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265화 (265/275)

265. 우주 잔치

조선 제국력 50년(1708) 8월.

연에 이어 야코프가 은동리에 남긴 유산은 대단했다.

그럴 수밖에.

21세기 중반.

최첨단 소형원자로에 이어 핵융합 기술까지 연구하고 있던 천재 중의 천재 과학자 야코프.

조선의 기초 과학 수준은 그가 남긴 수학과 천문학에 의해 시대를 초월하게 했다.

또한 연이 이룩해 놓은 기반 기술과 시설이 있기에 우주 시대를 여는 첨병이 되고도 남았다.

하지만 중간에 건너뛴 기술이 많았기에 세상은 묘하게 변해갔다.

명식이와 아무르가 오른 산은 18세기에 세계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인정받은 복드칸 산(Bogd Khan Mountain)의 최고봉이었다.

체체군(Tsetsee Gun)이라 불리는 이곳은 다양한 동식물이 다채로운 생태계를 이루고 있었기에 유네스코에서 야생동물 공원으로 지정하여 보존할 것을 제안할 정도였다.

그런 이곳에 둘이 외골격 로봇을 입고 오른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무슨 우주 잔치가 열린다는 거야?"

"내일이면 우리 조선 제국이 이제 50주년을 맞이하잖아?"

"그치!"

"그래서 폐하와 훤 전하께서 새로운 기술을 선보이신 데."

"어떤 기술인데?"

과학과 기술보다는 최고급 원단인 캐시미어를 생산하는 산양을 키우는 걸 더 좋아하는 아무르도 새로운 기술에 관심이 있는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통신 기술이야."

"어떤 통신 기술?"

"음···."

명식이는 아무르에게 열심히 설명했지만, 아무르는 알아듣지 못했다.

"아무튼, 아무르 너는 조선방송국 화면을 보여줘. 나는 직접 달 모습을 보여줄 테니. 이곳이라면 달을 더 잘 볼 수 있을 거야."

"알았어."

"두 화면을 비교하면 내 말이 뭔 말인지 알 거야."

"몰라도 되는데, 달에서 우주 잔치를 연다니 꼭 보고 싶어."

아무르는 고개를 들어 환하게 빛나는 달을 바라보았다.

해발 2,265m나 되는 산 정상에 단둘이 있었지만, 무섭지 않았다.

3m나 되는 든든한 외골격 로봇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산양을 노리고 접근하던 큰곰들도 한 번 본 외골격 로봇이 무서웠던지 더는 명식이와 아무르가 관리하는 목장에는 찾아오지 않았다.

'저곳에서 무엇을 한다는 말이지?'

명식이에게 설명을 들었지만, 온통 숫자뿐이라 뭔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무르는 외골격 로봇의 장치를 조작해 거대한 바위벽에 화면을 쏘았다.

동시에 명식이도 천재 망원경을 이용해 달 표면을 그대로 받아들여 바로 옆 벽면에 화면을 비추었다.

"소리 좀 키워볼래?"

"알았어!"

조선방송국에서 송출하는 화면에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와서 토론하고 있었다.

-조 박사님, 앞으로 달에서 벌어질 잔치가 우리 인류가 우주 시대를 열 최첨단 기술이라고 하는데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얼마든지 설명해 주고 싶지만, 우주 잔치가 벌어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직접 보시는 게 더 쉽고 빠르게 이해될 겁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럼 현장을 연결하겠습니다.

화면은 우주복을 입고 있는 기자로 바뀌었다.

-유상민 기자? 현지 상황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달과 지구의 거리는 약 40만km다.

그래서인지 기자의 응답은 한 박자 늦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조선방송국 수석 기자인 유상민입니다. 현재 제가 있는 이곳은 우주 시대를 열 전초기지인 달입니다. 이곳에 제가 있는 이유는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주 잔치를 생중계하기 위함입니다. 잠시 후 우주 잔치가 벌어질 예정이오니 직접 보시고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네, 그러시군요. 그럼 함께 지켜보겠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시선을 고정해 주십시오.

황실 기업인 조선전력공사에서 유일하게 운영하고 있는 조선방송국은 시청률이 가장 높았다.

있는 그대로 정보를 보여주기에 신뢰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연의 노력으로 조선뿐만 아니라 우방국들도 생활 수준이 상향평준화 되었다.

그래서인지 낙천적인 사람들이 많아졌다.

왜 그러지 않겠는가.

조선은 아직도 쌀 본위제를 유지하고 있다.

소득이 올라가고 생활 수준이 급격히 높아져 갔지만, 쌀과 밀 가격은 50년 동안 두 배 정도 올랐을 뿐이다.

그렇다고 농가의 소득이 줄어든 건 아니었다.

명식이가 주문한 부품으로 외골격 로봇을 만들었듯이, 묘하게 발전한 과학 기술은 더는 인력을 쓸 필요가 없었다.

농부들이 하는 일은 마을 관제실에서 농부 로봇과 농기계를 관리하고 망가지거나 고장 난 것들을 수리하는 일이었다.

은동리에서 안전과 생산성에 도움을 주는 기술을 공개적으로 풀고 있기에 가능한 거였지만, 여기에 수많은 기계 공학 추종자들이 참여했기에 편리성까지 높아졌다.

그로 인해 농가의 소득은 더욱 늘어났다.

농부의 비율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었지만, 생산량은 더욱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조선의 우방국들은 아예 쌀과 밀을 재배하지 않았다.

시가(市價)에 팔 수 있는 채소와 과일을 주로 재배하고 와인이나 담배 같은 기호식품 생산에 주력했다.

그것조차 할 수 없는 우방국 사람들은 배를 타고 물고기를 잡았다.

그것도 태평양이나 대서양 같은 대양(大洋, Ocean)을 휘젓고 다니며.

조선전력공사는 소형원자로에 이어 핵융합 발전으로 전력이 넘치도록 풍부해지자, 내연 기관 엔진을 이용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이제 완전히 전기 시대로 넘어갔기에 내연 기관이 필요 없지만, 그래도 관련 기술을 연구하고 유지할 필요는 있었다.

훗날 언제 어디서 사용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기계 공학 추종자들이 나름대로 내연 기관을 발전시키고 있었다.

그래서 조선전력공사는 어선 관련 조선소를 세우고 대량으로 원양어선을 생산하고 있다.

-시청자 여러분.

-드디어 우주 잔치 초읽기에 들어갔습니다.

-지금 보시는 두 화면을 비교해 보십시오. 하나는 달에서 송출한 화면이고, 다른 하나는 지구에서 직접 달을 촬영한 영상입니다.

1부터 시작한 숫자는 초 단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달에서 송출한 화면이 직접 달 표면을 보여주는 화면과 달랐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달에서 송출한 화면의 숫자가 직접 눈으로 본 숫자보다 빠릅니다.

달 표면에 수백km나 되는 거대한 숫자가 표시되고 있다고 놀란 것이 아니었다.

이미 달에는 핵융합 발전소가 건설되었고, 사람이 살면서 간단한 농작물까지 재배하고 있었기에 그 정도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알고 있는 상식과 다른 화면이 송출되자 모두가 경악했다.

-드, 드디어 성공했군요.

-무엇을 말입니까?

-양자통신 말입니다. 지금 달에서 송출하고 있는 화면은 양자통신을 이용한 영상 데이터를 직접 보여준 겁니다. 눈으로 봐도 빛의 속도가 있어 1.3초 정도 지연이 있는데, 달에서 직접 수신한 화면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앞으로 달에 있는 가족이나 동무들과도 시간 지연 없이 통화가 가능하겠군요.

-맞습니다. 지금까지 달에 있는 사람과 통화할 때 양방향 통신이라 3초 정도 시간 지연이 있었지만, 앞으로는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달 표면 숫자가 50이 되자 수읽기가 멈추었다.

그리고 나타난 거대한 '번개' 표시.

조선전력공사의 상징이었다.

동시에 수많은 빛이 달에서 우주로 향해 뻗어나갔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 빛들이 뭔가에 적중되자 화려하게 터져 나갔다.

-저, 저건 뭡니까?

-레이저 빔입니다. 저것도 성공했군요.

-자세한 설명 부탁합니다.

-은동리 발표로는 저 레이저 빔 기술은 핵융합 기술 중 하나라고 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우리 인류의 가장 큰 위험은 해성이라고 하는데, 저 레이저 빔을 이용해 퇴치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까?

-네, 제가 이연 공과대학 우주항공학과 학과장이지 않습니까?

-그거야 모두 아는 사실 아닙니까?

-그런 제가 하는 말이니 믿으셔도 됩니다.

풍요로운 생활은 축제(祝祭, Festival)로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너무 많은 축제가 열려 문제가 되었고, 크리스마스나 부처님 오신 날 같은 전 지구적 축제가 아닌 마을이나 도시의 개별축제는 일 년에 한 번만 축제를 여는 것으로 합의됐다.

따라서 축제 때마다 화려한 불꽃놀이를 볼 수 있기에 이젠 불꽃놀이 따위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달 주변에서 펑펑 터져 나가는 화려한 불꽃 잔치는 장관을 넘어 경이로웠다.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이번 우주 잔치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기에 훤 전하께서 축하 말씀을 하시겠다고 합니다.

* * *

양자통신과 레이저 빔까지 아무런 사고 없이 성공하자 신이 난 훤이 앞으로 목표는 화성이라며 떠들어 대고 있는 시각.

연은 경복궁에서 자녀와 사위, 손주들과 함께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희 어머니도 함께 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보고 있으실 거예요."

큰딸 명화가 최고급 캐시미어로 만든 얇고 가벼운 담요를 연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

그런 명화를 고개를 돌려 바라본 연의 눈가는 주름이 가득했다.

2년 전, 태황후는 연을 두고 떠났다.

젊은 시절 쉬지 않고 출산을 했던 태황후는 55세가 넘어가자 다양한 질환에 시달렸다.

막내인 훤까지 6명의 자녀를 둔 태황후는 의료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시기에 그들을 연이어 출산한지라 몸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급격하게 발달한 의료 기술이 있기에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황제의 반려자라 각종 보약을 먹었는데 그게 문제가 되었는지 약발이 들지 않았다.

그 후 연은 말을 잃어버린 것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만 하고 있었다.

"쌍식이가 보고 싶구나. 용식이도, 기수도, 행식이도······."

연은 자신을 두고 떠난 이들의 이름을 한 명씩 불러 나갔다.

모두가 자신보다 나이가 많았기에 떠나는 그들을 붙잡을 수 없었다.

그리움 때문인지 연의 눈에 눈물이 맺히자 둘째 명선이 손수건을 꺼내 그 눈물을 닦아 주었다.

"아버지, 그래도 우리가 있잖아요."

"그래, 고맙다."

연은 딸의 손을 붙잡고 가볍게 툭툭 쳤다.

어느새 둘째 명선이도 50세가 되어서인지 손이 많이 거칠어졌다.

말괄량이라 궁궐을 뛰어다닌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어느새 손주를 얻은 할머니가 되다니.

연은 전생에 느껴보지 못한 세월의 무상함을 받아 들이기로 했다.

"명선아?"

"네, 아버지."

"저기 윤(昀)이 좀 불러오거라."

"네."

연의 순의 장자이자 태자인 윤이 오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아, 함께 거닐자 구나."

"네, 할아버지."

훤의 두 아들보다 나이가 어린 윤이지만, 태자가 되었다.

훤과 행순이를 닮아서인지 두 아들은 정치보다는 공학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윤보다 먼저 황실 위원이 되었지만, 황실의 일에 관여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윤아?"

"말씀하십시오. 할아버지."

"내 꿈이 뭔지 아느냐?"

"모두 이루셨지 않습니까? 할아버지 아니었다면 우리 조선은 아직도 변방의 소국으로 남아 있었을 겁니다."

태자의 말에 연은 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건 내 꿈을 이루는 과정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랬습니까? 그럼 할아버지의 진짜 꿈은 무엇입니까?"

"내 진짜 꿈은 저 달을 넘어 화성까지 진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루지 못하고 생을 마감해야겠구나."

연이 눈뜨기 전부터 구상했던 최종 테크트리는 화성을 개척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떠나고자 했다.

이제 낼모레면 70세가 넘는 나이지만, 아직 연은 건강했다.

그렇다 해도 더는 추진할 여력이 없었다.

연과 관련 있던 이들이 모두 떠나 버렸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직 할아버지께서는 정정하십니다."

"아니다. 떠날 시간이 된 것 같구나. 그래서 부탁하마."

윤의 연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소손 명심하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너는 너 할머니를 닮아서 그런지 무척이나 성품이 온화하다. 그래서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니 꼭 명심 하기 바란다."

"네, 할아버지."

사극에 단골로 나오는 희빈 장씨의 아들이 아닌 윤은 무척이나 다정다감했다.

그래서 연이 걱정하고 있었던 거다.

"모름지기 군주는 독해야 한다. 그렇다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나오는 짓을 저지를 필요는 없다."

"당연한 것 아닙니까?"

15세기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함께 전형적인 르네상스인으로 통하는 이탈리아 사상가이자 정치철학자인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한때 유행했다.

하지만 수많은 왕국들이 그가 남긴 저서를 따라 하다가 몰락하고 말았다.

조선만큼 발전하고 싶은 욕심에 수단을 가리지 않고 행하다 보니 백성들이 모두 주변국으로 도망가 버렸다.

조선처럼 백성들을 위해 노력한 왕국들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했기에 미련을 두지 않고 고향을 등진 거였다.

군대조차 폐지했기에 경찰력만으로는 떠나는 백성들을 잡을 순 없었다.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백성들을 탄압하다간 우방국에서 제명될 수 있기에 그러지도 못했다.

"당연한데도 백성들은 알지 못한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

"정보 때문이 아닙니까?"

"맞다. 정보의 독점은 어쩔 수 없지만, 그 정보를 남용하거나 조작하면 독재를 낳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런 놈이 있다면 가차 없이 목을 베버리겠습니다."

"그래, 그래. 장하구나."

연은 순하기만 한 윤이 강한 눈빛을 보이자 밝게 미소를 지으며 그를 일으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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