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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209화 (209/216)

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 209 - 부여진

나와 왕무가 이끄는 고려군은 거란군이 떠난 상경 용천부에 그대로 입성했다.

‘거란 태조 야율아보기가 상경 용천부를 함락시킨 지 20년 만에 고려군이 이곳을…….’

현대의 사학도로서 나는 감개무량함을 느꼈다.

‘내가 진짜 역사를 바꿨구나! 고려군이 끝내 상경 용천부를 회복하다니!’

나는 살짝 눈물마저 흘릴 뻔했다. 다만 나는 다른 역사적 사실을 떠올리며 가슴을 졸이기 시작했다.

‘원래 역사에서 북벌을 한 윤관이나 이성계도 동북 9성이나 요동을 일시 점령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다가 결국 그 땅을 유지하는 데 실패하고 퇴각했지. 지금 고려군도 상경 용천부에 들어오긴 했으나 이곳이 고려 땅이 됐다고 할 수는 없어.’

군사 전문가인 왕무와 고려군 수뇌부도 나처럼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상경 용천부에 있는 발해의 옛 궁전에서 다시 한번 작전회의가 열렸다.

“그냥 이대로 싸우지 않고 거란의 무리들이 발해 동쪽 땅을 그대로 포기하고 우리 고려에 넘겨주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우리도 송화강 서쪽으로는 넘어가지 않고.”

박수경이 자신의 소망을 담아 그리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왕식렴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거란의 무리들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지금 삼한 땅을 지닌 고려와 발해 동쪽 영토가 결합되면 거란에 엄청난 위협이 됩니다. 우리가 발해 사람들과 힘을 합쳐 20년만 군사를 기르면 요동땅을 되찾을 수도 있습니다. 거란이 그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거란의 무리들은 반드시 옵니다.”

왕식렴의 이 말에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척후들의 보고를 보면 상경 용천부에 있던 4천 명의 거란군을 비롯해 발해령 각지에 있던 거란군이 모두 성을 버리고 부여부 쪽으로 집결한다고 하니. 저들이 싸울 각오인 것은 확실합니다.”

황보제공은 입맛을 다시며 떨리는 목소리를 말했다.

‘황보제공이 정치는 몰라도 군사일은 잘 보는데. 저런 표정인 것을 보니. 거란과의 한판 승부는 피할 수 없나 보군.’

나도 거란과의 결전에 대해 떠올리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작전회의에 참석한 발해 사람들도 모두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었다. 그러더니 정안국의 열만화가 입을 열었다.

“서둘러 군사들을 수습하고 부여부 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전쟁은 누가 부여부를 차지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립니다. 거란 본토에서 발해 땅으로 들어올 때 관문이 될만한 땅이 바로 부여부입니다. 그곳은 강들이 얽혀 있는 곳이라 거란 기병들을 막을 만합니다. 허나 거란기병이 그곳을 넘어서면 그 이후엔 막을 만한 관문이 없습니다.”

대광현 역시 열만화와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그를 거들었다.

“지금 발해령에 흩어져 있던 거란 군사들이 지키고 있던 성을 포기하고 모두 부여부 쪽에 모이는 것도 그 이유 때문입니다. 부여부에 있는 나루인 부여진을 점거하면 거란 본토에서 넘어오는 거란 주력이 쉽사리 송화강을 건널 수 있습니다. 부여진은 강물이 얕아지는 곳이라 부교를 놓지 않고도 강을 건널 수 있는 지점입니다. 폐하! 서둘러 정병들을 가려 뽑아 부여진 쪽으로 보내십시오. 집결해 있는 거란군을 깨뜨리고 부여진을 끊으면 거란 주력을 막을 수 있습니다.”

확실히 20년 전에도 거란 태조 야율아보기가 부여부를 함락시킨 것이 승부를 갈랐다. 발해 사람들은 모두 그때 충격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나도 내가 알고 있는 역사 지식을 바탕으로 전황을 살피니 대강 맥을 잡을 수 있었다.

‘옛 부여의 땅이 확실히 요충지이긴 하다. 옛 고려 즉 고구려도 당나라와 전쟁을 벌일 때 당나라 장군 설인귀가 부여 쪽을 점령하자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부여 땅은 송화강을 비롯해 여러 강들이 모인 곳이라 북방의 기병들이 마음대로 기동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그러나 이곳이 돌파당하면 그 이후로는 길이 잘 뚫려 있어서 적들이 사방팔방으로 공격할 수 있었다.

‘고려군이 그대로 진격해 부여부마저 점령하고 그곳의 수비를 굳히면 송화강 동쪽의 발해 땅은 그대로 고려의 것이 되는 거고. 부여부를 점령하지 못하면 기껏 상경 용천부를 회복했다 해도 의미가 없다!’

나는 이 순간 그것을 깨달았다. 거란도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부여부에 집결한 것이다. 그리고 왕무가 단호하게 명을 내렸다.

“황보제공, 황보금산, 박수문, 박수경은 명을 받들라!”

“예 폐하!”

네 장수가 일제히 나서더니 외쳤다.

“그대들은 패서의 기병들을 이끌고 신속하게 진격해 부여진을 점령하라. 아마 거란의 무리들이 그곳을 지키려고 애를 쓸 터. 반드시 그곳을 얻도록. 여진 기병들 가운데서도 정예들을 뽑아가라. 지금 시간이 급하다. 즉시 출발하라!”

“명을 받듭니다.”

네 장수는 군례를 올리고 바로 출진하기 위해 달려 나갔다.

‘고려 전군이 움직이면 속도가 느리니까. 정예만 추려 보내는 거야. 저 네 사람을 동시에 출전시키는 걸 보니 왕무도 급하긴 급하네.’

황주 황보 형제와 평주 박씨 형제는 형제들이 모두 뛰어난 무장이었다. 거기에 황주와 평주도 평소에 교류가 잦아 손발이 잘 맞았다. 이들이 거느린 군사들의 규모나 서로 간의 호흡을 보면 가히 고려의 최강 전력이라 할 만했다.

‘왕건도 이 패서의 군사들을 기반으로 해서 삼한을 통일했다. 여기에 여진 정예까지 붙여줬는데. 그들의 힘이 북방에서도 통해야 할 텐데.’

그사이 왕무는 다른 장수들에게도 군령을 내리고 있었다.

“우리 주력도 서둘러 움직여 패서군사들의 뒤를 받쳐줘야 하니 모두 출진할 준비를 하라.”

“예, 폐하.”

장내의 장수들은 모두 속속 자신의 부대로 돌아갔다.

작전회의가 열리는 전각 안에는 어느덧 나와 왕무만이 남았다. 그리고 왕무는 나를 보며 말했다.

“이제부터는 잠깐 떨어져 있어야 할 것 같아. 나는 주력을 이끌고 부여진으로 갈 거야. 연우 너는 나머지 보군과 비주력 기병들을 이끌고 퇴로를 확보해 줘.”

“무야.”

나는 그 말을 들으니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퇴로를 확보해 놓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뭔가 왕무가 패배를 대비하는 것 같아서 불안해.’

그래서 나는 짐짓 희망적인 말을 늘어놓았다.

“황보제공 등이 거란군을 깨뜨리고 부여진만 신속하게 점령하면 거란과 결전을 벌일 필요도 없어. 황보 가문이 우리와 사이는 불편해도 실력은 확실해. 부여진만 우리가 얻으면 거란군이 강을 못 건널 테니. 진나라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거란은 장기전을 벌일 여력이 없어서 대치를 이어갈 수 없어. 그대로 송화강 동쪽의 땅을 우리에게 넘길 거야.”

내 말을 들은 왕무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마 황보제공 등이 부여진을 함락시키지 못할 거야. 나는 물론 그 장수들을 믿어. 그러나 거란군의 움직임을 보면 이미 고려의 북벌에 어느 정도 대비는 되어 있었어. 미련 없이 상경 용천부를 버린 것도 그렇고. 거란군사들이 결사적으로 저항하면 단시간 내에 부여진을 점령하기는 불가능해. 아마 거란 본토에서 온 저들의 주력과 한번 싸워야 이 전쟁이 끝날 거야.”

“그, 그런…….”

왕무의 예상이 들어맞을 것 같아서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그 싸움에서 이길 거야. 그래도 퇴로를 확보해 놓는 게 정석이니. 만에 하나 싸움이 불리해지면 상경 용천부 쪽으로는 후퇴할 수 없어. 그쪽은 길이 잘 닦여 있어서 거란이 추격해 오기도 쉬우니. 송화강을 따라 남쪽으로 후퇴해야 해. 송화강에서 남쪽으로 가면 백두산이 나오고 고려 땅으로 돌아가기도 쉬우니. 또 백두산이 불을 뿜는 모습을 보면 거란군도 끝까지 추격은 못 할 거야. 그러니 연우야 너는 후군을 이끌고 부여진과 백두산의 중간 지점에 주둔해 줘. 만에 하나 우리 군사들이 후퇴할 때는 달려 나와 거란군을 요격하고. 또 상황을 보다가 적절히 예비군으로 움직일 수도 있어.”

왕무가 나에게 그런 지시를 내렸다.

“무야.”

나는 가슴이 아파서 그리 외쳤다.

‘왕무가 말은 그럴 듯하게 했지만. 만약 부여진에서 우리 고려군이 패하면 그곳의 우리 군사들이 도망칠 수나 있을까? 거란군의 기동력이 엄청난데 전장에서 과연 벗어날 수 있을지. 그리고 왕무는 도망치긴 할까? 결국 싸움에 지면 나와 후군만은 도망칠 수 있게 이런 배치를…….’

그런데 왕무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연우야. 빨리 너도 후군을 감독해서 움직여.”

나는 왕무와 더 있고 싶었다. 거란 대군과의 결전에 대해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시간이 촉박했다.

왕무를 붙들고 뭘 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예, 폐하.”

나는 왕무에게 그리 대답하고 전각을 나섰다.

그리고 왕무는 상경 용천부에서 정예만 추린 뒤 바로 부여진 쪽으로 출진했다. 나와 한 번 더 얼굴을 보는 일은 없었다.

그저 전령을 보내 짧은 서신만 전해왔다.

-왕후는 서둘러 후군을 인솔해 지정된 곳에 주둔하라.

나는 왕무가 보낸 그 서신을 만지작거리면서 한숨만 쉬었다.

“마마. 서둘러 폐하의 군령대로 움직이셔야 합니다.”

안동 삼태사 중 한 명인 김선평이 나에게 말했다. 왕무는 후군에 장수로는 나와 친한 안동 삼태사, 손긍훈 등을 남겼다.

이외에 종군한 문관들이며 기술자 등 비전투 인원도 다 후군에 속해 있었다.

군사들은 거란과의 결전에서 활약하기 어려운 보군 1만 명. 고려, 발해, 여진, 정안의 기병 중에서 나이가 많거나 부상을 당한 자 4천 명이 있었다.

‘확실히 이 사람들을 부여진에 투입해도 큰 도움은 안 될 거야. 이들과 함께 퇴로나 확보하는 것이 답이긴 해. 그런데 왜 이리 마음이 무거운지.’

그러나 확실히 지금은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군사들을 움직인다.”

나는 말에 오르며 장수들에게 그런 명을 내렸다. 그리고 내가 이끄는 후군은 부여진 남쪽으로 행군했다.

* * *

한편 송화강 동편 부여진에서는 고려군과 거란군 사이의 혈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쳐라! 쳐라! 쉬지 말고 공격하라.”

긴 창을 쥔 황보금산이 기병들을 독려했다. 그 뒤를 황보금산의 형인 황보제공이 받쳐주고 있었다.

박수문, 박수경 형제는 그런 황보 형제의 좌우 양익을 호위하며 거란군을 치고 있었다. 고려군을 따르는 여진 기병들도 젖먹던 힘을 다해 활을 쏘며 도왔다.

전체적인 전황은 고려군에게 유리했다. 두만강을 건넌 이래 파죽지세로 상경 용천부까지 점령해서 확실히 고려군의 사기가 드높았다.

또한 고려 내에서도 정예인 패서군과 여진기병들을 가려 뽑아 보냈으니 위력이 대단했다.

거기에 수적으로도 1만 2천에 달하는 고려기병들이 7천 기의 거란 기병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군사들을 지휘하는 황보제공 등의 얼굴은 어두웠다.

“거란의 무리들이 몸을 던져가며 시간을 끄니. 이들을 섬멸하는 데 며칠은 걸리겠구나!”

박수경이 창을 쥔 채로 그런 탄식을 했다.

그 며칠이면 거란 본토에서 거란의 원군이 부여진에 도착할 수도 있었다. 고려군이 그 전에 송화강 동쪽 부여진의 거란군을 섬멸시키고 길을 끊을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어쨌든 황보 형제와 박씨 형제는 계속 군사들을 휘몰아 공세를 이어갔다. 그러던 중 송화강 서편에서 거대한 북소리와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거대한 흙먼지가 이는 모습도 보였다.

결국 거란 본토에서 고려군을 막기 위한 원군이 당도한 것이다. 고려군을 상대로 결사적인 항전을 벌이던 송화강 동편의 거란군도 급격하게 사기가 올랐다.

“후퇴하라! 서둘러 후퇴.”

황보제공 등은 다급하게 군사들을 빼기 시작했다. 왕무의 주력이 오기 전에 황보제공 등이 거느린 선봉이 거란주력에게 격파당하면 큰일이었다.

고려군이 물러나는데 송화강 서편에 당도한 거란군은 지체하지 않고 대장기를 앞세우고 도하를 시작했다.

그 대장기를 보고 몇몇 여진 기병들이 외쳤다.

“술률노속이다! 거란 승상 술률노속이 직접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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