본다.
과민 반응인가? 눈알도 없는 니켈이 그렇게 쳐다볼 리 없는데.
집중!
니켈이 손가락으로 힘 있게 글씨를 적는다.
“예. 선생님.”
니켈이 본인의 자아를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독특한 성격이라는 건 알 것 같았다.
어떤 누가 해골로 환생했는데 나오자마자 검술을 수련하겠나.
니켈은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내가 구해다 준 막대기를 들고 자세를 잡았다.
내가 기본적인 것부터 자세하게 알려 달라 했기에 검을 쥐는 법과 자세부터 배웠다.
“이렇게?”
내가 나름 비슷하게 기본자세를 따라 하자 니켈이 막대기로 내 몸을 툭툭 건든다.
근데 예상외로 힘이 실려 있다.
‘해골 맞나? 힘이 왜 이렇게 세?’
그 뒤로 나는 니켈의 지도 아래 기본을 익혀 나갔다.
무려 오러 마스터의 지도다.
아마 이런 호강을 누리는 건 이 세상에서 몇 되지 않을 거다.
아니, 어쩌면 내가 유일할지도.
‘그 콧대 높은 놈들이 지들 뻘짓하기에도 바쁜데 제자를 키울 리 없지.’
물론 짐작이다.
적어도 내가 게임 속에서 만난 녀석들은 하나같이 정상이 아닌 놈들뿐이었다.
이건 오러 마스터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라 조금 강하다 싶은 네임드들은 대부분이 그랬다.
당장 저번에 만난 바하트만 해도 알 거다.
그 영감이 천으로 눈을 가렸던 것도 다 콘셉트다.
아마 다음번에 만났을 때는 다른 괴상한 분장이나 짓거리를 하고 있겠지.
‘에휴, 내가 남 말할 처지냐.’
강하면 장땡.
강하기만 하면 뭔 짓인들 해도 괜찮았다.
딱!
“아!”
니켈의 막대기가 내 이마를 후려쳤다.
근데 상상 이상으로 아팠다.
집중!
곧바로 막대기를 들고 글씨를 적는다.
지금 보니 누가 오러 마스터 아니랄까 봐 내 해골도 정상이 아니었다.
* * *
이 세상에서 마나란 단순히 가만히만 있는다고 늘어나지 않았다.
물론 나이를 먹으며 육체가 성장하면서 마나도 자연스레 늘어난다.
하지만 성장이 멈추고 늙어 가기 시작하는 순간 마나도 줄어든다.
마나를 늘리는 유일한 방법은 꾸준한 마나 사용이었다.
마치 신체의 근육과도 같이 마나를 사용하고 회복하면 조금씩 그 양이 늘어난다.
그렇다고 아무 의미 없이 마나를 소모하는 건 효율이 없었다.
늘어나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성장이 더디다.
그렇기에 마법사, 검사 할 것 없이 실전과 더불어 수련을 하는 것이었다.
“후욱, 후욱.”
입에서 단내가 났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며 두 팔은 이미 한계에 도달해 애처롭게 떨렸다.
그러나 절대 팔을 내리지도, 막대기를 놓치지도 않았다.
휘익!
니켈이 검을 휘둘렀다.
옆에 서 있던 나는 그를 따라 휘둘렀다.
하지만 니켈과 같은 바람을 가르는 소리는 없고 힘없이 흔들렸다.
휘둘렀던 팔을 다시 들어 올리자 어깨가 끊어질 듯 아려 왔다.
“훕!”
간신히 들어 올린 양팔이 금방이라도 바닥을 향할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숨을 한껏 들이키고 절대 내려놓지 않았다.
그만.
니켈이 허공에 글씨를 그렸다.
“아직 할 수 있는데.”
괜히 오기를 부려 보았지만 내 팔은 금세 떨어져 내렸다.
어마어마한 통증이 양 어깨부터 등 근육까지 이어졌다.
‘너무 무리했나?’
하지만 충분히 무리할 이유가 있었다.
선천적인 재능으로 마나를 다룰 수 있는 마법사들과 달리 검사들은 끊임없는 육체 단련을 통해 마나의 사용법을 깨우친다.
물론 재능이 0에 수렴하는 자들은 단련을 해도 마나를 깨우치지 못하나 대체로 열에 다섯 정도는 이 방법이 통한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귀족들은 마법사로서의 재능이 없으면 곧바로 기사 수련을 시작한다.
‘한 마디로 마법사가 재능의 영역이 9할이라면 기사는 6할 정도밖에 안 되지.’
재능의 요소가 매우 중요하긴 하지만 마법에 비할 바가 아니니 시도를 해 볼 만했다.
오히려 재능은 있으나 노력을 하지 않아 약한 자들도 수두룩했다.
그만큼 검사들에게는 노력이 중요했다.
‘노력? 김진환일 때 밥 먹듯이 한 게 운동이다.’
오히려 밥 먹는 것보다 더 했을 수도 있다.
운동능력에 나름 자신도 있었고.
실없는 생각을 하며 수련이 끝난 김에 슬슬 숙련도 창도 띄워 봤다.
―흑마법: 기초 사령술 (22/100) 〉〉 스켈레톤 소환 LV3
“오오.”
다섯 시간 만에 무려 2나 올랐다.
마나 소모도 없이 숙련도만 오르니까 개꿀인데?
200시간 정도만 소환해 놓으면 초급 사령술이 된다는 이야기다.
‘물론 초급이 되고 나면 숙련도 오르는 게 훨씬 더뎌지겠지. 게다가 초급 마법을 익히지 않으면 별 의미도 없고.’
내가 올라간 숙련도에 감탄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자 니켈이 다가와 어깨를 두드렸다.
마치 장하다고 말하는 할아버지의 손길 같아 기분이 묘했다.
녀석은 그리고 나서 곧바로 다시 막대기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진짜 내 해골이지만 징글징글하다.
어떻게 보면 해골로서의 장점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해골은 지치지를 않으니.
“넌 차라리 해골이 된 게 더 나았을 수도 있겠다.”
원 없이 수련을 하게 됐으니 얼마나 좋아?
그렇게 멍하니 니켈의 동작들을 보고 있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나도 지침 없이 수련을 계속한다면 니켈의 지도 아래 금방 실력이 늘 텐데.
지치지 않으려면?
게임 속에서는 포션으로 꼼수를 부렸었다.
스테미나가 떨어질 때마다 포션을 먹고 수련을 했지.
‘나도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마침 내게는 바하트의 카드가 있다.
포션 재료 무제한 사용권이었다.
물론 단순히 체력 상승 포션만으로는 의미가 없었다.
지금 필요한 건…….
“회복이랑 재생 포션.”
회복 포션과 재생 포션은 다르다.
회복은 원래 상태로 복구하는 것으로 외상보다는 내상 치유나 피로 회복에 주로 사용됐다.
외상이나 겉으로 드러난 상처의 경우 재생 포션을 사용했는데 말 그대로 재생속도를 늘려 주었다.
게임에서는 그냥 체력 포션과 회복 포션만으로 꼼수를 부렸지만 이곳은 현실.
‘재생 포션으로 근육이 파괴되고 재생되기까지의 시간을 단축시키고 체력 상승 포션과 회복 포션으로 피로를 회복한다.’
이론상으로는 포션만 있다면 끈기와 노력으로 무한 수련이 가능했다.
물론 재생 포션을 먹는다고 곧바로 찢어진 근육이 낫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수련 사이클이 훨씬 빨라질 터.
여기서 이럴 게 아니었다.
“당장 만들어야 돼. 꿀을 빨 수 있는 기회는 올해까지야.”
바하트의 카드가 있을 때 최대한 많이!
새로운 포션을 제작할 때다.
* * *
대륙, 루데리온에는 수많은 나라와 세력들이 존재했다.
그중에서도 대륙 중심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발하고 있는 제국, 로들렌.
그들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은 북부 산맥 너머를 제외하고는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 강대함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런 곳이니만큼 유행의 선도를 이끌며 정보에 가장 민감한 제국의 수도는 오늘도 바쁜 일상이 돌아가고 있었다.
“가주님, 내년에 입학 예정인 신입생 목록과 현 재학생들의 보고서를 갱신했습니다.”
집사의 말에 태블릿을 확인한 클로슈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수고했다.”
강렬한 색상의 붉은 머리가 마치 사자의 갈기를 연상시키는 중년 남자는 그 강대한 제국 내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가문의 주인이었으며, 동시에 본인 또한 오러 마스터인 강자였다.
수도를 방문할 일이 생겨 잠시 로들렌에 위치한 저택에 들린 클로슈 공작은 태블릿을 쭈욱 훑어보았다.
“이번 녀석들은 기대가 되는군.”
로들렌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세계 각국에서도 유심히 지켜보는 인재들이었다.
비록 졸업자들에 한한 관심이었지만 내년에 들어올 신입생들 중 몇몇이 눈에 띄는 이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클로슈 공작의 입가에는 흥미가 동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데슈른 영감의 추천서를 받는 녀석이 생길 줄이야.”
“정보조의 보고에 따르면 이미 반쯤 예견된 상태였다고 합니다.”
“예견된 거랑 실제로 일어난 건 천지 차이야.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지?”
“예. 전하.”
“하긴 뭐, 모나스 아카데미 역대 수석들의 기록을 갈아 치운 녀석인 만큼 뭔 일이 일어나도 놀랍지는 않지.”
제국의 귀족 자제들과 자질을 인정받은 평민 자식들은 대략 8, 9살 무렵에 모나스 아카데미에 지원할 수 있게 된다.
모나스 아카데미는 로들렌 아카데미의 하위 개념으로 모나스 아카데미의 상위 50%는 자동적으로 로들렌 아카데미 입학 자격을 얻게 된다.
예외가 있다면 제국의 고위 귀족 자제들인데, 이들은 성적이나 자질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로들렌 아카데미 입학이 가능했다.
어차피 재능이 없으면 졸업을 못하기에 입학 자체에 큰 의미는 없었다.
“그 말고도 꽤 눈에 띄는 학생들이 몇몇 있었습니다.”
“그래. 슬슬 다른 녀석들도 확인해야겠지. 이제 로들렌에 입학할 녀석들이니.”
그렇게 태블릿을 넘겨보던 클로슈 공작은 이내 어느 부분에서 멈췄다.
“이거. 새로운 포션이 발명됐다며?”
“여기 미리 준비해 뒀습니다.”
“가져와 봐.”
아직 심사만 통과하고 등록은 안 된 포션이 권세의 힘으로 클로슈 공작의 손에 들어왔다.
그는 노란빛을 띠는 포션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루시아 에버라스트라고?”
“예. 에버라스트 상단주의 무남독녀입니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은밀히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선천적인 불치병이 있는 모양입니다.”
“안타깝군. 그 어린 나이에 웬만한 마법사들도 해내지 못한 걸 만들어 낸 인재이건만.”
그는 혀를 몇 번 차더니 포션을 들이켰다.
잠시 맛을 음미하던 그는 자신의 손을 보더니 움켜쥐었다가 풀었다를 반복했다.
“차원이 다르군. 먹어 봤나?”
“전 아직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이건 정말 대단해. 기존의 포션과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체감이 확실하군. 그런데 부작용조차 없다지?”
“일단은 그렇습니다.”
“만약 정식으로 등록이 되고 상용화가 된다면 꽤 반향을 일으킬 것 같군.”
“그 정도인지는 몰랐습니다. 중요도 순위를 한 단계 올릴까요?”
“그래.”
클로슈 공작은 포션의 능력을 체감하기 위해 몸을 움직여 보았다.
신체를 다루는 데에 있어서 일가견이 있는 만큼 몸의 변화 정도는 금방 느낄 수 있었다.
‘이건 어쩌면 나와 같은 이들이 아니라 오히려 체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더 어울리겠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공작은 돌연 나이가 50이 넘도록 자식을 보지 못한 본인 휘하의 맥케인 자작이 떠올랐다.
그동안 고생했다는 의미로 이 포션을 챙겨 줘야겠다는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전하, 포션과 관련해서 한 가지 특이 사항이 더 있습니다.”
“음? 뭐지?”
“보고서에도 명시되어 있지만 공동 제작자가 있습니다.”
집사의 말에 공작은 태블릿을 다시 확인했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아, 케인 크롬웰의 아들이군.”
그는 잠시 기억을 더듬어 크롬웰 백작가를 떠올렸다.
그의 기억이 맞다면 크롬웰 백작가는 올해 말에 있을 논공행상에서 강등당할 위기에 놓인 가문이었다.
“그 녀석에 대한 보고는 거의 없다시피 한 걸로 알고 있었는데. 원래 이 분야에 재능이 있었나?”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올해 3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이제야 중급 약초학을 듣는다고 합니다. 제조학은 작년에 초급까지 이수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네의 말은 재능이 없었다는 이야기인가?”
“정보조에서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래도 이번 기회에 조금만 더 살펴봐라. 이 포션에는 그럴 만한 값어치가 있다.”
“예, 전하.”
집사는 곧바로 아드리아스 크롬웰의 보고서에 적힌 중요도를 고쳤다.
‘아드리아스 크롬웰, 중요도 무(無)에서 하(下)로 격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