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6화. 무혁의 방 (56/128)


#56화. 무혁의 방
2022.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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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혁이 결혼 전 살았던 방은 그의 성격을 그대로 나타내듯 전체적으로 어두운 컬러로 이루어져 있었다. 방이라곤 하지만, 작은 거실이 있었고 몇 개의 문도 보였다.

거실엔 간단한 소파와 책장이 전부였다.

TV 대신 놓인 책장엔 온갖 전공 서적과 책이 가득했고, 그 책마저도 크기와 종류에 따라 칼같이 딱딱 나뉘어 꽂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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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무혁 씨의 방.’

재희는 신기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방을 둘러보았다.

그렇게 아름다운 설계를 할 줄 아는 무혁의 방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썰렁한 방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무혁이 어떻게 지냈을까 상상하니 별거 없는 이 방도 재희의 눈에는 왠지 재미있었다.

재희는 책장 앞에 섰다.

책 제목을 훑어보던 재희가 얕게 감탄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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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혁 씨는 취향이 꽤 다양하구나.’

신화, 인문학, 건축학…….

대충 책 제목만 훑어봐도 전공서부터 시작해 꽤 여러 장르의 책이 즐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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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전부 다 무혁 씨 대학 다닐 때 보던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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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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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장르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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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가리는 건 없습니다.”

무혁이 잠옷과 화장품을 내려놓으며 재희에게 다가갔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책을 훑어보는 재희를 바라보던 무혁이 가만히 뒤에서 그녀의 몸을 끌어안았다.

제 품에 가녀리고 보드라운 몸이 폭, 안기자 무혁이 낮은 한숨을 흘리며 가만히 재희의 목덜미에 입술을 문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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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혁 씨…….”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재희가 작은 목소리로 불렀다.

재희의 허리에 팔을 두른 무혁은 가만히 힘을 주었다.

이미 재희는 제 품에 충분히 들어오고 남았지만, 무혁은 좀 더 욕심을 부렸다.

갈증이 밀려들었다.

안으면 안을수록 재희가 욕심이 났다.

제 품에서 작게 꼼지락거리는 움직임조차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 감촉과 온기를 오롯이 느끼고 제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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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재희 씨를 아예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습니다.”

촉, 무혁이 재희의 귓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뺨, 턱, 목덜미를 가볍게 훑던 그의 입맞춤이 점점 더 진해졌다.

재희는 무혁의 팔을 짚으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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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혁 씨. 저, 방 더 구경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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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 없습니다.”

무혁은 고집을 부리며 자잘한 입맞춤을 흩뿌렸다.

그의 입맞춤에 녹아들 것 같이 온몸의 힘이 빠졌지만, 재희는 단호하게 그의 팔을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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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구경하는 데 방해하면 화낼 거예요.”

그의 입맞춤도 스킨십도 좋았지만, 지금 재희는 무혁의 방을 구경하고 싶었다.

이 방에서 지냈을 무혁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었다.

무혁이 아쉬운 듯 옅은 한숨을 내쉬며 팔을 풀었다.

겨우 무혁에게서 벗어난 재희가 한 곳을 가리키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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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은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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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실입니다.”

방문을 열자 그의 말대로 욕실이 있었다.

세면대와 욕조, 그리고 탈의실로 구성된 욕실은 무혁이 독립을 한 뒤에도 관리를 잘해왔는지 어느 것 하나 흐트러짐 없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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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여기서 씻으면 됩니다.”

무혁이 재희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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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 어색하다면 같이 써도 됩니다.”

그 말에 재희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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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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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인데 어떻습니까.”

그 말에 재희가 할 말을 잃고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그와 수많은 밤을 보냈지만, 아직 이런 것에 면역력이 없는 재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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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구요.”

재희는 달아오른 얼굴로 얼른 욕실 문을 닫아버렸다.

그래도 싫다는 말을 하지 않는 재희를 보며 무혁은 자신도 모르게 옅게 미소지었다.

그 외에도 드레스 룸, 창고로 쓰이는 작은 방도 있었다.

무혁이 독립한 지 오래되어 물건은 별로 없었지만, 재희는 문득 무혁이 이 집에서 살았어도 똑같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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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무슨 방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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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입니다.”

문을 열자 책장과 책상만 덩그러니 놓인 작은 방이 한눈에 들어왔다.

서재 안을 둘러보던 재희는 문득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거실에는 다양한 책이 즐비했는데, 서재에는 책이 한 권도 없었다.

오히려 책장 곳곳에 미니어처 건물 모형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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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전부 무혁 씨가 만든 거예요?”

재희가 신기한 눈으로 미니어처 건물 모형을 훑어보았다.

무혁의 사무실에서도 몇 개 봤었지만, 서재에는 좀 더 다양한 미니어처 건물 모형들이 즐비했다. 거기다 한쪽 책장에는 돌돌 말린 종이가 가득 쌓여 있었다.

하나하나 호기심에 찬 눈으로 보던 재희가 무혁을 돌아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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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봐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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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입니다.”

무혁이 종이 하나를 꺼내 건네주었다.

돌돌 말린 종이를 펼치자 안에는 어지럽게 그려진 설계도가 보였다.

건축에 대해 잘 모르는 재희조차도 무혁이 얼마나 고민을 하고 공부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설계도는 작은 글씨로 꽉 채워져 있었다.

다른 설계도를 펼쳐봐도 마찬가지였다.

하나같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부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서재에서 설계 도면을 그리고 공부하며 고민했을 학생 시절의 무혁을 떠올리자 재희는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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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혁 씨는 건축 정말 좋아하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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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무혁이 짧게 대답하며 재희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재희가 아무런 저항 없이 폭, 품에 안겼다. 무혁은 의자에 앉으며 재희를 제 무릎에 앉혔다.

무혁은 제 어깨에 고개를 기대어 흥미로운 눈으로 설계 도면을 꼼꼼히 살펴보는 재희를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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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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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지 않았다고요?”

의외의 대답에 재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자, 무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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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과도 당연히 들어가야 했기에 입학한 것뿐입니다. 부전공은 경영학이었고, 당연히 그렇게 사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KJ 그룹의 장남으로서 무혁의 길은 정해져 있었다.

미래 KJ 그룹을 이끌어갈 후계자로서 어릴 때부터 빈틈없이 짜인 교육을 받았고, 정해진 코스대로 대학에 갔다.

그게 당연했고, 큰 불만도 없었으며 무혁이 좋다 싫다 말할 문제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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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했었는데 좋아하지 않았다니.’

재희는 치열하게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그렸을 설계도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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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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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지금은 오히려 건축학을 전공한 게 다행이라 생각할 정도입니다.”

아버지와의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그리고 재희를 위해 즐거움을 느낄 새도 없이 더 치열하게 공부했었다.

수많은 공모전에서 입상을 해도 무혁은 기쁘지 않았다.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일 중독자로 보일 만큼 무혁은 치열하게 공부했고 일했다.

일에 대한 애정보다는 책임감이 더 강했었다.

그러나 재희와 맞선을 본 뒤 처음으로 무혁은 건축학을 전공한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손으로 노을 서점을 재희에게 돌려줄 수 있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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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희 씨를 다시 만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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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혁…….”

재희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무혁이 재희의 턱을 부드럽게 쥐곤 고개를 내려 입 맞췄기 때문이었다.

재희는 눈을 감았다.

재희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그녀의 떨림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입술과 입술이 맞붙었다.

남자는 부드러운 크림을 녹여 먹듯 여자의 작고 보드라운 입술을 머금고 마음껏 그 맛을 느꼈다. 오늘따라 유독 여자의 입술이 달았다.

단 것에 중독된 머릿속이 이성을 마비시킨다.

남자의 손이 여자의 옷을 거칠게 헤집기 시작했다.

여자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지만 피하지 않았다. 이윽고 남자의 입술이 떨어졌다.

가쁜 숨을 내쉬며 여자가 흐릿한 시선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눈동자는 이미 주체할 수 없는 욕망으로 어지러웠다.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남자의 감정에 여자가 마른 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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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참겠습니다.”

소중한 아내이니까 침대로 가야 하는 게 맞았다.

평소 인내심이 강했던 무혁이었지만, 오늘은 그 침대로 가는 인내심조차 바닥난 상태였다.

무혁은 재희를 책상에 앉히곤 몸을 밀착했다.

재희가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무혁을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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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하진 않습니다.”

무혁이 마지막 실낱같은 이성을 붙잡고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재희의 양옆으로 손을 짚은 무혁의 손등은 그의 끊어질 듯한 인내심을 보여주듯 힘줄이 위협적으로 솟아 있었다.

재희는 조심스럽게 무혁의 손등을 손가락으로 덧그리듯 쓸었다.

그 작고 사소한 손짓에도 무혁의 척추가 뻣뻣하게 굳었다.

무혁의 미간이 깊게 팼다.

재희는 아무 생각 없이 한 행동이겠지만, 무혁은 온 세상 인내심을 다 끌어다 쓰고 있는 중이었다.

이윽고 무혁을 애태우던 재희가 힐끗, 무혁에게 시선을 두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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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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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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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괜찮아요. 장소가 어디든.”

재희의 목소리가 끊기며 그대로 무혁에게 입술을 삼켜졌다.

겨우 지탱하고 있던 무혁의 인내심은 재희의 허락에 그대로 끊어졌다.

뜨거운 숨결이 오갔고 남자와 여자가 끊임없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다.

한참이나 둘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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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청담의 한 클럽.

스테이지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요란한 음악 소리가 꽝꽝 울려 퍼졌다.

유라는 클럽 깊숙한 곳에 위치한 복도를 걷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집안의 자제들의 은밀한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평소 적당한 옷을 입었던 것과 다르게, 지금의 유라는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있었다.

유라를 본 웨이터가 놀라 후다닥 벽 쪽으로 붙어섰다.

유라는 여러 룸 중에서도 가장 깊숙한 프라이빗 룸 앞에 섰다.

프라이빗 룸으로 들어가자 여러 명의 남녀가 모여 값비싼 술을 시켜놓고 웃고 떠들고 있었다.

몇백만 원짜리 양주를 컵에 가득 따르던 남자가 룸에 들어온 유라를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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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 이제 왔냐? 뭐야, 이젠 얌전해지는 걸 포기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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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는 무슨. 이미지 관리한 거지.”

유라가 웃으며 소파에 앉아 잔을 내밀자 남자가 양주를 따라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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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게 너답긴 하지. 자자, 마셔.”

독한 양주를 스트레이트로 마신 유라는 다리를 꼬고 앉아 잔을 다시 내밀었다.

유라의 주량을 아는 남자가 망설임 없이 양주를 부어주었다. 다시 잔을 입술로 가져가던 유라가 구석에서 처량하게 엎드려 있는 한 남자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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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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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박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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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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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얼마 전에 하도 모임에 끼워달라고 사정사정해서 끼워줬더니 헛소리를 해대다가 저렇게 뻗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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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소리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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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무혁의 와이프가 자기를 좋아하는데, 자기를 배신하고 결혼해서 힘들다나 어쩐다나. 아주 헛소리를 하더라.”

그 말에 유라의 눈이 반짝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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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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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게 뭐야. 솔직히 말이 되냐. 그 와이프도 눈이 있지. 박정수 따위가 눈에 들어오겠냐.”

낄낄거리며 양주를 마시는 친구들을 두고 유라가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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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애희이…….”

거의 만취 상태인 박정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다시는 재희 앞에 눈에 띄지 말라는 무혁의 협박 아닌 협박에 박정수는 무혁은 물론 재희 앞에도 나타나지 못했다.

처음엔 자기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냐며 흥분해 날뛰던 박정수였지만, 무혁이 무서워서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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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이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어. 그 옛날 우리 사이가 얼마나 좋았는데에에.”

내가 해 준 게 얼만데 갑자기 차버리더니 결국 남자 하나 잘 물어서 결혼이나 하고.

남자가 친구들끼리 그런 대화를 나눌 수도 있지, 그것도 이해 못 하냐며 박정수는 진심으로 억울해했다.

톡톡, 박정수는 누군가가 팔을 건드리자 귀찮다는 눈으로 감히 자기를 건든 당사자를 노려보았다. 그러다 눈을 휘둥그레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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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 오빠.”

유라가 턱을 괴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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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야기 좀 할까?”

웬 자기 취향의 여자가 말을 걸어오자 술기운이 확 달아났다.

몸을 벌떡 일으키는 박정수를 보며 유라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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