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호랑이와 함께 온 남자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거대한 산기슭을 헤치고 모습을 드러낸 건 짐승이었다.
짐승은 고요한 발자국으로 별호 앞에 섰다. 별호는 몸을 최대한 낮춘 채 뒷걸음질 쳤다.
“빨리 도망쳐.”
“별, 별호야!”
“도망쳐. 내가 어떡해서든…… 시간을 벌 테니까.”
별호의 뒷모습은 진지하기 그지없었다. 열하는 마른침을 삼킨 채 내 손목을 잡았다.
“뛰어야 해.”
“별호가 위험하잖아!”
“그렇다고 별수 있소? 저걸 우리가 어떻게 상대하란 말이오!”
열하의 말은 사실이었다. 눈앞에 있는 짐승은 멧돼지나 늑대 따위가 아니었다.
고고한 자태로 우리의 시선을 하나하나 살피며 몸을 추스르고 있는 짐승.
그건 호랑이였다.
호랑이는 우리를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수 있다는 듯 여유를 부렸다. 별호는 주변을 살피며 무기를 찾는 듯했다.
‘두고 갈 수는 없어…….’
이렇게 있다간 별호는 죽을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호랑이는 우리를 살려 둘 생각 따위는 없어 보였다.
‘젠장!’
조선의 산에 호랑이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서울에서 길 가다 호랑이를 보는 건 하늘에 별 따기만큼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모든 것이 내 탓처럼 느껴졌다. 나는 주먹을 꼭 쥔 채 식은땀을 흘렸다.
“누이……”
그때 별호가 낮은 음성으로 나를 불렀다. 그는 살짝 뒤를 돌아 나와 눈을 맞췄다.
“고마웠소. 덕분에 내가 꿈을 꿀 수 있게 되었소.”
“……별호야…….”
“이 세상은 내게 지옥과도 같았소. 희망이 없는 조선 땅에서…… 내게 자유를 주어 고맙소.”
“안 돼! 그만둬! 별호야!”
별호는 나무를 패던 도끼를 빠르게 쥐었다. 호랑이는 그 모습을 보더니 빠른 속도로 뛰어왔다.
‘이렇게 끝난다고?’
믿을 수 없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날 선 화살촉이 나무에 꽂혔다. 매섭게 다가오던 호랑이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다시 한 발.
화살은 호랑이의 등에 제대로 명중했다. 호랑이는 신음을 뱉더니 먼 곳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화살은 호랑이가 뛰어가는 방향 쪽으로 몇 발 더 날아갔다.
별호와 열하, 그리고 나는 멍하니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응시했다. 그리고 사람이 흙을 지르밟는 발자국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왔다.
“……미쳤군. 여길 오다니.”
“…….”
햇빛이 들이닥쳐 사내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는 큰 바위 위에 서서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천천히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고마우면 화살을 주워 와라.”
“……누구시오?”
열하가 사내에게 되물었다. 사내는 바위 아래로 사뿐히 내려왔다. 나는 그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깊고 짙은 검은색 눈동자와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 눈 밑에 난 점. 그리고 선명한 붉은색 입술에 단단하면서도 깎아지른 듯 날카로운 턱선까지…….
“네가…… 여기에…… 어떻게…….”
나는 반가운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 채 그를 와락 껴안았다.
“정말…… 너까지…….”
“…….”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영원의 메인보컬이자 든든한 리더.
훤이었다.
서울에서도 훤은 문제가 생기면 수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마약 사건만 아니었다면 영원은 훤이의 노력으로 장수할 그룹이었다.
훤이는 그렇게 책임감이 높고 모든 사람에게 다정했다. 영원을 만들고 잘되리라 확신한 이유도 훤이 때문이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는 내 결과이자 과정인 사람이다.
“왜 이러시오?”
“……너는 이번에도 날 구해 주는구나.”
“……날, 아시오?”
“내가 널 어떻게 모르겠어?”
지금의 훤이는 내가 미친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그를 껴안고 난리를 쳤지만 천천히 이성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를 만지던 팔을 어색하게 내려놓은 채 머리를 긁적였다.
“대표 누이는 가만 보면 포옹이 참 헤프오.”
열하는 틱틱거리며 나와 훤이 쪽으로 다가왔다. 별호도 마찬가지였다.
“화살 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던데…… 왜 여기 있었소?”
훤은 열하의 물음에 입을 다물었다. 별호는 다리를 껄렁하게 떨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걸친 거적때기를 보아하니…… 고기라도 써는 놈인가?”
“거적때기가 뭐냐? 네가 걸친 비단옷보다 이놈이 걸친 거적때기가 더 멋스럽다.”
옆에서 열하가 던진 핀잔에 별호가 다시 그에게 으르렁대기 시작했다.
“뭐, 뭐라?”
“내가 누누이 말하지만 너는 몸을 키워야 한다. 근육이 붙어야 뭘 걸쳐도 옷 태가 살아나는 것이다.”
“이 머슴 놈이 뭐라고 하는 것이냐? 이 옷은 네가 백날 일해도 살 수 없는 것이다!”
별호는 열하의 말에 어이가 없는지 바람 빠진 웃음소리를 냈다.
“이 몸은 네가 백날 일해서 번다고 얻을 수 있는 몸 같으냐?”
“……이, 이놈이! 대표 누이! 보고만 있을 것이오? 누이가 서열을 정리해야 할 것 아니오!”
“……좀 해.”
“뭐라고? 잘 안 들리오!”
“조용히 좀 하라고! 쪽팔리니까!”
환상의 콤비를 보여 주고 있는 열하와 별호가 부끄러워지고 있었다. 훤이는 이미 그들을 아주 한심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안 돼! 포기하지 마!’
“하하, 원래 얘들이 사이가 좋은 애들인데…… 보면 알다시피 열하는 장원 급제하고 관아에 몸담고 있는 아이고……”
“요즘에는 저런 모양 빠진 애들도 장원 급제를 하나 보군.”
“뭐, 뭐라고? 이놈이!”
나는 열하를 말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우, 우리 별호는 보면 알겠지만 몸 하나는 어디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그래서 도끼 하나로 호랑이를 잡으려고 했나 보지? 아…… 호랑이 몸속이 궁금했나?”
“아니, 내가 얼마나 힘인 장사인데!”
별호와 열하는 훤이의 말에 각자 씩씩대며 화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훤이는 평온한 표정으로 떨어진 화살 하나를 화살통에 주워 담았다.
“곧 날이 저물 것이다. 내려가라.”
“……너…… 아니, 그쪽은 안 가십니까?”
훤이는 내 물음에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신경 쓸 것 없다.”
“도망친 노비들이 산에 움막을 지어 산다던데…… 너도 그런 부류냐?”
그는 열하에게 시선을 돌렸다.
“네놈이 신경 쓸 일이 아니다. 난 너희와 더 연을 이을 생각이 없으니 내려가라.”
“안 그래도 내려갈 것이다! 우리도 너 따위와 연을 이을 생각이 없거든!”
“내가 아니었다면 너희는 다 고깃덩어리가 되었을 것이다. 은혜는 몰라도 적반하장으로 나오면 안 되지.”
훤이의 차가운 목소리에 열하가 입을 다물었다. 그의 말대로 좀 전까지 우리는 죽은 목숨이었다.
“크…… 크흠! 그건 내가 보상해 주마. 돈을 원하느냐?”
“내려가라.”
“이래 놓고 나중에 와서 한 푼 줍쇼, 이러는 놈을 내가 처음 보는 듯싶으냐? 돈을 원하면……”
훤이는 굳은 표정으로 화살 하나를 꺼내 열하의 목에 겨누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열하는 침을 삼키며 훤이를 노려보았다.
“이게 무슨 짓이냐?”
“어차피 주둥이를 잘못 놀려 죽을 목숨이겠거늘, 내가 거둔다고 해서 달라지겠나?”
“……말, 말로 합시다!”
별호는 당황한 표정으로 두 사람 앞에 다가갔다. 훤이는 요지부동이었다.
“나는 너 같은 놈을 제일 혐오한다. 비단을 걸치지 않으면 모두 돈에 환장한 놈으로 보는 사람.”
“…….”
“남들을 무시하고 세 치 혀를 굴리며 제 생각만 하는 놈.”
“…….”
“관아에서 일한다고? 내가 네 관아에 가서 돈이 아니라 목숨줄을 내놓으라고 말하길 원하는가?”
열하의 얼굴이 복잡해 보였다. 더는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 나는 눈치를 보다가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아, 아이고!”
“왜, 왜 그러시오! 누이!”
별호는 내 앞에 다가왔다.
“다, 다리가…… 다리가 안 움직여. 아무래도 많이 놀란 것 같아.”
“그렇소? 그럼 내가 업고서 빨리 내려가면……”
“이놈아! 눈치 좀 챙겨라!”
나는 별호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별호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뗐다.
“나, 나도 어깨가 너, 너무 아프다!”
우리가 바닥에 드러눕자 훤이는 한숨을 쉬며 화살을 다시 통에 집어넣었다.
“가라.”
“……목숨을 구해 준 김에…… 잠깐 쉬다 가면 안 돼요?”
“……뭐?”
“잠깐이면 돼요. 아주 잠깐.”
“그럴 생각 없다.”
“그럼 이렇게 두고 간다고요?”
훤이는 내 말에 뒤를 돌아보았다.
“호랑이는 아직 죽지 않았어요. 우리가 여기 계속 있으면…… 또 올 것입니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지?”
“우리가 죽으면 어떻게 발 뻗고 주무시겠어요?”
그는 피식 웃었다.
“너희가 뭐라고 내가 잠을 설치겠는가?”
“그런 성격 아니잖아요. 눈앞의 다친 사람 보고 못 지나치는 성정이잖아요.”
“아까부터 나를 잘 안다는 듯이 지껄이는구나.”
훤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찰나였지만 그의 시선이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발목을 부여잡고 눈시울을 붉혔다.
“나 죽네! 나 죽어!”
그가 나지막이 한숨을 내뱉었다.
* * *
훤이가 지내는 곳은 우리가 나무를 패던 곳과 멀지 않았다. 볏짚과 나무를 대충 쌓아 올린 집은 연약해 보였다. 비라도 쏟아지는 날에는 무너질 것만 같았다.
‘우리 훤이가…… 이런 곳에서 지내다니.’
마음이 아팠다. 훤이는 서울에서도 깔끔한 편이었다. 제일 먼저 숙소를 탈출해 혼자서 살려던 것도 청결이 이유였다.
책꽂이에서 책을 뺄 줄만 아는 열하와 냉장고에 닭 가슴살 포장지를 벗길 줄만 아는 그들의 뒤치다꺼리를 훤이 다 해 왔기 때문이다.
“뭐야…… 이런 데서도…… 사람이 잘 수 있어?”
“웃기는 소리 좀 하지 마쇼. 이 정도면 아주 좋은 곳이지. 당신이 마구간에서 자는 슬픈 밤을 아쇼?”
“왜? 거기서 꿈이라도 꿨냐?”
“무, 뭐요?”
“꿈이라도 꿀 수 있어서 행복했돠! 또 말해 봐! 아깐 아주 그냥 청산유수더구나? 어디서 말하는 법이라도 배웠느냐?”
“……내가 하나 조언해 주오? 너는 그 주둥이로 나중에 화를 입을 것이다!”
“이, 이 머슴 놈이!”
열하와 별호는 아직도 티격태격대며 으르렁거렸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바위에 걸터앉았다.
그때 움막으로 들어갔다 나온 훤이 내 앞에 섰다. 그는 나무로 만든 그릇 하나를 들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어디지?”
“응?”
“어디 다쳤냐고.”
“음 그러니까…… 어디냐 하면은.”
“여긴 것 같네.”
그는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내 왼쪽 발목을 만졌다. 욱신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다쳤다고 한 것은 사실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호랑이를 보고 놀라 뒷걸음질을 치다가 삐끗했기 때문이다.
큰 상처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이 밀려왔다.
“꽤 부었네. 꾀병은 아니었어.”
“하하…….”
“조금 기다려. 약초를 좀 더 섞어야 할 터이니.”
훤이는 틱틱거리는 말투로 이야기하면서도 약초를 뜯으러 가려고 일어났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넌 어디 안 다쳤어? 괜찮아?”
“그깟 일로 다치지 않는다.”
“다행이야. 걱정했어.”
“……그런데 왜 반말이지?”
“……너도 하잖아.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은 것 같은데.”
훤이는 말없이 얼굴을 내 쪽으로 가까이 밀어붙였다. 코앞까지 다가온 그의 얼굴에 급히 숨을 참았다.
“나이가 많긴.”
그는 홱 하고 돌아서 산 위쪽으로 향했다. 얼이 빠진 내 곁으로 열하와 별호가 다가왔다.
“누이, 대체 무슨 꿍꿍이오?”
“……꿍꿍이는 무슨. 인재를 찾은 것뿐이야.”
“인재? 설마…… 저놈을 우리 쪽으로 끌어들이려는 거요?”
열하는 팔짱을 끼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왜? 얼굴도 저만하면 잘생겼고 몸도 좋은 데다가 카리스마…… 아니, 고고한 매력도 있잖아.”
“고고하고 멋진 얼굴은 내가 맡고, 몸은 이 머슴이 맡으면 되오.”
“원래 어떤 그룹에서건 모든 능력치를 아우르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법이야.”
별호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눈을 번뜩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누이…… 혹시 저자에게 마음을 뺏긴 것이오?”
“무, 뭐?”
“누이가 저자를 보던 눈빛…… 날 보던 이방 마님과 비슷했소.”
“그런 거였어? 하긴. 우리를 데리고 올 때와는 지금 접근 방식부터가 다르잖아! 왜 이렇게 예의를 차리는 거요?”
별호와 열하는 똑같이 팔짱을 낀 포즈로 나를 노려보았다.
‘이런 모지리들……’
더더욱 절실하게 훤이가 필요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