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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189화 (189/216)

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 189 - 수명

“연우야. 이게 네가 만든 지동의야? 신기하네. 며칠간 고생하더니 결국 만들었어.”

군영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온 왕무가 지동의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 그래.”

나는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왕건이 왕무에게는 이 사실을 알리라고 말했다.

나도 일을 진행하려면 왕무가 이 사실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이건 결코 사실이 아닌데. 지동의부터 가짜잖아.’

나는 복잡한 심정으로 왕무를 바라보았다.

왕무는 동북쪽의 구슬이 계속 떨어지는 것을 보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과연 연우 네 말대로네. 동북쪽의 구슬이 이러다니. 정말 백두산이 조만간…….”

왕무는 곧이곧대로 내 말을 믿고 있었다. 나는 그냥 모든 걸 말하고 싶었다.

‘내가 현대에서 왔고 원래는 남자였고 그리고, 그리고 얼마나 너를 사랑해서. 이리됐는지.’

그냥 왕무를 붙들어 놓고 모든 걸 얘기하고 함께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면 난리가 나겠지. 충격도 크고.’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그런 내속도 모르고 왕무는 현이까지 품속에 안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현아. 네 엄마가 만든 지동의를 봐라. 정말 잘 만들었지?”

그러더니 왕무는 지동의의 구슬 하나를 현이 손에 쥐여주었다. 현이는 구슬을 만지작거리며 기뻐했다.

나는 마음이 너무 갑갑했다.

‘현이마저 가짜 지동의를 보고 속이는 격이야.’

한참 지동의를 둘러보던 왕무는 현이를 안은 채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말했다.

“오, 오늘은 간만에…….”

왕무가 살짝 얼굴을 붉히더니 나에게 말했다. 왕무와 오래 함께한 나는 그 말뜻을 재빨리 눈치챘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오히려 반가웠다.

‘차라리 잘 됐다. 내 마음이 이리 심란한데.’

* * *

간만에 나는 왕무와 재밌고 시간이 잘 가는 일을 했다. 현이는 경란이가 돌보고 있었다.

일을 마치고 나는 기진맥진해서 침상에서 왕무의 팔을 껴안고 멍하니 누워 있었다.

‘참 어느 순간부터 이러는 게 자연스러워졌으니. 그래도 너무 좋다.’

여러모로 복잡했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뭐 상황은 그대로였지만 말이다.

“연우야. 역시 북벌이 너한테 너무 부담이 되는 걸까? 요새 근심이 많아 보여.”

역시 왕무는 귀신같이 내 복잡한 마음을 눈치챈 것 같았다. 다만 왕무는 내 비밀을 모르니 북벌 때문에 내가 고민한다고 여기는 듯했다.

“어. 그렇지.”

나는 적당히 그렇게 둘러댔다.

“나 때문에 연우 네가.”

왕무가 순식간에 시무룩해져서 중얼거렸다.

“아니야. 북벌은 나의 꿈이기도 했어. 백두산이 흔들리는 것을 관측해냈는데 그 기회를 놓칠 수는 없어. 나도 큰 꿈을 꾸고 있었다고.”

나는 침상 위에서 내 가슴을 탕탕치며 외쳤다.

‘물론 왕무 덕에 꾸게 된 꿈이지만. 에라 모르겠다. 원래 내가 북벌의 꿈을 꾸고 있었다고 치자. 암 대한민국 석사였던 내가 기왕 이 시대에 떨어졌는데 시시한 일만 할 순 없지.’

그런 나를 왕무가 꼭 안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어전에서 폐하께서 좀 이상한 명을 내리셨어. 그것도 연우 너랑 의논한 일이니?”

“뭔데?”

“경주 도독 윤신달, 명주 도독 김순식, 골암성주 윤선 등 동해에 접하고 있는 호족들에게 배를 건조하라고 명하셨어. 물론 호족들이 부담을 느낄 정도의 일은 아니야. 동해의 호족들에게 고루고루 일을 나눠주시긴 했는데. 서해도 아니고 동해에 배를 만들어봤자 어디에 쓸데가 있을지? 많은 중신들이 의아해하고 있어.”

왕무가 말했다.

“동해의 호족들이 폐하의 명을 잘 따르고 있어?”

“그야 뭐. 안 따를 수가 있나? 열심히 만들고 있지.”

왕무의 대답을 듣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삼한을 통일한 왕건의 위엄으로 명을 내리니 순식간에 일이 되네. 왕건의 도움을 받길 잘했구나.’

왕건은 나와 의논한 대로 일을 착착 진행시키고 있었다.

“동해에 배를 만들라고 한 건 말이야.”

나는 왕무의 귀에 대고 내 계획에 대해 속삭여줬다. 내 말을 들은 왕무는 화들짝 놀란 기색이었다.

“정말 연우 네 말대로 일이 풀리기만 한다면야. 그래 연우 네 말대로 될 거야.”

왕무는 또 순식간에 나를 믿고 기쁜 표정을 지었다.

“응. 이 일은 확실해. 그러면 북벌을 할 때 가장 큰 걱정거리 하나가 해결되는 거지.”

나는 확신을 담아 말했다.

* * *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사이 고려의 북벌 준비는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참요가 도는 것을 보고 호들갑을 떨었던 임희도 결국 나주원에 찾아와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참요를 듣고 무슨 엄청난 정치적 격변이 일어날 거라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아무 일이 없구나. 그냥 유행한 노래였나 보다. 거리에서 어린아이들이 열심히 부르고 다니기는 하는데 민심이 동요하지도 않고. 나는 무슨 난이라도 일어날까 봐 걱정을 했다만.”

왕건이 직접 퍼뜨린 노래니 민심이 동요하거나 고려가 흔들릴 리 없었다. 아무 일이 없자 임희도 긴가민가한 모양이었다.

“정말 도선 국사께서 남기신 노래 아닐까요?”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임희에게 말했다.

“그래.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뭘 의미하는지 감도 안 잡힌다. 하늘의 북소리라니? 과연 무얼 뜻하는 걸까? 어쨌든 조정에는 별일이 없으니 연우 너는 안심해도 된다. 왕식렴과 황보제공도 힘을 못 쓰고 있으니. 아 다만 폐하께서 요 근래 엄청난 군량을 북방에 비축하고 계신다. 혹시 북벌에 나서실 생각이신가? 그런데 그러진 않을 거라 하셨는데. 참 폐하의 뜻은 알 수가 없구나.”

임희가 조정의 동태를 소상하게 알려주었다.

“뭐 거란에 대한 방비를 위해서 군량을 비축하신 것 아닐까요?”

내가 다 시킨 일이지만 나는 모르는 척 그리 말했다.

“그러기엔 그 양이 엄청나서. 그건 그렇고 연우 네가 조만간 다시 한림원에 나간다고 들었다만.”

“예. 그렇습니다. 잠깐씩 나가보기로 했습니다.”

“이젠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느냐? 예전에야 한림원에서 연우 네가 폐하의 동태도 살피고 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모든 일이 해결됐다. 정윤 전하의 위치는 확고하다.”

임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뭐 그렇긴 합니다만. 왠지 나가봐야 할 것 같아서.”

나는 씁쓸한 어조로 말했다. 확실히 임희의 말대로 이젠 굳이 내가 한림원에 나가 일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몇 년 뒤 왕건이 세상을 떠나면 내가 한림원에 그렇게 나가 일을 할 수가 없어진다. 나는 고려의 왕후가 되니. 끝이 다가오고 있다니 아쉬워져.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왕건을 보좌해야 할 것 같아. 북벌을 위한 준비를 해야지.’

그래서 나는 한림원에 나가기로 결심했다.

“뭐 연우 네가 나간다고 해서 나쁠 것도 없지. 허허허. 간만에 다시 일을 하면 힘들겠구나. 꽤 오래 쉬다가 일을 하게 됐으니. 건강에 주의하거라.”

임희는 내 말을 듣고 그리 당부했다.

그리고 다시 한림원에 나가게 된 나는 김악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잘 오셨습니다. 정윤비 마마. 마마의 재주가 필요한 때입니다.”

“예. 감사합니다.”

나는 그런 김악을 보며 다소 황당해졌다.

‘내가 김악과 그리 친했던 것 같지 않은데 왜 이리 반기는지?’

나는 어쨌든 간만에 한림원의 내 자리에 앉았다.

‘참 여기서 견훤에 맞서는 왕건을 도왔지. 별별 꾀를 다 내며 문제를 해결했었는데.’

서서히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한림원은 여전히 바빴다.

왕건이 은근히 북벌 준비를 하는 것도 있고 통일 이후 고려의 행정을 정비해야 하는 것도 한림원의 연구가 필요했다. 학사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 모습을 바라보는데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어전에서 일을 마치고 왕건이 온 것이다. 왕건도 다시 나온 나를 보고 아는 척을 했다.

“간만에 우리 연우가 나왔구나. 그래 다시 일을 하려면 적응기간이 필요하니 슬슬 일을 보도록 해라.”

왕건이 나를 생각해 주는 척하고 자신의 자리에 갔다. 그리고 학사들이 만들어 바친 자료를 둘러봤다.

그렇게 평온하게 일이 이어지고 있는데 갑자기 전령 하나가 뛰어들어 왔다.

“폐하. 급보입니다!”

다급해 보이는 전령의 얼굴을 보고 한림원 사람들은 크게 동요했다. 삼한통일 전에야 이런 일이 자주 있었다.

그러나 통일 후에는 이리 급보를 전하러 전령이 한림원에까지 오는 일이 없었다.

“무슨 일이냐? 설마 거란이?”

왕건도 놀란 기색으로 물었다.

“대, 대장군이 군문에서 일을 보다가 쓰러졌습니다.”

“유금필이?”

왕건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확실히 유금필이 쓰러진 것은 큰일이긴 했다. 그 소식을 들은 나는 두 눈을 감았다.

‘벌써 941년이 됐구나. 정말 역사는 정해진 대로 흘러가네. 미래지식이 있어도 이건 어쩔 수 없어. 유금필의 죽음은 자연사니.’

* * *

유금필의 저택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있었다. 유금필이 위독하다는 소문을 듣고 개경 주민들이 몰려온 것이다.

나와 왕건은 군졸들의 호위를 받으며 그 사람들을 헤치고 유금필의 저택 안에 들어섰다. 저택 안에는 이미 왕무를 비롯해 여러 장수들이 있었다.

왕무는 군영에서 일하는 만큼 유금필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더 빨리 듣고 움직인 것 같았다.

“정윤. 대장군의 병세는 어떠한가?”

왕건이 재빨리 왕무에게 물었다.

“위중하십니다.”

왕무가 무거운 어조로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왕건은 큰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왕건은 나와 왕무를 데리고 유금필이 누워 있는 처소로 향했다.

“아버님!”

처소에는 이미 동양원 부인이 와 있었다. 동양원 부인은 눈물을 펑펑 쏟으며 유금필의 손을 잡고 있었다.

유금필의 아들들도 침통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왕건이 들어온 것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폐하께서 오셨구나. 너희들은 잠시 나가 있거라.”

유금필은 우리의 모습을 보고 그리 말했다. 동양원 부인을 비롯한 유금필의 가족들이 자리를 비워줬다.

“대장군. 나는 대장군이 이 아이들을 보살펴주기를 바랐다. 그런데……백옥삼, 홍유에 이어 대장군마저. 친우들이 모두 나보다 먼저 가니.”

왕건이 착잡한 어조로 말했다.

“뭐 일이 이리됐습니다.”

유금필은 힘없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더니 내 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마 정윤비 마마께서 소장에게 할 말이 있으셔서 이리 온 것 같습니다.”

유금필의 말이 맞았다. 나는 마지막으로 유금필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어서 왔다.

“대장군. 만약 우리 고려가 북벌을 하려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까? 압록강을 건너서 서북으로 진출해야 합니까? 아니면 두만강을 건너 동북으로 가야 합니까?”

어쨌든 나는 왕무와 함께 북벌을 하기로 결심을 했다. 유금필 같은 명장에게 대전략에 대해서 지도받고 싶었다.

어느 방향으로 진격해야 할지 역사를 아는 나도 판단이 안 섰다.

‘고려 시대에 윤관은 대군을 거느리고 동북으로 나갔고, 이성계는 서북으로 진출했다. 그러나 두 북벌 모두 실패했으니.’

그래서 이리 달려와 유금필에게 묻는 것이다.

“과연 폐하와 정윤 전하, 정윤비 마마께서는 은밀히 북벌을 준비하고 계셨군요. 한번은 기회가 오리라 믿으시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유금필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건 정윤 전하와 정윤비 마마께서 그때 상황을 보고 판단하셔야 합니다. 구체적인 상황도 보지 않고 소장이 함부로 말할 수 없습니다. 정윤비 마마께서 병법에 능하시니 소장은 정윤비 마마를 믿습니다.”

유금필의 말을 듣고 나는 힘이 쭉 빠졌다.

‘유금필은 내가 병법의 대가인 줄 알고 있으니 저런 말을 하지만. 미래 지식이 없으면 나는 별 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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