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9화. 장독수 (109/128)


#109화. 장독수
2022.11.14.


[무혁 씨.

잘 지내고 있어요? 바로 어제도 통화했지만 많은 말을 하지 못해서 아쉬워요. 분명 통화하기 전까지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막상 무혁 씨 목소리 들으니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지 뭐예요. 그래도 무혁 씨가 잘 지내고 있어 보여서 안심도 돼요.

그런데 참 이상하죠.

분명 무혁 씨는 잘 지내는 것 같은데 혹시라도 두바이에서 몸은 상하지 않았는지, 그곳 음식은 입에 맞는지, 잠은 제대로 자는지, 걱정돼요.

그렇지만 걱정하는 티를 내면 무혁 씨는 분명 무리해서라도 빨리 오려고 하겠죠. 그러니까 걱정 안 하기로 했어요. 이젠 무혁 씨를 어느 정도 겪어봐서인지 목소리나 표정만으로도 아프지 않은지, 안 좋은 일은 없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그래도 무혁 씨.

빨리 와요.

생각보다 무혁 씨의 빈자리가 너무 크네요. 무혁 씨가 얼마나 제게 중요하고 소중한 사람인지, 저는 너무 늦게 깨달았어요. 어쩌면 언제나 무혁 씨가 곁에 있어서 당연하게 여겼던 것 같아요.

무혁 씨가 그랬던 것처럼 저는 노을 서점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무혁 씨만큼은 저처럼 불 꺼진 노을 서점을 보게 하고 싶지 않아요.

불 꺼진 노을 서점이 얼마나 쓸쓸한지 그 기분만큼은 무혁 씨는 몰랐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비밀 친구였던 무혁 씨가 그랬던 것처럼, 저도 노을 서점에서 웃으면서 맞아 주고 싶어요. 불 꺼진 노을 서점이 아니라 무혁 씨와 제가 기억하는 그 노을 서점에서.]

거기까지 썼을 때, 바지런히 움직이던 펜이 멈췄다.

재희는 한참이나 일기장을 내려다보다 끝까지 쓰지 못하고 덮고 말았다.

문득 서재 안을 둘러보았다. 신혼집을 마련할 때 무혁이 직접 재희에게 하나하나 맞춰서 만들어준 서재. 그뿐만 아니라 신혼집 곳곳에서도, 노을 서점에서도 무혁의 마음이 여실히 느껴졌다.

잠시 무혁의 마음을 느끼던 재희는 조용히 일기장을 서랍에 넣으며 달력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5월이 지나가지 않았다.

겨울까지 너무나도 까마득했다.

* * *

재희는 장독수의 작업실 앞에 서 있었다.

라윤 갤러리 50주년 특별전시회 초대장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전시회는 아직 멀었지만, 미리 장독수의 참석 여부에 대한 대답을 듣고자 했다.

하나 그게 어렵다면 초대장만이라도 전해주고자 했다. 재희는 혜란이 장독수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초대장을 다시 한번 살펴보곤 걸음을 옮겼다.

작업실로 들어서자 예전과 똑같은 휑한 내부가 재희를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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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게. 오랜만이네.”

작업 중이었는지 장독수가 물감이 채 마르지 않은 앞치마를 걸친 채 맞이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얼굴로 맞이하는 장독수를 보며 재희가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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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안녕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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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 늘 똑같지. 들어오게.”

대충 아무렇게나 물건이 너저분하게 늘어져 있지만 장독수만의 규칙을 가진 작업실을 둘러본 재희는 문득 이곳도 노을 서점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노을 서점도 물건이 제멋대로 놓여 있는 것 같아도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정리되어 있는 데다 서점 할아버지의 애정이 담뿍 느껴졌다.

장독수의 작업실은 별다른 가구가 없어 휑한 분위기지만, 구석구석 먼지 한 톨 없어서 그에 못지않은 애정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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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시피 작업에만 집중하기 위해 별다른 물건은 갖다두지 않아서 대접할 게 마땅찮군.”

장독수가 건네주는 머그컵을 두 손으로 받아들며 재희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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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화백의 작업을 방해하고 있는 건 아닌지 죄송스러울 따름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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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해는 무슨. 이렇게 와줘서 반갑기만 한걸.”

가구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이다 보니 앉을 곳은 스툴 의자와 작은 테이블밖에 없었지만, 재희는 개의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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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제 슬슬 용건을 말해보게나.”

미리 온다 언질을 해 놓았지만, 방문 이유를 말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장독수는 재희가 방문한 목적을 눈치챈 기색이었다. 재희는 작은 가방에서 정성스럽게 포장한 초대장을 공손한 자세로 장독수에게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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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지만 라윤 갤러리 50주년 특별전시회 초대장이에요.”

장독수는 초대장을 선뜻 받지 못하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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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장이라…….”

평소라면 고맙다며 받아들었을 장독수였다.

하지만 지금 장독수가 보인 감정은 머뭇거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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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장을 주기엔 너무 이르지 않나.”

전시회는 겨울이었고 지금은 여름 초입에 들어선 시기였다.

장독수의 말대로 초대장을 주기엔 너무 일렀다. 재희가 웃으며 고개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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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어머님께서 화백을 위해 특별히 만든 초대장이에요. 꼭 전해주고 오라고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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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빼지 말란 소리같이 들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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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윤 갤러리 50주년 특별전시회에 화백께서 빠지시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재희의 말에 장독수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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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관장은 가끔 날 너무 과대평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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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대평가가 아니라 사실인걸요. 거기다 어머님께서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화백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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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 마음은 충분히 알겠으니 일단 초대장은 받겠네.”

장독수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초대장을 받아들었다.

하지만 참석한다는 대답은 하지 않았다.

일단 재희는 초대장을 전해준 거로 만족하기로 했다.

혜란 역시 바로 대답을 듣고 오라고 말하지 않았다.

심지어 장독수가 초대장을 받지 않는다는 선택지까지 생각해 두었다.

장독수가 초대장을 받은 것만으로도 이곳에 온 목적을 이룬 셈이었다.

더 이상 작업에 방해되지 않도록 이만 일어나려고 할 때 장독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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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고 싶은 게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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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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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과 어떻게 아는 사이가 됐는가? 김 관장에게 물어봤지만, 그 일은 자기가 아니라 자네에게 듣는 게 좋겠다는 말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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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재희는 잠시 망설이다가 짤막하지만 미셸과 얽힌 인연을 말해주었다.

물론 미셸의 개인사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프랑스로 건너간 미셸의 딸인 도화가 자신이 그린 일러스트를 보고 많이 좋아했다는 정도만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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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 아이가 자네 일러스트를 보고……. 그래서 미셸이 한국에…….”

많은 생각이 드는지 장독수는 초대장을 주름진 손으로 매만지며 몇 번이고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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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장독수가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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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말 괜찮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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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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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번 전시회에 참석한다면 미셸이 다시는 함께 일하지 않겠다며 화를 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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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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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후회하지 않겠냐는 말일세. 미셸은 김 관장이 가장 공들인 화가가 아닌가.”

뜻 모를 장독수의 말에 재희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장독수의 말대로 미셸은 혜란이 가장 공들인 화가였다. 당연히 혜란은 미셸과 오래도록 일하고 싶어 할 터였다.

장독수가 무슨 뜻으로 말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재희는 이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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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라윤 갤러리의 책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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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윤 갤러리의 책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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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라윤 갤러리에서 감당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어떻게 화백을 원망하겠어요. 어머니도 원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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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생각하나? 미셸은 세계적인 화가가 아닌가. 나보단 당연히 미셸이 더 중요할 텐데.”

장독수가 재미있다는 듯 웃어 보였지만, 어쩐지 그 웃음에서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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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백이시니까요.”

혜란은 제 사람에겐 관대한 성격이었다. 미셸도 중요했지만, 어머니 때부터 인연을 이어온 장독수 화백을 원망할 성격은 아니었다.

망설임 없는 재희의 대답에 장독수가 희미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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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렇군. 대답은 당장 안 해도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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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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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언제고 대답을 해주겠네.”

장독수의 작업실을 나오며 재희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미셸과 장독수가 뭔가 관련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재희는 그 자리에서 묻지 못했다. 미셸을 언급할 때마다 장독수 화백의 눈동자에 서린 후회와 그리움 때문이었다.

결국 재희는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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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화백이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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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고 싶었지만 차마 물을 수 없었어요. 아마 제가 아닌 어머님이 계셨더라도 그러셨을 거예요.”

재희는 서재에 앉아 무혁과 노트북으로 화상 통화를 하고 있었다.

일정 시간을 정해두고 매일 이렇게 무혁과 통화를 하기로 약속했었다.

시차 때문에 재희의 시간에 맞춘지라 무혁에겐 지금이 한창 바쁜 시간이나 다름없었다. 재희는 처음엔 싫다고 고개 저었지만, 무혁은 고집스러웠다. 재희는 결국 그 고집을 꺾지 못하고 이렇게 화상 통화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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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화백께서는 전시회에 참석하실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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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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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사정인지 모르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번 전시회 초대를 거절할 분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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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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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걸리는 일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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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쉽지 않을 것 같아서요.”

장독수가 보인 반응이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누름돌처럼 마음 한구석을 묵직하게 누르고 있었다. 당연히 참석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0.1%의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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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수 화백이라면 어머니나 재희를 실망하게 할 일 없을 거니까 그분의 선택을 믿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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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야겠죠. 그래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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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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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생각에 잠기며 점차 시선이 내려가던 재희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윽고 무거운 무혁의 시선을 본 재희가 살포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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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무혁 씨랑 얘기하는데 너무 일 얘기만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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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괜찮아. 재희 이야기를 듣는 게 좋으니까.

무혁이 짧게 말을 끊었다가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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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렇게 얼굴이 어두워지면 내 마음도 편하지 않아.

그 말에 재희가 살며시 양 뺨을 두 손으로 문질렀다.

표정을 풀려고 했지만 요원한 듯 재희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 모습을 감상하듯 보던 무혁이 피식, 옅은 웃음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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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도록 빨리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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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무리는 하지 말구요.”

재희는 그러지 말라는 소리는 빈말로라도 하지 않았다.

솔직한 재희의 대답에 무혁이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무혁과 통화를 끝낸 재희는 까맣게 변한 화면을 보며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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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전시회 전까지 왔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무리겠지.

알면서도 슬며시 고개를 드는 욕심을 재희는 억지로 꾹꾹 눌러 담았다.

* * *

무혁은 노트북을 닫으며 앞에 선 재혁을 바라보았다.

두바이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재혁의 얼굴은 푸석푸석하다 못해 초췌했다.

무혁이 손을 내밀자 재혁이 긴장한 얼굴로 서류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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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서류를 훑어보는 무혁을 힐끗힐끗 훔쳐보며 그런 생각을 하던 재혁은 올라오는 한숨을 겨우 삼켰다.

두바이로 온 지 한 달 정도 되었지만, 재혁은 아직도 매일 밤 후회와 당장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충동과 싸워야 했다.

어렴풋이 쉽지 않을 거로 생각했지만, 막상 닥친 현실은 재혁의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었다.

아직 햇병아리인 데다 중요한 일은 할 수 없어서 윤 비서가 서류를 작성해 주면 무혁에게 전달해 주고 답변을 받아오는 정도였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윤 비서와 함께 움직이는 만큼 무혁의 스케줄을 따라 움직여야 했는데, 무혁은 그야말로 미친 사람처럼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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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런 일정을 소화할 수 있지.’

일 분 일 초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듯 무혁은 그야말로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다. 이런 데 익숙한 윤 비서는 무혁처럼 스케줄을 묵묵히 소화하고 있었고 실무진들도 만만치 않았다.

과제 할 때나 공모전 때 학교에서 밤을 지새우는 일도 많았던 재혁이었지만 두바이에 온 지 일주일 만에 몸살까지 앓았다.

거기다 무혁의 처남이라고 해서 아무도 봐주지 않았다.

첫날에 보고 하나를 누락한 적이 있었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내용이었는 데다 재혁은 내심 무혁의 처남이니까 봐주지 않을까 하는 알량한 마음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재혁의 예상과 정반대로 윤 비서에게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났었다.

반대로 무혁은 큰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게 더 무서웠다.

사회의 쓴맛을 톡톡히 본 재혁은 그때부터 정신을 바짝 차렸다.

바쁜 스케줄과 긴장의 연속으로 재혁은 두바이에 온 지 한 달 만에 살이 쏙 빠져버렸다.

재혁은 무표정한 얼굴로 서류를 훑는 무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재희와 화상 통화할 때와는 정반대의 얼굴.

재희와 대화할 때 본 표정이 내심 신기했던지라 재혁은 자기도 모르게 툭 말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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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잘 지낸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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