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최강의 마법사 그리고 내기
“애송이, 감히 누구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느냐.”
설마 마주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에 나도 모르게 이름을 뱉어 버렸다.
로들렌 마탑의 현 탑주이자 알븐 공작가의 주인.
어마어마한 타이틀 두 개를 독식하고 있는 현 세계관 최강자들 중 하나.
물론 게임 끝에서는 딸인 디에네 알븐이 더 강해지기는 하지만 그것도 플레이어가 조종했을 때 이야기.
“죄송합니다. 탑주님.”
“흥. 그 아비에 그 아들이군. 한심한 게 똑같아.”
눈은 가려져 있지만 입가의 비웃음은 선명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쩌나. 지금의 난 그런 도발이 먹히지 않는다.
으득.
어? 방금 내 입에서 난 소리인가?
그런 내 반응은 아랑곳 않고 바하트는 고개를 돌려 루시아를 향했다.
“그쪽은 홀링턴 자작의 딸인가?”
“루시아 에버라스트입니다.”
“흥. 내게 이름을 외우게 하고 싶으면 그만한 명성부터 쌓고 와라.”
괴팍한 노인네 같으니. 자기가 물어봐 놓고.
여하튼 잘되었다.
안 그래도 길을 잃어서 어찌해야 하나 고민이었는데 탑의 주인이 나타났으니.
“탑주님. 혹시 탑주님께서 심사를 하십니까?”
“음? 심사? 뭔 심사?”
“오늘 저희가 새로 만든 포션의 심사를 로들렌 마탑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포션?”
뭐야, 모르는 거야?
이건 아무리 나라도 약간 당황스러운데.
그럼 여기에는 왜 나타난 거지?
“네 녀석이 새로운 포션을 만들어 냈다고?”
“예.”
“으하, 으하하하하하!”
광폭하다 해도 어울릴 폭소가 터져 나왔다.
갑자기 웃음을 터트린 건 둘째 치고 그가 웃음을 터트리자 흥분을 한 스톰브링어가 공중을 날며 번개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미친!”
나는 곧바로 어스 실드를 전개했고 옆에 있던 루시아도 알 수 없는 마법을 사용했다.
콰직! 쾅!
내 어스 실드는 번개 한 방에 반파가 되었고 이내 쏟아지는 번개 세례에 나는 어스 실드를 연이어 전개했다.
“선배. 괜찮아요. 제가 선배 몫까지 프로텍트 실드를 걸었으니까.”
“고맙다.”
루시아의 말에 나는 안도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중상급 마법인 프로텍트 실드를 벌써 사용하다니.
캐스팅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은 것 같은데 역시 천재는 천재인 모양이다.
그에 비하면 난 고작해야 초급 마법인 어스 실드라니…….
이런 식으로 죽으면 그것도 나름 업적을 세울 만한 개죽음이기는 하다.
‘업적은 개뿔.’
내가 생각했지만 병신 같네.
다행히 웃음을 거둔 바하트가 곧바로 휘파람을 불자 스톰브링어가 안정을 되찾았다.
그는 아직도 입가에서 웃음기를 지우지 못한 채 말했다.
“흐흐. 꼬라지를 보아하니 마법적 성취는 여전한 모양이구나.”
“곧 나아질 거라 믿습니다.”
“하핫! 지나가던 개가 비웃겠군.”
지금 네가 비웃고 있으니 네가 그 개겠네.
물론 입 밖으로 내진 않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그래. 포션을 만들었다고? 네 녀석이 만들었다고 하니 궁금하기는 하군. 지금 당장 가 보지.”
깃대 위에서 바로 선 바하트가 손을 휘젓자 우리의 발밑에 마법진이 그려지더니 순식간에 다른 공간으로 이동되었다.
‘공간 이동!’
역시 바하트는 괴물이었다.
공간과 관련된 마법은 시간과 관련된 마법 다음으로 난이도가 높았다.
그냥 높은 게 아니라 공간 마법에 대한 단초만 잡아도 어엿한 중견 마법사 취급을 해 줄 정도다.
마법의 술식과 배열을 순식간에 처리하고 발현시키는 것은 아티팩트에 담긴 공간 마법이나 설치형 마법진의 경우와는 그 궤를 달리했다.
그런 마법을 타인의 의사와 마나 간섭을 무시하고 사용하는 수준이라면 괴물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마탑주는 대단하네요. 선배.”
루시아도 기가 질린 표정을 지을 정도니 말 다했지.
공간이동을 해 온 곳은 탑 내부 복도와는 다르게 정상적인 외형의 방이었다.
은은한 홍차 향이 나는 것이 조금 전까지 차를 마신 모양이다.
“바하트 탑주님, 여긴 어떻게?”
“길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오늘 이 녀석들의 포션 심사를 한다며?”
“예. 그렇습니다.”
심사가 진행되는 방에는 3명의 마탑 소속 마법사가 심사관으로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예상치 못한 바하트의 등장에 어쩔 줄을 몰랐다.
“그래. 이게 그 포션이냐?”
“예. 성분 검사와 효능 검사는 끝났습니다. 사실 포션의 안전성은 이미 통과한 셈이고 학생들의 제작 과정이나 방법에 대한 질의응답만 남아 있었습니다.”
심사관이 설명하는 사이 바하트는 포션을 한 방울 입안에 떨어트리고 있었다.
잠시 맛을 음미하듯 입을 다시던 그는, 이내 한 병을 통째로 들이부었다.
“모하임 열매, 잎사귀, 토돌나무 진액, 자하스 열매, 피어너 버섯.”
거기까지 말한 그는 루시아를 향했다.
“나머지 두 개는 뭐지?”
“혼피시의 진액과 마타라타 뿌리껍질입니다.”
“혼피시와 마타라타라. 머리 좀 썼군.”
그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포션병을 소멸시키고 말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루시아에게 다가갔다.
“네 녀석의 이야기를 한두 번 들어 보기는 했다. 근데 벌써부터 이런 발칙한 짓을 할 줄은 몰랐어.”
“감사합니다.”
“칭찬 같나?”
“아닌가요?”
태연하게 되물어 보는 루시아의 앞에서 입꼬리만 올린 채 서 있던 바하트는 심사관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검사는 끝이야. 확인 도장 찍어 줘.”
“예. 확인했습니다. 탑주님.”
휴, 이 지랄 맞은 양반이 뭔 태클을 걸까 걱정했는데 무사히 넘어간 모양이다.
게임 속에서도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라 수도 없이 욕했었던 기억이 있다.
워낙 돌발 행동을 많이 해서 동료로도 삼을 수 없는 캐릭터였지.
그 당시에는 그저 힘만 센 사이코패스였지만 막상 현실이 되어 눈앞에서 마주하자 그 위압감이 상상을 초월했다.
“자, 이제 다른 걸 좀 이야기해 보자고.”
“……?”
“아드리아스 녀석은 왜 함께 온 거지?”
그의 말에 루시아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서 있자 그가 말했다.
“네가 혼자 만들었을 거 아니냐. 왜 굳이 녀석을 공동 제작자라고 속이느냐 묻는 거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습니다. 왜 제가 혼자 만들었다는 거죠?”
“그야 당연한 것 아니냐. 설마 진짜로 저 아드리아스와 함께 포션을 만들었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흐응, 뭔 소리인지 알겠어요.”
“잠깐! 아니, 둘이서 뭔 얘기를…….”
다급하게 대화의 틈으로 끼어들었다.
왠지 저 영감이 평범하게 넘어간다 했다.
루시아의 반응도 불안한 게 저기서 혼자 만들었다고 하면 나는 완전히 끝이다.
삐끗하면 내 특허권과 그로 인한 수익이 꼼짝없이 날아가게 생겼단 소리다.
“사실대로 말하면 선배 혼자 다 만들었어요.”
“응?”
루시아는 내 예상과 다르게 전혀 뜻밖의 말을 꺼냈다.
“어제도 디에네 선배가 와서 닦달했었는데 그 아버지분께서도 같은 반응을 보이니까 신기하네요.”
“뭐? 디에네도 말했었다고?”
자기 딸의 이름이 나오자 급관심을 가진다.
아무리 미치광이여도 딸 앞에서는 그저 아버지일 뿐인가 보다.
“예. 탑주님처럼 믿지 못하겠다면서 이것저것 물어보더라고요.”
“그렇다면 지금 네 말은 저 녀석과 함께 만든 게 사실이라는 거냐?”
“다시 말하지만 선배가 혼자 만든 거나 다름없어요. 전 그냥 운이 좋았죠.”
루시아…….
널 의심했던 날 용서해 다오.
넌 이제 내 최애 플레이어블 캐릭터다.
“정 의심되면 선배랑 직접 질의응답 해 봐요.”
루시아가 쐐기를 박자 바하트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내게 고개를 돌렸다.
근데 눈을 저렇게 가리고도 보이는 건가?
“사실인가?”
“공동 제작에 관한 거라면 사실입니다.”
“그럼 질문을 해도 괜찮겠군.”
“예. 어차피 그걸 위해서 온 거니까요.”
“좋아. 그럼 물어보지.”
바하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 번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조금 전과 같은 마법진과 함께 나와 루시아는 공간이동이 되었다.
말 좀 하고 써 주지, 좀. 놀라서 간 떨어지겠네.
“알겠네요.”
“뭐가?”
“이거, 마탑 안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에요.”
갑작스러운 루시아의 말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와중에 그걸 분석하고 있다고? 루시아도 어지간히 특이한 구석이 있었다.
함께 온 바하트는 그녀의 말을 듣더니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뭘 대단한 걸 알아냈다고 호들갑이냐. 그것보다 얼른 따라와라.”
이번에 도착한 곳은 거대한 연구실이었다.
이곳에도 마법사들이 있었는데 대부분 연구대 한구석에서 자고 있거나 다크서클을 길게 늘어트린 채 좀비처럼 어기적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들에 미래의 내가 투영되는 듯해 소름이 돋았다.
“일단 이곳의 재료들을 사용해도 되니 방금 그 포션을 제조해 봐라.”
“알겠습니다.”
그 정도야 식은 죽 먹기지.
며칠 동안 수백 번을 만진 재료들이기에 이제는 눈을 감고도 제조할 정도로 익숙해졌다.
오히려 옆에서 구경만 하던 루시아가 제조에 실패할 확률이 높았다.
연구실 한쪽에 따로 구성된 창고에서 딱 1회분의 재료들을 가져와 즉시 제조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마탑의 연구실이라 그런지 아카데미에서 다루었던 기구들보다 정교하고 다루기 힘들었지만 곧잘 사용해 낼 수 있었다.
―띠링!
[체력 상승의 물약(중급)을 제작하였습니다.]
추출과 융합, 반응 후 재료가 제대로 섞여 들어가자 곧바로 알림이 떴다.
고작 5분 만에 포션을 제조해 내자 바하트도 이놈 봐라 싶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근데 저거, 정말 눈을 가리고도 보이는 건가?
바하트는 내가 만든 포션을 찍어 먹어 보더니 이내 아까처럼 한입에 들이마셨다.
“좋다. 그럼 이제 질문을 하겠다.”
“말씀하시죠.”
“왜 하필 혼피시의 진액을 사용할 생각을 했지? 대충 무슨 의도인지는 알겠지만 다른 것들도 많았을 텐데? 예를 들면 홀먼 씨앗이나 포포뇽 수술 가루라든가.”
“그건 액체이기 때문입니다. 이게 별것 아닐 수도 있지만 액체 상태의 매개체와 고체 상태의 매개체는 화학반응이나 추출 과정에서 각기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액체 중화제가 필요한 건 필수 재료 중 하나인 토돌나무 진액과 부작용 없이 융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방금 예를 든 것들이 액체 상태였다고 해도 불가능합니다.”
“어째서지?”
“혼피시 진액이 동물성이기 때문입니다. 그 재료들은 식물성이라 불가능하죠. 비슷한 중화제의 역할을 수행해도 융합반응 과정에서 전혀 다른 결과를 낳게 됩니다. 예를 들어 방금 말씀하신 재료가 대신해서 들어가면 식물성 중화제에 약한 피어너 버섯의 형질이 분해됩니다. 이게 단순히 분해로 끝나는 게 아니라 연쇄반응으로 모하임 열매의 환각 성분이 훨씬 도드라지게 되는 결과를 부릅니다.”
지금 말한 모든 건 내가 알아낸 게 아니고 게임 내의 힌트가 알려 주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다 내가 노력해 낸 덕분이지.
아마 이 게임을 했던 그 누구도 나만큼 노력을 하며 조합법을 찾아보지는 않았을 거다.
“직접 해 본 거냐?”
“예. 말씀하신 두 종류의 재료 모두 사용해 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게임에서.
틀린 말은 아니니 당당하게 말했다.
바하트는 갑자기 눈을 가린 천을 만지작거리다가 이내 벗었다.
그리고 부릅뜬 눈으로 나를 살폈다.
“내가 아는 아드리아스 크롬웰이 맞나 의심이 되는군. 넌 누구지?”
“방금 말씀하신 아드리아스 크롬웰입니다.”
“말했다시피 내가 아는 이라는 전제가 중요하다. 넌 정말 내가 아는 그 녀석이 맞나?”
“예. 맞습니다. 알븐 전하.”
“허허. 이거 참…….”
순간적인 그의 질문에 심장이 조였다.
설마 내가 김진환인 걸 알아챈 건가 싶었다.
하지만 당황할수록 감정을 숨기는 버릇 덕분에 침착하게 대답을 해낼 수 있었다.
“내가 너를 본 게 몇 년 만이지?”
기억아! 일해라!
찰나의 순간, 아드리아스의 기억이 떠올랐다.
“입학식 때 뵙고 처음인 것 같습니다. 대략 2년 반 정도입니다.”
“그래?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르겠지만?
“꽤 재밌어졌군.”
“감사합니다.”
입으로는 감사하다고 말하지만 머릿속은 복잡했다.
망했다. 바하트 알븐이 재미있다는 표현을 썼어.
저 말이 나왔을 때치고 멀쩡한 일이 없었단 말이야.
“자네 혹시 물약 제조에 관심이 많나?”
“예? 예. 아무래도 아까 보셨던 것처럼 마법적 재능이 뛰어난 건 아니라…….”
물론 진화 특성으로 재능을 업그레이드할 생각이었지만.
“그러면 나와 내기 하나 하지.”
“내기…….”
차마 싫다고는 말 못 하고 말끝을 흐렸다.
내가 미쳤다고 너 같은 미치광이랑 내기를 하냐.
“만약 내기에서 이긴다면 크롬웰가가 우리 가문에 진 빚을 전부 없애고 내가 아끼는 물건 하나를 주지.”
“당장 하시죠.”
아, 나도 모르게 그만 즉답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정확히 얼마의 빚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무려 고위 귀족인 백작가가 파산할 정도의 금액.
짐작으로는 대부분 나, 아마 마법 때문일 것 같아서 마음이 무거웠는데 이를 해결할 수 있다니 대답이 바로 나오는 게 당연하지.
게다가 바하트가 아끼는 물건이야 두말하면 아프다.
세계관 최강자의 물건, 어쩌면 내가 진 빚보다 훨씬 가치가 높을 수도 있었다.
“들어 보지도 않고?”
“들어 보겠습니다.”
피식, 웃음을 흘린 바하트가 선언하듯 말했다.
“만약 자네가 올해가 가기 전까지 새로운 물약을 하나 더 만든다면 자네의 승리일세. 하지만 만약 못 해낸다면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네를 퇴학시킬 거야. 어떤가?”
그야 물론.
대답은 정해져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