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아이돌-11화 (11/27)

11. 로버트를 찾아라!

짐을 단단히 챙긴 뒤 별호를 불렀다. 별호는 아쉬운지 주방을 계속 맴돌며 나오지 않았다. 나는 한숨을 푹 쉬고 안으로 들어갔다.

“별호야, 그런다고 뭐가 나오니?”

“아쉬워서 그러오. 이 고기를 다 짊어지고 갈 수 없다니.”

“가는 길에도 마을이 있어. 그리고 고기는 옆집에서 처분해 주기로 했잖아. 게다가 너 지금 주먹밥만 한가득 담았잖아?”

“보따리가 조금만 더 컸더라면……!”

어느새 옆으로 온 열하가 별호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는 둘 다 매한가지였다.

“너도 가다가 쓰러지기 싫으면 책 놓고 가.”

“어허! 무릇 양반이란 항시 서책을 가까이하고……”

“네 호위가 그러더라. 너 설레서 한숨도 못 잤다며?”

“그, 그건 서책을 보느라!”

열하는 새빨개진 얼굴을 하고 연신 손부채질을 했다. 나는 밖으로 나가 평상 앞에 앉아 있는 훤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쟤가 제일 낫구나.’

훤은 타지 생활을 오래 한 티가 제법 났다. 여벌의 옷과 물 한 통 정도 챙겼을까?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한 모습이 든든했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팔짱을 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뭐 불편해?”

“불편하지. 지금 떠나도 오늘 건너 마을에 도착할까 말까다. 그런데 아직도 출발할 생각이 없으니 쯧쯧.”

“…….”

훤에게는 나와 열하, 그리고 별호가 똑같은 사람처럼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괜히 머쓱해져 머리를 긁적였다.

나 또한 짐을 꽤 많이 챙겼다. 별호는 밥이 가장 중요하니까 간식으로 주먹밥을 한가득 만들었고, 열하는 여행 자체가 처음이었으니 잠자리를 가릴 것 같아 비단으로 된 베개를 하나 챙겼다.

‘이게 바로 소속사 사장이 아이들을 챙기는 마음이라고!’

게다가 앞으로 돈 쓸 일이 태산이었다. 자리를 모두 처음 비우는 상황이었고, 또한 로버트를 찾을 때를 대비해 돈을 많이 챙겼다.

이 시대의 돈은 모두 엽전들. 짤랑이는 동전을 꿰미로 꿰어서 잘 싼 후 복대처럼 찼다.

‘우리 로버트, 그 착한 애가 얼마나 고생일꼬.’

로버트를 생각하니 절로 눈물이 맺혔다. 이건 하품해서가 아니다. 정말로 로버트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아이들 성격이 이전의 생과 비슷한 걸 보면, 분명 로버트도 같을 것이다.

로버트.

영원 멤버 중에서 가장 착하고 비주얼이 남달랐던 아이.

멤버들이 모두 특출하게 잘생긴 것은 맞았다. 내 새끼라서가 아니라, 업계에서도 우리 아이들은 유명했다.

특히나 멤버들의 평균 얼굴을 조합한 합성 사진은 내가 감옥에 있을 때도 회자가 될 정도였으니까.

그 평균 얼굴을 5퍼센트 정도 높여 놓은 사람이 바로 로버트였다.

로버트는 어마어마한 외모의 소유자인 영원의 멤버 중에서도 특히 외모가 뛰어났다.

로버트의 아버지는 영국인. 엄마는 한국인인 혼혈 태생이었다.

게다가 로버트는 영어뿐만 아니라, 중국어, 일본어도 할 줄 아는 프로 재능러였고, 덕분에 영원의 해외 진출이 용이했다.

더불어 한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피지컬과 보면 기절한다는 살인 미소는 덤이었고…….

외모에 대해서 하나만 더 덧붙이자면, 이건 내가 한 이야기가 아니라 팬들이 한 이야기다!

바로 푸른 눈.

로맨스 판타지 소설을 찢고 나왔다며 팬들이 죽고 못 살았던 ‘벽안’!

그 시원하고 차가운 푸른 눈동자를 중화해 주는 금색 머리카락은 또 얼마나 찰랑이던지.

헤어를 담당하던 스태프도 찬양했다. 가히 예술 작품이라고 부를 만했다.

심지어 로버트는 성품이 좋기로 업계에서도 자자했다.

남몰래 기부하는 건 기본이고, 실력이 모자라거나 문제를 일으켜 방출된 연습생까지 모두 살뜰히 챙겼다.

“누나, 난 애들 믿어요. 애들 착해요.”

로버트는 내가 방출된 아이들까지 챙기지 말라는데도 그냥 씩 웃기만 할 뿐이었다.

덕분에 우리 소속사에서 나가 다른 곳에서 승승장구하게 된 아이돌이나 배우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보고 싶네.’

로버트까지 찾는다면 지금 우리 멤버들에게도 엄청난 힘이 될 것이다. 로버트는 한번 마음을 열면 끝까지 믿고 가는 성격이니까.

나는 주방에서 티격태격 다투고 있는 열하와 별호를 불렀다.

‘원래 저들을 말리는 것도 내가 아니라 로버트였는데…….’

그동안 로버트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마음까지 뭉클해졌다. 나는 그들의 목덜미를 잡고 마당으로 끌고 나왔다.

“간다고! 가면 될 것 아니오!”

“대표 누이! 너무하시네!”

열하와 별호, 그리고 훤이 주막 밖으로 너털너털 걸어갔다. 나도 가방을 메고서 뒤를 돌아 주막을 한 번 바라보았다.

‘여기는 이제 우리의 연습실이 되겠지?’

돌아오면 할 일이 많을 것 같았다. 나는 씩 웃으며 아이들을 향해 뛰었다.

* * *

“애들이 착하긴 개뿔! 뭐가 착해!”

서쪽으로 가는 여정은 험난하기 그지없었다. 말을 구입하는 비용도 아까워 두 마리만 산 내 죄였다. 나는 훤의 뒤쪽에, 열하의 뒤에는 별호가 탔다.

그런데 예상외로 별호가 너무 무서워하는 것이다.

“무서워! 나 죽어! 나 죽네!”

“야! 움직이지 말라고! 같이 죽고 싶냐!”

열하는 몇 번이나 고삐를 다시 움켜쥐며 말을 다독여야 했다.

우리는 차선책으로 별호의 눈을 가려 버렸다.

그리고 그게 꽤나 잘 먹혔다. 별호는 눈을 가리면 밤이 왔다고 착각하는 닭처럼 굴었다.

그게 또 문제가 됐다.

몸집이 열하의 배나 되는 별호가 자꾸 열하의 등에 기댔기 때문이다.

열하는 거의 울다시피 내게 말을 타기 싫다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별호 옆에 붙어서 그가 꾸벅 졸 때마다 나뭇가지로 건드렸다.

‘이게 무슨 난리람…….’

훤은 우리 셋을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내가 보아도 여기서 정상은 훤뿐이었다.

그는 말을 능숙하게 몰뿐더러 교감도 하는지 벌써 이름까지 붙여 주었다.

“나무야, 좀 더 힘을 내어라.”

그의 응원 한마디에 나무는 콧김을 뿜어 대며 정말 힘을 냈다. 열하는 그 모습이 꽤 멋있어 보였는지 금방 따라 했다.

“천재야, 너도 힘을 내라.”

“푸우우.”

그러나 열하의 말은 그의 응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열하는 얼굴이 붉어져 입술을 비죽였다.

“대체 그 망할 선착장은 언제 나오는 것이오? 벌써 사흘이나 지났소!”

“맞아요! 이놈의 말, 더는 못 타겠다고요!”

“너희는 가만 보면 마음이 잘 맞는 것처럼 보인단 말이야.”

“지, 지금 말도 못 타서 내 뒤에서 쩔쩔매는 이놈과 나를 비교하는 거요?”

“난 샌님같이 생기지 않았소!”

“……가만 보면 잘 안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내 말에 열하와 별호가 다시 성을 내기 시작했다.

그때 훤이 듣기 싫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별호와 열하가 주눅이 들어 얼른 입을 다물었다.

‘아직 친해지지 않았구먼……. 대체 언제 친해질까?’

영원의 멤버들이 다 모이는 건 내 소원이긴 하다. 이 세계에서라도 그들이 건강하고 무탈하게 잘 성장하길 바라니까.

그러나 아이들이 점차 모일수록 갈등도 더 심해질 것이다. 신분 사회가 아니었던 한국에서도 종종 갈등은 존재해 왔다.

‘그때보단 더 심할 거야.’

아무래도 지금의 아이들이 더 친해지는 게 급선무였다.

푸른 눈의 로버트를 보면 기겁을 할 테고…… 남은 멤버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게 뻔했다.

‘어떻게 친해지게 만들지?’

나는 고민에 휩싸였다. 로버트를 만나기 전에, 이들이 먼저 우애 있는 모습을 보이면 좋을 것 같았다.

“오늘은 저기서 쉬고 가지. 고개를 넘으면 선착장이 나올 것이다.”

“아……. 그래. 그러자!”

훤의 말에 별호와 열하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우리는 발을 틀어 마을로 향했다.

서쪽에 있는 작은 마을은 바다 앞에 위치해 짠 내를 풍겼다. 생선을 말리는 풍경도 신기했고 저잣거리에서 판매하는 물건도 희귀한 것들이 많았다.

아무래도 배가 다니는 지역이다 보니 그런 듯했다. 또한 외지인이 많이 드나들고 빠지는 마을이라 숙박 시설도 꽤나 좋았다.

우리는 주막에 들어가 인원수를 이야기한 후 방을 두 개만 빌렸다. 아이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사람이 넷인데 왜 방은 둘인 거요?”

“그거야 나, 너희.”

“너희? 대표 누이는 숫자에 약한 것이오? 우리 머리가 셋이요!”

“너희는 하나. 영원은 영원하다. 몰라?”

“자꾸 이상한 말만! 엽전도 많이 챙겼으면서 정말 이렇게 나올 것이오?”

“열하야, 앞으로 부대끼면서 연습하고 잘 지내야 하는데, 같이 자는 게 뭐 어때서?”

“차라리 난 관아에 가서 내 신분을 이야기하고 잠을 청하겠소!”

열하는 단호하게 말했다. 아마도 귀한 자제의 아들로 커 왔으니, 여행이 혹독하게 느껴진 모양이다.

따뜻한 방에서 잠을 청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들 모닥불을 피워 놓고 잠깐 눈을 붙이는 정도였으니까.

‘어휴. 이걸 어쩐담?’

열하는 이번에 물러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방을 더 하나 잡아 줘야 하나 마음이 약해졌다.

그러나 그 와중에 남은 방은 뱃사공이 모두 빌려 가 버렸다. 정말 우리에게 방은 딱 두 개뿐이었다.

“그러면 뭐, 너 혼자 쓰고 내가 애들이랑 잘까?”

“그, 그게 무슨 소리요! 어찌 남자와 여자가 동침을!”

“그럼 뭐 어째? 방이 두 개라는데.”

“아까 말한 대로 난 관아에 가서……”

“가라.”

훤이 나직한 목소리로 열하에게 말했다. 열하의 눈동자가 약하게 흔들렸다.

“뭐라고?”

“가라고. 너처럼 징징거리는 녀석 받아 줄 사람 여기 없다.”

“…….”

“가. 그렇게 있기 싫으면.”

열하가 주먹을 쥐었다. 그는 그대로 뒤를 돌아 나갔다. 나는 열하를 붙잡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훤이 막아섰다.

“왜 이래?”

“언제까지 투정을 받아 줄 참이지?”

“그건 열하가 이런 일이 처음……”

“저 녀석은 이걸 가벼운 유희로 알고 있다. 난 여기에 목숨을 걸었어.”

“훤아, 네 마음도 알겠는데……”

“쫓아가면 난 떠나겠다.”

“훤아! 너까지 왜 이래?”

“마음이 정리되면 돌아오겠지. 그러니 쫓지 말고 방으로 들어가 쉬어라.”

“……대표 누이, 열하는 돌아올 겁니다. 제가 알아요. 그러니까 들어가 쉬셔요.”

별호는 내 어깨를 다독이며 한숨을 푹 쉬었다.

“대표 누이의 발에서 피가 납니다……. 어디서 긁힌 겁니까?”

“아…….”

“신분이 확실한 놈이니, 찾으려면 찾을 수 있고요. 그러니까 쉬셔요.”

별호의 만류에 하는 수 없이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빌린 방은 작은 방이라 내가 누울 자리와 짐을 놓는 공간을 빼면 벽이었다.

나는 벽에 기대어 쪼그리고 앉아 버선을 벗었다. 엄지발가락에 물집이 잡혀 피가 나고 있었다.

‘열하가 화를 풀어야 할 텐데.’

예전에 그 녀석은 내가 책을 사 주거나 구하기 힘든 공연 티켓을 끊어 주면 금세 화가 풀렸다.

그런데 지금은 무엇을 해 줘야 화가 풀릴지 가늠이 잘되지 않았다.

‘속을 제일 안 썩이던 녀석이…….’

나는 자리에 누워 계속 뒤척였다.

* * *

별호와 훤은 자리에 누웠다. 별호는 졸음이 쏟아졌으나 이상하게 잠에 완전히 들지는 않았다.

‘나 때문인가?’

태어나서 처음 말을 타 보았다. 말 탈 기회도 없었을뿐더러, 살아 있는 동물의 등에 올라탄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게다가 멀미도 심했다. 별호는 정신없이 열하의 어깨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네 잘못 아니니 그만 한숨 쉬고 자라.”

“……안, 안 잤어?”

“네가 소처럼 콧바람을 뿜는데 어떻게 잠자리에 들지?”

별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두운 방 안, 훤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는 턱을 매만지며 그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내 잘못이 맞는 것 같아. 내가 열하를 데려올게.”

“잘못을 따지면 내 잘못이 맞는다.”

“……뭐?”

“내가 그 녀석을 나무랐고, 가라고 말했으니까. 그러니까 너도, 대표의 잘못도 아니니 맘 쓰지 말라.”

“……너, 생각보다 남을 많이 신경 쓰는구나? 배려심 있네.”

“뭐라고?”

“그래! 우리 잘못이라고 치자! 그러니까 내일 우리가 가서 열하를 데려오자고!”

별호는 단순하게 금방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그들이 찾아간 관아에는 열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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