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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207화 (207/216)

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 207 - 새로운 전설

“부교를 서둘러 만들어야 한다! 부교를 만들 자재를 후방에서 가져와라!”

고려 장수들은 어수선한 가운데서도 군사들에게 그런 명을 내렸다. 백두산 폭발의 영향으로 인근의 나무들이 모두 불타서 사라졌다. 그래서 부교를 만들려 해도 후방에서 목재를 가져와야 했다. 어쨌든 군령이 떨어지니 군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군사들은 꾸역꾸역 목재를 실어 왔다. 하지만 묘하게 행동거지가 우물쭈물했다. 공사 진행 속도도 더뎠다.

“서둘러라!”

대광현이 직접 말에서 내려 발해 군사들과 함께 목재를 날랐다. 모범을 보여 군사들의 사기를 올리려는 의도 같았다.

그러나 고려군의 사기는 여전히 낮았다.

‘이, 이럼 곤란해. 마, 마치 위화도 회군 때 상황 같잖아.’

미래에서 와서 그런지 내 뇌리에 그런 생각마저 떠올랐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그런 생각을 떨쳐냈다.

‘물론 왕무가 직접 참전해서 군사를 지휘하는 만큼 위화도 회군 같은 사건은 안 나겠지만. 군사들의 사기가 이러면. 거란과의 싸움에서 성과를 낼 수 있을까?’

내 뇌리에 왕건과 유금필의 모습이 떠올랐다.

‘왕건이 수단방법 안 가리고 어떻게든 사람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애를 쓴 이유가 있었어! 유금필도 세상을 떠나기 전에 사람들의 마음이 중요하다고 했고. 나도 나름 도선대사의 이름을 빌려 분위기를 조성해 놨는데.’

실제로 고려 땅에서 출진할 때만 해도 내 계책이 통해서 분위기가 좋았다. 군사들도 사기가 드높았다.

그런데 막상 백두산 주변의 참혹한 모습을 보고 사람들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어쩌지?’

내가 고민하고 있는데 곁에서 황보제공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안국주가 쉽게 합류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군. 이리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군사를 일으키기가…….”

그 말을 들은 내 마음은 더 갑갑해졌다.

‘황보제공이 저런 말을 할 정도라니. 상경에 도착한 것도 아니고 두만강에 왔는데 벌써 이러면.’

* * *

작전회의를 하기 위해 모인 고려군 수뇌부의 표정은 어두웠다.

“아마 부교를 만드는 데 시간이 좀 걸릴 듯합니다.”

왕식렴이 조심스레 왕무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군사들을 재촉하고 엄히 다스리면 부교를 빨리 만들 수는 있겠지만 지금은 군사들을 잘 달래야 할 때입니다.”

박수경이 왕식렴을 거들었다. 여러 장수들도 지금 군사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알겠다.”

나름 전투경험이 있는 왕무는 노련한 장수들과 비슷한 생각인 것 같았다.

“그래도 첩보를 종합해 보면 두만강 인근만 상태가 안 좋지 북쪽으로 가면 갈수록 한결 상황이 낫다고 합니다. 초목들이 죽어 있긴 해도 여기보다는 괜찮습니다. 우선 백두산의 모습만 안 보이면 군사들도 사기를 회복할 것입니다. 산이 쇳물을 뿜어내는 광경이 워낙…….”

박술희가 분위기를 나름 북돋으려고 씩씩하게 나서다가 말끝을 흐렸다.

“어떻게든 군사들을 달래서 상경 용천부를 되찾으면 사기가 살아날 것이다. 용천부는 발해의 수도이기도 하니. 어쨌든 그전까지 장수들은 군사들을 잘 달래도록.”

왕무가 그렇게 장내를 정리했다. 그렇게 작전회의는 끝났다.

장수들은 군례를 올리고 막사를 나섰다. 그리고 나와 단둘이 남자마자 왕무는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었다.

‘왕무도 많이 힘든 것 같아. 내가 어떻게든 수를 내야 해.’

나는 한숨을 쉬며 잠시 바람을 쐬기 위해 홀로 막사 밖으로 나섰다. 주변을 둘러보는데 밤이 됐는데도 불길이 솟고 용암이 조금씩 흐르는 백두산의 모습이 선명했다.

‘박술희 말이 맞아. 저런 걸 보니 군사들의 사기가 꺾일 수밖에.’

군영을 둘러보니 경비를 서고 있는 군사들도 모두 멍하니 백두산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애초에 화산재 때문에 달빛도 흐린 밤에 용암이 흐르는 백두산의 모습이 더욱 도드라졌다.

‘군령을 내려 백두산 쪽은 쳐다보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하아. 참 나도 백두산 쪽에서 눈을 뗄 수가 없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그런 내 뇌리에 뭔가가 한순간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나는 허겁지겁 다시 막사로 뛰어 들어갔다. 왕무는 여전히 이마를 짚고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그런 왕무를 향해 나는 대뜸 말했다.

“내일, 내일 많은 군사들을 두만강변에 모아줘. 그 사람들 앞에서 보여줄 게 있어.”

“연우야? 뭘 보여준다는 거야?”

왕무가 놀라서 되물었다.

“군사들의 사기를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확실하지는 않은데.”

나는 조심스레 왕무에게 대답해 줬다.

“정말? 그게 뭔데?”

“음. 그냥 내가 마음대로 일을 처리하게 해줘.”

나는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왕무가 알면 나를 말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다행히 왕무는 내 속내도 모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지금 뭐라도 해야 할 상황이니. 널 믿을게.”

왕무는 기대에 찬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 * *

다음 날 두만강변에 수많은 군사들이 모였다. 군사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복잡해 보였다.

“왕후 마마께서 곧 명을 내리실 것이다. 모두 조용히 하라!”

여러 장수들이 돌아다니면서 군사들을 정돈했다. 나는 장내에 도열한 군사들을 보고 살짝 떨렸다.

‘팔관회 때 수많은 군중 앞에 서 본 경험이 있는 나도 긴장이 되네. 그나마 그때 경험이 있어서 다행이야.’

나는 강변에 있는 커다란 바위 위에 올라갔다. 딱 알맞게 단상으로 쓰기 좋은 크기의 바위였다. 여러 겹으로 층이 져 있어서 더 좋았다.

박술희가 곁에서 그런 나를 부축해 줬다. 바위 위에서 바라보니 군사들의 모습이 더 잘 보였다.

그리고 그런 군사들을 향해 내가 외쳤다.

“쇳물을 토해내는 저 백두산이 두려운가?”

내 말을 듣고 바위 아래 미리 준비시켜 둔 확성기를 든 100명의 군사들이 내 말을 따라서 외쳤다. 손긍훈 구출 작전 때 썼던 확성기도 이번에 가지고 왔다.

두만강변에 모인 수만의 군사들이 이 말을 듣고 움찔하는 기색이었다.

그런 군사들을 보며 나는 말을 이었다.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모두 잘 보라!”

나는 박술희와 함께 바위 위에까지 따라온 군졸들과 대장장이들에게 명을 내렸다.

“가져온 납탄들을 녹여라!”

무기를 군영에서 수리할 수 있게 대장장이들도 종군하고 있었다. 그 대장장이들이 납탄을 녹였다.

납탄이 녹고 온도가 올라가며 새빨간 쇳물이 되었다. 그 광경을 보고 나는 목이 타서 허리춤에 찬 수통을 꺼내 들이켰다.

손이 벌벌 떨리며 내 두 손과 팔을 적셨다.

“왕후 마마. 대체 무엇을 하시려고 하십니까?”

박술희가 쇳물을 바라보며 물었다. 나는 왕무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내가 하려는 일에 대해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내가 정신을 집중해야 하니 장군은 좀 멀리 가서 서 있으면…….”

나는 바위 끝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박술희가 중간에 놀라서 나를 말리거나 하면 위험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박술희를 떨어뜨려 놓을 필요가 있었다.

박술희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내 말을 따랐다.

그리고 나는 대장장이들에게 명을 내렸다.

“여기 약간 높은 바위 쪽에서부터 쇳물을 흘려내려 보내라!”

이 단상처럼 생긴 바위는 층이 져 있었다. 내가 서 있는 바위보다 위쪽에 올라간 대장장이들이 쇳물을 조금씩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쇳물에 닿지 않게 조심하십시오.”

멀리 바위 끝쪽에서 박술희가 외쳤다. 나는 싱긋 웃으면서 바위 아래에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군사들을 돌아보며 외쳤다.

“모두 잘 보라!”

그리고 나는 그대로 내 손을 쇳물에 집어넣었다.

“마마!”

바위 위에서 그 광경을 보고 놀란 박술희가 부르짖으며 외쳤다.

“으아아아.”

바위 아래서 이 모습을 바라보던 군사들도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으하하하. 장군은 계속 거기 서 있도록.”

나는 웃으며 박술희에게 그런 명을 내렸다. 그리고 내 손을 자랑스럽게 박술희와 군사들에게 보여줬다. 내 손은 멀쩡했다.

“어, 어찌 이런.”

나에게 달려오려고 하던 박술희가 입을 쩍 벌리며 신음을 흘렸다.

“뭐야, 뭐야.”

“무슨 일이야!”

바위 아래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군사들도 계속 부르짖었다.

‘역시 라이덴 프로스트 효과는 진짜 있구나. 구체적인 원리는 다 까먹었다. 다만 잠깐 엄청 뜨거운 쇳물에 손을 넣는 것은 괜찮으니. 계속 있으면 안 되고.’

아주 간단한 과학상식 덕에 나는 이런 연출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싱긋 웃으며 군사들이 다시 이 모습을 볼 수 있게 다시 내 손을 흐르는 쇳물에 넣었다 뺐다.

“어어어.”

단 아래에서 흘러나오는 군사들의 신음소리는 더 커졌다. 그리고 나는 멀쩡한 내 두 손을 활짝 펼쳐 군사들에게 보여주며 외쳤다.

“고려 왕실은 용의 후손이라 스스로 여기고 있으며,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쇳물에도 다치지 않을 수 있다. 너희들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우리 모두 태조의 유훈을 받들어 거란의 압제에 시달리는 발해의 형제들을 구하자! 사악한 거란의 무리들을 몰아내자!”

군사들에게 연설을 하며 나는 마음속으로 변명을 했다.

‘나는 단 한마디도 거짓말을 안 했어. 고려 왕실이 용의 후손이라고 한 게 아니라 용의 후손이라 스스로 여기고 있다고 했어. 이건 역사적 사실이잖아. 그리고 라이덴 프로스트 효과 때문에 사람들이 정신만 차리면 쇳물에 안 다치는 것도 사실이고.’

“와아아아.”

이 모습을 바라보는 바위 아래 있던 군사들이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장수들도 일부러 앞장서서 환호성을 지르며 군사들의 분위기를 유도했다.

“이,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박술희가 결국 내 명령을 어기고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이제는 박술희가 다가와도 상관이 없었기에 나는 웃으며 대답을 해줬다.

“이제는 군사들을 독려해 두만강을 건너면 될 일이다.”

그런데 박술희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흐르는 쇳물을 바라보다가 가죽과 나무로 만들어진 자신의 검집을 따로 빼내서 가져다 댔다.

파악.

그 바람에 불길이 일고 쇳물이 튀었다. 나는 화가 나서 박술희를 바라보았다.

‘아니 박술희 때문에 진짜 다칠 뻔했네.’

그런데 박술희의 표정을 보고 나서 나는 차마 화를 낼 수가 없었다. 박술희는 내 멀쩡한 손을 바라보고 연거푸 중얼거렸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박술희는 자신의 검집을 떨어뜨리며 내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 모습을 바라본 바위 아래 군사들은 더욱 크게 함성을 질렀다.

“만세, 만세. 폐하 만세, 왕후 마마 만세, 고려 만세!”

나는 그런 군사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대장장이들에게 명을 내렸다.

“쇳물을 그만 흘려보내도 된다.”

“예, 마마!”

내 말을 듣고 대장장이들은 흠칫 놀라서 명을 따랐다.

‘사람들이 나를 조금 두려워하게 되려나? 원리를 설명해 주면 나를 두려워하지 않을 텐데. 그러면 군사들의 사기가 다시 떨어지니. 한동안은 비밀로 해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바위 아래에 내려섰다.

“왕후 마마!”

사방에서 고려 제장들이 내 곁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이것이, 이것이 어찌 된 일입니까?”

대광현이 멍하니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다른 장수들도 하나같이 손까지 떨며 입을 벌리고 있었다.

“지금 군사들의 기세가 상당히 올랐습니다. 그대로 부교를 놓고 강을 건너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리 말했다.

“역시 그 비밀통로에 들어갔을 때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것입니까?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더한 뭔가가?”

한쪽에서 왕식렴이 나를 보며 물었다. 왕평달의 아들인 왕식렴은 왕실 비밀통로에 대해 알고 있었고 내가 그 비밀을 푼 것도 알고 있었다.

왕식렴은 거기에서 내가 무슨 신통력이라도 얻은 줄 아는 것 같았다.

“으하하하.”

나는 그저 웃으며 대답을 안 해줬다. 그리고 그런 장수들 사이에서 왕무가 모습을 드러냈다.

‘왕무에겐 또 뭐라고 해야 하나?’

나는 왕무의 약간은 무뚝뚝해 보이는 얼굴을 보고 고민에 빠졌다. 그 사이 왕식렴의 말을 들은 다른 고려 장수들은 왕식렴을 추궁하고 있었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요? 비밀통로라니?”

“그게 뭐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왕실의 비밀에 대해 말해버린 왕식렴이 난감한 표정을 짓는데 왕무가 먼저 그쪽을 정리했다.

“왕실의 비밀이고 왕족들만 알아야 하니 더는 묻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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