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1. 견딜 수 없을 만큼 뜨거운 (61/126)


61. 견딜 수 없을 만큼 뜨거운
2022.06.02.


엘리제는 쓰러트린 데몬의 몸을 누르며 입을 맞추었다.

조심스럽고 가벼웠던 입맞춤은 어느덧 진하고 농밀하게 변해갔다.

싫다고 거부하던 그가 막상 부드럽고 따스한 여린 입술이 자신의 입술과 닿자, 되레 절박하게 입맞춤 해왔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두 사람의 접촉이 점점 깊어졌다.

손이 묶여 있고 상체가 엘리제에게 눌려 있었으나 그가 원한다면 언제든 묶인 줄을 끊어버리고 두 사람의 위치를 정반대로 바꿔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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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큰일이다. 그냥 이대로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라 유혹하는 음성이 머리를 울렸다.

그때, 엘리제의 몸에서 푸른빛이 일어나며 공기가 시원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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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량하고 향기로운 바람 덕에 데몬은 이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동시에 엘리제는 입을 통해 무엇인가 자신의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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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미약이구나!’

고맙게도 자신이 가진 정령의 힘이 약효를 없애면서 빨아들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데몬의 숨이 아직 빨랐지만 더 이상 고통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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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가 줄어들고 있나 봐.’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여전히 진지하고 그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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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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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몬은 말이 없었다.

그 대신. 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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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그가 단숨에 묶인 끈을 끊고 그녀를 안아 몸을 뒤집었다.

순식간에 그의 아래에 누워 올려다보는 처지가 되자 엘리제의 얼굴이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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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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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나셨어요?”

억지로 입을 맞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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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라니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녀가 참을 수 없이 사랑스러웠다. 그가 애처로운 눈빛으로 엘리제를 내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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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조금이라도 위험하게 하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제가 어떤 상상을 했는지 아셨다면 절대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그가 하는 상상이 도대체 어떤 것이길래 그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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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저도 만만치 않은데요.’

하지만 솔직하게 말한다 해도 지금 그는 믿지 못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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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으켜 드리겠습니다.”

데몬이 엘리제의 손을 잡아 천천히 일으켰다.

아쉬운 마음을 애써 숨기며 엘리제가 침대 밖으로 발을 내디디려는 순간 시야가 휙 흔들렸다.

휘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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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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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제 님! 괜찮으십니까?”

데몬이 황급히 엘리제를 불렀다.

엘리제가 난처한 표정이 되어 주저앉았다. 조금 전에 흡수한 약의 효과가 도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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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러지? 참을 수 없이 더워. 옷, 옷을 벗고 싶어.’

데몬은 이토록 강렬한 자극을 어떻게 참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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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어지러운데, 이대로 조금만 있어도 될까요?”

어지럽다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이 조금 더 붉어진 것이 보였다. 드레스 너머로 점점 빠르게 오르내리는 가슴이 조금씩 숨 가빠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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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데몬의 눈이 가늘어졌다.

입맞춤을 통해 엘리제에게도 미약이 영향을 미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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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마구 뜨거, 워요.”

엘리제의 말을 들은 데몬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붉은 눈이 심각한 빛으로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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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카일은 서둘러 신성국으로 서신을 부치기 위해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프시케의 말은 사실이었다. 시신을 확인하고 돌아오자마자 서신을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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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를 마칠 시기에 맞춰 성하께서 와주신댔으니, 아직 신성국에 머물고 계실 거야.’

자신의 기도로도 소용이 없고 흑마법사가 여전히 황제를 노린다면 더 강력하게 그들을 보호해줄 이가 당장 필요했다.

강력한 마력을 가진 데몬이 있었지만 그는 황명을 받아 지금 이웃 나라에 있는 상태였다. 여차하면 그를 소환해야 할 것이었지만 프시케와 상의하여 차선책으로 보류했다.

그리고 흑마법에 대한 것이라면 성하를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그리하여 미카일과 프시케는 신성국의 왕께서 와주시길 간절히 바랐다.

신성국의 왕, 헬리오 타나토스.

그는 이 세계 선(善)의 상징이자 최고의 신성(神聖)이다.

그의 이름 속 ‘헬리오’는 빛의 신을 뜻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빛의 후계자라 불렀다.

대대로 신성국의 왕이 다른 나라를 방문하는 경우가 있긴 했으나 흔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는 가뭄이나 지진 등의 자연재해로 인해 막대한 인명피해가 났다거나, 전염병으로 인해 사망자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거나, 마물의 습격으로 인한 피해가 큰 지역이 있을 때 역대 성하는 자신의 사제들을 이끌고 사람들을 구원하였으며 그들의 축복받은 신성력으로 다치고 아픈 이들을 치료해왔다.

황국의 어려움을 미카일이 알리자 헬리오는 흔쾌히 미로니카를 방문하여 위험을 살펴주겠다고 했었다. 프시케는 평소에 미카일이 헬리오에게 쌓은 신임 덕분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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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성하께서 서둘러 주셔야 할 텐데.’

미카일은 서신을 통해 위급한 상황을 알리며 최대한 빨리 와주십사 부탁했다.

서신을 다리에 단 전서구가 미카일의 두 손을 떠나 창공을 가로지르며 날았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끝났다.

나머지는 신께 맡기고 자신의 왕께서 미로니카에 당도하시길 기다리며 정성을 다해 기도를 올리는 것 외에는.

***

엘리제가 하얀 두 손을 들어 올려 자신의 은빛 머리카락을 틀어 올렸다. 하얗고 긴 목선이 여실히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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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숨을 뱉은 그녀가 틀어 올렸던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자신의 목을 쓸어내렸다. 데몬은 등줄기가 오싹해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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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약이 흘러들어온 것으로도 이토록 이성이 흐트러지다니.’

통째로 마셨으면 큰일 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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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드렸던 말씀 취소해야겠어요. 차라리 제가 마실 걸 그랬다는 말이요.”

마치 많은 양의 술을 마시고 취한 사람처럼 온몸에 열기가 가득하고 참을 수 없이 더웠다.

시야가 흔들리고 점점 정신이 몽롱해졌다.

그리고 기분이 무척 좋아져 뭐든 괜찮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다 괜찮을 것만 같은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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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우니까 좀 벗어도 괜찮겠지?’

엘리제가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어깨에 걸친 드레스를 내리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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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제 님!”

데몬이 성큼 다가서서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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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 참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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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네. 그럼요.”

그 덕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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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견딜 수 없을 만큼, 더워요. 아니 뜨거워요.”

몸에 불덩이라도 넣은 듯 뜨거워 견딜 수가 없었다. 모든 옷가지를 벗어 던지면 그나마 시원할 것만 같았다.

게다가 아까부터 몸 이곳저곳이 견딜 수 없이 저렸다. 생경한 느낌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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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어떻게 버티신 거예요?”

통째로 약을 드셨으면서. 얼마나 강렬한 욕구가 치솟았을지 감히 상상도 되지 않았다.

새삼 데몬의 자제력이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데몬은 이제 완전히 이성을 되찾은 상태였다. 엘리제의 입맞춤 덕분이었다.

대신 이제 그녀의 몸이 반응하는 중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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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제게 먹이려고 강력한 것을 사용한 듯합니다.”

그는 건장한 남성이고 강한 마력을 소유한 자이니까. 엘리제의 반응을 보니 그 약은 일부만 사용해도 평범한 사람이라면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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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공기를 좀 마셔보시면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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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좋아요.”

엘리제의 허락을 받은 데몬이 방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시원하고 향기로운 숲의 밤바람이 두 사람에게 확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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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엘리제는 훨씬 정신이 드는 기분이었다. 창가로 걸어가 창틀에 몸을 기대어 밖을 내다보며 심호흡하니 확실히 나았다.

엘리제의 몸에서 다시금 푸른빛이 돌며 바람이 일자, 열기가 사그라들고 정신이 맑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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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많이 괜찮아졌어요.”

아직 두 볼이 따뜻했지만, 아까처럼 참을 수 없이 덥거나 몸에 이상한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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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입니다. 약효가 사라진 모양입니다.”

그제야 데몬도 안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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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방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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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지금이요?”

엘리제가 아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마음을 다 안다는 듯이 그가 타이르듯 다정하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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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소중한 것은 나중으로 아껴두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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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반찬도 좋아하는 것 먼저 먹는 성격이에요.”

참는 건 잘 못 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가 참는 일에 뛰어난 것 같으니 참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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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제게 져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부탁하는 그의 눈이 마치 미안한 듯 꼬리가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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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강아지 같아!’

엘리제는 그만 풋, 웃음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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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알았어요. 그 표정을 보고 어떻게 부탁을 안 들어 드리겠어요.”

무시무시한 크레미언 대공이 이런 표정을 짓는다는 걸 누가 상상이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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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줘도 다들 믿지 못할걸? 나만 알고 있는 표정이라니 너무 좋다.’

엘리제는 기분이 좋아져 활짝 웃었다. 이제 약효는 완전히 사라졌다.

데몬이 성큼 그녀에게 다가와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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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얼마나 참고 있는지 아신다면 도망가고 싶으실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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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 설마요.”

그가 웃는 그녀의 두 뺨을 부드럽게 감싸고 솟아오른 동그란 이마에 입술을 내렸다. 마치 잘했다고 보상이라도 주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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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참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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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각하께서도요.”

엘리제가 두 손으로 그의 허리를 감쌌다.

두 사람을 비추는 달빛이 조금 더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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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오셨어요?”

반기는 마가렛의 인사를 받으며 엘리제와 데몬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동시에 정말 빠른 속도로 엘리제에게 다람쥐 한 마리가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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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

그 뒤를 따라 토끼 한 마리도 냉큼 품에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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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나! 너도 잘 있었니?”

잠깐 떨어져 있었던 것인데 오랜만에 다시 만난 것처럼 다람쥐와 토끼가 엘리제에게 볼을 비비며 품을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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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도 이름을 지어줘야겠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데몬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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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고 계시면 잠시 후에 다시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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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래다주셔서 감사해요, 각하.”

서로를 바라보며 인사하는 두 사람의 눈빛이 어딘가 더 깊어진 듯하다. 함께 어려움을 겪으며 더 감정이 깊어진 듯한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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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 있으셨어요?”

데몬이 방을 나가자 마가렛이 다가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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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있긴 했어. 이따 자세히 말해줄게. 그런데 마가렛, 토끼 이름은 뭐가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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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저도 고민 중이었어요. 하얀색 털 뭉치 같으니 보송이는 어떠세요?”

보, 보송이? 그거 내가 아는 기저귀 이름이랑 비슷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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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눈송이는 어떠세요?”

마가렛 완전 유능하지만 작명 센스는 꽝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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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니까 성은 홍, 이름은 당무라고 할까도 생각했었는데…….’

‘당무’라니. 너무 무협지 같다. 아무리 판타지여도 여긴 로맨스 소설 속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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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롯에서 따서 로떼는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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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떼 이쁜데요? 저는 좋은 것 같아요!”

토리와 로떼. 여자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인형 이름 같긴 하지만 마음에 들었다.

앙증맞고 귀여운 다람쥐와 토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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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떼, 너도 마음에 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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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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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나, 너 대답도 하는구나! 너무 귀엽다.”

마치 로떼가 대답이라도 하듯 소리를 내며 복슬복슬 하얀 다리를 턱 내밀었다. 몸에 닿는 말캉하고 부드러운 발이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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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잘 부탁해, 토리 로떼.”

언제든 다시 숲으로 돌아가고 싶어질 때까지 원하는 만큼 머물고 가렴.

***

평화롭고 행복한 엘리제 방과는 반대로 공주 루시아의 방은 어둡고 침울했다.

조금 전까지 모후 그레이스가 루시아를 달래다 갔으나 공주의 눈물을 멈출 수는 없었다.

뒤이어 오라버니 자이드도 와서 여동생을 위로하였지만 역시 역부족이었다.

공주가 오늘 연회 때 무얼 준비했었는지 그들은 알지 못했다. 그러니 두 사람의 눈에 루시아는 고백조차 해보지 못하고 혼자 짝사랑하던 이를 잃은 가여운 공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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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한다 말도 못 했는데…….”

분하고 원통했다. 입술을 깨물고 두 주먹을 꽉 쥐어 침구를 내리쳐도 속이 풀리지 않고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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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그 여자냐고!”

엘리제.

그녀만 없었더라면 대공 각하께서 나를 바라봐주실 수도 있었는데!

모든 것이 엘리제의 탓이라 생각되었다.

그녀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것도, 모든 이에게 인정받는 것도, 어머니가 그녀를 특별히 아끼시는 것도 괜찮았고 참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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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공 각하까지 엘리제를 원하시다니…….’

대공이 그녀에게 고백하는 순간에 루시아는 차라리 정신을 잃고 싶었다. 눈을 감고 귀를 막아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 부정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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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녀만 다 갖는 것이지?’

심지어 시에델에서 가장 강력한 정령의 힘을 가진 모후의 친딸이면서 루시아는 정령의 힘이 없었다.

모후가 각성한 이후 정령의 힘은 더욱 강해졌고 자이드 역시 성장했지만, 루시아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전혀 정령의 기운이 없었다.

그 사실이 철없는 공주를 더욱 슬프고 화가 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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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없는 것이라면, 너도 없어야 맞는 거 아냐?”

심지어 공주는 나인데!

불공평했다.

그러니, 엘리제가 가진 것을 잃게 되어야 좀 공평해질 것 같았다.

견딜 수 없을 만큼 뜨거운 감정이 루시아의 속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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