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 1화. 규희 (124/128)


#외전 1화. 규희
2023.01.05.


무혁은 한창 업무에 집중하고 있었다.

KJ 건설과 KM 건축사 사무소가 협업하여 한창 진행 중인 프로젝트로 다시금 바빠진 요즘, 무혁은 민석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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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허가는 받았는데 지금 문제점이…….”

현재 진행 중인 사업 얘기를 하면서도 민석의 시선이 이따금 휴대전화를 쥔 무혁의 손으로 향했다.

무혁이 KJ 건설로 들어가면서 꽤 오랫동안 같이 일을 하지 못했지만 민석이 기억하는 그는 업무 중에는 절대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지 않았다. 일에 방해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재희와 결혼을 하고 나서 가끔 휴대전화를 보긴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손에 쥔 적은 없었다.

민석이 궁금증을 참지 못해 입을 열려는 찰나 휴대전화가 울렸다.

민석은 당연히 무혁이 곧바로 휴대전화를 꺼버릴 거로 생각했지만, 그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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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희야.”

무혁이 벨이 2번 울리기도 전에 전화를 받은 것이다. 그것도 영상통화로.

민석이 경악한 얼굴로 보거나 말거나 영상통화를 받는 무혁의 얼굴이 아주 조금 부드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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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희야. 이건 만지면 안 돼.

다급한 재희 목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화면 가득 작은 손이 보였다가 사라졌다.

잠깐 천장이 보였다가 작은 발이 보였다가 정신없이 화면이 흔들렸다. 그런데도 무혁은 이 순간도 무척이나 기쁘다는 듯이 묵묵히 기다려 주었다. 이윽고 화면이 고정되면서 재희의 얼굴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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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혁 씨. 미안해요. 바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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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무척 중요한 대화 중이었지만 무혁의 망설임 없는 대답에 민석이 경악에 찬 얼굴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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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수십억짜리 계약 건으로 의논 중 아니었냐?’

민석의 속마음을 싹 무시한 채 무혁은 화면 속의 재희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재희는 안도하면서도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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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다. 실은 규희가 계속 울어서요. 아무리 달래도 울음을 안 그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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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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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요.

영상통화 화면이 잠시 흔들렸다.

이윽고 초점이 다시 잡히며 울어서 새빨갛게 퉁퉁 부은 귀여운 얼굴이 화면 가득 잡혔다. 아이를 본 무혁의 표정이 훨씬 더 부드럽게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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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희야.”

무혁이 다정한 목소리로 딸아이 이름을 부르자 민석이 소름 돋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재희를 부를 때에도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아이를 부를 때와는 확연히 다른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혁은 입술을 삐죽이는 규희를 다시 한번 다정하게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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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희야. 아빠야.”

규희가 눈을 데구루루 굴렸다.

어디서 아빠 목소리가 들리는데 보이지 않으니 곧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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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희야. 여기. 여기에 아빠가 있어.

곧 울음을 터뜨릴 것 같자 재희가 휴대전화를 톡톡 두드리는지 화면에 가느다란 손가락이 콕콕 찌르는 게 보였다.

그 모습마저도 사랑스러운지 무혁의 시선은 내내 재희와 규희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규희의 커다란 눈동자가 곧 화면에 고정되었다.

무혁을 발견했는지 규희가 환하게 웃으며 호랑이 인형을 쥔 채로 손짓했다. 아직 돌도 치르지 않은지라 ‘아브’ 소리밖에 내지 못하지만 온몸으로 반가움을 나타내는 규희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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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희야. 왜 울었어?”

언제 울었냐는 듯 규희가 방긋 웃었다.

당장이라도 껴안고 싶은 욕심을 누르며 무혁이 부드럽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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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얼른 갈까?

무혁의 물음에 규희가 해실 웃는 거로 답했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무혁은 ‘당장 갈게’라는 말을 어렵게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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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빨리 갈게.”

무혁의 말이 만족스러웠는지, 규희가 몸을 움직거리기 시작했다. 아직 몸보다 머리가 큰지라 규희가 금방 중심을 잃고 기우뚱 뒤로 넘어갔다. 그걸 보자 휴대전화를 쥔 무혁의 손에 힘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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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희야! 위험해.

화면이 잠시 심하게 흔들렸다.

아슬아슬하게 머리가 부딪치지 않게 규희를 잡은 재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다시 화면이 고정되며 재희가 어색하게 웃는 모습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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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희가 무혁 씨 봐서 기분 좋은가 봐요.

아빠를 봐서 만족한 규희가 호랑이 인형을 끌어안고 뒹굴거렸다.

재희가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산 호랑이 인형은 규희의 애착 인형이 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무혁은 자신도 모르게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태몽이 백호여서 그런지 규희는 태어날 때부터 남달랐다.

배 속에 있을 때는 너무 얌전해서 재희가 걱정까지 할 정도였고, 태어날 때도 진통시간이 길지 않았다. 워낙 순해서 태어나서도 순할 줄 알았던 규희는 태어나고 보니 성격이 정반대였다.

제대로 앉지도 못하던 시절에도 어찌나 몸을 적극적으로 움직이려 하는지, 도우미가 이렇게 적극적인 아기는 처음 봤다고 말할 정도였다. 기어 다닐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이리저리 다니느라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가끔 어딘가에 쿵 부딪혀도 울기는커녕 짜증만 내더니 곧 제 갈 길 가자 오히려 재희가 걱정이 돼서 규희를 안고 급하게 병원에 갈 정도였다.

무혁의 시간을 너무 뺏었다 생각했는지 재희가 민망한 얼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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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데 방해해서 미안해요. 이따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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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는.”

재희가 통화를 끊으려 하자 무혁이 급하게 물었다.

재희가 품에 안겨드는 규희를 한 손으로 다독이며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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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었어요. 무혁 씨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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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먹었어. 힘들면 도우미에게 잠시 규희를 맡겨.”

도우미가 있더라도 공부와 육아를 동시에 하고 있는 재희는 전보다 좀 지쳐 보였다. 그게 못내 무혁의 마음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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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지 않아요. 지금 시부모님 집에 와 있어서 다들 제가 공부하는 동안 규희를 잘 돌봐주시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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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갔어?”

규희를 낳은 뒤로 재희는 자주 평창동에 방문했다.

집에서 쉬어도 모자랄 판에 부모님이 평창동에 불러들이는 거라 생각한 무혁의 미간이 불쾌한 듯 좁혀졌다. 그러자 재희가 서둘러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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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오고 싶어서 온 거예요. 아주머니께서도 오늘부터 휴가 가셨고, 집에선 아무래도 혼자이기도 하구요.

경자는 딸과 해외여행을 갔다.

재희는 흔쾌히 다녀오라며 장기 휴가까지 주었는데, 처음 임신했을 때 경자가 곁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혼자 있는 걸 싫어하는 재희의 성격을 아는 무혁이 가만히 한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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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무리해서 간 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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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제가 오고 싶어서 온 걸요. 이 실장님도 계시고 도우미도 계시고. 오히려 제가 할 일이 없는걸요.

안심시키기 위해 재희가 조잘조잘 말했다. 재희의 표정에선 싫은 내색은 보이지 않았다.

무혁은 안도했지만 여전히 재희가 힘들게 평창동에 간 것이 마뜩잖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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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도록 빨리 가도록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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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릴게요.

통화가 끝난 뒤 무혁은 아쉬운 듯 휴대전화를 엄지로 화면을 가만히 문질렀다.

아직도 해사하게 웃는 딸 규희와 재희의 얼굴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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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희 씨랑 딸이 그렇게 좋냐.”

옆에서 구경하던 민석이 짓궂게 물었다. 무혁은 예의 딱딱한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재희와 통화할 때와 전혀 다른 무혁의 얼굴에 민석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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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많이 변한 거 알긴 아냐. 워커홀릭인 네가 애처가에다 딸 바보가 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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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석. 일이나 하지.”

무혁이 단번에 말을 끊어내자 민석의 눈살이 대번에 찌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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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식이…….’

얼마 안 가 민석의 입가에 미소가 슬그머니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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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보기는 좋네.’

항상 치열하게 살아왔던 무혁이 안정감을 찾자 민석은 오랜 친구로서 진심으로 기뻐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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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통화해서 그렇게 좋아?”

발라당 누운 규희를 보며 재희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커다란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리는 규희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재희는 저도 모르게 가만히 뺨에 입을 맞췄다. 보들보들하고 통통한 아기 뺨이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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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이제 할머니랑 할아버지 보러 가자.”

재희가 규희를 안고 나가자 거실에 강진과 혜란이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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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 끝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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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어머님. 지금 막 끝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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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규희 아빠가 그렇게 보고 싶어서 서럽게 울었어? 자아. 규희야. 할머니한테 와.”

혜란이 팔을 내밀자 재희는 혜란의 품에 규희를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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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유. 이뻐라. 누굴 닮아서 이렇게 이쁠까.”

얌전히 품에 안긴 규희를 보는 혜란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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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아가를 많이 닮았군. 사랑스럽게 생겼어.”

강진도 규희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따금 규희의 머리를 쓰다듬는 강진의 눈에도 애정이 가득했다.

규희는 이 집안의 복덩이나 다름이 없었다.

아들만 둘인 집안에 규희가 태어남으로써 온갖 관심과 사랑을 받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이가 가진 순수함은 냉랭하던 집에 활기가 돌게 만들었다.

고용인들조차 이런 적은 처음이라며 놀랄 정도로 큰 변화였다.

강진은 재희의 산후조리부터 시작해 온갖 지원을 해주었다. 그것도 모자라 고생했다며 재희 앞으로 작은 건물까지 사줄 정도였다.

과하다며 받지 않으려는 재희에게 강진이 며느리에게 이 정도도 못 해 주겠느냐며 도리어 섭섭해하자 재희는 어쩔 수 없이 건물을 받았다.

제 배로 직접 낳았지만 무혁과 우진에겐 데면데면했던 혜란 역시 규희에겐 아낌없는 사랑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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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기가 귀여울 줄은 몰랐어. 그땐 왜 그렇게 아들들이 안 귀여웠는지.”

 
조금 후회가 되는 듯 혜란이 중얼거렸다.

그런 혜란에게 무혁이 무심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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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이고 원망하지 않습니다.”

 
덤덤한 무혁의 말에 혜란은 빙긋 웃어 보인 뒤 평소와 똑같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따로 사과 같은 건 하지 않았지만 무혁은 혜란이 규희를 예뻐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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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자고 갈 거니?”

혜란이 묻자 재희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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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오늘은 그러려구요.”

따로 아기용품이나 옷가지 같은 걸 챙길 필요도 없었다.

이미 평창동 집엔 규희가 쓰는 아기용품이나 옷, 그리고 재희와 무혁의 옷과 필수품이 구비되어 있었다. 재희는 강진이 내어준 방에 규희의 방을 예쁘게 꾸몄고, 그 덕은 강진과 혜란이 톡톡하게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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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생각했다. 오고 가는 것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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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러렴. 규희는 우리가 봐줄게. 규희는 오늘 할머니랑 할아버지랑 자자?”

꺄아.

화답하듯 규희가 소리 내어 웃자 금세 거실에 웃음소리가 퍼졌다.

* * *

저녁 식사를 끝내기 무섭게 우진이 퇴근하고 집에 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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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희야. 삼촌 왔다!”

우진의 양손엔 규희의 장난감이 가득 들려 있었다.

독립한 뒤로 집에 잘 오지 않던 우진이 규희가 오는 날이면 늘 당연하다는 듯 집에 들렀다.

그런 우진을 혜란은 못마땅한 눈으로 흘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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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널 이 집에서 자주 보는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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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희가 왔다는데 당연히 저도 와야죠. 우리 규희가 얼마나 예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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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눈엔 재희는 안 보이니? 그리고 안기 전에 가서 손이나 씻고 와.”

혜란이 타박하자 우쭈쭈하며 규희를 안으려던 우진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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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수님. 늦었지만 안녕하세요. 규희가 보고 싶어서 빨리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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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에요. 규희도 삼촌을 많이 보고 싶어 했어요.”

그 말에 우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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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구. 우리 규희 삼촌이 보고팠쪄요? 삼촌 왔쪄요.”

무혁과 닮은 얼굴로 혀짧은 소리를 내는 우진을 보며 재희가 웃음을 터뜨렸다.

규희를 끼고 예뻐하는 식구들을 보던 재희가 문득 쓴웃음을 지었다.

이윽고 식구들에게 양해를 구한 재희는 서재에 들어왔다.

서재 역시 강진이 재희를 위해 특별히 마련해준 공간으로, 무뚝뚝한 강진의 며느리에 대한 사랑이 엿보였다.

재희는 낮에는 최대한 아이와 함께 보내고 저녁에는 무혁이나 식구들이 아이를 봐줄 동안 공부를 했다. 가족 전체가 다시 공부를 시작한 재희를 지지해 준 덕분에 잠시나마 육아에서 해방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재희는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규희를 예뻐하던 식구들을 지켜보는 내내 아버지가 거스러미처럼 까슬하게 마음에 걸렸다. 재희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어 해외에 있는 재혁에게 규희 사진 몇 장을 보내주었다.

규희가 태어난 뒤로 재혁이 규희를 무척이나 보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사진을 보내고 난 뒤 재혁과 몇 번 메시지를 주고받던 재희는 이내 휴대전화를 뒤집어놓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까슬거리는 마음을 외면하며 억지로 공부에 집중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책상에 엎드려 자던 재희는 몸이 들려지는 느낌에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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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깼어?”

무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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