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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202화 (202/216)

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  202 - 도선국사

황보제공은 약간 피로한 기색으로 자택을 나섰다. 어전에 나아가기 위해서였다.

“가자.”

수레에 올라타자마자 황보제공이 명을 내렸다. 하인들은 황보제공이 탄 것을 확인하고 수레를 몰기 시작했다.

황보제공은 멍하니 수레 밖 개경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어린아이들이 뛰어놀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태조께서 붕어하시고 폐하가 즉위하면 난리가 날 줄 알았는데…… 신기하게 별일이 없군. 몇 년이 지났는데. 왕후도 잠잠하고.’

동생인 황보금산이 개경에 올라오라는 명을 받았을 때는 황보제공도 엄청난 위협을 느꼈다.

‘그런데 여태 아무 일이 없어. 금산이는 개경에서 관직을 받아 군사들을 훈련시키는 일을 맡고 있다. 나 참. 그런데 또 뭔가 심상치 않긴 하다는 말이야. 지금 벌어지고 있는 군사훈련의 강도가 이건 보통이 아니야.’

삼한통일 과정에서 황보제공은 무장으로서 상당한 활약을 했다. 그래서 지금 개경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군사훈련이 통상적인 것은 아니란 것을 실감하고 있었다.

‘대체 폐하와 왕후의 의도는 뭐야? 나 참 갑갑해서. 게다가 죽을 줄 알았던 유긍달 그 친구도 멀쩡히 살아서 나오고. 이거 참.’

황보제공은 지금 고려 조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이해가 안 가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젯밤에도 이걸 고민하느라 늦게 잤다.

‘유긍달에게 찾아가서 물어볼까? 옛날에는 황주의 힘과 유긍달의 지략이 함께 했는데. 에잇. 그 못 믿을 인간에게 의지할 수는 없어! 어떤 면에서는 왕후보다 더한 짓을 우리에게 했으니. 유긍달 그 인간이 나한테 와서 먼저 사죄해야지!’

유긍달을 떠올리니 황보제공은 화가 나서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그런데 그 순간 어마어마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쾅!

황보제공이 평생 들어보지 못했던 어마어마한 굉음이었다.

“뭐, 뭐냐?”

무장 출신인 황보제공도 이 굉음을 듣는 순간 놀라서 부르짖었다. 그리고 수레가 거칠게 흔들렸다. 수레를 끌던 말들도 놀라서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황보제공은 계속 수레 안에 있다가는 큰일 날 것 같아서 바로 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내렸다.

쾅!

그 순간 다시 한번 굉음이 터져 나왔다. 황보제공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천, 천둥인가? 아니야. 이 소리는 천둥의 10배는 될…….”

황보제공이 중얼거리는데 황보제공을 따라온 하인들은 모두 공황상태에 빠져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개경의 거리도 혼란에 빠져 들었다. 평소처럼 거리를 걷던 사람들은 모두 굉음을 듣고 기절하거나 주저앉아버렸다.

그리고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뛰어놀던 아이들도 놀라서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황보제공의 뇌리에 뭔가가 스쳐지나갔다.

* * *

굉음이 터졌을 때 고려의 국구이자 상산백 임희는 막 집 밖을 나서려던 참이었다. 그 순간 굉음이 터졌다.

히히힝.

상산저 앞에 대기하고 있던 수레를 끄는 말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어, 어.”

임희도 굉음을 듣는 순간 얼어붙었다. 노련한 임희도 뭘 할 엄두도 못 내고 서 있었다. 그리고 상산저도 난리가 났다.

굉음은 한 번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처음 정도의 강도는 아니라도 어마어마한 굉음이 시간차를 두고 계속 터져 나왔다.

“영공 각하!”

상산저의 하인들이 일제히 임희를 바라보며 외쳤다. 처음 겪는 이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임희가 뭘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임희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다가 임희는 한순간 뭔가를 떠올렸다.

“하늘에서 진군의 북을 치고 북방에서 검은 기가 오를 때!”

임희의 입에서 몇 년 전부터 유행하던 참요의 첫 구절이 흘러나왔다. 당시 임희는 이 참요가 심상치 않다고 여겼다.

그래서 직접 베껴 써서 딸인 연우와 이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그래서 임희는 직접 노래의 첫 구절을 내뱉을 수 있었다.

“가, 각하!”

상산저의 하인들도 임희의 노랫소리를 듣고 뭔가를 깨달은 듯했다. 임희와 하인들은 하나둘씩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 * *

개경에서 멀리 떨어진 경주 도독부도 굉음이 들린 순간 난리가 났다. 마침 경주 출신 향리들을 모아놓고 일을 보던 경주도독 윤신달도 경악했다.

“뭐, 뭐냐? 이건? 경주에는 이런 일이 잦은가?”

어마어마한 굉음에 윤신달은 주변의 향리들을 붙들고 물었다.

“으으으. 아닙니다. 저희들도 평생 처음…….”

경주 향리들도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대답했다.

“왜 이리 어두워? 비구름인가? 설마 천둥이?”

윤신달은 향리들을 이끌고 도독부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본 윤신달은 말을 잇지 못했다.

확실히 비구름은 아니었다. 그러나 뭔가가 장막처럼 펼쳐져서 하늘을 메우고 있었다.

“크으으.”

여기저기서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굉음에 이어 해가 가려지며 어두워지니 사람들이 공황상태에 빠져든 것이다.

“황룡사, 황룡사에 간다!”

하지만 윤신달만큼은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윤신달도 속이 울렁거렸지만 예전에 받은 밀명 덕에 뭔가 행동을 취할 수 있었다.

‘개경의 폐하와 왕후 마마는 이 모든 것을 예측하고 계셨던 것인가?’

황룡사 쪽으로 달려가면서도 윤신달은 내심 그런 생각을 했다. 경주 도독부 가까이에 황룡사가 있었기에 윤신달과 향리들은 오래지 않아 경내에 들어섰다.

황룡사의 중들은 모두 어쩔 줄 몰라 하며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9층탑의 문을 열어라. 거기 올라가서 내가 상황을 살펴야겠다.”

윤신달의 외침을 듣고 황룡사의 중들이 허겁지겁 9층탑의 문을 열었다. 그 꼭대기까지 달려간 윤신달은 동해 쪽을 바라보았다.

“으으. 바다마저.”

무슨 검은 구름이 그야말로 온 동해의 상공을 뒤덮고 흘러가고 있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검은 구름이 끝없이 내려왔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윤신달도 앓는 소리를 내었다.

“이, 이런!”

윤신달의 뒤를 따라온 향리와 스님들도 검은 구름을 보고 입을 쩍 벌렸다. 그런 향리들을 향해 윤신달이 명을 내렸다.

“출항! 출항 준비를 하라! 태조 대왕의 명에 따라 만들어 둔 배들을 준비시켜라. 내가 직접 배를 타고 나가겠다.”

“도독! 이 와중에 어디를 가시겠다는 것입니까?”

향리들이 입을 모아 윤신달을 말렸다.

“개경에서 밀명이 내려왔었다. ‘삼한 사람들이 천명을 받아 검은 깃발이 가리키는 곳을 가네.’ 우리는 북쪽으로 간다. 북쪽에 가서 사람을 구한다! 내가 받은 밀명에는 도선국사께서 남긴 노래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폐하께서 그 노래의 뜻을 깨달았을 때 두만강 하구까지 나아가 사람들을 구해오라고 적혀 있었다. 아마, 아마 북방에서 무슨 일이 터졌을 것이다.”

윤신달이 호흡을 고르며 말했다.

“도선국사의 노래라면 태조 대왕 시절의?”

향리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그리고 따라 올라온 황룡사의 주지 능훈도 입을 열었다.

“도선국사께서 도선비기의 마지막 장에 남기셨다는 노래가 적힌 비석도 이 인근에서도 발견됐습니다. 그걸 우리 황룡사에서 보관하고 있지요. 허허허. 결국 도선국사께서 이 모든 것을…….”

능훈이 흥분한 기색으로 동해의 검은 구름을 바라보았다.

그 사이 윤신달은 다시 한번 향리들을 독촉했다.

“서둘러 출항 준비를 하러 가자! 아마 동해의 다른 호족들도 밀명대로 움직일 것이다. 가자!”

그러더니 윤신달은 뛰어서 황룡사 9층탑을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향리들도 그런 윤신달의 뒤를 따랐다.

* * *

굉음이 터졌을 때 왕무와 함께 처소에 있던 나는 화들짝 놀랐다. 나는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물론 나는 다음 순간 백두산이 대폭발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그래도 이 정도 굉음이라니?’

계속 이어지는 굉음에 나는 몸에 힘이 빠졌다. 몸을 제대로 못 가누는데 곁에 있던 왕무가 그런 나를 부축했다.

왕무는 얼굴이 좀 창백해지긴 했지만 거의 멀쩡해 보였다.

‘아니 나는 현대인이라 백두산 대폭발을 다 예견하고 있었는데도 놀라서 정신을 못 차리는데. 왕무는…… 내가 언질을 좀 주긴 했지만 나보다 안 놀라!’

나는 살짝 자존심이 상했다.

‘하긴 역사 기록이 부실해서 이때쯤 백두산이 터진다는 것만 알고 정확한 날짜는 모르니까. 나도 놀랄 수밖에. 나는 정상이야. 침착하게 버티는 왕무가 이상한 거지. 거기에다가 왕무는 내꺼니까 뭐.’

내가 그리 마음을 달랬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내 몸은 흐느적거렸다. 아무리 예측을 한 상태라도 수천 년 만에 터진 화산이 내는 굉음은 무서웠다.

“연우야. 아무래도 백두산에서 일이 터진 거겠지?”

왕무가 휘청거리는 내 몸을 부둥켜안으며 물었다.

“응.”

나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침통함을 느끼고 있었다.

‘백두산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개경에서도 이런 충격을 느끼는데 바로 곁에서 폭발을 감당해야 하는 여진족들은 어찌 될지?’

그들에 대해 떠올리면 나는 마음이 무거웠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는 취해놨다.

왕무는 나를 껴안은 채 밖으로 나섰다. 하늘은 어두컴컴하고 거기에 엄청난 굉음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어마어마하군.”

왕무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북쪽에 있는 여러 고을들은 더 동요하고 있을 거야. 전령을 보내서 그들을 달래야 해.”

나는 왕무에게 그런 충고를 했다.

“우선 어전에 가자. 거기에서 중신들과 함께 일을 수습해야겠어.”

나는 왕무에게 안겨서 어전으로 향했다. 어전을 경호하는 시위들도 어쩔 줄 몰라 하며 동요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와 왕무가 모습을 드러내자 겨우 동요를 멈추었다. 나와 왕무가 어전에 앉아 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왜 안 와?”

내가 당황해서 묻는데 왕무가 입을 열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말을 탈 수가 없어. 아마 여러 사람들이 걸어오느라 늦을 거야.”

왕무의 예측은 정확했다. 한참 기다리고 있으니 여기저기에서 중신들이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하나같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언덕에다가 왕궁을 지어놓으면 이래서 안 좋구나. 말을 못 타는 비상시에 달려오기가 힘드니.’

비상상황인 것을 느끼고 여러 중신들은 자신의 저택에서부터 언덕 위의 어전까지 전력질주해서 달려온 것 같았다.

어전에 당도한 중신들은 정신을 못 차리고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물과 차를 준비하라!”

왕무가 궁의 시녀들에게 명을 내렸다. 어쩔 줄 몰라 하던 시녀들도 왕무가 근엄한 목소리로 지시를 하니 기민하게 움직였다.

시녀들이 가져온 물이며 차를 마시고 잠시 쉬자 중신들도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한 것 같았다. 장내가 수습되는데 멀리서 황보제공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어전에 달려오자마자 황보제공이 외쳤다.

“사면령!”

나와 왕무는 좀 황당해져서 황보제공을 바라봤다. 그런데 황보제공은 그렇게 달려와 놓고 숨도 안 차는지 즉시 말을 이었다.

“사면령을 실시해서 하늘의 분노를 달래야 합니다. 이, 이건.”

황보제공은 사면령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지 계속 사면령 쪽으로 화제를 끌고 가려고 했다.

‘사면령도 좋지만 도선대사의 노래 쪽으로 화제를 끌고 가야 하는데. 내가 직접 나서야 하나?’

나는 갑갑한 표정으로 황보제공을 바라보았다. 그때 임희가 한걸음 나서더니 말했다.

“폐하. 소신은 몇 년 전 도선비기에 실려 있다는 노래를 듣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 왔습니다. 특히 노래의 첫 구절과 둘째 구절은 무엇을 뜻하는지 알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비로소 하늘의 북소리와 검은 깃발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말을 듣자 여기저기에서 찬동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맞소. 과연 도선국사께서는 이 모든 것을 내다보고 계셨소.”

“전국 각지에서 비석이 발견된 것도 징조였소.”

“첫 번째, 두 번째 구절이 맞다면 세 번째, 네 번째 구절 역시 마찬가지!”

도선국사의 노래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며 겨우 내 의도대로 여론이 흘러갔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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