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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77화 (77/216)

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 77화

77. 망명

“침착해야 해. 우리 모두 침착하게 대책을 생각해 내야 한다. 결코 당황해서는 안 된다.”

내가 한림원에 들어서자마자 왕건이 학사들을 둘러보며 그렇게 외치는 모습이 보였다.

왕건은 자리에 앉아 있지도 못하고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왕건 본인이 제일 당황한 것 같은데.’

나는 그런 생각과 함께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끼며 한림원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는 왕건이 일주일간 준 신혼 휴가를 다 쓰고 간만에 학관에 갔다.

나는 혼인을 하고서도 그 사실을 실감하지 못했다. 왕무와는 진짜 밤에 손도 잡지 않고 잤다.

그나마 요새 무슨 일이 생겼는지 왕무는 나주원이 아니라 밖에서 자고 들어올 때도 많았다. 나로서는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나주원에서 보내는 시간도 이전과 비슷했다.

‘오지수에게 립밤 사업을 결국 내주기는 했지만 속이 약간 쓰린 정도고 큰 변화는 아니지.’

그러다가 밖에 나와서야 나는 비로소 내가 혼인을 했다는 것의 의미를 체감했다.

“정윤비 마마.”

학관에 들어서자마자 배수현이 나를 보고 예를 갖추며 말했다.

“그래, 그래. 수현아. 학관에서는 예를 갖출 필요 없어.”

나는 배수현의 두손을 잡으며 말했다. 왕무와의 혼사를 깨려 했을 때 나는 배수현의 호의를 배반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이제는 이리 덜컥 혼사가 이루어졌으니 배수현과도 잘 지내고 싶었다.

‘이제는 진심으로 배수현을 대해야지.’

나는 그런 결심을 하고 있었다.

“학관이니 오히려 더 예를 갖추어야 합니다. 정윤비 마마.”

군인 가문 출신이라 그런지 배수현은 엄격하게 말했다.

국선선발 때 나를 위해 뛰어준 친구들도 모두 배수현의 뒤에서 나에게 예를 갖추었다.

‘그래 나는 이제 유부녀구나. 그것도 남편이 차기 왕위계승권자인 정윤.’

나는 가슴이 아릿해졌다. 아무리 세력이 미약하다고는 하나 정윤은 정윤이었다.

정윤비가 된 나는 공주들보다 지위가 높아졌다고 할 수 있었다.

신분제 사회인 이 고려시대에 배수현이나 친구들이 나를 예전처럼 편하게 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약혼자일 때와 정윤비가 된 것의 차이도 컸다.

‘진심이 되기엔 너무 늦어버린 건가?’

그 생각을 하니 나는 가슴이 아팠다.

“언니.”

함께 학관에 온 오지수가 멍하니 서 있는 내 소매를 잡아당겼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제는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래 모두들 이 학관에서 정윤 전하를 위해 노력하자.”

내가 그렇게 말하자 배수현과 친구들은 안도하는 기색이었다.

“정윤비 마마의 명을 받듭니다.”

“다만 나를 부를 때 국선이라고 불러줬으면 좋겠어. 나는 고려의 국선이기도 하니.”

나는 배수현과 친구들을 보며 말했다. 왠지 국선이라는 호칭이 그나마 내 마음에 위안을 주었다.

“알겠습니다. 국선.”

배수현은 환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첫날밤에 왕무가 나를 국선이라 불렀구나. 왜 그랬을까? 내가 이럴 것을 진작 알았던 것처럼.’

거기에 생각이 미친 나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 * *

학관에서 이런 일이 있어서 나는 적지 않게 싱숭생숭했다. 그런데 복잡한 심경으로 한림원에 오니 떠들썩한 것이 예전과 똑같았다.

한림원의 학사들도 어쩔 줄 몰라 하는 왕건을 진정시키느라 내 쪽에 신경을 못 쓰고 있었다. 이 난장판이 왠지 모르게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침착해야 해!”

강박적으로 외치던 왕건이 나를 보고 반색을 하며 외쳤다.

“마침 우리 연우가 왔구나. 지금 상황에 대해 아느냐? 아니 견훤이 그놈이 거란에 사신을 보냈다고 하구나. 거란의 사신도 백제에 답례차 왔고. 다 해로를 통해서 그 수작을 부렸어. 그런데도 우리 고려는 눈치를 못 채고 있었어. 백제의 배가 풍랑으로 중국에 표류해서 지금 그 사실이 알려졌다. 그쪽 조정에서 우리에게 알려줘서 알았다고! 견훤이 그놈이 대체 야율덕광과 무슨 일을 꾸미는 거야?”

왕건은 손까지 떨면서 나에게 말했다.

‘하긴 왕건으로서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겠지.’

발해가 망한 것이 지금으로부터 불과 3년 전이었다. 코앞에서 그 광경을 본 왕건은 거란을 두려워하고 있었는데 백제와 거란이 연결됐다는 소식을 접하자 이성을 잠시 잃은 것 같았다.

‘역사기록을 보면 왕건이 거란을 진짜 싫어했는데 과연 그대로군. 이 정도로 동요하는 모습은 처음이야.’

하긴 만에 하나 거란이 견훤에게 호응해서 고려의 북쪽 국경을 어지럽히면 왕건은 남북으로 적을 막아야 할 판국이었다.

‘견훤 이 사람도 이것저것 활동을 많이 하긴 했어. 그러나 거란도 사정이 복잡해서 그냥 사신만 서로 보내는 것으로 끝나는데.’

미래 사학도인 나는 이 일의 결과도 훤히 알고 있어서 마음이 편했다.

다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왕건은 백제와 거란의 사신 교환 소식 하나만으로 엄청난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견훤이 그놈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아무리 그래도 거란 오랑캐와 결탁해! 그건 그렇고 연우야. 너는 뭔가 방책이 없느냐?”

“이미 정윤 전하와 제가 함께 서경에 갔을 때 고안한 거중기가 북쪽 국경에 모두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을 튼튼하게 짓고 있습니다. 거기에 우리 고려는 산이 많은 지형이라 거란기병들도 기동할 공간이 적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는 차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면서 은근히 내가 도입한 거중기에 대해 생색도 냈다.

“그건 그렇다만.”

왕건은 내 말에 이성을 어느 정도 찾은 기색이었다. 어쩔 줄 몰라 하던 한림원 학사들도 반색을 하며 나를 거들었다.

“정윤비 마마의 말씀이 옳습니다. 좀 고정하십시오.”

“지금은 거란을 피해 고려로 오는 발해의 유민들을 잘 대접하고 그들과 함께 북쪽의 경계를 굳혀야 합니다. 정윤 전하와 제가 발해 유민들의 일을 관장하게 해주십시오. 표천현의 은광에서 나오는 은으로 유민들의 정착 비용을 대겠습니다.”

내가 한걸음 나서서 외쳤다.

“오오. 연우야. 참 가상하다. 다른 호족들은 고려에 오는 발해 형제들을 거렁뱅이 취급하며 자기 돈 쓰기 싫어서 별별 핑계를 다 대며 자기 땅에 발해 형제들을 받지 않으려고 하는데. 내 안 그래도 연우 네가 가진 은을 좀 빌리려는 마음은 있었다. 다만 며느리 돈을 빌리는 시아버지가 될까 봐 망설였다. 먼저 이리 해주니 고맙다. 너와 정윤이 궂은일을 떠맡겠다니.”

그러자 왕건은 반색을 하며 대답했다.

“발해의 동포들을 돕는 일인데 어찌 궂은일이라 하십니까? 참으로 명예로운 일이라 다른 호족들이 저와 정윤이 그 일을 맡는 것을 꺼려 할까 봐 오히려 근심입니다.”

내가 은근히 튕기자 왕건이 손을 저었다.

“그런 일은 없을 테니 걱정 마라. 네가 유민들의 일을 맡는다고 하면 오히려 즐거워할 사람들이야. 그건 그렇고 내가 연우 너를 잘못 봤구나. 나는 연우 네가 상당히 계산적인 성격이라 생각했는데. 허허. 구산사에서의 일이 새삼 미안하구나.”

왕건은 얼마나 기쁜지 나한테 사과 비슷한 것까지 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양심이 약간 찔리긴 했다.

‘내가 지금 이러는 것도 다 계산을 하고 이러는 건데.’

발해의 동포들을 받는다는 것이 낭만적으로 들리긴 해도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거란에 의해 나라가 망하고 대부분의 발해인들은 진짜 빈 몸으로 목숨만 건져서 고려로 탈출했다.

이 사람들을 받아주면 먹고 살 방도를 다 마련해 줘야 하는데 이 비용이 만만치가 않았다. 국왕인 왕건은 발해 동포를 받는 일에 적극적이었지만 실무를 보는 사람들은 꺼리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몇 년만 지나면 발해 태자 대광현이 망명해 올 테니 지금 발해유민들을 돌봐서 손해를 봐도 대광현이 왔을 때 그 손실을 메울 수 있다.’

역사 기록을 보면 거란에 맞서던 발해 태자 대광현도 결국 사정상 왕건에게 온다. 그런데 이때 대광현은 빈 몸으로 온 게 아니라 수만 명의 군사, 백성들과 함께 온다.

‘거란과의 전투로 단련된 정병에 대광현을 따르는 전문가들도 모두 흡수할 수 있다. 지금부터 발해 유민들을 관장하는 일에 침을 발라놔야지. 그러면 왕무의 세력을 크게 키울 수 있다. 왕건도 구산사에서 분명 명분에 합당하면 나와 정윤이 세력을 키우는 걸 막지 않겠다고 했으니.’

나는 그 계산을 하며 유민들을 감당하겠다고 한 건데 왕건은 진짜 고마워하고 있었다.

어쨌든 내가 내 돈을 쓰며 나서자 어쩔 줄 몰라 하던 왕건도 어느 정도 진정된 것 같았다. 그런데 전령 하나가 왕건에게 달려오며 외쳤다.

“재암성주 선필이 보낸 급보입니다.”

그러면서 전령은 서신 하나를 왕건에게 바쳤다.

“선필이 보냈다고? 그쪽에 일이 생긴 건데. 이거 참 떨리는군.”

왕건이 침을 삼키며 서신을 열었다.

-응천군 성주 손긍훈이 견훤의 핍박을 견디지 못하고 고려에 망명하기를 간곡하게 청하고 있습니다. 손긍훈은 성이며 가산을 모두 버리고서라도 고려에 올 각오입니다…….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게 서신을 읽어 내려가던 왕건이 문득 말을 멈추고 학사들에게 명을 내렸다.

“응천군이 어디쯤 있지? 지도를 가져와 봐라. 보면서 서신을 읽어야겠다.”

학사 하나가 재빨리 지도를 펼쳤다. 나도 슬그머니 껴서 지도를 보니 응천군은 오늘날 경남 밀양 인근에 위치한 곳이었다.

“여기는 지금 견훤의 세력 한가운데나 다름없어서 난감하군. 손긍훈을 구하기가 만만치 않을 거야. 그 사람이 가족들만 데리고 온다 쳐도 육로로는 도무지 올 수 없다.”

지도를 보면서 왕건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손긍훈을 구하는데 소극적인 것 같았다. 그런데 곁에서 최언위가 이상한 표정으로 물었다.

“폐하께서는 손긍훈의 이름을 못 들어보셨습니까?”

“응천성주 아닌가?”

왕건이 말했다.

‘음 하긴 왕건이 지금 기억해야 할 사람의 이름이 너무 많으니 어쩔 수 없겠지. 전국 호족들의 이름을 왕건이 다 알 수는 없으니.’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데 최언위가 말했다.

“손긍훈은 저 유명한 손순의 후손입니다. 최소 옛 신라 땅 일대에서는 매우 유명한 사람입니다.”

최언위는 신라 출신이라 그쪽 사람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손순! 내가 아는 그 효자 손순이 맞는가?”

왕건이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서신을 읽어 내려갔다.

-처음에는 견훤도 손긍훈을 존중하여 손긍훈이 서라벌에 세금을 바쳐도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백제 도적들은 공산 싸움 이후 몇 년이 지나도 옛 신라 땅의 민심이 견훤을 따르지 않자 초조해졌습니다. 그리하여 손긍훈을 핍박해 그 가보인 석종을 내놓고 백제에 신하의 예를 갖출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손씨의 가보인 석종을 치며 사벌주, 강주, 양주 일대를 돌며 손순의 후손마저 이제는 백제를 따르고 있다고 외칠 계획이라 합니다. 손긍훈은 이 치욕을 피하기 위해 고려에 망명을 청한다고 합니다.

“이, 이러면 안 된다. 손순의 후손이라면 무조건 구해와야 한다. 이 석종이 손순의 고사에 나오는 그 종인가?”

왕건은 다급한 표정으로 최언위를 보며 물었다.

“맞습니다. 난세가 오자 손씨 가문 사람들이 선조의 석종을 자신들의 근거지로 가져와서 지킨 것입니다.”

최언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손순은 이 시대 삼한사람들은 모두 아는 효자의 대명사 격인 사람이었다.

손순은 너무 가난해서 먹을 음식이 부족했다.

그러자 배가 고픈 손순의 어린 아들이 철없이 늙은 할머니의 음식을 달라고 하고 할머니는 손자에게 매번 음식을 내줘서 굶었다.

그래서 손순은 어머니를 살려야겠다고 독한 마음을 품고 자기 아들을 파묻어 죽이려고 했다.

이 시대는 워낙 가혹한 환경이라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하필 손순이 땅을 판 자리에서 석종이 나왔다. 손순이 그 종을 쳐보자 온 하늘에 소리가 울렸다.

손순은 사람을 살리라는 하늘의 뜻이라 생각하고 독한 마음을 버리고 다시 아들을 데리고 집에 돌아왔다.

그런데 이 종소리가 서라벌 전체에 울렸기에 놀란 사람들이 종소리가 들린 곳에 몰려와 마침내 손순의 사연을 알게 됐다.

이에 감명받은 당시 신라국왕이었던 흥덕왕이 곡식을 주며 손순 일가를 구했다.

이 고사는 진짜 유명한 이야기였다.

이후에도 손순의 후손들은 선조의 명성 덕인지 응천군에 할거하며 호족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래서 응천군은 신라가 거의 끝장난 지금도 신라 조정에 세금을 바치고 있었다.

손씨 가문의 고사를 생각할 때 도무지 신라 조정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견훤도 서라벌을 토벌하고 나서 이런 손씨의 충정은 지켜주는 게 미덕이라 생각하고 굳이 건드리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몇 년이나 지나고 여유가 없어지자 마침내 견훤도 응천군에 손을 뻗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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