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 응징(7) - 지도 >
조선전력공사 육경 제2사단 1대대장인 정봉이는 정찰병의 말을 듣고 어처구니없는지 실실 웃었다.
"그러니까 놈들이 강을 따라 뗏목을 타고 내려오고 있다는 말이지?"
"네, 대대장님."
"우리를 치려고?"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그런 거지."
"시정하겠습니다. 우리를 치려고 내려오고 있습니다."
"흠···, 몇 명이나 되는 것 같든?"
"3만 명 정도 되어 보입니다."
"똑바로 안 할래?"
"3만 명입니다."
뭐든 정확한 것을 좋아하는 정봉이는 적들이 온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새로 보급받은 무기를 처음으로 실험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흥분되었다.
"뒈지려고 환장했구나."
"그런 것, 아니, 그렇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아주 끝장을 내주지. 뭐해! 준비하지 않고."
"넵!"
정봉이의 말에 참모들은 바쁘게 뛰어다녔다.
주둔지 공사를 하던 대원들은 모든 행동을 중단했다.
대원들은 소대별로 모여 소대장의 지휘하에 무기를 점검하고 다가올 전투를 준비했다.
"똑바로 해라! 우리가 누구냐!"
"""이겼다! 이겼다! 이겼다! 부대입니다."""
"알면 됐다. 우리 사단은 적에게 무조건 이긴 사단이다. 지금까지 이기지 못한 적이 있었나?"
"""없습니다."""
"맞다. 우리는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적이 없다. 따라서 이번 전쟁에서도 이겼다. 알겠나?"
"""멸!"""
그러는 사이 작전 참모가 깔때기를 들고 나타났다.
"지금 즉시 완전 군장하고 강을 건너 저곳으로 간다. 저곳에 진지를 구축하고 놈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자!"
"""멸!"""
대원들은 만들다 만 주둔지를 버리고 바샤르강 북서쪽 언덕 뒤로 올라갔다.
가지고 온 폴리에틸렌 포대에 흙을 담아 언덕 위 능선을 따라 진지를 구축했다.
"튼튼히 쌓아라! 총알이 아니라 대포알도 막을 수 있을 정도로. 알았나?"
"""멸!"""
대원들이 진지를 구축하고 있는 사이에 한쪽에서는 땅을 파서 뭔가를 고정하고 있었다.
"기대되지 않아?"
"별로."
"뭐? 기대되지 않는다고?"
"내가 실험 대원이었던 거 몰랐어?"
"아···, 그건 그랬구나."
"하루에도 수십 발씩 날렸지."
"어땠어?"
"주···겼지!"
두 대원이 말을 나누는 사이에 어느새 진지는 완성이 되었다.
"별도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모두 쉬어라!"
"""멸!"""
전쟁을 앞두고 두려워하는 대원은 그 누구도 없었다.
되려 이번 전쟁에서 선보일 무기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다음날.
아침을 먹고 쉬고 있는 사이에 정찰병들이 멀리서 말을 타고 달려왔다.
그중 한 명이 정봉이에게 경례하며 입을 열었다.
"보고하겠습니다. 놈들이 강을 따라 내려오고 있습니다. 늦어도 오시 안에 도착할 겁니다."
"그래, 수고했다. 쉬도록!"
"넵!"
모든 대원이 적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가운데 해가 중천 위로 떠 올랐다.
그때 누군가 조용히 외쳤다.
"온다!"
"온다!"
"온다!"
속삭이듯 '온다'는 말이 대원들을 통해 모두에게 전달됐다.
능선 아래 자리를 잡은 작전 참모는 망원경을 꺼내서 뗏목을 타고 다가오는 적들을 살폈다.
그러더니 입이 찢어져라 미소를 지었다.
"대대장님 놈들은 미친 게 틀림없습니다."
"왜?"
"저기 보십시오. 저곳에 내리려 합니다."
정봉이는 언덕 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살폈다.
굳이 망원경을 꺼낼 필요도 없었다.
뗏목을 타고 온 사파비 병사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강 건너 평지에 내린 적들은 뗏목을 분해하더니 뭔가를 붙여 조립하고 있었다.
"저거 총탄을 막으려고 준비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군."
나름대로 조선군을 대항할 방법을 찾은 것 같았다.
사파비 병사들은 타고 온 뗏목을 분해해 반짝이는 철제 방패를 여러 겹으로 붙였다.
"저걸로 총탄을 막겠다는 거군."
"그래 보입니다. 아마 우리가 대포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나 봅니다."
"그랬겠지."
이곳은 사파비 제국의 땅이다.
그것도 한가운데.
그러니 조선군의 행동이 수시로 보고되는 게 틀림없었다.
"기관총도 막을 수 있을까?"
"그건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염두에 두고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흐음···."
정봉이와 참모들이 흥미롭게 적을 행동을 관찰하고 있는 가운데, 언덕 뒤에 숨어있는 대원들 또한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었다.
"제들은 정찰도 안 하나?"
"적장이 좀 그런데? 채찍으로 막 때리며 화만 내고 있잖아."
"무능한 적장은 적보다 무서운 건데···."
경비대 대원이나 조선군 병사나 정찰은 제일 선행되어야 하는 기본이란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적들은 먼저 방어 무기부터 만들고 있었다.
"우리가 이곳으로 옮겼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뭔 짓을 하는지···."
대원 중 한 명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그런데 적들은 나름대로 정예 같아 보였다.
짧은 시간에 뗏목과 방패를 엮어 튼튼한 방어막을 준비했다.
그러더니 몇 명이 나서서 남쪽으로 정찰을 나갔다.
경비대가 주둔지를 만들다 만 곳이었다.
"공격해야겠습니다."
"그래, 우리가 없다는 걸 놈들이 알기 전에 쓸어버려라."
"넵!"
작전 참모는 깔때기를 꺼내 들고 힘차게 외쳤다.
"박격포병은 준비가 끝나는 대로 즉시 발사하라!"
"기관총 사수는 박격포 공격이 시작되면 도망가는 놈들을 처리하라!"
"소총수들은 이곳으로 오는 놈들만 저격하면 된다!"
깔때기를 좌우로 흔들면서 작전 참모가 외치자.
언덕 아래에서 미리 준비하고 있던 박격포병은 50mm 박격포탄을 들고 언덕 위를 쳐다봤다.
언덕 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관찰 병이 준비가 끝났음을 알고 즉시 깃발을 들어 올렸다.
"셋! 둘! 하나! 발사!"
여기저기서 힘찬 구령을 외치며 박격포탄을 강선이 새겨진 포신 안에 집어넣었다.
-통! 통! 통!
소리와 함께 격침에 찔린 박격포탄이 빠르게 회전하며 언덕을 넘어 날아갔다.
'휭' 소리와 함께 날아간 박격포탄이 적진에 떨어졌다.
-쿠앙! 쿠앙! 쿠앙!
밀떡 폭탄을 10개쯤 묶어 놓은 듯한 파괴력을 선보이며 박격포탄이 산산이 부서졌다.
"""으악!"""
총 10대의 박격포가 발사된 후 박격포병들은 관찰병을 바라봤다.
관찰병의 신호에 따라 박격포병들은 높낮이와 방향 손잡이를 돌려 목표를 수정했다.
다시 발사된 박격포탄이 희한한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그로 인해 벌판에 몰려 있는 3만 명이나 적들은 혼란에 빠졌다.
뭔가 하늘에서 날아와 떨어지더니 '쾅!' 소리와 함께 불길 이 치솟았다.
그리고 주변은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정봉이가 투덜거렸다.
"이거 너무 정교한 거 아니야? 떨어진 곳에 또 떨어지잖아."
정확한 것을 좋아하는 정봉이지만 한 곳에만 떨어지다 보니 수시로 포격 위치를 교정하는 게 불만이었다.
"너무 가까워서 그렇습니다. 이 정도 정확도가 아니면 먼 곳에 발사할 때 목표지점에서 많이 벗어납니다."
"아···, 그렇군. 그건 몰랐네."
느닷없는 폭격에 혼비백산한 놈들은 총탄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방어 판을 위로 들고 아래로 숨어 들어갔다.
하지만 방어 판과 함께 폭탄이 터지면서 더 많은 파편이 비상했다.
"와···! 엄청납니다."
"앞으로 대포는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참말로 끝내줍니다."
대원들은 총을 놓고 강 건너 불구경하기에 여념 없었다.
말로만 들었던 박격포의 위력이 이처럼 대단한지 생각지도 못했다.
터지는 폭탄이라고 해서 잘해야 밀떡 폭탄 정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하늘 높이 치솟는 불기둥만 보더라도 간담이 서늘해졌다.
"포격 중지!"
"포격 중지!"
정신없이 발사된 포격이 끝나자 적막감이 몰려왔다.
"움직이는 적이 있으면 무조건 사살하라!"
하지만 초토화된 벌판에서 꿈틀거리는 것은 찾기 힘들었다.
그래도 간간이 '탕!' 소리가 울렸다.
"모두 대기하라!"
"관측병은 적들이 모두 죽었는지 확인하라!"
그 와중에도 살아남아 도망친 적병들이 있었다.
다시 돌아올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작전 참모는 일단 전 대원들을 대기 시켰다.
"정찰병은 즉시 상류까지 확인하고 와라!"
"넵!"
다른 적들이 올 수도 있기에 전투가 끝난 후에도 정찰은 필수였다.
* * *
부셰르 남쪽에 주둔지 공사를 끝낸 육경 대원들은 한가한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외출 금지가 언제 풀릴까?"
"풀리겠냐?"
"왜? 문제 있어?"
"시작도 안 했잖아. 끝나고 돌아오면 몰라도."
"젠장! 빨리 끝내고 오면 좋겠다."
한참 궁금한 게 많을 나이라 대원들은 이국적인 부셰르의 모습에 설렜다.
더구나 이곳은 페르시아만에서 가장 큰 항구 도시 아닌가.
신기하고 다양한 구경거리가 마을에 있기에 가고 싶은 건 당연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이스파한으로 진격한 제1대대가 언제 연락이 올지 몰랐기 때문이다.
야자수 사이에 걸쳐진 그늘막 아래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는 대원들.
땀은 흐르진 않았지만, 바람이 불지 않으니 답답했다.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선선한데 오늘은 바람 한 점 없네. 제기랄. 이럴 때는 해경 놈들이 부럽군."
"그러게 말이야. 선실에 들어가면 냉방기 바람이 죽여주는데."
전후:좌우 10:3의 통통한 비율을 가진 새로운 조경함은 전함이라기보단 상선처럼 보였다.
갑판 위에 조303 곡사포만 없다면 영락없는 컨테이너선이었다.
조선전력공사의 강철 합금 제조기술은 19세기를 능가한다.
하지만 아직 배를 만드는 기술이 좋지 않았기에 20세기 전함처럼 길고 날렵하게 만들 수 없었다.
그래도 시속 30km(16kn)의 속도로 항해할 수 있었고, 적재량 또한 엄청났다.
그랬기에 몇천 명이나 되는 대원들을 싣고 12,000km를 올 수 있었다.
또한 새로운 조경함은 냉방기를 도입했다.
다두 왕국 백성들을 마닐라로 수송하면서 문제점이 발생했다.
창고나 다름없는 선실 안은 사람이 쪄 죽을 정도로 더웠다.
그동안 젊은 병사들만 있었기에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노약자가 포함된 민간인들을 수송하면서 심각한 상황에 직면했다.
결국 공조 장치 없이는 장기간 항해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냉방기를 도입했다.
이번에는 냉매로 암모니아를 쓰지 않았다.
위험하기도 하지만, 발해만에서 가스와 원유를 채굴하면서 탄화수소(HCs)를 쉽게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 아! 모든 대원은 군장을 챙겨 즉시 연병장으로 집합하라!
-우리는 내일 새벽 바로 진군한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에 대원들은 벌떡 일어났다.
언제 노닥거렸냐는 듯 표정조차 변해 막사로 뛰어갔다.
쉴 때는 그 누구도 건들지 않는 게 조선전력공사 경비대의 전통이다.
아직까지 세분된 계급이 없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명령이 떨어지면 대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게 바로 생존비법임을 수없이 교육받았고 알고 있었다.
폴리프로필렌 천으로 된 터번을 머리에 두르고 철모를 쓴 대원들이 5분 만에 군장을 챙겨 연병장에 집합했다.
사단장 신수가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잡았다.
-조금 전 야수즈에 나가 있는 제1대대로부터 연락이 왔다.
-3만 명이나 되는 적의 공격이 있었지만, 전부 제거 했다는 연락이다.
"""이겼다! 이겼다! 또, 이겼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대원들은 힘차가 구령했다.
-정보에 의하면 적의 서울인 이스파한을 지킬 병사가 없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내일 새벽 이곳을 출발하여 바로 이스파한까지 진격한다.
-그럼, 내일 출발에 지장 없도록 모두 푹 쉬기를 바란다.
-이상!
"""멸!"""
* * *
사파비 제국의 군주인 압바스 2세는 평생을 위대한 군주인 압바스 1세와 비교당하면서 살아 왔다.
그래서인지 압바스 2세는 항상 주눅이 들어 있었다.
'이번 기회에 나도 군사적으로 유능한 군주라는 것을 보여 주고 말 거다.'
압바스 2세는 야수즈를 점령한 조선군에게 대포가 없다는 사실을 보고 받았다.
또한 야수즈에 있는 조선군이 1천 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 정도면 해볼 만하지.'
모든 병력이 조선을 치러 떠났지만, 이스파한 성과 알리 카푸 궁전을 지키는 자신의 친위대 병력은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을 보내 1천 명밖에 되지 않는 조선군을 사로잡아 협상하려 했다.
뗏목을 타고 야수즈까지 내려간 후.
뗏목에 방패를 여러 겹으로 붙여 방어막을 만든다면 총탄 정도는 막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대포도 있겠다, 놈들을 외워 쌓고 항복을 권하면 쉽게 해결될 줄 알았다.
압바스 2세는 이것이 오판이란 것을 알지 못했다.
박격포라는 신무기가 조선에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니, 터지는 포탄이라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질룰라! 자얀데(Zayandeh)강 남쪽에 조선군이 나타나 진을 치고 있다고 합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3만 명이나 되는 우리 병사들은 모두 어디 있단 말이냐?"
"그게···."
조선군을 사로 잡아 오라 내보낸 병사들이 승리했다는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조선군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